보드게임의 경쟁자는?

캄바오공방에서 나온 저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사실, 이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을 만나러 가고 싶긴 한데 들르면 다음 일정이 너무 빡빡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래도 부산까지 왔으니 한두 시간만이라도 만나뵙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괴정역에서 꽤 긴 시간 동안 도시철도를 타고 부산대역에서 내렸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은 이곳에 그분이 계시죠! 남부지역 순회방문 때마다 들렀던 다락을 운영하시는 스머프2 님. 저는 예고도 없이 불쑥, 훅 치고 들어갔습니다.
"스머프 님, 안녕하세요?"
그러자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시던 스머프2 님은 입을 떡 하니 벌리시고 2초간 정지 상태로 계셨습니다. 마치 야구동영상 (?)을 몰래 보다가 갑자기 방에 들어온 엄마를 본 표정 같은... 스머프2 님과 정답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제가 2년 전에 다락에 왔을 때에 스머프2 님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잘못 되시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다행히 이번에 방문했을 때에 건강을 완전하게 회복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던전 안쪽 방에 감금당하고 안내를 받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썰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년간 어떻게 지내셨냐부터 건강하셨냐, 모임/다락은 잘 되냐 등등을요. 그런데 다락에 일가족 보드게임 손님이 오셔서 대화가 잠시 중단 되었습니다. 저는 안방에 있는 게임장을 훑어보고 있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게임들이 보였습니다. Watson & Holmes 왓슨 앤 홈즈라든지 저도 얼마 전에 재미있게 한 T.I.M.E Stories 타임 스토리즈 풀 세트 등이요.

손님들에게 게임 설명을 마치고 돌아오신 스머프2 님과 대화를 계속했습니다.
"요즈음은 추리 게임이 대세다 아입니꺼."
"아, 그런가요?"
"이게 계절별로 인기가 다른데예. 이번 여름에는 추리 게임이 많이 나갔습니더."
그러면서 스머프2 님은 얼마 전에 정말 '어렵게' 구하신 왓슨 앤 홈즈 얘기를 살짝 하셨습니다. 뭐, 자랑이신 거죠. ㅋㅋ 저는 아직 못 해본 게임인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대화는 아래쪽에 꽂혀 있는 타임 스토리즈로 넘어갔습니다.
"스머프 님, 타임 스토리즈도 손님들한테 나가나요?"
"이게 손님들한테 억수로 잘 먹힙니더. 특히 여성분들한테."
타임 스토리즈는 저희 안양 모임에서 최근에 하루에 몰아서 열 시간 가까이 플레이해봤습니다. 재미있다 말만 들어봤지 그때 처음 해보고 저희 멤버들 모두 홀딱 반했는데요. 이게 어렸을 적에 팔았던 게임 북 방식이어서 플레이어들을 몰입시키기에 좋긴 합니다. 그래도 게임이니 규칙이 있고 옆에서 누가 봐줘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게임이 비(非)보드게이머들한테 정말로 통한단 말인가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 방탈출 카페 아시죠? 손님들이 거기 예약 걸어놓고 여기 와서 기다린다는 거 아닙니꺼. 막 4시간이고 5시간이고 기다려야 해서 여기 와서 게임하면서 기다리는데예. 제가 타임 스토리즈 한 번 가르쳐 드리니까 이거 하느라 방탈출 카페에 전화해서 '저희 예약한 거 취소할게요.' 이런다는 거 아닙니꺼."
방탈출 카페는 수도권에서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번화가마다 몇 개씩 생겼습니다. 한 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일인당 몇만 원의 비용을 내야 함에도 추리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이나 커플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들었죠. 방탈출이라는 컨텐츠를 물리적인 공간에서 구현하고 인테리어비, 소품비를 뽑으려면 일정 기간 동안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한 번 클리어한 손님들은 다른 탈출 방을 원하기 때문에 한 가게 안에 여러 탈출 방을 만들어 두어야 하죠. 저 같은 '뼛속까지 보드게이머'인 사람의 시각에서 '아니, 뭐 저런 거에 시간 당 몇만 원을 쓰고 싶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요즈음 YOLO (You only live once)가 대세이니만큼 자기가 쓰고 싶은 것에 돈이 얼마가 들든 마음 대로 쓰는 세상이긴 하죠.


아무튼 스머프2 님의 말씀은 '타임 스토리즈나 추리 게임들이 방탈출 카페의 대항마다.'라는 겁니다. 보드게이머들에게 추리 게임은 리플레이성이 매우 제한된, 두뇌의 특정 부분만 집중적으로 쓰는, 단순한 게임으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비보드게이머들에게는 다르다는 얘기죠. 어제 제가 캄바오공방편에서 테마틱 게임을 언급했습니다. 테마틱 게임이 초보자들에게 잘 먹힌다고요. 보드게이머들이 저지르기 쉬운 잘못 중 하나가 초보자에게 새로운 게임을 소개할 때에 메커니즘 중심으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일꾼 놓기 게임이야. 이 게임은 액션 포인트 게임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초보자들은 게임을 접할 때에 내가 어떤 역할이 맡아서 무슨 일을 겪게 되는지가 더 와 닿습니다. 그러니까 "이 게임은 우리가 씨 뿌리고 가축을 기르면서 농장을 운영하는 게임이야. 이 게임은 우리가 탐사대가 되어서 마야인들의 사원과 보물을 찾는 게임이야." 이렇게 접근해야 그들을 게임 테이블로 끌어당기기 쉽다는 겁니다. 게이머들이 게임을 메커니즘 중심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테마는 거들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을 깊게 파면 팔수록 (전략을 연구할수록) 껍데기인 테마는 사라지고 뼈대인 논리 부분만 남습니다. 그러면 거의 추상전략화된 거죠. 게이머들은 게임을 논리로 접근하지만 비보드게이머들은 테마로 접근하기 쉬우므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서울 강남에서 보드게임 카페 일을 할 때에 당시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하고 이런 망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엔 보드게임 카페의 빙하기가 올 것을 예상치 못했지만) 나중에 우리가 보드게임 카페를 차린다면 어떤 식으로 할 건가에 대해서 밤새 얘기했었죠. 저는 보드게임 카페가 하나의 놀이공원이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카페에 있는 각 게임은 놀이기구라고요. 우리가 디즈니랜드 같은 곳에 가면 유치하더라도 그곳에 완전히 빠져 듭니다. 일상의 스트레스는 다 잊고서 말이죠.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날 처음 본 사람들과도 손을 흔들며 웃고 인사를 건낼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깁니다. 보드게임 카페가 놀이공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모르는 사람들과도 게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제 경험입니다만 10여 년 전 당시의 여자친구와 함께 보드게임 카페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할 때에 모르는 커플 2팀에게 함께 게임을 하자고 제안해서 Bang! 뱅!을 6인플로 한 적도 있습니다. 2인플 되는 게임을 고르면 너무 제한되니까요.)

그리고 보드게임이 놀이기구로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면 테마가 잘 살아야 합니다. 게이머들은 경쟁을 통한 '승부'나 '승리'를 추구하는 편입니다. 우리 같은 보드게이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게임들을 익히고 플레이했으니 싸움 (?)을 위해 충분히 훈련된 정예 요원인 셈이죠. 그러나 초보자들은 아직 두뇌 전체를 사용하는 데에 훈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략 게임을 하면서 몇십 분만 집중해도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합니다. 네, 당연한 결과죠. 그러나 초보자들이 그런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꽤 긴 시간 동안 게임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고통을 잠재워줄 모르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테마'라고 봅니다. 타임 스토리즈는 클리어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립니다. 운이 좋으면 더 빨리 끝나겠지만 제가 해봤을 때에 시나리오마다 3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스머프2 님의 다락에서 4시간 이상 타임 스토리즈에 매달렸던 손님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테마가 주는 뽕 또는 약기운 (?) 은 놀라움 그 자체죠. "자, 우리는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해. 우리는 전세계에 퍼지는 전염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출해야 해." 이런 식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임무가 주어졌는지를 받아들이면 초보자들도 보드게임에 더 쉽게 빠져들 거라는 겁니다. 그게 테마고요.


최근 들어서, 테마틱 게임들이 '잘'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잘'은 양(量)과 질(質) 모두 해당합니다. 많이 나오고 있기도 하고 게임성 자체에서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여 년 전 제가 기대했던 보드게임 카페의 역할이나 강점이 부각될 때가 드디어 온 것이죠. 앞으로도 양질의 테마틱 게임들이 더 많이 출판되어서 게이머들뿐만이 아니라 보드게임 카페를 찾는 비보드게이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주기를 바랍니다.


오후 8시 반이 넘어서 스머프2 님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다락에서 나왔습니다. 일정이 너무 짧아서 긴 얘기를 나누지 못해서 무척이나 아쉬웠는데요. 다음 번에 부산에 갈 일이 있다면 스머프2 님과 밤새면서 먹고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싶네요.


부산에서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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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액세서리의 미래는?

3년 전에는 "뜻밖의 방문"이라는 이름으로, 2년 전에는 "삼시세겜"이라는 이름으로 남부지역 순회방문을 했습니다. 작년에도 이 프로젝트를 할 생각은 있었지만 제게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삼시세겜 때에 저와 몇몇 모임 사이에 마찰음이 있었고, 작년에 제가 새로운 모임을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죠. 2017년이 되자 제 모임도 안전 궤도에 올랐고, 겨울부터 9개월 이상 붙잡고 있던 번역도 슬슬 끝날 기미가 보이자 제 스스로에게 '휴가'라는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매일 밤 모니터를 바라보며 번역을 다듬던 것을 제 눈 앞에서 치우고 싶었던 것이죠. 반가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얘기도 하고 게임도 하던 때가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2년 만에 남부지역 순회방문 프로그램을 재개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달에 해외구매로 게임을 몇 개 구입했더니 예산이 넉넉치 않아서 일정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복절까지 징검다리로 이어지는 둘째 주말 단 이틀. 예전에 "반지의 전쟁" 글에서 부산에 와달라는 댓글이 기억나서 부산에서 배우실 분을 찾았습니다. 보매보매 님 한 분만 신청을 하셔서 퇴근하신 시간 이후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낮부터 저녁 시간까지 무얼 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얼마 전에 보드라이프에서 보드게임 오거나이저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글이 기억났습니다. 블로그를 찾아가서 위치를 보니 마침 부산이더군요. 게다가 부산역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블로그에 있던 이메일 주소로 견학을 희망한다고 메일 한 통을 보냈더니 바로 다음 날 답장이 왔습니다. 게다가 토요일에는 그곳에서 보드게임 모임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러브 레터부터 1846까지 두루두루 한다는 말씀에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지만요...;;;


금요일 퇴근 후에 짐을 꾸렸습니다. 가방에 옷이랑 수건, 게임 등을 넣었습니다. 몇 시간이라도 자려고 누웠지만 소풍 전날의 초딩처럼 잠이 오지 않더군요. 시계를 보니 어느덧 5시 반. 씻고 기차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편의점에서 구입한 샌드위치와 생수로 아침식사를 해결했습니다. 7시가 조금 넘자 드디어 부산행 열차가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열차 안에 이런 분들은 안 계신 것 같았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잠 들었습니다. 귀에 사람들이 내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상도 어르신들 소리가 많이 들려서 '아, 거의 다 왔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10여 분 연착되어 12시가 넘어서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 여름 휴가를 보내려는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하나였고요.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리 짜 놓은 일정표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습니다.



부산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바로 도시철도역이 있습니다. 부산1호선을 타고 괴정역에서 내려 마침내 '캄바오공방'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1층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에 저를 맞이해 준 것은 다름 아닌 고양이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맞이해 준 건 아니고 제 앞을 막고 있었죠;;; 고양이 목줄에 '테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드러누워 있는 테리를 지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작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열린 문 틈 사이로 테리가 앞장섰습니다.


사무실 안에서 다섯 분이 게임을 하고 계셨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옆에서 게임하시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하시던 게임은 Compounded 컴파운디드. 화학적 혼합물을 만드는 게임이라고 하셨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주머니에서 원소들을 뽑아서 서로 교환하고, 특정 원소들을 요구하는 혼합물에 자신의 원소들을 올려놓고 미션을 완수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과학을 소재로 한 게임 몇 가지가 있죠? 생물에 대해서는 Evolution 에볼루션, 지구과학이나 우주는 Terraforming Mars 테라포밍 마스가 떠오르는데, 앞으로 화학 하면 컴파운디드가 떠오를 것 같네요.



저를 기다리시느라 다들 점심식사를 못 하셔서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어딜 가든지 메뉴 정하는 게 가장 어렵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에 국수집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걸어가는 동안에 캄바오공방 주인이신 욱일 님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게 가장 궁금했습니다. 보드게임 취미와 공방 일 중 어떤 걸 먼저 시작하셨을지가요. 원래는 가구 만드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보드게임을 접하시게 되었고, 가구 주문이 없을 때에 기계들로 보드게임과 관련된 것을 만들 것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2년 만에 남부지역 순회방문을 하면서 그 2년 사이에 보드게임 계에서 크게 바뀐 것 중에 하나가 보드게임 액세서리 시장이 커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시면 2년 전만 해도 오거나이저나 트레이, 메탈 코인 같은 것을 소수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근래에 갑자기 대두된 현상이죠. 저는 게임 액세서리를 추구하는 게이머들의 등장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원래 전통적으로 게임을 깊게 파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게임을 수백 번 플레이하면서 전략 대결을 좇는 '플레이어'들이죠. 그러다가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보드게임 디자이너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그에 따라 출시되는 게임의 수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게임을 수집하는 '컬렉터'들이 나타났죠. 이들이 수집하는 것은 몇십 개 수준이 아닙니다. 수백 개부터 수천 개에 이르죠.

'플레이어'들은 소유욕이 별로 없습니다.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컬렉터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보드게임 모임에서 게임을 구입하지 않고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회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은 게임하는 것 자체를 즐깁니다. '컬렉터'들은 자의나 타의로 수집합니다. 집에 넓은 공간이 있고 재력도 뒷받침되는 분들은 자연스레 컬렉터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해외구매가 쉬워짐에 따라 해외에서 직접적으로 게임 구입하는 분들은 배송비의 부담을 줄이면서 관세 부과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200를 초과하지 않도록 구입합니다. 한 번 주문을 넣을 때에 금액을 맞춰야 해서 불필요한 게임도 넣게 되죠. 주문 넣는 횟수가 많아지면 게임은 쌓이게 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해보지 못한 게임들이 점점 쌓이게 됩니다. 자신이 원치는 않았지만 컬렉터가 된 거죠.

이 두 부류와 비교하면, 액세서리를 구입하는 탐미주의자(耽美主義者)는 이질적입니다. 소유욕이 있지만 그것이 게임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보조하는 액세서리에 향해 있으니까요. 액세서리는 보드게임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했습니다. TCG (Trading Card Game)가 생기면서 카드 슬리브와 프로모가 보드게임 계로 흘러들어왔고, Carcassonne 카르카손이 사람 모양의 마커, Meeple 미플을 도입하면서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욕구를 심어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테마틱 게임이 정교하고 세련되게 바뀌면서 보드게임긱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테마틱 게임은 게이머들을 홀리는 훌륭한 스토리와 몰입감을 높여 주는 구성물이 핵심입니다. 다양한 카드, 토큰, 피규어들을 한눈에 보이도록 깔끔하게 보관할 수 있는 저장용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오거나이저나 트레이의 판매도 증가하고 있죠.

그리고 제가 최근에 겪은 바에 의하면 테마틱 게임 때문에 보드게임을 시작한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니까 게임의 규칙만 옆에서 잘 잡아준다면 테마틱 게임으로 비(非)보드게이머를 보드게임 계로 끌어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은 복잡한 메커니즘이나 전략의 맛보다는, 게임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즐깁니다. 어쩌면 게임 내의 단순한 구성물을 예쁜 것으로 대체하는 분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새로운 분들을 보드게임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대체 컴포넌트를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음식을 예쁜 용기에 담고 예쁜 수저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면 손님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액세서리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 편입니다. 제 집에 있는 게임이 (기본판만) 100개가 넘어가지만 제가 좋아하는 상위 몇 개의 게임의 플레이 횟수를 늘리는 데에 더 열중합니다. 전략을 연구해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을 찾죠. 게임을 수집하기도 합니다. 보드게임 취미를 10년 넘게 해서 알레아 게임은 이유 없이 모으고 있죠. 그래서 저는 플레이어와 컬렉터의 가운데에 있는데, 플레이어 쪽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제가 산 액세서리라고는 Codenames 코드네임즈와 Mage Knight: The Board Game 메이지 나이트: 보드 게임 것밖에 없습니다. 아, 반지의 전쟁 거점 피규어 세트가 있긴 하네요. (이건 좀 값이 나갑니다. ㅎㅎ) 저 같은 사람은 액세서리의 생산자, 판매자들에게 있어 미개척 시장일 것입니다. 앞으로는 3D 프린터나 레이저 절단기 등을 통하여 집에서 손수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죠. 카르카손이 일으킨 작은 날개짓이 보드게임 계에서 점점 커져가는 폭풍이 되었습니다. 정말로요.


제 뇌 속 망상은 끝이 나고, 걸어서 도착한 국수집의 메뉴의 가격을 보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멸치국수가 2,500원이라니... 곱배기 해도 3,000원? 와, 이거 실화인가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캄바오공방으로 향했습니다. 오전부터 모이신 분들도 있었고 각자 주말 일정이 있으셔서 게임을 오랫동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짧은 게임들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번째 게임은 Skull King 스컬 킹.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비정상적으로 핫한 게임이죠. 이날 카드가 굉장한 텃세를 부렸습니다. 외지인에게 이렇게 가혹할 줄이야. 흥선대원군 급이었습니다. 제가 위저드 같은 트릭-테이킹 게임에서 약하지 않은 편인데, 이날 거의 맞추지 못했고 핸드에 카드가 굉장히 애매하게 들어와서 '0'을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 손에는 특수 카드가 잘만 들어가던데... 설마 제가 타짜들 사이에 앉은 건 아니었겠죠? 저쪽에서 바둑이나 둬야 할 삼촌이었는데 제가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ㅠㅠ 3번인가 성공해서 겨우 70점이었습니다.


두 분이 먼저 가시고, 제가 가져간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Hansa Teutonica 한자 토이토니카로 결정되었습니다. 모르시는 분이 계셔서 제가 설명을 드렸습니다. 공평하게 시작 플레이어를 정했는데, 제가 세 번째였을 겁니다. 두 번째 플레이어셨던 분이 첫 라운드에 (제 기준으로) 살짝 실수를 하셔서 제가 좋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4-5인 맵에서는 Göttingen 괴팅겐에 연결된 무역로가 Quedlinburg 크베들린부르크뿐만 아니라 Warburg 바르부르크도 있는데요. 턴 순서가 빠른 두 플레이어가 각자 한 무역로에 2개를 놓아야 편한데, 두 번째 플레이어 분이 마커를 두 무역로에 갈라서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3액션을 빨리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4액션을 가장 먼저 찍고, 다른 분들은 다른 기술들을 개발하셨습니다. 저는 4액션을 찍고 그 다음에 괴팅겐에 영업소를 설치했습니다. 나중에 Hamburg 함부르크에도 영업소를 놓았습니다. 제 영업소들의 자리가 좋아서 점수가 계속 올라갔습니다. 대신에 저는 기술 개발이 좀 더뎠습니다. 중반부터 저는 동서 네트워크를 준비했는데, 디스크가 부족해서 책 기술을 개발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소비되었습니다. 제가 게임을 끝낼 때 즈음에 두 번째 플레이어 분이 쾰른 테이블 러시를 하셨습니다. 시간을 더 드리면 질 것 같아서 마지막 턴에 제가 영업소 순서 바꾸는 보너스 마커를 쓰면서 동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게임을 끝냈습니다. 점수 계산을 해보니 제가 두 번째 플레이어 분에게 3점 뒤쳐져서 2등을 했네요. 제가 마지막 턴에 영업소 순서 바꾸는 보너스 마커를 두 번째 분의 것과 바꾸는 데에 썼으면 공동 1등으로 끝나는 거였는데, 제가 계산을 꼼꼼히 하지 못했습니다. ㅠ



세 번째로 Dokmus 도크무스를 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보고 실제 게임은 처음 봤습니다. 박스가 매우 커서 어려운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과대포장...;;; 안이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게 전주 같.놀.가에서 왔을 거라고 하셨는데요. 같이 해보고 나니까 곧 캄바오공방에서도 방출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서관 대출 대장처럼 목록을 만들어서 이 도크무스가 전국팔도의 보드게임 모임을 돌게 하는 게 어떻냐고 쓸데 없는 의견을 내 봤습니다. 그림만 보면 아랍 쪽 같은데, 아무튼 뭐 무슨 도크무스라는 섬이 있고, 도크무스라는 신이 있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요... Citadels 시타델처럼 하는 추상전략 게임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ㅋ) 자신의 턴에 마커 3개를 놓는데, 그 라운드를 위해 선택한 캐릭터의 도움을 받으며 진행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마다 턴 순서가 적혀 있는 것도 시타델과 같았습니다. 결과는 제가 꼴등. 카드만 저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마커들도...



다른 분들이 가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지막 게임을 짧은 카드 게임으로 정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먹고 들어가는 Parade 퍼레이드. 저는 이 게임하고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 어디가 재미있는 부분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자고 하면 하는데 제가 먼저 하자고 하지 않는 게임. 그 정도. 저는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냥 먹은 건 아니고 철저한 계산 하에 먹었습니다. 특정 색깔만 집중적으로 먹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게임 종료 시에 메이저리티로 뒤집어진 카드는 장당 1점 감점이더군요. 저는 그게 1점 득점인 줄 알고 잘 먹었다고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혼동한 게임은 Geschenkt 게쉥크트가 아닐지... 다행히 2등은 했습니다. 퍼레이드... 저의 아무말 퍼레이드였네요. ㅠㅠ



모임을 마치고 나올 때에 욱일 님이 공방 내의 기계들을 보여주셨네요. 이렇게 해서 오후 6시 반 즈음에 캄바오공방 견학을 끝내고 다른 반가운 분을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아, 중요한 걸 빠뜨렸네요. 방문을 허락해 주시고 점심식사를 사 주신 욱일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부산에서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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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하루간의 삼시세겜을 정리하며...


왠지 이 분이 나와야 할 것 같지만 나오시지 않습니다.

삼시세겜의 마지막 열세 번째 편은 셀프-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Q. 삼시세겜 마지막 편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A. 아, 네. 그냥... 음... 푹 쉬었어요. ㅎㅎ 삼시세겜이 여행 + 보드게임 포맷인데 어쨌거나 짧지 않은 열하루 일정 동안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여행이라 심신이 지쳤거든요. 게다가 삼시세끼 다녀와서는 밀린 후기 올리느라 몸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음이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계~속 쉬었습니다. 집 나갔던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요. ㅎㅎ


Q. 작년 (뜻밖의 방문)과 올해 (삼시세겜)이 많이 달랐을 텐데, 어떻게 달랐나요?
A. 몇 가지가 달랐죠. 뭐, 첫 번째로, 모임 곳곳을 다니면서 게임을 전파하는 목적이 있었는데, 작년은 반지의 전쟁이 주였고 올해에는 반지의 전쟁에 비한 비중을 많이 낮췄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솔직히 반지의 전쟁의 국내 인지도가 낮았잖아요? 플레이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게시판에서 듣는 사람은 없는데 저만 떠들고 있는 느낌? ㅎㅎ 그런데 일년 사이에 변화가 눈에 띠게 일어난 것 같아요. 룰북 보면서 혼자 익혀서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저한테서 배우신 분이 다른 분한테 가르쳐 주셔서 알게 되신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보드게임 커뮤니티에 글이나 사진 올라오는 게 늘어났죠.

두 번째로, 소위, "반지 원정대"라고 불린 여행을 같이 한 일행이 있었다는 거? 이게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가장 큰 변화일 것 같아요. 혼자 다녔을 때에는 편했어요. 워낙에 주변 눈치 안 보고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해서. ㅎㅎ (영화관도 혼자 가서 보는 타입이에요.) 그런데 이번엔 히미끼 님하고 곰팡맨 님 두 분과 함께 다녔는데요. 숙박 문제가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혼자면 아무 데서나 누워서 자고 (;;;) 그럴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그렇게 시킬 수가 없잖아요. ㅋㅋ 다행히도 곰팡맨 님하고 같이 다닐 때에 부산 다락에서 신세를 지고, 또 곰팡맨 님이 부산 친구분 댁에서 잘 주무시다 오셔서 잘 해결됐어요.

하나 더 꼽자면, 방문한 모임 수가 늘었다는 것도 있네요.


Q. 본론으로 들어가서, 각 모임에 대한 비교 내지는 특징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요.
A. 으하핫. 이거 잘못 얘기하면 ㅋㅋ. 일단, 저도 살아야 하니까 (?) 출구부터 만들어 놓고 얘기하죠. ㅎㅎ 모임마다 특징이 있는 게 당연하고요. 근데 이게 조금만 잘못 얘기해도 줄세우기가 될 수 있어서 말하기 껄끄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수평적인 비교를 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워낙에 수직적으로 배열하는 거에 더 익숙하니까...

진주에서 카페 안에서 히미끼 님과 곰팡맨 님과 같이 밤을 샐 때 모임과 모임장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보드게임 모임이 "보드게임+사람"일 것 같지만 결국엔 "사람+사람"의 구조거든요. 모임에서 누가 주도를 하는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지에 따라 그 모임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봐요. 아무리 모임에서 수평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해도 그건 형식일 뿐이지 실제로는 의견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그 모임에 배어난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모임에 대해 접근할 때에 그 모임을 주도하는 멤버들에 대해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해 보이더라고요. 제가 서론을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게, 삼시세겜 일정이 한정되어 있어서 시간을 충분히 할당하지 못한 곳에서는 제가 파악을 제대로 못 했을 수도 있어서...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전주... 같은 경우는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일정이 길었어요. 다른 모임보다는요. 시간은 충분했다고 보고요. 전주 같이놀다가게는, 이런 비유를 해도 될까 모르겠는데요. (부모님이 외출 중이신) 친구집이나 학창시절 동아리방 가는 느낌이에요. ㅎㅎ 그래서 방문하면 마음이 진~짜 편해요. 게임 하다가 피곤하면 드러눕고~ 배고프면 먹을 거 마실 거 먹고~ 그런 분위기가 같.놀.가.의 핵심 컨텐츠라고 봐요.

여수 모임은 일반 카페에서 모임을 하거든요. 장소가 많이 제한적일 수 있는데 여수 분들한테 듣자하니, 지방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소문이 금방 돌기 때문에 가게들이 저자세라고 하더라고요. 안 좋은 소문 나서 손님 떨어질까봐요. 그래서 (테이블이 정말 좋은) 일반 카페에서 장시간 게임을 해도 눈치가 안 보여서 부러웠어요! ㅎㅎ (제가 일반 카페에서 보드게임하다가 쫓겨난 경험이 많거든요.) 여수 모임 분들이 보드게임에 대한 열의도 대단하시고 게임할 때에 유쾌해서 여수 다녀올 때마다 좋은 기운을 받고 오는 것 같아요.

부산...은 복잡한 현지 사정에 의해서 모임이 여럿으로 쪼개져 있어요. 뭔가 중국 춘추전국시대같은. ^^;; 제가 시간이 더 있었으면 부산에 있는 다른 모임들도 가봤을 텐데, 지금까지는 부산 다락하고 월풍 님 모임밖에 못 가봤어요. 부산 다락은 던전이죠. ㅋㅋㅋ 피부색이 파란 던전 주인 (?)이 맞아주는 곳? 분명히 지상 4층인데 지하인 것 같은 느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뭔가 압도되는 것 같은 특유의 기운이 있어요. 스머프 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무게중심이 약간 마작 쪽으로 가 있어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기도 해요.

월풍 님은 뭐랄까... 보드게임하는 신선의 느낌이 있으셔서 같이 게임을 하면 플레이하시는 게 기대된다고 할까요? 네, 그런 느낌. 월풍 님하고 케빈 님 두 분이 서로 친하신데, 두 분 다 손재주가 좋으셔서 만드신 작품들 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아, 올해 느낌은 "많이 더웠다"?! ㅋㅋㅋㅋㅋ


Q. 올해에 처음 방문하신 곳들이 다섯 곳이나 있었는데, 느낌이 어땠나요?
아... 한숨 좀 쉬고요. ㅋㅋ 처음 방문하는 곳이 많아서 일정 조절하느라 힘들었어요. 이동 거리도 엄청 늘었고, 경비도 비례해서 늘었고요. 바로 앞에서 언급한 이미 방문한 적이 있는 세 곳과 비교를 하면, 검증 안 된 게임을 구입하려고 할 때의 두려움? 셀렘? 그런 감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방문 계획을 세울 때에 손익계산을 먼저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이 만큼의 시간, 돈을 투자해서 가는데, 재미없으면 어쩌지?' 이런 거요.

그게 이 다섯 곳 중 처음으로 방문했던 광주광역시에서 터졌던 것 같아요. 날씨 엄청 덥고, 교통 불편하고,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심신이 피곤하고, 모임에 기대했던 것과 실제 느낌이 다르니까 부정적인 인상을 많이 받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가봤던 다른 보드게임 모임들에서는 모임 사람들하고 대화할 시간이 꽤 있었어요. 게임 고를 때라든지 밥 먹으러 나가거나 밥 먹을 때라든지요. 저는 보드게임 모임에서 이렇게 게임하지 않고 사람들하고 얘기하느라 소비하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에서 제가 말씀 드렸듯이 저는 보드게임 모임이 "사람+사람" 구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저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서 "우리는 잡담하느라 시간 보내는 게 싫다."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광주 보드리아 모임이 가지는 모임의 철학과 제가 중요시하는 게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광주광역시편에서 마지막에 제가 독자들께 던진 질문에서 드러났던 것 같아요.

진주는 일정에서 빠질 뻔 했는데 드렁큰히로 님이 건 퐁퐁특수통닭에 제가 넘어가서 일정에 넣었어요. ㅋㅋ 여행 경로가 여수에서 부산 갔다가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진주 일정 때문에 한 번 역주행을 해야 했거든요. 경비가 한정되어 있어서 진주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 드리면 "가길 잘했다"였어요. 지방 소도시에 있는 모임이라 보드게임을 할 여건이 큰 도시 모임에 비해서 어려운데 슬기롭게 잘 헤쳐 나아가고 계셔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보드게임할 장소를 잘 섭외해서 모임을 꾸준히 잘 이끌어 오고 계셨고요. 모임 분들이 쾌활하셔서 게임할 때에 분위기도 좋더라고요. 진주 모임을 보면서 제가 모임 처음 만들 때가 생각나서 제가 오히려 활력을 얻어온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구미 모임도 진주 모임만큼 저에게 긍정적인 충격을 주었어요. 구미에 보드게임을 하려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을 줄 상상도 못했거든요. 일반 카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새벽 시간까지 게임을 해요! 와... 컬쳐 쇼크. 그 자체였어요.

마지막으로, 대구의 두 모임 황금네거리 모임과 삼삼오오 보드게임 연구회는, 이렇게 비유를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황혼의 투쟁"에서의 냉전 분위기여서 좋은 쪽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같이 다녔던 멤버들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요?
A. 제가 여행을 빡세게 하는 타입이라 두 분한테 너무 고생만 시켜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어요. ㅎㅎ 히미끼 님은 작년에 며칠 신세를 지면서 밥도 같이 먹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같이 하면서 꽤 친해졌어요. 같이 며칠 지내다 보니까 히미끼 님이 생각이 깊으시다는 게 느껴졌어요. (저는 생각없이 막 던질 때가 많은데... ㅋ) 올해 만났을 때에 작년에 비해 뭔가 좀 무겁다 싶었는데 여행 중에 얘길 들어보니 고민이 많으시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해답을 찾으셨는지 궁금하네요.

곰팡맨 님...은 사실 처음에 보드라이프에서 쪽지를 받았을 때에 성별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전혀요. ㅎㅎ 왜냐하면 무더운 7-8월 날씨에 처음 보는 사람하고 며칠 같이 다니면서 고생하는 몰골 (?) 보여줄 만한 여성분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디스 아닙니다~) 그래서 부산 다락에서 처음 뵈었을 때부터 내색은 안 했지만 좀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려서 가까워지기 전까지 말을 잘 안해요. 그리고 곰팡맨 님이 동영상 열심히 촬영해서 올리신 걸로 유명하시던데, 제가 한 편도 보지 않아서 그 명성 (?)을 전혀 몰랐어요. ^^;;;

조금 다른 쪽으로 얘길 하자면, 곰팡맨 님 덕분에 여성 보드게이머들에 대한 생각이 좀 깨어나게 된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얘길 할 때에 여성을 배제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특별하게 대우를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커뮤니티) 안에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다' 이런 식으로 좀 편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요즈음 PC 게임하는 여자 분들이 적지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보드게임 하는 여자 분들도 계속 많아지고 있는데 보드게임 모임에서도 여성 회원에 대해서 특별한 시선이 아니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산에서 산삼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요. 주위가 계속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옛날 사고 방식으로 변화를 못 느끼거나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곰팡맨 님 덕분에 그런 변화를 감지하게 되어서 감사했어요.


Q. 인터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끝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지요?
A. 음... 두 가지 얘기를 더 하고 싶네요. 하나는 보드게이머들과 관련이 있고, 나머지는 보드게이머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에요.

보드게임 카페에서 수익 모델은 현재 두 가지라고 봐요. 하나는 공간 사용료, 나머지는 음료 판매를 통한 마진 이렇게 둘이죠. 공간 사용료는 머문 시간에 비례하도록 책정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곳은 그냥 특정 시간 동안 고정된 금액을 지불하게 되어 있기도 하죠. 음료는 일반 카페에서도 마시기 때문에 보드게임 카페에서 자의에 의해 (또는 강제로) 사 마시는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반대로 보드게임 카페의 지출 중에 대부분은 직원들 인건비에요. 보드게임을 매달 열심히 구입하는 곳이 게임 구입비용도 약간 있겠지만요. 직원을 뽑아서 게임을 가르치고 설명을 잘 하게끔 훈련시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교육에 돈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니까 비용이 발생하는 거라고 보는데요.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해주는 게임 설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봐요.

우리나라 보드게임 카페에서 게임 설명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추가로 비용을 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그 비용을 아까워 해서 할리갈리나 젠가 같은 게임만 할 가능성이 있어요. 아니면 보드게임 좀 아는 친구를 데려와서 대신 설명을 해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지금 그런 돈을 내면서 게임을 배우라는 얘긴가요?"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저는 "게임 설명 서비스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여쭤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보드게임 카페에 생긴 이래로, 이 낯선 문물을 전파하기 위해서 보드게임 카페들이 계속 넙죽 엎드려서 손님을 맞이했는데요. 그 때문에 본인들이 인정받아야 할 어떤 가치를 공짜로 만들어 버렸어요. 어디서 들었는데, 우리나라 스타트업 하려는 사람들이 본인들의 인건비를 빼고 초기 사업을 구상한다고 지적하는 분이 있었어요. 스스로 열정페이를 선택한 꼴이죠.

유럽 여행 가면 현지에 음식점에서 물을 시켜도 물값을 따로 내야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뭐? 물값을 따로 받는다고?!"라며 놀라도 며칠 지나면 한국에서 우리가 공짜로 치부했던 것들이 사실은 공짜가 아니었고 누군가가 그 비용을 감수해 왔음을 알게 되는 거죠.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 비용을 대신 내줄 뿐이죠. 보드게임 카페에 가서 내가 전혀 몰랐던 것을 누가 적게는 십여 분, 길게는 수십 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해 주면 그건 공짜가 아닌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각 게임은 설명에 거의 고정적인 시간이 들어가요. 반지의 전쟁 같은 경우는 설명에 60분 정도 필요한데, (만약 비용을 책정한다면) 설명을 듣는 두 사람이 그 설명에 대한 비용을 나누어 내는 게 합리적인 계산법이 아닌가 싶어요.


구미 모임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한글화 자료와 저작권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어요. 촐킨 확장 한글화 자료 얘기에서 어쩌다 보니 저작권 얘기까지 하게 됐거든요. 우리나라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공론화하기에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 같아요. 그래서 항상 제대로 된 얘기를 나눌 수가 없고, 종국에는 누군가는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끝나더라고요.

저도 한글화 자료를 만들고 있고, 또 어떤 이유 때문에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보드게임과 관련해서 저작권이 분명히 있고, 그 저작권이 퍼블리셔가 가지고 있거든요. 일반적으로 게임의 규칙 그 자체에는 저작권 같은 게 없는데, 게임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들 일러스트레이션, 아이콘 등에 저작권이 걸려 있어요. 또, 세계관이 있는 게임은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고유명사 같은 것에도 저작권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룰북만 보더라도 텍스트에는 저작권이 없는데, 그 외에는 저작권이 있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텍스트만 있는 자료는 무성의하고 질이 낮은 것으로 평가하는 것 같아요. 보드게임긱에서 퍼블리셔에서 만든 게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한 자료들에 원본과 같은 레이아웃을 입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에요. 작은 퍼블리셔라면 저작권에 대해 관대한 편인데 큰 회사들은 안 그렇거든요. 제가 한글 룰북이나 한글화 자료 만들려고 퍼블리셔에 물어보면 자기네 레이아웃이나 이미지를 못 쓰게 하는 곳도 있어요. 저작권이나 다른 업체와의 계약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번역한 7 원더스와 확장 룰북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저작권 얘기하면 한글화 자료 만드시는 분들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기도 하시죠. 그런데 제가 얘기하려는 건, '우리가 저작권을 알고 한글화 작업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요. 분명한 것은 번역된 한글 룰북이나 한글화 자료가 한국에서의 보드게임 판매량에 영향을 줍니다.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더라도 실생활에서 영어를 읽으면 게임 진행의 속도가 느려지니까요. 열심히 작업한 것들이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한국적인 사고방식에 빠지다 보면 우리들 자신이 법 앞에 무방비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의 보드게임 저변이 확대되고, 한국인 게임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작품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그에 맞춰서 우리들 머리 속에 있는 보드게임에 대한 인식도 함께 발전하고 있는가?'에 대해 한 번쯤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한글화 자료를 만들어라 또는 만들지 마라"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인식이 발맞춰서 따라가고 있나 그렇지 않나"를 말씀 드리는 거에요. 그리고 몇 년 후를 내다보고 스스로 최소한의 방어는 해야 한다는 것도요.


Q. 정말 끝으로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을 하실 건가요?
A. 매년 일정이 늘어나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시간을 길게 내기도 어려워요. 저에게 특별한 여행이어서 또 하고 싶긴 한데요. 내년에는 가급적이면 여름, 겨울로 나눠서 짧게 짧게 다니고 싶어요. (한여름에 대구 다녀오고 나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아, 여행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한 모임에서 이틀 이상으로 길게 머물면서 현지 모임 사람들하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일정에 쫓겨 다니니까 지치는 감이 없지 않거든요. 시간적으로 여유있게 놀고 싶어요. ㅎㅎ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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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바치는 꿀벌들

사우나에서 반지 원정대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이러게 말하니 죽으러 가는 사람들 같네요. ㅠ)

히미끼 님이 아침에 전주로 돌아가셔야 해서 급히 아침식사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문을 열 만한 곳이 거의 없죠. 불현듯 아이스버거 님 어깨 너머로 보였던 "대구의 명물" 빅맥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반지 원정대는 그렇게 약하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고기를 먹기로 했죠. (역시 아침엔 고기죠.) 크고 깨끗한 식당을 먼저 갔는데 오픈 준비 중... (분하닷.) 그래서 몇 걸음 옆으로 가서 두 번째 가게를 갔습니다. 기분 좋게 삼겹살 2인분을 시켰는데... 2인분 주문이 안 된다는 겁니다! (말도 안 돼!) 언제부터 기본이 3인분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ㅠㅠ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털어넣으며 (?) 계산을 하고 히미끼 님과 밖으로 나갔습니다. 전주로 갈 버스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히미끼 님은 급하게 택시를 잡았습니다. 뭔가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정이 울컥하더라고요. 히미끼 님은 제 어깨를 툭 치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 올랐습니다. 원정대에 남은 마지막 동료가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ㅠㅠ


낮술이 아닌 아침술도 마셨겠다, 게다가 대구의 날씨가 깨어나고 있어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긴급히 맥도널드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 2개를 먹으며 열을 식혔습니다.



최첨단을 자랑하는 대구의 모노레일 (?)을 타고 다시 명덕 역으로 향했습니다. (신기)


금새 명덕 역에 도착했습니다. 익숙한 그 길을 따라 삼삼오오의 모임 장소로 올라갔습니다. 문을 열자 키가 큰 어떤 분이 계셨습니다. 처음 만났지만 왠지 많이 본 듯한 얼굴. 이 두 사람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 (퓨~~전!! 합!!) (나중에 거인의잠 님이 삼삼오오 모임에 연예인 두 명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 듣고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ㅎㅎ)




사람들이 꽤 많이 모이자, 아까 그 임요환상무 (?) 님께서 Camel Up 카멜 업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 말투가 대놓고 "저 보드게임 카페에서 일해요."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ㅋㅋ 뭐랄까요. 보드게임 카페에서 일하는 분들의 특유의 말투 있잖아요. 그대로 설명을 하시는 거였습니다.

설명을 듣고 더러운 주사위빨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반에 초록이었던가, 노랑이었던가 한 색깔이 유난히 치고 나가서 여러 사람이 그 낙타가 1등할 거라고 승부예측을 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것보다 함정 타일을 놓고 돈을 튕겨서 먹기로 했죠. (띠리링~♪)



그러자 다른 분들도 따라서 함정을 설치... (따라쟁이들) 아마 파란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파란색이 1등 하도록 세팅을 해놔서 결국 파랑 낙타가 1위로 통과하며 게임이 끝났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제가 파랑 1등에 가장 먼저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뜨앗! 페인터 님이 언제...;;; 페인터 님이 1위와 꼴찌 모두를 맞추셔서 역전을 하셨습니다.



사회인 야구를 마치고 오신 거인의잠 님까지 7인이 되었습니다. 7명하면 7 Wonders 7 원더스죠. (뱅! 하던 시대는 갔습니다.) 제 왼편에 앉으신 거인의잠 님이 며칠 전에 도장깨기 당했다며 저를 집중적으로 견제하라는 지시를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현수막은 잘 있나요? ㅎ)

그러나 어줍잖게 과학을 노리는 자들이 많으면 그 판은 군사력으로 이기거나 민간 건물을 쓸어담는 사람이 이깁니다.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파랑 건물들을 페인터 앞으로 몰아준 삼삼오오 분들... 페인터 님이 또 1등을 하시고, 거인의잠 님이 3등이셨던가? 제가 딱 중간 4등을 했습니다. 승리도 한쪽으로 쏠리는군요.



그 다음엔 두 팀으로 나눠서 한쪽은 마작을 제가 있는 3명은 The Staufer Dynasty 슈타우퍼 왕조를 했습니다. 좋은 게임이라는 소문을 들어서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자는 동안에 히미끼 님이 하셔서 1등을 하셨죠.)

설명을 들으니 영향력 게임인데, 뭔가 카드로 뻠삥을 해서 패시브 능력으로 좋게 좋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카드도 중요한 것 같고, 게임 시작 전에 받은 미션 카드도 중요한 것 같고, 영향력으로 점수 먹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 뭔가 El Grande 엘 그란데에다가 할 것을 엄청나게 붙여놓은 느낌이었습니다.

게임이 끝나니 저랑 거인의잠 님은 점수가 거의 비슷했고, 페인터 님이 약 한 바퀴 차이로 승리...;;


마작보다 먼저 끝나서 페인터 님은 가져오신 Star Realms 스타 렐름즈를 꺼내셨는데, 제 생각엔 거인의잠 님이 배우실 때에 2인으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저는 쉴 겸 한쪽으로 빠졌습니다. 여길 지켜보니 거인의잠 님이 뭔가 콤보 같은 게 걸려서 한 방 세게 쳐서 승리하셨습니다. (4연승을 막았다!)



마작이 끝나자 임요환상무 님은 방송 스케줄 알바 때문에 떠나시고 또 다른 한 분도 가셨습니다. 남은 5명은 Saint Petersburg (Second Edition) 상트 페테르부르크 (2판)을 선택했습니다. (좋아!) 호랑이 님과 페인터 님이 못 해봤다고 하셔서 거인의잠 님이 설명을 하셨습니다. 의외로 페인터 님이 모르신다고 해서 놀랐네요. (댁에 있는데 밀봉이라고;;;)

초반에 저는 상품 3개에 상위권에 걸쳐서 점수를 모았습니다. 중반부터 호랑이 님이 건물을 달리셨는데, 그게 계속 모이니까 점점 점수를 많이 얻으셨고 나머지 분들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제가 따봉 (?) 단계에서 시작 플레인 행운까지 따랐으나 호랑이 님에 이어서 몇 점 차이로 2위에 머물렀습니다. 5명이서 하니까 역시 빡빡하네요.


식사 때가 되자 삼삼오오 벌통에서 3승을 쓸어담으신 페인터 님은 올 한해 양봉 농사에 흡족해 하시며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시간 여유가 없으셔서 자주 못 오신다고 하셨지만 게임을 잘 하시니 삼삼오오 벌들이 페인터 님이 가져가실 승수를 다시 모아놓을 것 같아요...;; (이거슨 허니버터 승리)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분들은 스마트폰 앱으로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편리한 세상) 부산에서처럼 대구에서도 간짜장에 계란을 올려주는 센스.



남은 4명은 Orléans 오를레앙을 선택했습니다. 이 게임 평가가 좋아서 해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처음 해보게 됐습니다. 돌선생 님께서 열심히 설명해 주셨는데, 뭔가 설명을 듣고 나서
'룰이 이게 다야?!'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간단했습니다. 도미니언처럼 풀을 만드는 건데, 오를레앙에서는 토큰들을 주머니에 넣고 뽑더군요. 책을 생산하는 건물 짓고, 열심히 이동하고 교역소 짓고를 반복했더니 돈이 꽤 잘 모였습니다.

점수 계산을 해보니 돌선생 님과 함께 공동 1위. (응? 왜죠? 왜 제가 이긴 거죠?) 아무튼 이겼으니 좋은 게임. ㅋㅋ 그런데 나중에 돌아와서 오를레앙을 몇 번 다시 해봤는데 설명에서 빠진 것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임은 한글판이 나온지 얼마 안 되어서 아주 핫 했던 Alchemists 알케미스츠 (한국어판 제목: 연금술 아카데미)로 정했습니다. 저는 사실 추론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뭔가 게임에 정답이 있고, 그걸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간다는 느낌이 싫거든요. 그런데 알케미스츠는 정답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짱 플레이로 틀린 논문 내서 점수 뽑아먹고 아티펙트 같은 걸로 능력 얻는 게 있어서 단조로운 느낌이 없어져서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체력이 문제였습니다. 진행 중에 잠깐 졸았는지 뭔가를 놓치면서 정답 찾기에 큰 차질이 생기고 만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미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게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ㅠ

귀찮아서 제가 실험했던 것들을 별도의 종이에 쓰면서 로그를 남겼어야 했는데, 제 플레이어 보드가 흔들려서 토큰들이 일부 빠지자 멘붕이 와버렸어요. 다음부터는 꼭 적으면서 해야겠어요.


그리고 나서 대구 삼삼오오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돌선생 님이 혼자 가시길래 후기 올릴 겸 PC방 있는 곳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까 정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신 것 같더라고요. ㅎㅎ 뭔가 국어나 사회 요쪽 같은데... ㅋ


PC방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올렸던 후기가 "남부지역 순회방문 시즌2 - 삼시세겜"의 세 번째 후기 (광주광역시편)"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수원으로 올라오는 기차를 타기 위해 대구역으로 갔으나 표를 끊은 채로 졸다가 기차를 놓쳐서 표를 다시 끊었다는 슬픈 이야기... (제 체력이 정말 0%까지 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다음 마지막 삼시세겜은 에필로그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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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 반지 무도회 (?)

새벽에 deep 님이 차로 구미에서 대구까지 태워다 주셨습니다. 차에서 내려서 히미끼 님과 고민을 했습니다. 사우나에서 하루 버틸 것인가 아니면 PC방에서 버틸 것인가? PC방에서 밤을 새면 저는 밀린 후기 쓰면서 시간을 보내도 되는데, 히미끼 님은 딱히 할 거 없어서 잠이나 잘 거라고 하시니까 PC방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도 후기 쓰는 거 아니면 굳이 PC방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사우나로 갔습니다. 간단하게 씻고 내부에 비치 벤치가 있길래 거기서 잤어요. ㅎㅎ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오전 10시가 넘었던가? 그랬을 겁니다.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 보니 히미끼 님은 이미 옷까지 다 입으시고 소파에 앉아서 미역패드를 꼭 안은 채로 잠들어 계시더군요. 아마도 소파에서 계속 주무신 것 같았어요. 히미끼 님을 깨워서 사우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여름 대구의 날씨. 히미끼 님에게도 얘길 했습니다만 '아직 더위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뿐'... (에레보르에 잠들어 있던 스마우그처럼;;;)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사우나 건물 1층에 커피전문점이 있길래 커피 드시자고 했더니 히미끼 님이 거절을...? 피곤해 보이시는 히미끼 님이 시원한 커피 드시면 컨디션이 좀 더 나아지실 것 같아서 히미끼 님 드릴 커피와 제가 마실 초코를 샀습니다. 여기도 가격이 저렴해서 큰~ 컵으로 주더라고요.

히미끼 님이 한 동네 주문에게 길을 물어서 지하철 역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저는 지도를 보고 찾는 걸 좋아해서 '아, 내가 길을 잃었다.'라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절대 남에게 길을 안 물어보는데, 히미끼 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ㅎㅎ

현재 위치를 보니 3호선 거의 끝인 팔거역 (?). 목적지는 정반대편인 황금역. 가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가는 동안에 아이스버거 님께 연락을 드렸죠. 아, 우연찮게 로보카 폴리 테마 전철을 타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엄청 좋아해서 전철 내외에서 사진을 많이 찍더라고요.



이번 여정에서 (망한) 선언 시리즈가 많았습니다. 스머프2 님의 "아무 때나 오이소", "(레지스탕스: 아발론)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심더", 드렁큰히로 님께 말씀 드린 "1시간 일찍 나와주세요", 구미 원정에서의 "도착 시간 알려주시면 맞춰서 나가겠습니다" 등등. 이 날도 저희가 그 선언 시리즈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원래 모임 시각 오후 1시에 맞춰서 만날 계획이었으나 저희가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싶어서 약속 시간을 정오로 당겼는데요. 어쩌다 보니 히미끼 님하고 이야기 주머니가 터져서 전철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다 보니 전철이 종점에 와 있는 겁니다. ㅎㅎ 그래서 다시 네 정거장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이미 정오가 지난 건 당연한 일이었고요.

황금 역에 내려서 히미끼 님이 화장실에 가신 동안에 역무원에게 궁금한 걸 하나 물었습니다.
"전철 타고 오다 보니까 가끔씩 창문이 막으로 가려지던데 그거 왜 그런 거예요?"
히미끼 님하고 둘이 전철 타고 오면서 이게 너무 궁금했었거든요. 저희 말고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 하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진짜 너무 궁금해서 물어봐습니다. 대답은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 가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

전철 역 아래로 내려가니 (안경 쓴) 지네딘 지단 선수처럼 보이는 아이스버거 님이 보였습니다. 새벽에 왜 일찍 가셨나 궁금했는데 오전에 축구 동호회 때문이었다고. 몸 위주로 쓰는 축구와 머리 위주로 쓰는 보드게임이 서로 끝과 끝인 것 같은데 두 취미를 모두 다 하시는 아이스버거 님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잠도 얼마 못 주무셔서 피곤하실 것 같았는데 말이죠. 아이스버거 님이 점심 메뉴를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 히미끼 님과 둘이서 아이스버거 님 뒤로 보이는 맥도널드를 보며, 혹시라도 아이스버거 님이
"대구의 명물, 빅맥 세트 드시죠?"
이러시지 않을까 살짝 불안했는데요. 다행히 맥도널드 쪽으로 안내하지 않으셨습니다. ㅋㅋ




더운 대구의 길 위를 몇 분 동안 걷자 왠지 모르게 보드게이머들처럼 보이는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사실은 오원소 님이 올리시는 동영상의 주인공 어린이 (찬희 군)을 발견해서 알아봤습니다. 오원소 님과 대구 황금네거리 모임 분들이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할 식당으로 들어왔는데요. 메뉴는 돼지갈비찜. 매운 정도가 4단계까지 있었는데, 제가 있는 쪽은 2단계였던 것 같고, 술을 드실 오원소 님과 히미끼 님이 계신 곳은 화끈하게 만렙으로 고르셨습니다. ㅎㄷㄷ 4단계가 맵긴 매웠는지 히미끼 님이 많이 못 드시더라고요.



식사를 마치고 황금네거리 모임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도중에 수퍼에 들러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면서 왔네요.) 아이스버거 님도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을 가져오셔서 처음으로 반지의 전쟁이 두 테이블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저의 반지의 전쟁 규칙 설명을 1시간 정도 들으시고 멘탈을 회복할 5분간의 휴식을 마친 후에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히미끼 님이 오원소 님과 다른 한 분의 경기를 봐 드렸고, 제가 아이스버거 님과 minorityb 님을 봐 드렸습니다. minorityb 님을 수원에서 뵌 적이 있는데 멀리 대구에서 뵙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minorityb 님은 특이하게 원정대를 거의 보내지 않고 자유민족을 전투적으로 플레이했습니다. 서로 투닥투닥 소규모 전투가 자주 발생했고, 다른 한 분과 같이 진행하시던 아이스버거 님 팀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암흑군단을 방만하게 (?) 운영했습니다. 초보자들이 보기에 암흑군단이 엄청 강한 것 같지만, 꽤 많이 플레이해 본 저의 관점으로 암흑군단의 약점을 상대에게 그대로 노출하는 모습이 보여서 저는 암흑군단의 플레이가 너무나 불안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사루만을 보호하던 오르상크의 군대가 포즈 오브 이센에 잘 모인 로한군을 공격했습니다. 저는 이때에 사루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오르상크 군대가 전멸하면서 사루만도 죽었고, 다음 행동에서 오르상크가 로한군에게 점령당해 버렸습니다. (오르상크가 점령당하는 거 정말 오랜만에 봤습니다.) 그리고 아이스버거 님과 같이 하던 분은 약속 있다면서 먼저 가버리셨...;;; (제 개인적으로 도중에 가실 분들이 게임을 대충 운영하고 가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남은 분이 똥 치워야 하거든요.) 옆 테이블의 히미끼 특파원에 따르면 오원소 님의 자유민족이 삼연병 삼연속 엔트 카드를 맞으면서 사루만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양 테이블 모두 사루만이 없는 상태, 암흑군단에게 먹구름이 낀 것은 분명했습니다.

결국 오원소 님도 군사적으로 승리, minorityb 님도 군사적으로 승리하면서 자유민족들이 모두가 승리했습니다. 오원소 님은 손에 엔트 카드 3장이 다 잡히면서 (게다가 상대는 처음하는 분이어서) 게임을 매우 유리하게 가져갔던 것 같고, minorityb 님 테이블은 초반에 아이스버거 님 팀이 비효율적으로 대충 운영한 탓에 게임 내내 질질 끌려 다니며 좀 지루한 경기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반지의 전쟁이 끝나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 근처에 있는 국밥집으로 향했습니다. 찬희 군은 계속 곰탕이 먹고 싶다고 해서 꼬리곰탕을, 어른들은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 (히미끼 님은 소주도.)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해도 떨어져서 어둑어둑하니 분위기와 잘 맞는 게임을 골랐습니다. Betrayal at House on the Hill 언덕 위 집에서의 배신. 히미끼 님까지 7인이어서 히미끼 님이 찬희 군을 돕기로 했습니다. 극적으로 찬희 군이 배신자로 드러나서 배신자 시나리오를 읽기 위해 히미끼 님이 찬희 군을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를 이 집으로 데려온 찬희 군은 크림슨 잭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마의 친척. 찬희 군은 크림슨 잭을 불러서 영웅들을 도륙할 계획을 세웠지만 우리 영웅들은 크림슨 잭을 무찌를 수 있는 저주받은 무리를 연구해서 크림슨 잭 일당을 저지하며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같이 게임했던 두 분이 댁으로 돌아가시고 오원소 님과 찬희 군, 아이스버거 님, 히미끼 님,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냥 가기 아쉬워서 마지막 게임으로 7 Wonders 7 원더스를 했는데, 결과가 기억나지 않는 걸로 보아 제가 승리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게임이 끝나고 보드게임 모임 운영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는데, 거의 2시간 가까이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끼리 재미없는 (?) 이야기를 하자 찬희 군이 지루해서 계속 집으로 가자고 했는데, 오원소 님이 계속 찬희 군을 달래며 앉아 계셨습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황금네거리 모임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둘만 남은 반지 원정대는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근처 사우나로 향했습니다.


대구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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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아름다운 구미 모임

그래서 모텔에 들어갔습니다;;; (글 서두부터 이상하다.) 히미끼 님은 씻으시러 가셨고, 저는 그동안 쌓인 피로에 항복하고 바닥에 쓰러진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자다가 후기 생각이 나서 잠에서 깼습니다. (한 세 시간 정도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좀비처럼 흔들흔들 일어나 컴퓨터를 켰습니다. (엄지 발꼬락으로 콕.) 그리고 그 자리에서 3시간 넘게 후기를 썼습니다. 그게 "남부지역 순회방문 시즌2 - 삼시세겜"의 첫 번째 후기 (전주편 2일차)"였습니다. 그리고 드렁큰히로 님이 올리신 반지전쟁 동영상 룰도 바로 확인했습니다. 혹시나 틀리게 설명한 부분이 있을까 동영상을 재생해서 제 설명을 점검했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어가는데 히미끼 님은 여전히 취침 중. 저는 근처에서 먹을 게 있는지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 전날 삼삼오오 분들이 말씀해 주신 "콩국"이 떠올랐습니다. 일단 씻고 오전 11시가 넘어가길래 히미끼 님을 깨웠습니다. 대충 정리하고 밖으로 고고. 8월 초에 대구에서 시원한 밤을 보낸 것에 대해 매우 신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에 날씨도 날씨거니와 약한 에어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모텔에 달린 에어컨은 매우 세서 새벽과 아침에 좀 추웠습니다. ㅎㄷㄷ (현대문물이란)



피로가 쌓여서 그런 건지 새벽에 추워서 그런 건지 (둘 다겠죠.) 히미끼 님의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일단 아점으로 콩국을 먹자고 말씀을 드렸고.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유명한 콩국집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들어가서 많이 시키려고 했는데 히미끼 님이 조금만 먹겠다고 하셔서 토스트 1개와 콩국 2개를 시켰습니다.

콩국이 나왔는데. 세상에나. 뜨거운 겁니다. ㅠㅠ 이 더운 날씨에, 대구에서 뜨거운 콩국을 먹어야 할 줄이야... (뜨거운 음식인지도 몰랐어요.) 먹어보니 맛은 고소한 율무차 맛이었어요. 콩국에는 찹쌀 도너츠를 썰어놓은 것 같은 무언가가 떠 있는데 같이 먹으니까 맛있더라고요. 마음에 안 들었던 건 뜨거운 음식이었다는 것뿐.



그리고 지하철로 대구역에 내려서 구미로 가는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오후 1시 약간 넘어서 기차가 있었는데 입석이었어요. 다행히 구미까지 3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그냥 그걸 타기로 했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에 히미끼 님이 담배를 피러 가신 동안에 저는 마실 것을 알아봤습니다. 너무 더워서 역 안에 있는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 블라스트 두 잔을 샀는데. 세상에. 그날까지 행사 중이어서 원 플러스 원! 개이득!

히미끼 님과 기차 안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어느새 기차는 구미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온 연락에 의하면 우리가 도착 시각만 얘기하면 누군가가 나와주신다고 해서 역 대합실에서 잠시만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1시간 반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자 손에 보드게임 백을 든 누군가가 나타났습니다. 히미끼 님과 저는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저 남자가 그 남자임을 눈치채고 조용조용히 행동했습니다. 그 남자는 까똑을 보내며 우리의 위치를 찾고 있었지만 이 대합실에서 2시간 10분이나 기다린 우리는 슬슬 장난끼가 돌아서 순순히 알려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그 남자에게로 슬쩍슬쩍 다가 갔습니다. 이 분은 ZombieCookie 님이셨는데요. 인사를 나누고 우리에게 택시를 탈지 버스를 탈지 결정하라고 얘기하셨습니다. (무슨 게임에 나오는 NPC 같은;;;) 저희는 택시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그 NPC가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구미 모임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보드게임 저작권 얘기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도착하고 보니 택시비가 1만 원이 넘었더라고요. 꽤 이동했던 모양입니다.

모임 장소는 예쁘게 꾸며놓은 한 카페였습니다. 가게 안에는 일반 손님들이 꽤 있었고, 저희 셋은 한쪽 테이블 근처에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음료를 시킨 후에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골랐습니다.



첫 번째 게임은 ZombieCookie 님이 가져오신 The Voyages of Marco Polo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게임으로, 촐킨 작가로 유명한 체코인 두 명이 디자인한 것이었습니다. 주사위가 Alien Frontiers 에일리언 프론티어즈에서처럼 일꾼 역할을 하고, Bora Bora 보라 보라에서처럼 행동에 사용한 주사위 눈금이 그 행동을 제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도 마음에 들었고 게임 자체도 재미있었습니다. 히미끼 님은 할까 말까 고민을 하시다가 하지 않으시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겼습니다;;; "이기게 되었다", "이겨졌다 (?)" 등으로 표현해야 더 정확할까요. ㅎㅎ



그 다음 게임은 또 ZombieCookie 님이 가져오신 요상한 것이었습니다. 퍼블리셔가 HABA 하바인 걸로 보아 유아용 게임인데. 제목은 Super Rhino! 수퍼 라이노! 영웅 놀이에 심취한 코뿔소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손에 있는 층 카드를 가장 먼저 다 털먼 이기는 일종의 Uno! 우노!였습니다. 재미있는 건, 층 카드를 놓고 그 위에 벽 카드를 올려서 고층건물을 만들어 가는데요. 자신의 차례에 건물을 쓰러 뜨리면 지는 Jenga 젠가였던 것입니다! (충격과 공포) 설명만 들으면 유치뽕 하지만 이게 은근히 사람을 불타게 했습니다. 게임은 구경만 한다던 히미끼 님이 뛰어들게 만들었으니 말 다 한 셈이죠. 히미끼 님이 쓰러뜨렸다고 합니다. ㅎㅎㅎ




게임을 마치고 구미 모임 회원 2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근처에 맛있는 닭요리집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닭탕 (?)과 닭볶음을 시켰습니다. 국물이 많은 게 닭탕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맛나게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돌아오자 카페 안에는 구미 보드게임 회원님들이 많았습니다. 벌써부터 Android: Netrunner 안드로이드: 넷러너를 여러 테이블에서 하고 계셨는데, 서울 낙성대 이외의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넷러너를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구미가 넷러너의 성지가 되겠는데요. ㅎ



시간이 좀 지나자 어르신들 (?)이 많은 테이블에 위치하게 됐습니다. 구미 모임의 매니저이신 deep 님과 커뮤니티에서 이름을 날리고 계신 득구찡 님, 그리고 대구 황금네거리 모임의 아이스버거 님과 앉아서 Dungeon Petz 던전 페츠를 알려 드렸습니다. 다른 테이블에서 Kingsburg 킹스버그를 알려주시던 ZombieCookie 님도 오셔서 네 분이서 게임을 하시고 저는 게임 진행만 도와드렸습니다. 3라운드 째였던가요? deep 님의 소중한 아이가 고통을 못 이겨 죽어버리면서 가난에 허덕이셨고, 아이스버거 님은 계속 게임이 이해 안 된다고 하시고. 묵묵히 플레이 하시던 득구찡 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자정이 가까워 올 무렵 카페 한 켠에서 모임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30명 가까이 모이는 모임이 있을까 싶습니다. 아니, 요새에는 서울 쪽에도 이정도로 회원을 모으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카페의 정규 영업 시간이 끝나고 일반 손님들이 모두 나가자 남은 테이블을 붙여서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을 세팅했습니다. 보는 눈이 많아서 빠르지만 엄숙하게 세팅을 했습니다. (5분 정도면 혼자서 끝낼 수 있습니다.)


반지의 전쟁을 할 사람들을 모으는 중에 deep 님이 사람들을 중앙으로 모으셨습니다. 이날이 구미 보드게임 동호회 100회 모임이었거든요. 축하하기 위한 케이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방문 날짜를 일부러 맞춘 건 아니었는데 이런 좋은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잠깐의 축하 파티가 끝나고 다들 게임 테이블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한 시간 동안 반지의 전쟁을 설명했고, 뒤이어 히미끼 님이 진행을 도와 드리는 사이에 저는 잠이 들어서 기억이 없네요. ^^;; 원래는 새벽 3시에 모임을 끝내야 하는데, 반지의 전쟁에 빠지신 네 분이 4시 반 즈음에 끝나서 그때에 카페의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늦은 시간에 deep 님이 대구까지 태워다 주셔서 편하게 왔습니다. (원래 아이스버거 님이 태워주신다고 하셨는데 일이 있으셔서 먼저 가셨습니다. 아이스버거 님은 다음 날에 또 뵙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다음 삼시세겜은 대구광역시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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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_War

대구의 아침은 그다지 덥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심결에
"별로 안 더운데요?"
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대구의 더위는 이미 우리에게 타락 점수를 주입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터미널에서 역을 향해 가던 도중 히미끼 님이 갑자기 발길을 돌렸습니다.
"뭔가를 놓고 왔어요."
"뭔데요?"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히미끼 님의 맨머리가 보이고 있던 걸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뚜... 뚜껑을 버스에 놓고 내리셨던 것입니다. 비슷비슷한 버스들이 한데 모여 있는 와중에 우리가 타고 왔던 진주 버스를 찾아야 했습니다. 히미끼 님이 질문했습니다.
"어떤 버스인지 기억나세요?"
"그... 글쎄요..."
결국 히미끼 님은 그 버스를 찾아내서 모자를 다시 손에 넣으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구 첫 일정은 이정도 선에서 액땜을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대구서부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성당못 역 (뭔가 이름이 Spawning Pool 산란못스럽지만...)으로 들어갔습니다. 지하철표를 끊으려고 돈을 넣으니까...


가넷 (?) 한 개가 나왔습니다;;;


대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은 도장깨기에 초대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들어가야 하는데 개표기에 이 가넷 (?)을 넣는 곳이 안 보이는 겁니다. ㅠㅠ 히미끼 님과 둘이 머리를 굴리다가 혹시... 가넷을 개표기에 들이대니까
(삐삣!)
"오~! 소~름! ㅋㅋㅋ"
이렇게 최첨단 도시인 대구에서 문화충격을 받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또 히미끼 님의 탄식이.
"아...! 놓고 왔다..."
"네? 뭘요?"
"내 소중한..."
이미 게시판 상에서 미역패드 (?)라 불리던 그 녀석이 아까부터 안 보였던 것입니다. 일단 혼자 찾아보겠다며 개찰구 밖으로 나갔다가 몇 분만에 빈손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서 저도 개찰구밖으로 나가서 같이 찾기로 했죠. 기억을 더듬어 우리의 경로를 역추적하기로 했습니다. 터미널에서 히미끼 님이 화장실에 다녀오셨을 때에 분명히 손에 미역패드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히미끼 님을 기다리는 동안에 제 오른편에 타포린 백을 놓고 의자에 앉아있다가 히미끼 님이 오시자 자리를 비켜 드리러 일어나면서 히미끼 님 손에 미역패드가 있던 것을 봤었거든요. 그렇다면 히미끼 님의 소중이는 분명히 이 역 안에 있는 겁니다. 히미끼 님이 갑자기 역내 안내소에 들어가는데 앗! 책상 한쪽에 주인을 반기듯 미역 줄기를 흔드는 물체가 보이는 겁니다.

(주인님이 오셨다) 쿠웨~~에~~엑!!

지하철 역무원이 이 신기한 물체를 발견하고 잘 보관해 주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히미끼 님은 간단한 분실물 회수 절차를 밟고 미역패드를 찾아오셨습니다.

다시 가넷 한 개를 받고 지하철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이상했던 점은 지하인데... 엄청 더운 겁니다. 사람들은 손에 부채를 들고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요. 왜 지하로 내려왔는데 더 더운 걸까요... 모르도르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몇 정거장을 지나서 명덕 역에 도착했습니다. 노선도에서 위치만 보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삼삼오오 잘 나가네요. 대구 한가운데에 아지트를 얻고."
그러나 지하도 밖을 나오니 건물들만 뎅그러니 있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주위에 커피전문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일단 북쪽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학교, 미술학원, 미술학원, 악기상점, 악기상점, 다시 미술학원... 이곳 모르도르...가 아닌 대구의 기온은 이미 둘만 남은 원정대의 타락 점수를 충분히 올려 놓았습니다. 얼굴과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지쳐버린 저희는 식사 시간은 아직 아니지만 밥 먹을 곳이 있거나 씻을 곳이 있으면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죠. 걷다 보니 히미끼 님이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저기 사우나 있네요!"
와~ 다다다다 걸어갔으나... 리모델링 중... (으아!) 추적 타일을 뽑았는데 빨강이 나온 것 같은 느낌...

조금 더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헉헉) 몇 분 더 걷자 저 멀리 목욕탕 빨간 굴뚝이 보이는 겁니다. 유레카~~


그러나 불편해서 양해 안 하고 싶었습니다. ㅠㅠ 휴가시라니... 또 추적 타일 뽑기 실패...

다시 몇 분을 걸어간 끝에 사우나를 발견하고 일단 씻기로 했습니다. (타락 점수 1이 내려갔습니다.)

씻고 나니까 슬슬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히미끼 님이 사우나에 들어가 계신 동안에 저는 피츠버그의 나훈아 씨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있었습니다. 꾸벅꾸벅 졸면서 시청했습니다. 히미끼 님도 어느 새 제 옆으로 와서 시청하시는 듯은 아니고 드러 누워 주무셨습니다.

정오가 가까워 오자 슬슬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아... 저 불판 위 (?)를 걸어 다녀야 한단 말입니까... 이~영~차! 짐을 다시 메고 문 밖으로 나가자, 으어어어어어어어억! 너무 더워... ㅠㅠ 하지만 대구의 기온은 자비가 없었습니다. (명중 1회 이상 얻으면 추가 명중 1회를 얻겠죠.) 다시 명덕 역을 행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괜시리 이 카드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ㅠ




저희가 사우나에서 쉬는 동안에 히미끼 님이 받지 못한 전화가 있었습니다. 몇 번 만에 연결 성공. 연락이 안 되서 불안한 거인의잠 님이 직접 나오고 계셨던 것입니다. 명덕 역 바로 앞에서 드디어 거인의잠 님을 만났습니다. 저희 두 사람 모두 이 분과 인연이 있었는데요. 저는 거인의잠 님이 서울에 계셨을 때에 (서울 김포) 삼삼오오 모임에 놀러가서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을 알려 드린 적이 있었고, 히미끼 님은 전주 모임을 만들 때에 웹 상에서 도움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히미끼 님은 거인의잠 님을 처음 뵙는 것이었다네요.) 셋은 일단 커피전문점에 들어가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빨았습니다. 건물 안은 시원했습니다. 길거리에 사람이 적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살려면 건물 안으로... ㅠ)

가넷 얘기를 꺼냈더니 외지인들이 신기해서 기념품으로 가져간다고. (왜 그 생각을 못했지?! ㅋ) 저는 농담으로 여러 개 사가서 게임할 때에 선 마커로 쓰는 게 어떻냐고. (대구지하철 관계자 여러분, 이거 다~ 농담인 거 아시죠~?) 그리고 명덕 역 위를 지나가는 모노레일. 이것은 대전 EXPO 때 봤을 법한 신기한 탈 것이 대구를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거인의잠 님이 그 아래 지나갈 때에 그거 탄 사람들이 문 열고 침을 뱉는다면서 주의하라고... 저희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거인의잠 님이 껄껄 웃으시며 저희가 농담도 진짜로 믿는다며. ㅎㅎㅎ (저희가 이렇게 순수합니다. 하하하하)


커피를 다 마신 후에 저희는 삼삼오오 아지트로 이동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도중에 오신 다른 삼삼오오 분이 저희를 안내하며 점심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셨습니다. 뭐,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 일단 아지트 구경을 먼저 하기로 했죠.


도장깨기에 대비해서 현수막을 걸어놓은 삼삼오오. 우리는 찢길지언정 깨지지 않는다!

삼삼오오의 아지트는 역시 더웠습니다. (이 글의 제목이 The_War인 이유도 더워서 그랬습니다.) 에어컨이 있으나 월풍 님 작업실의 것처럼 청각적인 냉방 효과만... ㅠ 짐을 내려놓고 근처에 있는 롯데리아로 가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저희를 안내해주신 분이 사주신 대서... 쪼르르 롯데리아에 저렴한 3인용 세트가 있어서 그걸 시키고 추가로 음료 하나와 빙수까지 시켜서 먹었습니다.

음식을 기다리고 먹는 동안에 그 분께 삼삼오오의 이것저것을 캐물었으나 거인 형님께 물어보라면서 웃으며 피하시는. (교육이 잘 되어 있군요. ㅎ)



식사를 마치고 다시 더운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반지의 전쟁을 그 분께 알려 드렸습니다. 결과는 제가 졌...습니다. ㅠㅠ 반지-운반자들이 너무나 쉽게 모르도르에 도착했네요.


이분은 약속이 있다며 어딘론가 떠나시고. (오락실에서 보스를 깬 후 이름도 새기지 않고 뒤돌아가는 고수의 풍모...);


반지의 전쟁을 하는 동안에 삼삼오오 분들이 여럿 모이셨습니다. 어떤 분이 저녁식사 거리를 사오셔서 한데 모여 이것을 뜯어 먹었습니다 (?). 납작만두 (?)였던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이상하게 나왔는데, 만두들이 에테르화되어 한데 뭉쳐서...;; (에테르만두說) 간장을 콕콕 찍어먹으면 더 맛있는 만두랍니다.


저는 식사 후에 한숨 잤습니다. 그 동안에 히미끼 님이 출전해서 처음 해보신 The Staufer Dynasty 슈타우퍼 왕조에서 한 바퀴 (대략 25점) 차이로 승리하셨다네요. 현수막이 반으로 찢길 것 같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저는 7 Wonders 7 원더스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제 주종목답게 가뿐하게 승리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람들이 제 카드 더미를 치운 후의 모습. ㅠ (위 사진 하고 맞춰보시면 이해되실 겁니다.) 삼삼오오 현수막은 이제 1/4만 남았습니다. ㅎㅎ




다음 종목은 Caverna: The Cave Farmers 카베르나: 동굴 농부들. 제가 Agricola 아그리콜라는 늦게 시작해서 자신이 없는데, 카베르나는 좀 빨리 시작한 편이라 자신 없지는 않았습니다. 거인의잠 님은 이미 해보셨고, 호랑이 님 (?)은 이날 처음 하신 거였는데요. 가이드 없이 스스로 운영하신 호랑이 님의 게임 센스가 놀라웠습니다. 제가 96점 나왔고, 거인의잠 님이 6X점, 호랑이 님이 56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호랑이 님 일년 후에 만나면 무서운 상대가 되어 있으실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현수막은 1/8. ㅋ


게임이 모두 끝나자 시각이 자정이 넘었습니다. 쉬시고 계시던 히미끼 님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근처에 있는 뼈해장국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소주 한 잔 걸치면서 모임장으로서 애로사항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금요일 새벽이어서 아침에 출근하셔야 하는 거인의잠 님과 호랑이 님은 떠나시고, 이제 히미끼 님과 둘만 남은 상황. 하루 묵을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밤이라고 해도 대구의 더위를 뚫고 다시 사우나로 가기에 거리가 너무 멀었고요. 남은 선택지는 거인의잠 님이 추천한 근처 모텔;;; 왠지 여기서 이야기를 끊으면 이상할 것 같아서 여기서 끊겠습니다 (?).



다음 삼시세겜은 경상북도 구미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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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지역 모임을 만나다

오전 8시 즈음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곰팡맨 님이 오시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히미끼 님과 둘이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딱히 땡기는 메뉴가 없어서 김밥과 어묵으로 선택. (오물오물) 시간을 보니 예정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아서 드렁큰히로 님께 1시간 일찍 나와달라고 부탁을 드렸죠. (부산, 진주 사정을 아시는 분들은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 아실 겁니다. ㅎㅎ)

피곤에 쩔은 두 사람은 곰팡맨 님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참회의 기도 시간을... (기도하는~♬)

9시 반 즈음 되자 전날과 달리 매우 건강해 보이는, 꽃단장을 한 곰팡맨 님이 나타났습니다. 얼른 진주행 버스표를 끊고 버스에 올라 열심히 잠을 잤습니다.

원래 진주시외버스터미널 앞 롯데리아에서 정오에 만나기로 했는데, 저희의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겁니다. (응?) 여수에서 부산까지 2시간 조금 더 걸렸으면 부산에서 진주까지는 1시간이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어림짐작했었는데요. 출발할 때에 저희 3명만 탔던, 전세버스인 줄 알았던 진주행 버스가 자고 일어나 보니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겁니다. 그러니까 한 번에 진주로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작은 정거장에서 사람들을 태우면서 가니까 오래 걸리고 있었던 거죠. 드렁큰히로 님에게 11시까지 나와달라고 했는데 시계를 보니 이미 11시 반... 진주시에 들어오긴 했는데 아직도 버스는 시내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습니다. (어뜩해~ 어뜩해~ ㅠㅠ)


드디어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정오가 살짝 넘은 시각. 곰팡맨 님은 잠시 화장실로, 히미끼 님은 스모킹 타임. 셋이 다시 만나서 건너편 롯데리아로 들어갔는데! 찾아라 반바지 차림 + 모히칸 스타일 머리! 그러나... 그는 없었습니다. 서둘러서 전화 연결을 하고 밖으로 나가자 길 건너편에 반바지 차림에 "모자를 쓴" 남자 분이 한 손에 보드게임을 담을 것 같은 백을 들고 있었습니다. 횡단 신호가 떨어지자 네 사람은 만났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드렁큰히로 님 계산에 부산에서 진주까지 1시간 대에 올 수 없는 거리인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셔서 11시 반 즈음에 나오셨다고... (반지 원정대가 텔레포트 시도할 뻔...;;;)

드렁큰히로 님은 우리를 택시에 태우고 미리 정해 놓으신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제가 이번 일정을 잡을 때에 진주 모임을 놓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부산에서 포항이나 울산으로 가기 전에 하루가 비었는데 드렁큰히로 님이 덥썩 방문신청을 하셨거든요. 이게 여수-부산-진주라는 역주행 루트라서 교통비도 문제가 있어서 일정을 짜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드렁큰히로 님이 방문하면 "퐁퐁특수통닭"을 대접해 주신다는 댓글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서 그만... (그 댓글에 퐁퐁은 들어 있지 않다는 유머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ㅋㅋ) 아무튼 택시로 이동하는 사이에 곰팡맨 님이 Black Stories 블랙 스토리즈 헬게이트를 열었습니다. (아... 안 돼... ㅠ) 드렁큰히로 님만 걸려들 줄 알았는데 운전 중이신 기사님도 함께 걸려든... (월척이로구나~!) 아쉽게도 정답을 맞추기 전에 퐁퐁특수통닭집에 도착해서 택시기사님은 하루 종일 궁금하셨을 듯. (안 알랴줌)



식당에 도착하자 드렁큰히로 님은 랩을 하시듯 속사포로 메뉴를 주문하셨습니다. ("아지매요~") 술이 없어 "히"무룩한 히미끼 님을 위해 인삼주도 추가. (급방긋) 식사겸 안주겸 닭찜과 혹시나 양이 부족할까 양념통닭까지. (삼계탕을 시키면 인삼주가 덤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치느님을 남긴 원정대. (죄송합니다. 흑흑) 밥을 같이 먹었고 피로에 쩔어서 생각보다 많이는 못 먹었었던 같습니다. (양념통닭 싸갈 걸... ㅠ) 다시 택시를 타고 모임 장소로 떠났습니다.



진주 모임은 토요일도 있고 수요일도 있는데요. 드렁큰히로 님이 수요일만 휴무이셔서 수요일 모임만 담당하신다고 합니다. 운이 좋게도, 수요일에만 공연이 없는 공연 공간 전체를 빌려서 보드게임 모임용으로 사용하고 계시다고 하네요. 넓고 분위기 있어서 좋았습니다. 공간을 빌려주시는 분들이 아마도 음악이나 공연연출 쪽을 하시는 분들일 것 같은데, 이분들도 (카탄, 시타델 등의) 보드게임을 구입하면서 보드게임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하네요. (지역 보드게임 모임을 만들려고 하시거나 장소 문제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은 주변에 이런 공간이 있는지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게임은 가볍게 몸을 푸는 의미로 협력 게임으로 선택하셨습니다. The Game: Spiel... so lange du kannst! 더 게임... (이름이 더 길지만 독일어라 읽지 못하겠습니다.) 최근에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카드 게임인데요. SDJ 후보까지 올라가서 관심이 더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날 처음 해봤습니다. (저는 보드게임 초보입니다.)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카드를 네 줄 중에 한 곳에 놓고 카드를 다 놓으면 승리한다. 그러나 카드 운도 그렇고 손발이 잘 안 맞아서 두 게임 모두 실패하고 맙니다. 제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Hanabi 하나비를 처음 해봤을 때만큼 충격적인 카드 게임이었습니다. 느낌 좋네요. ^^



다음은 예전에 해본 게임인데, 새로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나온 Welcome to the Dungeon 웰컴 투 더 던전입니다. (이전 제목이 Dungeon of Mandom 맨덤의 던전이었습니다.) 색감도 예뻐지고 다양한 직업이 추가되면서 훨씬 더 매력적인 게임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저를 진주로 소환시킨 이유.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 시간이었습니다. 드렁큰히로 님이 사전에 동영상 촬영을 부탁하셨는데 흔쾌히 수락했고요. 이날 동영상 룰북의 전문가이신 곰팡맨 님도 같이 있어서 세 명이서 콜라보레이션을 했습니다. 제가 설명, 곰팡맨 님이 촬영, 드렁큰히로 님이 업로드를 담당했습니다. 그 결과가 8월 7일 보드라이프에 올라온 다섯 편의 동영상입니다. (링크: 반지전쟁 동영상 룰) 주변에 반지의 전쟁을 룰을 알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그 동영상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맨덤의 던전을 같이 한 (입문자로 보이는) 여자 분이 반지의 전쟁이 어렵냐면서 관심을 살짝 보이셨는데, 설명 들어가니까 다른 곳으로 가시더라고요. ^^;; 동영상 촬영 중에 뒤에서 악기 연주 연습하시던 분들이 계셔서 자연스럽게 음악이 깔렸습니다. (하핫)

약 한 시간 동안의 설명이 끝나고 드렁큰히로 님과 일대일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히미끼 님은 이미 수면 상태였고, 전날 한 게임 해보신 곰팡맨 님이 자유민족을 맡은 드렁큰히로 님을 도와 드렸습니다. 곰팡맨 책사의 조언에 따라 부지런히 반지-운반자들을 진행시키신 드렁큰히로 님. 저는 꿋꿋하게 곤도르와 로한을 밀었지만 어느 새 모르도르에 도착한 원정대. 추적 풀에 빨간색 암흑군단 특별 추적 타일을 많이 추가한 덕분에 원정대가 모르도르 트랙에서 뒷걸음질을 여러 번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느 새 타락 점수도 꽤 높아져서 아슬아슬 한 타 싸움이 되었습니다. 확률상 이번 턴을 쉬고 다음 턴에 원정대를 움직이면 승리하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추적 칸에 행동 주사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드렁큰히로 님이 조금 무리를 해서 진행시켰는데, 빨간색 눈 타일이 뽑히면서 큰 추적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반지-운반자들이 사우론에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주변에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아서 드렁큰히로 님이 일부러 서둘러 진행하신 것 같더라고요.



다음은 이번 여정에서 의외의 수확이었던 주사위 게임입니다. 많은 분들이 BANG! 뱅!을 알고 계실 텐데요. 2013년에 Bang! The Dice Game 뱅! 주사위 게임이 나왔습니다만 외국 포럼에서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던 것에 반해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진주 모임에서 뱅! 주사위 게임을 직접 해볼 수 있었는데요. 정말 대박이었습니다! (우연치 않게도 얼마 전에 뱅! 주사위 게임의 한글판이 조용히 발매되었습니다.)

역할은 기존 카드 버전과 동일합니다만 진행이 플레이어의 턴에 주사위를 굴리고 그 결과에 따라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인물의 능력 역시 주사위 버전에 맞게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주사위 결과를 사용해서 특정 거리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하거나 개틀링 기호 3개를 사용해서 전체 공격을 하는 식이죠. 가장 재미 있었던 것은 인디언 아메리카 원주민 화살이었습니다. 이 주사위 면이 나올 때마다 플레이어는 원주민들의 어그로를 끌어서 화살을 맞는데요. 화살 풀에 화살이 다 떨어지면 각자 가지고 있는 화살 수만큼의 피해를 받는 것입니다. 화살 개수를 잘못 관리하면 급사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서로 낄낄거리며 웃게 되었습니다. 운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지만 카드 버전 때와 달리 게임이 늘어지지 않아서 굉장히 신났습니다. 아마도 돌아오는 추석에 뱅! 주사위 게임을 꺼내시면 가족, 친지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것 같네요.




뱅! 주사위 게임을 마치고 미리 주문했던 버거와 감자 튀김이 도착했습니다. 엄마의 등짝 스매쉬처럼 엄마의 매운 터치, 맘스 터치;; 오물오물 먹고 있었는데 이미 다 드신 다른 분들이 가운데에 모아놓은 감자 튀김을 치우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ㅠㅠ (게임이 먼저다)



우리의 저녁식사를 밀고 들어오는 Ca$h 'n Guns (second edition) 캐쉬 앤 건즈 (2판). 아무에게나 총질을 할 수 있는 게임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제히 외지인들에게 다구리를 놓는 게 어디있습니까요. (진주 인심이 이런 겁니까... 퐁퐁치킨은 미끼였어... ㅠㅠ) 히미끼 님은 연속 두 라운드 동안 반창고를 붙여야 했습니다. 반창고를 붙인 사람들은 쫄보가 되어 쑤구리가 되기 일쑤였죠. 꿋꿋하게 버틴 저는 2등을 했던 것 같습니다. (드렁큰히로 님이 1등이었던가...)




그 다음 게임은 진짜 오랜만에 해보는 Shadow Hunters 섀도우 헌터즈. 뱅!의 대안으로 선택되던 게임인데 조금 더 보드 게임 느낌이 납니다. 저는 생긴 것처럼 선량한 헌터로서 악의 무리를 때려잡는 데에 충실히 임했습니다. 검은색 아이템 때문에 초반에 난리났었는데요. 나중에 서로 뺏고 빼앗기며 많은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좀 지나자 서로 역할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서 쭈구리 중립 캐릭터들은 물러나고 헌터들과 섀도우들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단합이 잘 된 헌터들의 승리. (정의구현)


저는 피곤해서 잠시 취침을 한 사이에 누가 저를 깨우더라고요. 벌써 갈 시간이라고. (헉) 이 장소가 오후 11시에 닫아야 해서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쉬워하는 일부 회원님들과 갈곳 없는 불쌍한 반지 원정대는 대학 근처에 있는 24시간 커피전문점에서 몇 게임 더 하기로 했습니다.



탐앤탐스에 넓은 테이블이 있어서 이곳에서 몇 시간 놀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번 여정에서 확실하게 밀고 있는 게임이자 이 밤에 딱 어울릴 만한 게임, Betrayal at House on the Hill 언덕 위 집에서의 배신으로 선택했습니다. (제목에 "배신자"가 아니라 "배신"입니다. ㅠ betrayal [비트레이얼]은 배신이고, 배신자는 traitor [트레이터]에요. 비슷한데 잘 보시면 달라요. ㅎ)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시작했습니다. (일단 고고) 드렁큰히로 님은 시작 전부터 몰입을 하셨는지 스마트폰용 앱을 찾아서 본인 캐릭터의 스탯을 기록했습니다. (편리한 세상입니다. ㅎ) 빠르고 멍청한 캐릭터를 할까, 힘세고 멍청한 캐릭터를 할까 고민하시더라고요;;; (나중엔 결국 멍청한 게 문제가 됩니다. ㅎㅎ)


나중에 저의 소중한 초딩이 배신자임이 밝혀지고 나머지 분들은 유체이탈의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배신자여서 저 혼자 한쪽에서 제 시나리오를 읽는 동안에 나머지 분들이 영웅들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토론하는 모습을 담은 겁니다. 지지부진한 배신자의 친구 (?)와 영웅들의 혼들의 싸움 끝에 멍청한 그 놈이 해답임을 깨달은 배신자 팀은 그 멍청이 (?)를 공략하면서 게임이 너무나 쉽게 끝나 버렸습니다.


언.집.배를 끝으로 드렁큰히로 님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호주에서 휴가 차 한국에 들어오신 셰프 님이 저희 반지 원정대와 같이 천사다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Tichu 티츄를 즐기시기로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어 하셔서 저희가 강하게 키워 드리기 위해 (?) 끌어들였는데요. 열심히 하시다가 왠지 리콜 당하셔야 할 분위기여서 빠르게 끝내고 댁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우리 원정대 중에서 곰팡맨 님과의 마지막 밤. 해가 뜨면 서울로 보내 드려야 했는데요. 세 명이서 서너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얘기가 재미있으니까 잠도 안 오더라고요. (신기)


오전 5시 경. 택시를 타고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곰팡맨 님은 서울로, 나머지 둘은 대구로 떠나야 했죠. 버스 차편이 서울 쪽이 더 많아서 대구로 갈 히미끼 님과 저는 조금 더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요. 서로 좀 아쉬웠는지 아침식사를 하자고 권했습니다. 처음엔 김밥천국이었는데 그게 국밥이 되었다가 결국에 삼겹살로... (역시 아침엔 삼겹살이죠.) 히미끼 님 힘내시라고 에너지 드링크도 한 병. (센스)



서로 보내는 게 아쉬운 걸 아는지 불판도 천~천히 달궈졌습니다. 고기와 술을 마시면서 또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먹다 보니 어느 새 오전 7시. 버스를 탈 시각이 되자 서둘러 고기와 술을 입에 털어넣고 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바로 길 건너였어요.)

이젠 진짜로 헤어질 시간. 우연히도 서울행과 대구행 버스의 시간이 같더군요. 생판 모르던 사람인데도 3일 동안 함께 고생하니까 헤어지기 아쉽더라고요. 곰팡맨 님, 히미끼 님 그리고 저. 이 세 명의 반지 원정대 이야기는 여기까지였습니다.


모르도르로 간다.




다음 삼시세겜은 대구광역시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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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고 있다



다락 던전에서 1시간 반 정도 수면을 취하고 부산의 다른 왕국을 깨기 위해 이동해야 했습니다. 오전 9시. 평소라면 일어나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오전 7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고 게다가 술까지 마셔서... 곰팡맨 님은 알아서 일어나셨는데, 아직 활동 시간이 아닌 히미끼 님은 여러 번 시도 끝에 잠에서 깨웠습니다. 퉁퉁 붓고 부스스. 여기저기서 왜 아침 10시에 약속을 잡았냐며...


부산대 역에서 전철을 잡아 타고 양정 역에 도착하자 9시 45분 경. 혹시라도 케빈 님이 일찍 나오셨을지 몰라서 6번 출구 밖으로 나가보았지만 으어어어어억!! 햇빛이 너무 세!! 햇빛을 처음 본 언데드들 마냥 우리는 햇빛을 피하러 다시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지하도에 있던 커피전문점에 가서 모닝 커피를 빨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10시가 넘었는데에도 케빈 님이 나타나지 않자, 원정대원들 사에에 저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데,
"케빈 님 진짜 오시는 거 맞아요?"
"어제 얘기 주고 받았으니까 오시는 거 맞을 거예요. 아마도..."


뙤약볕 아래에서 10분 정도 지나자 커피도 다 마셨겠다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결국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에 왜 전화를 안 걸었지;;;) 케빈 님과 연결이 되자 방금 전철에서 내리셨다고... (중국집에 전화 걸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

"거기 중국집이죠?"
"예, 출발 했어요~"
"저희 주문 아직 안 했는데요;;;" (딱 걸렸어!)

정말 전철에서 방금 내리신 게 맞았는지, 6번 출구 엘리베이터에서 케빈 님이 나오셨습니다. 두둥. 인사를 나눈 뒤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케빈 님은 월풍 님의 작업실로 안내를 하셨습니다.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만드신 월풍 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 앞에 월풍 님이 계셨습니다. 손님을 맞으러 나온 성주의 풍모. 마치 "어서 오시오, 이곳이 Summerfell 서머펠이오."라며. (더운 곳이라 Winterfell이 아님)



자리에 앉자 첫 번째로 선택한 게임은 케빈 님이 준비해 오신 Deep Sea Adventure 해저탐험이었습니다. 일본의 퍼블리셔인 Oink Games 오잉크 게임즈 (꿀꿀)에서 출시한 직사각형 박스 시리즈들 중 하나인데요. 간단한 파티 게임으로 유명한데 저는 이날 처음 해봤습니다. (제가 아직 보드게임 초보라서...)

규칙을 들으니까 정말 간단했어요. 아, 내려가서 퍼오면 되는구나. 산소가 계속 없어지는구나. 그러나 바다 깊숙한 곳에는 사람을 유혹하는 손길이 있고,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의 욕심인 걸까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던 잠수부들은 살아오지 못하고 꼬르륵 꼬르륵. 결국 모두 "0"점. 하하하하하핳

하지만 파티 게임을 연속으로 하면 어느 새 전략 게임이 되어 버립니다. 히미끼 님이 쫄보 전략을 사용하면서 1등을 하셨죠.


빨리 끝나서 다른 게임을 하나 더 골랐습니다. 이것도 케빈 님이 준비하신 Linko! 링코! 크라머 빠이기도 한 제가 좋아하는 게임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핸드를 받자 저는 "티츄!"를 부를 뻔 했습니다. 스... 스트레이트... ㅂㄷㅂㄷ 케빈 님의 셔플은 정말 완벽했던 것입니다. 이거슨 도장깨기를 막기 위한 화려한 손기술. (따봉!)



링코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시켜 먹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월풍 님 작업실이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치우기도 귀찮고 하니 나갔는데요. 진짜 너무 더웠습니다. ㅠ 그래도 맛있는 집으로 안내하신다는 월풍 님 말씀을 믿고 좀 걸어가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만의 맛집이 나타났습니다. 내부는 깨끗하고 시원했습니다! 돼지국밥집이었는데 수육백반을 시켰다고 합니다. 돼지고기와 국밥이 따로 나왔어요. (마시쩡!)



식사를 마치고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커피 한 잔씩 마시기로 했습니다. 근처에서 저렴한 가격에 크고 알흠다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네요. 작은 커피전문점이었는데 평소에 마시는 용량의 거의 2배를 주는! 게다가 가격도 저렴한! (컬처쇼크) 남녀노소 줄을 서서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다시 월풍 님 작업실로 돌아왔습니다. (배불러서 다 못 마심.)


월풍 님 작업실에 달린 에어컨을 돌렸으나 시원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부산의 여름은 이렇게 덥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에어컨 고장... ㅠㅠ (Summer is Coming)



다음 종목은 7 Wonders 7 원더스 작년에 부산대 모임에서 동점이었는데 돈 차이 때문에 현아 님한테 패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현아 님이 이 더운 날씨에 서울로 스쿠터 여행을 떠나셨다고. (아싸!) 하지만 부산 분들은 함정 카드를 준비했던 것이었습니다. 7 Wonders: Wonder Pack 7 원더스: 원더 팩. 4개짜리 원더 확장인데, 능력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걸 통째로 기본판과 섞어서 나눠주셨는데, 세상에... 저는 마네킨 피스, 왼쪽 히미끼 님은 만리장성, 오른쪽 월풍 님은 아부 심벨...;;; 결국 꼴등.


내 원더 능력을 쓸 수가 없다... ㅠㅠ (내가 ㄱㅈ라니...!!)



두 번째에서는 원더 팩을 빼고 담백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7 Wonders: Leaders 7 원더스: 리더스만 들어간다면 제가 자신있었어요. 올림피아 제우스상을 잡았는데 역시 크고 알흠답게 승리. 음화화홧!! 승리에 심취해서 사진이 흔들렸습니다만 길게 늘어선 파랑과 보라 카드들! 스티비 원더가 보우하사! (1년만에 도장깨기 성공!)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엄숙) 더 이상 긴 말이 필요 없이 본 게임에 들어갑니다. 월풍 님이 1년간 기다려오신 그 게임.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 피곤해 하시는 히미끼 님은 구경, 피곤해 하시는 곰팡맨 님은 자유민족 (?), 월풍 님과 케빈 님은 사이좋게 암흑군단을 배정했습니다. 제 체력도 거의 바닥이었지만 천출력 맵과 피규어를 만지자 체력이 꿀럭꿀럭 차오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설명을 시작하자 더위 + 식곤증 + 이해안됨이 섞여서 마법의 졸음이 퍼져나갔습니다. 곰팡맨 님은 꿈뻑꿈뻑 졸고 있고, 케빈 님도 혼이 빠져나간 표정. 반지를 정말 하고 싶어하신 월풍 님만 집중해서 듣고 계셨습니다. ㅠㅠ 1시간 가량의 설명을 끝내자,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를 듣고 뛰어나가는 학생들 마냥 번쩍 일어나서 화장실로 또 바깥 바람 쐬러 나가시는 것 아니겠습니다. (너무 해.)


곰팡맨 님이 혼자 자유민족 하는 게 힘드실 것 같아서 옆에서 책사처럼 붙어서 지도를 해드렸습니다. 이미 반지의 전쟁을 해보신 월풍 님은 케빈 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며 플레이하셨습니다. 중간에 회색의 간달프가 안 죽고 서부의 의지 행동 주사위 결과도 안 나와서 백색의 간달프가 못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고. 반지-운반자들은 꾸역꾸역 모르도르 트랙 위로 올라갔으나 월풍 님이 이끄는 암흑군단의 군대들은 강력했습니다. 곤도르 남부와 로한 전역을 밀어버리셨고, 로리엔도 밀리고... 결국 암흑군단이 군사적 승리로 게임을 끝냈습니다.


월풍 님 작업실에 화장실 (샤워 목적)과 드럼세탁기를 보자 아주 약간의 인간다운 삶을 원했던 저는 샤워와 세탁을 할 수 있겠냐고 부탁을 드렸고, 월풍 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는 샴푸가 없었고, 세탁기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커헉!) 저녁식사 시간도 되어서 외출하는 김에 샴푸와 드럼세탁기용 세제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낮에 봤던 "무봤나 촌닭"을 먹기로 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샴푸와 세제를 구입하는 바람에 근처에서 식사를 해결하게 됐습니다.



더워서 밀면을 먹었습니다. If you push...


케빈 님은 반지의 전쟁 도중에 리콜 당하셨고, 식사 후에 곰팡맨 님이 부산에 사는 친구집에 하루 묵는다고 하셔서 인물 행동 주사위 결과를 사용해서 곰팡맨 님을 반지 원정대에서 분리했습니다.


월풍 님 작업실로 들어가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월풍 님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드럼세탁기 청소를 하셨습니다. 씻고 나오니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 샤방샤방 (타락 점수 1이 치유됐습니다.) 히미끼 님이 씻는 동안에 세탁기 청소가 끝나고 저는 밀린 빨래를 돌렸습니다. (타락 점수 1이 또 치유됐습니다.)

셋이서 Innovation 이노베이션을 하려고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졸음이 쏟아져서 잠깐 자고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잠깐 눈은 감았다가 뜬 것 같았는데, 벌써 2시간이 지났다고. 세탁기는 이미 멈춰져 있었고, 월풍 님과 히미끼 님 두 분이서 이노베이션을 벌써 2게임이나 하셨다고 합니다. (믿을 수가 없어. ㅠ)


월풍 님이 간이로 만들어주신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개운한 기분으로 이노베이션 + 이노베이션 첫 번째 확장 3인플을 했습니다. 이 게임은 작년에 부산 왔을 때에 전파했던 게임인데요. 그 이후로 부산에 계신 분들이 종종 즐겨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노베이션을 참 좋아하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와요. 이날도 월풍 님에게 탈탈탈 털려서 핸드가 줄어들고, 두 분이 업적 열심히 쌓아 올리는 동안에 저는 뭘 한 걸까요? ㅠㅠ 이 게임은 마지막에 특별 업적을 획득하시면서 업적 하나 차이로 월풍 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이노베이션 얘기하다가 생각난 것인데요. 월풍 님은 이노베이션 스토리지 박스를 손수 만드셨습니다. 작업실 곳곳에 직접 만드신 소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등이라든지, (담요로 가려져서 안 보이지만) 우리가 게임을 했던 테이블은 "얼음과 불의 노래"에 등장하는 각 가문의 심벌이 그려져 있었죠. 케빈 님도 스토리지 박스 만드는 걸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월풍 님이 스승이신 듯. 두 분 모두 금손.



그 다음으로 제가 챙겨간 Dungeon Petz 던전 페츠. 아주 예전에 유행했던 다마고치 스타일의 몬스터 키우기 게임입니다. 밥 달라, 똥 치워달라, 놀아달라... 요새 유행하는 육아 프로그램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이죠. 보통 이 게임을 소개해 드리면 어떻게 해애 할지 감을 못 잡습니다. 크바틸 씨의 게임들이 굉장히 참신해서 기존에 없던 방식의 게임을 선보이기 때문인데요. 던전 페츠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던전 페츠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두 라운드 정도 지나면 감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냥 방식이 좀 낯설어서 그런 것뿐이죠. 이 게임도 제가 참 좋아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것 중에 하나. 두 분은 50점 넘으셨던 것 같은데, 저만... ㅠㅠ



마지막 게임은 다시 반지의 전쟁이었습니다. 원래는 히미끼 님이 잠을 자야겠다고 빠지시려는 걸, 초반만 하시다가 피곤하시면 넘겨달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미리 말씀을 드리면 이거 때문에 히미끼 님이 잠을 못 주무셨습니다. ㅎㅎ

자유민족을 맡아서 꾸준히 반지-운반자들을 진행시킨 히미끼 님, 그리고 암흑군단으로서 가운데-땅을 정복해 나아가신 월풍 님. 제가 기억하기로는 반지-운반자들이 비운의 산 꼭대기에 도착해서 추적 타일이 뽑혔는데 "눈"이 나왔고 타락 점수가 "11"이 되면서 자유민족이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것 같습니다. 두 승부사의 게임을 지켜보는 저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남부지역 순회방문 도중에 히미끼 님이 월풍 님과의 게임을 자주 얘기하셨는데요. 게임을 잘 하시기도 하고 인상적으로 플레이하신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두 분이 바둑으로 한 판 붙는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사진에서도 보이다시피, 월풍 님 작업실에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월풍 님이 부인을 뵈러 가야 한다고 하셔서 먼저 떠나시고, 히미끼 님과 단 둘이 남은 상황. 잠을 조금이라도 자고 떠나야 할지 아니면 지금 떠나야 할지 고민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떠나야 터미널에서 식사를 마치고 어제 헤어진 동료와 다시 만나 함께 진주로 떠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잠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세. ㅠ)





다음 삼시세겜은 경상남도 진주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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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님들, 어셈블!



전주-광주-여수의 4일짜리 일정을 마치고 경상도로 넘어가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이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저와 (전주 같.놀.가의) 히미끼 님, 그리고 (부산 다락의) 스머프2 님 세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었기 때문이죠. 제가 이 후기를 늦게 올리는 바람에 이미 알 만한 보드게이머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곰팡맨"이라는 분도 부산 일정에 합류했습니다. 곰팡맨 님은 최근에 동영상 룰북을 열심히 올리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만나본 적도 얘길 나눠본 적도 없는 분이라 궁금하긴 했습니다. 어떤 분이길래 촬영과 편집에 엄청난 시간이 드는 노가다 막노동을 하시는 걸까... 하고요.


여수의 한 사우나에서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전날 이곳까지 차로 태워주신 분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터미널까지 걸어가셔도 되요."
라고 하신 걸 진지하게 실행했습니다. ㅎ 이른 아침이고 노자도 아껴야 해서 걸어갔습니다. 멀지 않더라고요. 부산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으려고 하는데 부산에 버스터미널이 두 곳인 겁니다. 하나는 노포이고, 나머지는 사상인데... 내가 가려는 곳이 어디였더라...? 아, 노포였네요!
"부산이요."
표를 받고 뒤로 돌아서는데 창구직원이,
"사상 맞죠?"
"아닌데요?!"
급 당황한 창구직원과 저. 서로 미안하다면서 창구직원이 표를 바꿔주셨습니다.


자고 일어나니까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이 커서 그런지 버스가 터미널 안에서 한참 이동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부산대 역에서 내렸습니다.

화창한 날씨. 그래도 부산이 바닷가라 좀 덜 더운 것 같았는데 그래도 덥긴 더웠습니다. 오전 시간이라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진 않았습니다. 다락 2호점에 갔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다시 1호점으로 갔는데 여기도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 스머프2 님께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누군가가 죽어가는 (?)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스머프 님이신가요? 안녕하세요?"
다락 근처에 있다고 말씀 드리니 어서 오라고 (어서 갔다가 닫혀 있어서 다시 내려왔다고요! ㅋㅋ). 다시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후다다닭 올라갔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으셔서 층계참에 짐을 내려놓고 잠시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다락 던전의 문이 열리면서 스머프 님이 나타났습니다. (인던인듯.)
"아이고! 어서 오이소!"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던전으로 들어갔습니다. ㅎㅎ 안부를 물으며 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많이 피곤해 보이는 스머프 님. 땀냄새가 강하게 나는 안방에 짐을 내려놓고 스머프 님께,
"제가 밥도 먹어야 해서 밖에서 놀다가 올게요."
라며 슬쩍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이소."
"뭘 먹어야 맛있을까요?"
"국밥 드이소."
"2-3시 즈음에 오면 될까요?"
"2시에 오이소."
제가 갑자기 자리를 뜨려고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스머프 님의 건강이 안 좋게 느껴져서였습니다. 여름이라서 땀냄새가 나는 게 당연하긴 한데 유난히 강하게 나는 걸로 보아서 몸이 안 좋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게다가 늦게 주무셔서 (새벽 2시 경에 보드게임 커뮤니티에 후기 글을 올리셨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편하게 더 주무시도록 자리를 비켜 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밖으러 나와서 국밥집을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국밥집이 안 보이기도 하고 날씨도 덥고 해서 밀면을 먹기로 했습니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육수를 마시니까 속까지 시원하더군요.


식사를 마치고 근처 PC방에 들러서 "남부지역 순회방문 시즌2 - 삼시세겜"의 첫 번째 후기 (전주편 1일차)를 올렸습니다. 대충 머리 속에서 그려지시죠? ㅎㅎ 대충 2시간 반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후기를 올리고 나서 다시 다락1호점으로 올라갔습니다. 스머프 님하고 얘기 좀 나누려는 차, 스머프 님이 한 전화를 받습니다.
"예. 예. 거기는 2호점이고요. 1호점으로 오이소."

저는 누가 오나 보다... 했는데. 어떤 여자 분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스머프 님한테 돈 받으러 왔나...? 아냐 아냐, 그러기엔 인상이 너무 순해. 방문판매인가? 그러기엔 말주변이 너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신발을 벗고 들어와서 스머프 님의 안내를 받고 제 근처에 앉는 겁니다. 이 분은 누굴까요...?


"저는 곰팡맨이고요..."
'헐!!'
닉네임만 보고 칙칙한 남자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요. 제가 보드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동영상이나 팟캐스트 같은 거 잘 안 보는 편이라 전혀 몰랐습니다. (사실, 보드라이프 쪽지로 이번 일정에 합류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별 생각없이 남자 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입장하실 때에 Village People의 "Macho Man" 노래에 맞춰서 개드립 좀 칠까 생각했었는데... ㅋ


곰,팡. 곰팡 맨~♬ (곰팡 맨~)


인사를 나누고 나서 무슨 게임을 할까 고민하다가 오후에 스머프 님이 바빠지면 Space Alert 스페이스 얼럿을 못 배우실까봐 스페이스 얼럿을 하자고 말씀을 드렸는데, 스머프 님이 갑자기,
"재미난 게임 하나 해보시렵니꺼~? 이게~ Black Stories 블랙 스토리즈라는 게임인데예~"

이때에 다락 던전에 헬게이트 하나가 열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두 게이머는 이렇게 그 헬게이트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게 Holger Bösch라는 사람이 전세~계의 신기한 이야기를 묶어서 만든 건데예~

피곤에 쩔었던 스머프 님의 두 눈에서 광채가 나더니 눈에서 나오는 빛으로 사람을 살리실 기세. 이 눈빛은 "너희가 이 책을 사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야!"라는 책팔이 모드. (사... 사겠습니다... ㅠㅠ)



"이게~ 수~평적 추론을 사용해서 문제를 푸는 게임인데예~"

그리고 첫 번째 문제가 툭하니 나왔습니다.
'통화 중 신호음 - 한 여자가 너무 오랫동안 전화를 해서 죽었다. 그녀는 왜 죽었을까?'



아마도 정말 친한 친구가 이런 문제를 내면서 제가 맞춰보라고 하면
"야이, ㅅㅂ! 너 장난치냐?!"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매우 신사적인 게이머이기 때문에 스머프 님 앞에서 욕은 하지 않고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끙.) 막막해서 아무말 못하자 스머프 님이 예를 들어주시면서 질문을 유도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평소에 문제를 해결할 때와 반대로 접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난해하고 어렵습니다. 보통은 큰 그림을 놓고 범위를 점점 좁히면서 작은 무언가를 찾는데, 블랙 스토리즈에서는 반대로 작은 그림을 놓고 그 주위에 퍼즐을 하나씩 붙여가면서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프로파일러들이 하듯이요. 곰팡맨 님과 어색하지만 자잘하게 대화를 하면서 스머프 님께 질문을 하나둘씩 던졌습니다. 어떤 질문의 끝에 스머프 님은,
"Maybe yes, maybe no~" (아... 스머프 님 때릴 뻔...)



이게 무슨 사람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대답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중에 요령이 생기자 이런 대답을 이끌어 낸 질문은 쓰잘머리 없다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한 시간 가까이 걸려서 곰팡맨 님이 정답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결국 스머프 님이 두 번째 문제를 내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ㅠㅠ


한쪽에서 마작을 치고 있던 염색을 한 키 큰 청년 (그냥 금발총각이라 부르겠습니다. ㅎ) 이 분까지 4명이서 드디어 스페이스 얼럿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Vlaada Chvátil 블라다 크바틸 씨를 천재 디자이너라고 여기게 게 스페이스 얼럿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크바틸의 최고 작품을 Through the Ages: A Story of Civilization 쓰루 디 에이지스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런 흔하디 흔한 (?) 문명 게임은 다른 디자이너들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혼합체는 이런 천재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죠. 간단하게 설명을 마치고 (스페이스 얼럿은 단계별로 규칙이 추가되기 때문에 설명을 길게 할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시험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이라 저를 제외한 나머지 세 분이 조금 당황하신 것 같았지만 결국 클리어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시험 비행을 실패한 전주 같.놀.가 사람들은... 이.상.하자...;;;)

한 게임만 하기 아쉬워서 컴퓨터 관리와 로켓 발사 규칙이 추가되는 시뮬레이션 임무를 시도했습니다. 무난하게 흘러가서 사람들이 방심하기 시작, 3번째 단계에 카드를 거의 놓지 않고 끝내 버렸습니다. 해결 단계에서 보니 외부 위협 하나를 없애지 못해서 백색 구역이 완파되면서 미션 실패... ㅠ

몇 게임 더 하길 바랬으나 금발총각의 마음은 마작에 있었으므로 고이 보내드렸습니다.


몸이 힘드신 스머프 님은 잠깐 쉬시고 배가 고프셨던 곰팡맨 님은 잠시 외출을 하셨습니다. 맛난 젤리와 빵을 사오신 곰팡맨 님. 6시가 가까운 시각에 며칠 전에 봤던 반가운 분이 들어왔습니다. 히미끼 님. 서로 인사를 나누려던 차에 갑자기 다락 던전에 두 번째 헬게이트가 열리더니 히미끼 님도 블랙 스토리즈에 투입... ㅠ


헉헉헉. 헬게이트에서 빠져 나오자, The Resistance: Avalon 레지스탕스: 아발론을 손에 든 스머프 님의 도발.
"저 믿고 이거 한 번만 해 보이소.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 드리겠심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던 스머프 님. 결국 스페이스 얼럿과 언.집.배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리는 세 번째 헬게이트에 들어갔습니다.

도대체 다락의 아발론엔 뭐가 있길래...? 평소에 모임에서 할 때와 다르게 뭔가 시작부터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 (뭐야, 이거 무서워... ㅎㄷㄷ)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때에도 얼굴 앞에 오른손 주먹을 쥐고 엄지를 올리라는...;;; 스머프 님이 악의 편들이 서로 정체를 확인하고 나머지 능력자들이 능력을 사용할 시간을 카운트 하는데, 이건 마치 수능시험장 분위기... (엄마, 나 밀려 썼어... ㅠㅠ)

첫 번째 원정에 대한 투표를 마치고 딱지를 다시 뒤집으려는 순간,


패 건들지마, 손목아지 날아가붕께!

딱지를 그대로 두라는 스머프 님과 금발총각. (무서워... 여기 괜히 왔나 봐. 애들 학원비나 벌려고 왔는데... ㅠㅠ) 진지하게 사람들의 투표를 분석하면서 뭔가를 찾아내려는 다락 사람들. 어느 새 아발론은 한 시간 넘게 진행되었고. 끝이 가까워올수록 예민해지고 고성이 오가는 토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뭔가 집중하게 만드는 상황. (제가 퍼시벌인데 옆에 계신 곰팡맨 님은 저보고 자꾸 모드레드라고 하고) 초반부터 자신이 퍼시벌이라며 나선 스머프 님, 그리고 개입을 많이 해서 멀린인 거 거의 다 드러난 금발총각. 후반에 스머프 님에게 버림받아 선의 편과 함께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눈 앞에서 놓친

매우 빡친 학생. 마지막 5번째 원정의 결과가 나오자 승리의 기쁨이나 패배의 한숨보다 게임이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후회하지 않게 해주신다는 스머프 님의 말씀에 아발론의 최고점 플레이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게임이든 열심히 연구하고 많이 플레이하면 다른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한 그 게임만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죠. (제가 반지의 전쟁에서 느끼는 것 같은 걸요.) 그러나 이 날 다락에서 아발론을 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좀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내가 플레이어였을까, 아니면 미플이었을까?'라는 의문이요. 직접적으로 말하면 '우리와 아발론을 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아발론을 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했을까?'였습니다. 숙련된 플레이어들이 집중을 하고 게임을 이끌어 가면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토를 달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가게 됩니다. (낮은) 우리 수준의 플레이를 하려고 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렇게 해야 이긴다.'라는 공식이 우리 앞을 막아서게 되거든요.

조금 다른 예이긴 한데, 모임 활동을 하다 보면 다른 상황에서 '플레이어의 미플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커플이나 부부가 함께 모임에 오면 게임 밖의 상황을 게임 안으로까지 끌어들여서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상호작용을 끊어버리는 것이죠. '내 애인/배우자를 공격할 수 없다.'의 논리로요. 두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조연이 되어줘야 하는 상황. 모든 커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입문자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알던 외국인 커플은 게임할 때에 아무렇지 않게 독립적으로 행동해서 '얘네 커플 맞아?'라며 웃었던 기억이 있네요. (외국인들과 게임하고 계신 분들은 이런 경우가 더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다락에서의 아발론은 좋은 경험은 했지만 (손발이 묶인 채로 구경만 한 것 같아서) 좋은 게임을 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어요. ㅎㅎ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 메뉴를 정해야 하는데, 역시나 우리에겐 선택장애. 주사위를 굴려서 돼지국밥으로 정했으나 어쩌다 보니 도착한 곳은 고깃집. (고기는 언제나 옳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락으로 돌아와서 선택한 게임은 Betrayal at House on the Hill 언덕 위 집에서의 배신. 전주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서 새벽 늦게까지 했던 게임입니다. seers 님이 좋아할 만한 게임이었는데 아침 출근 때문에 먼저 잠드시고 남은 네 명이 플레이 했습니다. 곰팡맨이라는 남자 초딩이 알고 보니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폭발광이어서 친구들 몸에 폭탄을 설치한 시나리오였는데요.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설치된 폭탄을 해체하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만 빠르고 머리 나쁜 제 캐릭터는 첫 턴에 폭탄을 잘못 건드렸다가 펑! 나머지 사람들은 초딩이 하고 있는 작업을 그냥 두었다가 게임이 끝나버렸죠.


시간이 남아서 Dr. Jekyll & Mr. Hyde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했는데, 스머프 님 팀에게 탈탈 털렸습니다.


스머프 님과 히미끼 님이 술이 부족하신 것 같아서 (그리고 더워서) 모두 술과 안주를 사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작년에도 이 맘 때에 스머프 님이 맥주 먹여서 아침에 힘들었는데, 또 그때와 똑같은 루트로 똑같은 마트에 갔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히미끼 님에게 물어보니 히미끼 님 때에도 똑같았다고. ㅎㄷㄷ (부산 다락에서의 배신)

유부초밥과 김밥도 더 사서 야식 겸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보드게임계의 두 명의 업자와 두 명의 덕자 (덕질하는 사람?)가 모인 역사적인 밤에 많은 얘기가 오갔던 것 같습니다. 룰북은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는 고지식한 캡틴 미들-어슭, 하이-테크 동영상 룰북으로 무장한 곰팡이맨, 게임할 때에 뒤켠에 빠져 있지만 누구보다 게임을 잘 하는 블랙 히미끼, 트루아만 보면 크고 아름답게 (?) 변신하는 스머크 (마크 러팔러가 아니라 스머프 책팔러)...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상대는 전투 굴림을 최대 3개까지만 할 수 있죠...) 스머프 님이 먼저 쓰러집니다. 그리고 곰팡맨 님과 히미끼 님도 쓰러지고... 부산 다락에서 인류의 마지막 후기를 남기려던 저도 결국 쓰러지고... 그리고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FIN.


부산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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