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 맥스: 분노의 게임



(부르릉! 부우~와~앙! 털털털턻)

My name is Max. 내 이름은 맥스.
난 한때 게이머였다. 도장깨기를 추구하는 로드 게이머. 내 머리 속으로 파고드는 목소리들.
"도와줘요, 맥스! 티츄 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어디 있어요, 맥스! 도망가지 마요!"

...

"우리는 여수의 겜보이!
"겜보이!!"
"잠을 안 자고 노는 겜보이!"
"겜보이!!"
"오늘 우리는 천사다방으로 간다!"
"천사다방!!"
"오늘 우리는 미니빌과 아발론을 수송한다!"
"미니빌!! 아발론!!"



"겜못한 님께 환호하라!"
"겜못한!!"

"물이 곧 나올 거예요..." 농사에 쓸 물, 이름하야 Agri-Cola. 아그리-콜라!!

...

"반역이야! 퓨리오사가 겜못한의 물건을 가져갔어."
"어떤 거?"
"그의 소중한... 스플렌더."



...



"겜못한! 겜못한!"
(힐끔)
"날 보셨어!" 날 쳐다보셨어!"
"네 손패 뒷면을 보신 거야."
"날 똑바로 보셨어!"
"카드 장수를 세신 거야."
"아냐, 난 1등으로 나가게 될 거야! 티~~이~~츄~~우~~!!"

...



작년에 벤더 님과 여수광양순천 모임 분들 덕분에 노예 23시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그곳. (링크: 뜻밖의 방문 제2부 - 전라남도 여수편 (05/31-06/01)) 이른 아침에 광주버스터미널에서 여수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에서 기절 (?) 중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더 자려다가 여수 EXPO까지 갈 것 같은 불안감에 깨어있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사님께 여쭤보니 잘 모르겠으니 일단 터미널까지 가보라고... ㅠㅠ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제일병원, 내리세요~"
'앗, 저곳은 천사다방 근처 병원이닷!'
일년 전 기억을 불러오는 데에 성공한 저는 후다닥 내렸습니다. 사거리를 향해 걷자 맞은편에 불꺼진 천사다방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카페 불이 꺼져서 조금 불안했지만 카페가 이른 아침에 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버스 타기 전에 가볍게 샌드위치를 먹었지만 눈치 없는 이놈의 배가 또 고파 오자 아침을 먹으러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이어서 문을 연 곳이 얼마 없었고 게다가 휴가를 떠난 가게도 꽤 많아서 눈 앞에 보이는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왠지 이유없이 잔치국수와 매운고추김밥이 먹고 싶어서 이걸로 아침 해결. 아침을 먹고 나서 폐묘 님께 전화를 걸어 두 번만에 통화 성공! (주무시고 계셨다고... 아침 일찍 죄송했습니다. ^^;) 9시 즈음 문을 연 천사다방에 들어가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테이블에 엎드려 잤습니다. ㅠ

30여 분이 지나자 Tzolk'in: The Mayan Calendar 촐킨: 마야의 달력Alchemists 알케미스츠를 가져오신 폐묘 님. 부모님의 눈을 피해 누님 집에 둔 이 게임들을 가져오시느라 늦으셨다는군요. (눈에 땀이... ㅠ) 아직 결혼 전이시라 여자친구 분과 게임을 하셔서 2인 되는 게임을 주로 하신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결혼 전에 게임을 많이 구입하시길...;;;

촐킨을 할 줄 아는 외지인을 만나서 기쁘셨는지 그 자리에서 밀봉인 그 게임을 바로 뜯으셨습니다. 보드를 보니 번들번들 1쇄 보드! 배송 중에 잘 찢어지기로 소문난 1쇄 보드가 멀쩡한...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딱 한쪽 보드만 찢어진 상태. 퍼블리셔에 이메일을 보내면 2쇄용 무광 보드 1개를 보내준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귀찮으시다는 말씀을... 아이고야~ ㅎㅎ 타일 펀칭하고 나니 왠지 촐킨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불과 며칠 전에 전주에서 촐킨으로 영혼을 탈곡당한 이후로 무서워짐.) 2인으로 세팅을 하고 설명을 하려더 참에 또 한 분이 오셔서 3인 게임으로 바꾸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욕구와 열정이 섞이면 무섭습니다. 이 분들 촐킨 처음하시는데 1쿼터만에 5가족을 만드는... ㅎㄷㄷ 제가 이틀 전에 전주 갓.촐.가 (a.k.a.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훈련하고 와서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했습니다. 기념물 2개가 아니었다면... 휴 =3



이날은 메인 게임은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이었습니다. 폐묘 님이 촐킨 이외에 Alchemists 알케미스츠 (한국어판 제목: 연금술 아카데미)를 가져오셨으나 반지의 전쟁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천출력 맵을 펼치고 피규어 박스에서 꺼낸 피규어들을 맵 위에 놓자 신세계를 본 두 분... (폐묘 님, 이거 2인용 됩니다! ㅎㅎㅎ) 세팅을 마치고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1층 문으로 나가자 반가운 얼굴이! 작년 노예 23시간의 노예주인1 역을 하신 그 분. (이분은 억양이 강해서 딱 목소리만 들어도 기억이 납니다. ㅎㅎ)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같이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작년에 한 게임 해보신 노예주인1 님은 설명을 들으셔야 하는 두 분께 까불까불 자랑을 하시면서 흥을 돋우셨습니다. (요런 역할 참 좋아합니다. ㅎㅎ)

노예주인1 님이 자유민족을 하시고 남은 두 분이 암흑군단을 하시기로 하셨는데, 폐묘 님이 양보를 하시며 구경만 하셨습니다. 확실히 한 번이라도 더 해보신 분의 플레이가 더 세련됩니다. 반지-운반자들을 꾸역꾸역 모르도르를 향해 밀어넣는 한편, 기회가 되면 과감하게 모아서 돌파하는 센쑤! 노예주인1 님이 곤도르 병력을 돌리고~ 돌리고~♬ 잘 살려서 미나스 모르굴과 움바르를 점령하면서 자유민족의 군사적 승리로 게임이 끝났습니다.



두 번째 게임은 노예주인1 님께 일부러 암흑군단으로 해보시라고 권했습니다. 한쪽에서 오랜시간 구경만 한 폐묘 님과 짝을 이루어서 플레이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전 게임에서 암흑군단을 하신 분은 성향이 혼자 하는 걸 좋아하신 것 같았습니다.) 암흑군단의 빅 재미를 느끼신 노예주인1 님은 전화기에 불이 난 상황에서도 한 턴만 더를 계속 외치시다가 (이거 문명할 때 하는 말 아니었나요? ㅎㅎ) 결국 집으로 리콜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혼자 암흑군단을 이끌어가야 하는 폐묘 님도 얼마 플레이하시다가 집으로 "리~~콜~~!!"을 당하셔서... (여수 아비터의 난) 결국 반지-운반자들이 거의 이긴 경기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ㅠㅠ 저는 평소보다 더 많은 행동 주사위를 추적 칸에 놓으면서 반지-운반자들을 늦췄습니다. 드디어 모르도르 트랙. 추적 칸에 행동 주사위를 최대한 꽉꽉 채우는 한편 어떻게 해서라도 원정대 타락 수치를 올리기 위해서 인물 사건 카드를 뽑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마지막 칸에서 눈 타일이 뽑혔는데, 이때에 추적 칸에 주사위가 6개가 있어서 한 방에 6 데미지!! 반지-운반자의 타락으로 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노예주인1 님이 거의 망한 게임 (?)을 폐묘 님께 떠 넘기실 때에
"야, 이거 결과 꼭 알려줘!"
라고 말씀하시며 떠나셔서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기라는 건가 싶었는데 제가 뒤집었습니다!


기억해줘! 기억할게! 발할라!


두 분이 떠나고 둘만 덩그러니 남은 상황. 준비해 간 게임도 별로 없고, 새로 게임을 배우기도 애매한 상황이어서 결국
"반지나 한 게임 더 하시죠?"


했던 진영을 그대로 한 게임 더 했는데. 아주 빨리 모르도르로 달려간 반지-운반자들. 결국 65분 만에 반지를 파괴하며 승리하신 여수 분. (헐) 내가 사우론의 입까지 뽑았는데... ㅠㅠ



너무 빨리 끝났으니 한 게임 더;;; 진영을 바꿔서 제가 자유민족으로 했습니다. 초반에 병력이 좀 잘 모여서 반지 파괴보다 군사로 이기는 방법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곤도르 군대로 모란논을 점령하고 로한 군대로 돌 굴두르를 점령하면서 군사적으로 승리했던 것 같습니다. 이분은 반지의 전쟁을 처음 배운 날, 하루에 4게임을 한 대기록을... (여수도 범상치 않은 곳입니다. 허허)


이때가 아마 거의 12시가 다 된 시각이었는데, 차로 터미널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한 사우나까지 태워다 주셨습니다. (터미널에 더 가까웠던 곳은 문을 닫았더군요.)

여수순천광양 모임의 중심에 계신 벤더 님이 갑작스러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날 나오시지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D모 보드게임 커뮤니티 중고장터에 가면 쉽게 뵐 수 있습...;;) 여수 모임 방문기를 마칩니다.




다음 삼시세겜은 부산광역시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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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다

목욕탕에서 씻고 아마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것 같았습니다. 제 짐작으로 전주고속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버스로 바꿔타고 또 광주에서 모임 장소까지 가려면 약 3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붉어진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더웠고 가방과 주머니를 메고 나다니기에는 절대 좋은 날씨는 아니었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 30분 정도 기다리면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대합실 의자에 앉았습니다. 더위와 잠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말이죠. 어쨌거나 버스를 탔고 그 다음은 기억나질 않습니다.

광주는 저의 연고지가 아니어서 이번에 처음으로 광주 땅을 밟아봤습니다. 대도시답게 크고 번쩍번쩍한 터미널 안에서 제 눈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모임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아서 일단 밖으로, 그리고 빨리 지하철 역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터미널 바깥도 혼잡했습니다. 한낮에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부족한 수면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죠. 어지간하면 짐이 많아도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겠는데 저도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터미널 뒷편으로 돌아가서 무작정 택시를 붙잡고 탔습니다. 택시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씀 드렸는데 잘 못알아 들으셨는지,
"으디요이?"
라며 구수한 전남사투리로 물어보셨습니다. 기사님이 차 온도계를 보여주시면서 밖의 온도가 37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의 거리는 약 1.2km. 만약 걸어서 갔다면...?


오후 2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상무 역 근처에서 내렸습니다. 주변을 훑어보니 건너편에 새로 지은 것 같은 건물 9층에 모임 장소가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이미 동호회 사람들로 보이는 몇몇 분들이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원들 구성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있던 그룹에는 숙련자보다 신입회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까지 5명이었는데 할 게임을 고르지 못하자 게임 진열장을 직접 보면서 제가 몇 가지를 꼽아 드렸습니다. Ra 라 , Modern Art 모던 아트, Notre Dame 노트르 담 등을요. 아마도 익숙하게 들리는 제목 때문인지 몰라도 노트르 담이 선택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신입회원들이 "라"를 하는 게 더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전날 전주 같.놀.가의 어린 회원들에게 설명해주고 꾹꾹 밟히고 나서 이날 노트르 담 할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운명은 참 얄궂네요. 이날도 이 게임을 설명할 사람이 저 말고 없어서 제가 설명을 맡았습니다. 평소에 설명하거나 게임할 때에 개드립을 참 많이 던지는데, 이날은 제가 많이 피곤했는지 제 설명이 좀 딱딱했던 것 같습니다.


제 왼쪽에 계셨던 분은 순창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제가 드린 초반에 점수 욕심 내면 전염병으로 탈탈 털린다는 조언을 한쪽으로 흘리셔서 중반부터 영향력 큐브와 승점 토큰을 토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고용 카드의 능력을 잘 맞춰갔고 성당 보너스 점수를 챙겨 먹었습니다. 중반부터 공원에 모인 큐브 덕에 점수를 얻을 때마다 추가 승점 토큰도 모았습니다. C세트에서 성당에 못 들어가서 살짝 꼬였지만 공원으로 꾸준히 모은 추가 승점 덕분에 무난하게 이겼죠.


그 다음에 8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The Resistance: Avalon 레지스탕스: 아발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모임에서는 사람들이 많을 때에 아발론보다는 7 Wonders 7 원더스를 하는 편입니다. 게이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누군가를 이유없이 몰아가는 것보다 각자 합리적인 판단으로 동시에 진행하는 게 훨씬 더 좋다고 판단해서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보드리아 모임 사람들 다수의 선택에 의해 레지스탕스: 아발론이 선택이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제 왼쪽 두 사람까지 연속으로 3사람이 악의 편이었습니다. 한 남자 회원이 진행을 주도하며 첫 번째 원정에서 성공을 이끕니다. (첫 번째 원정 도중에 제 왼쪽 분이 성공을 냈는데 선의 편 중 누군가가 실수로 실패를 내는 바람에 제 왼쪽 분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얘기를 꺼내면서 반정도 커밍아웃을 한 상태였습니다. 저와 다른 악의 편인 여자 회원 (구분을 위해 '흰옷여성'이라 부르겠습니다)이 그냥 진행하자고 해서 덮고 넘어갔습니다.) 두 번째 원정에는 제가 포함이 됐는데 실패가 나오면서 저를 의심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A, B, C)일 때에는 성공이었고, (A, B, C, D)일 때 실패였으니까 D가 악의 편이다"는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논리적인 오류입니다. A, B, C 모두가 선의 편이라는 전제조건 하에 D가 악의 편이라는 게 성립되는 것이죠. (제가 악인 것은 맞았지만) 저를 악의 편으로 의심한다는 분께 이 말로써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세 번째 원정을 앞두고 제가 리더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원정 후에 저를 의심하던 분이 리더를 다음으로 넘겨야 한다며 강하게 어필을 했고, 저는 역으로 멀린인지 아닌지 시험하기 위해서 외려 칼자루를 그 분께 넘겼습니다.
"제가 아직 파악이 덜 되어서 그런데, 원정에 참가시키고 싶은 분을 찍어주세요. 제가 참고해서 정할게요."
8명 중에서 선의 편 5명을 정확하게 찍는다면 멀린인 사람을 찾아내 암살할 확률이 올라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실패를 이끌어낸 그 분을 악의 편으로 몰아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분은 정확하게 악의 편 3명을 뺀 나머지 사람들을 지목했고, 저는 기꺼이 그 인원으로 원정을 꾸리고 성공을 얻어냈습니다. 저는 멀린으로 확실시되는 그 분께 자신있게
"저 약속지켰습니다."
라고 말하며 다른 분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냈죠. 그 때문에 네 번째 원정에 제가 포함되었고 악의 편 2명이 포함된 원정을 실패로 만듭니다. 5번째 원정에서 제가 포함되는 바람에 원정이 실패가 되었고, 결국 악의 편이 승리했습니다. (멀린이었던 분들 확실하게 알고 있어서 멀린 암살로 역전승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레지스탕스: 아발론 이후에 남은 4명이서 할 게임을 고르기 위해서 노트르 담을 같이 했던 여자 분 (검은옷 여성)께 선택권을 드렸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Puerto Rico 푸에르토 리코를 선택하시더군요. (다른 그룹에서 게임을 하시려던 흰옷 여성분이 계속 "푸에르토 리코"를 입에 달고 계셨는데, 이 모임을 우연히 다녀간 제 지인으로부터 농담삼아 그 분과의 푸에르토 리코를 피하라는 권고를 들은 상태라...) 신입회원으로 보이는 분 두 분은 아예 모르시고, 기존회원인 것 같은 분은 예전에 해봤고 영어판이라 잘 모르겠다고 하셔서 제가 또 설명을 했습니다. 노트르 담에서 제가 드린 팁을 흘리신 순창에서 오신 남자 분은 제가 드린 팁을 또 흘리시고 '그냥 해볼게요' 플레이를 했습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맞는 것이긴 한데, 나비효과를 크게 일으키는 게임에서는 누군가의 플레이에 의해서 다른 누군가가 반사이익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게 좀 걱정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푸에르토 리코였으니까요. 게임이 끝나고 점수를 확인해 보니 1점차로 겨우 승리했습니다. 이 게임을 고르신 여자 분이 그날 처음했는데 2등을 하셔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그 여자 분께 게임을 고른 이유를 여쭤보니 그냥 박스가 예뻐서라고... 아주 잘 고르셨습니다. ㅎㅎ)



제가 가져간 게임들 중에서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이 살짝 언급이 되었습니다만 흰옷여성이 광주에서 대여섯 분이 이미 할줄 안다는 말씀을 하셔서 할 게임 목록에서 제거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반지의 전쟁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른 게임을 보다가 Dungeon Petz 던전 페츠를 진행했습니다. 딱히 기억나는 상황이 없어서 패스.


잠이 너무 부족해서 제 심신에서 피로가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Dead of Winter: A Crossroads Game 데드 오브 윈터: 갈림길 게임을 꺼내서 셋업하고 계셨는데, 요새 화제의 게임이라 어지간하면 그냥 하고 싶었지만 이미 제가 좀비가 된 것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어서 쉬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위를 보니 모임에 오신 분들 중에서 다수가 빠져나간 상태였고, 저도 배가 고파서 대학생 한 분과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상무 역 주변에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어서 꽤 돌아다녔는데, 아울렛 건물 안에 있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식사 도중에 반지의 전쟁 얘기가 살짝 나왔는데, 시간도 꽤 늦었고 보드리아 모임에서 더 이상 배우려는 분이 없어서 제 마음을 살짝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회원이 설명만이라도 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식사를 마치고 올라가서 설명해 드리겠다고 했죠.



모임 장소에는 이제 대여섯 회원 분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천출력 맵을 꺼내서 피규어와 카운터들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반지의 전쟁을 하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제가 반지의 전쟁을 설명하거나 진행하면서 졸거나 정신줄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제 기억으로, 설명 중간중간에 mute 뮤트 구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몇십 초나 몇 분 정도 설명이 끊기다가 제가 정신을 다시 차리고 계속 이어서 설명한 게 여러 번이었던 것 같습니다. 설명을 마치자 밤 11시 정도 되었습니다. 모임 장소가 11시 30분에 마감한다는 것 같아서 빠르게 30분 정도 진행하고 마치기로 했죠.

이날 광주 보드리아에서 가장 좋으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이 분과의 게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게임의 감을 빨리 잡으셔서 숙련자처럼 불필요한 장고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가게 사장님의 배려로 50분 가량 진행하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중단했는데 계속했다면 30-40분 내에 게임이 끝날 것 같았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반지의 전쟁보다 예정보다 늦게 귀가하게 된 그 회원 분께 미안했지만 (끝까지 못했지만) 반지의 전쟁이 재미있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모임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 또 모임 날의 여건에 따라 제가 모임의 일부분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처음으로 방문한 광주 여정에 대해, 제 개인적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제가 준비해 간 게임을 마음껏 설명할 수도 없었음을 제쳐 두고, 모임 회원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도 별로 없었고 식사도 같이 못했기 때문인데요. 제가 피곤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는데, 다들 여유 없이 좀 뭔가에 좇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게임과 달리, 우리가 보드게임을 하면서 좋은 느낌을 갖는 것은 내가 얼굴을 마주하는 상대를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순히 '상대가 입장했습니다',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게임이 종료됐습니다', '상대가 퇴장했습니다'의 텍스트가 모니터에 나오고 신호에 따라 플레이어들이 반응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보기도 하고 같이 식사 (+ 술)을 권하며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는 게 사람이 모인 '모임'의 본 가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순창이나 목포 등 꽤 먼 곳에서 온 사람들에게 '왜 광주까지 왔느냐'고 질문을 하자 돌아오는 답이 "모임이 없어서..."였습니다. 모임의 경쟁력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이 아니라, 모임 외적인 지리적 이점 때문이라면 나중에 생길 수도 있는 다른 모임에 대해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모임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덧붙이는 말

8월 10일 보드라이프에 본 글을 게시한 후에 광주 모임 분들이 댓글과 쪽지를 통해서 광주 모임의 사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이동 시간이 꽤 걸리는 전남 분들도 광주로 와서 모임 활동을 하고 계시고, 같은 광주 지역이더라도 상무 역 주변까지의 교통이 불편해서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제한된 모임 시간 동안에 최대한 많은 게임을 하고 싶은 회원들이 식사나 다른 수다로 인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을 하지 않다 보니 현재 광주 모임만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광주 모임의 주변 여건이 개선되어서 앞으로 광주 모임 분들이 더 편한 환경에서 모임 활동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삼시세겜은 전라남도 여수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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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촐.가

잠결에 어린이의 소란스러운 말소리와 발소리를 들었습니다. 신경이 쓰여서 일어나 보니, 여기는 같.놀.가. 새벽에 남은 사람들은 이곳에 쓰려졌던 것입니다. 눈을 떴을 때에 카이 님과 히미끼 님은 안 계셨고 (여기서 탈출해야 해?!) 저까지 4명이 남았습니다. 저는 잠이 깼는데 다른 분들은 아직 주무시고 계서서 저는 혼자 누워서 빈둥빈둥거렸죠. 저는 게임이 하고 싶었습니다. (자는 시간이 아깝단 말이에요~)


심심해서 같.놀.가 벽을 보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게 뭐지?




같.놀.다는 평범한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ㅠ 게임을 하나 할 때마다 각서를 쓰는 건가...;;; (어머니, 저의 신장 하나가 곧 없어질 것 같습니다. 엉엉) 전주마얀스라든지 전주촐킨스라든지, 후로게임단의 포스... ㅎㄷㄷ


멀리 과테말라로부터 영험한 마야의 기를 받기 위해, 벽면에 촐킨 보드까지 부착한 같.놀.가. 이제부터 갓god이촐킨하다가게 (이름하야 Play with God)으로 불러야 할 듯;;; 어머, 여기 무서워;;; ㅠ (이때 여길 탈출했어야 했습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남은 분들이 일어나서 셋이서 Notre Dame 노트르 담을 하기로 했는데 설명 도중에 히미끼 님이 오셔서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갔죠. 인혁 님이 콩나물국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그리로 갔습니다. 따로 나오는 날계란 (오옷, 계란이 두 개!)에 뜨거운 국물을 넣고 살짝 익혀먹었습니다. 호로록~



식사 후에 잠시 마트에 들러서 먹을거리, 마실거리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는 히미끼 님을 제외한 3명이 게임을 하기로 했는데요. (아싸! 도장깰 찬~스!) 제가 덥썩 Notre Dame 노트르 담을 선택했습니다. (이정도면 가능하다.) 설명해 주고 발라 먹기 기술을 시전하였습니다. 인혁 님은 완전 처음이고, 다른 한 분은 해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는군요. 후후훗


그러나... 갓.촐.가의 사람들은 어려도 평범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오른쪽에서 공원이 넘어오지 않고 계속 cut! 어느새 제 왼쪽 분은 공원에 큐브 6개를 놓고 점수를 얻을 때마다 +3점을 추가로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의 영혼은 탈탈 털렸습니다. ㅠㅠ




저는 신과 인간의 클라스 격차를 확인하기 위해서 촐킨 1:1을 신청했습니다. 먼저 히미끼 님. 거의 40점 차로 패배... ㅎㄷㄷ 그 다음에 갓.촐.가의 추천을 받은 인혁 님과의 게임. 역시 30여 점 차로 패배... ㅠㅠ 사진은 첨부하지 않겠습니다. 엉엉


그리고 나서 전주에 있다가 광주로 가신 한 분이 반지의 전쟁을 배우러 오셨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기본판만 하려고 했는데, 그 분께서 확장도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 가운데-땅의 귀인들도 넣어서 했습니다. 배우는 게 목적이라면 자유민족으로 플레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 분께 자유민족을 추천했습니다. (아, 얼마만에 확장을 하는 것인가!)


저는 시작부터 사루만을 뽑고, 고스모그를 뽑고 다수의 행동 주사위로 상대를 압박했습니다. 자유민족은 열심히 맞섰지만 암흑군단 군대의 기세는 매서웠습니다. 모르도르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던 프로도는 전혀 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원정대의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원정대에는 골룸만이 남아 있었죠. 움바르에서 떠난 드랍쉽은 돌 암로스에 코끼리 부대를 떨어뜨려 그곳을 점령하고 다시 펠라르기르를 향해 돌아나오고 있었습니다. 미나스 티리스에서 여러 동료들과 자유민족 부대들이 사우론과 남부인&동부인 군대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로한도 거의 다 밀리고, 일찍부터 북동부를 노리고 있던 암흑군단 군대들은 데일과 에레보르, 우들랜드 렐름을 하나씩 점령해갔습니다. 결국 프로도는 우들랜드 렐름 근처 어딘가에서 놀다가 가운데-땅이 사우론에게 점령당하며 멸망해습니다. 120분만에 빠르게 끝낸 게임. (이것도 도장깨기로 인정해 주나요?)



저와 반지를 하신 분은 9시 즈음에 다시 광주로 급히 떠나시고 (패배의 쓰라림 때문이 아니라 원래 이 시간에 떠나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저의 또 다른 게임을 기다렸습니다. 이거슨 유령의 집 테마의 협력 게임, Betrayal at House on the Hill 언덕 위 집에서의 배신. (링크: 언덕 위 집에서의 배신) 많은 사람들이 "언덕의 위 집의 배신자"라고 알고 있는데, 원제를 그대로 해석하면 배신자가 아니라 "배신"이죠. 반응이 어떨지 몰라서 그냥 한 게임만 가볍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한 분은 알고 보니 우로보로스 뱀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집을 조여오는 커다란 쌍두뱀에 맞서서 무언가를 해야 했습니다. 뱀이 여유롭게 집 안을 훑으며 우리를 추격하는 사이에 작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피부병에 걸려서 털이 빠진 더러운 개를 가진 여자 분이 그 개를 보내서 멀리있던 배신자의 소중한 무언가 (?)를 물어오게 한 것입니다! 방심한 우로보로스는 그것 때문에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신기방기한 게임을 처음 접한 전주 분들은 한 게임 더 하자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에서 한 분은 알고 보니 식인 취향을 가진 미식가였습니다! 집에는 배신자의 부하들도 있었고, 식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잡아놓은 선량한 사람들도 있었죠. 초반에 아이템이 숨겨져 있는 지하금고가 발견되자 탐험가들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어머, 이건 꼭 먹어야 해!) 하지만 예배당에 있다가 지나가던 한 초딩이 쉽게 금고 문을 따고 아이템 2개를 획득합니다. ㅋㅋㅋ


배신자가 지하에 있었는데, 아직 지하와 지상층이 연결된 통로를 발견하지 못해서 일단 배신자는 지하에 묶이게 됩니다. 사실은 아주 짧은 순간에 지하에 있던 할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서 도망쳐 왔었죠.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배신자들의 부하들을 때려잡았습니다. 지하에서 폭주한 배신자는 닥치는 대로 지하를 탐험하며 아이템으로 무장하기 시작합니다. (역시 템빨!) 자신이 없는 영웅들은 서로 지하로 내려가라며 이거 맨덤의 던전 삘인데;;; 하지만 하늘은 우리를 도왔습니다. 초딩이 술래잡기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또 다른 금고를 얘기했고, 그 금고를 열자 리볼버가 나왔습니다. 또한 이 초딩은 탐험 도중에 창도 발견했습니다. 이 착한 초딩은 몸이 약한 할배께 리볼버를 양보하자 그들의 눈 앞에는 지상층으로 올라온 배신자가 서 있었습니다. ㅎㄷㄷ 할배와 초딩은 총과 창으로 결국 배신자를 물리쳤습니다. 중고로운 평화나라...



언.집.배가 끝나자 가벼운 파티 게임을 하자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크바틸의 그림 그리기 게임. (링크: Pictomania 픽토매니아) 우리는 크바틸이 행여나 끼니를 거를까, 그의 게임을 구입하는 격조 높은 후원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이거슨 빠心) 점점 난해한 문제가 나오고 이것은 그냥 말로 설명해도 구분하기 어려운 단어를 그림으로 그리라니;;;




픽토매니아가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눕기 시작하고, 서로 게임은 하고 싶은데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게임을 툭툭 던지다가 결국 Tichu 티츄가 선택되었습니다. 아... 용봉개새...;;; (링크: 티츄) 이것도 탈탈 털려서 설명은 생략... (하지 말고 잠을 잤어야 했어... ㅠ)


어느새 아침 7시... (뭐?!) 슬슬 배가 고파서 청년몰에 있는 보리밥 집으로 향합니다. 히미끼 님은 역시 같.놀.가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히미끼 님은 오후에, 저는 점심 때에 광주광역시에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전주 분들과는 작별을 하고. 저는 씻고 싶어서 남부시장 근처에 있는 목욕탕을 찾았으나... 휴가... ㅠ 하지만 지나가시던 마음 착한 어르신께서

"커튼 집에서 골목으로 꺾어. 좀 가면 세탁소가 나와 거기서 또 꺾어. 그러면 조그만 목욕탕 하나 나와."

이렇게 설명하셨는데 알아들은 저는 선천적으로 길을 잘 찾습니다. 한 방에 목욕탕을 찾아서 간단하게 씻고 1시간 가량 꾸벅꾸벅 졸았답니다.


작년에 이어서 가족처럼 편안하고 즐겁게 맞아주신 전주의 같.놀.가 멤버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나 저 때문에 휴가 날짜를 며칠 당기신 히미끼 님께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삼시세겜은 광주광역시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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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바틸의 아이들

8월을 목전에 둔 여름날, 남부지역 순회방문 두 번째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여정은 지난해보다 날짜도 더 길고 방문할 장소도 더 많아서 저의 체력도 걱정되었지만 각 모임에서 원하는 날짜를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드게이머들에게 "전주의 상징"이 되어버린 "같이놀다가게"를 가장 먼저 방문해 보았습니다. 사실, 원래는 "같.놀.가" 방문 예정이 없었습니다만 그곳의 사장님인 히미끼 님이 저 때문에 휴가를 며칠 당기셨다고 하셨고 히미끼 님이 제게 보내신 쪽지에

"대학생 친구들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적어놓으셔서 마음이 약해졌죠. ㅎ (알고 보니 그들은 저의 도장깨기를 막아낼 전주의 용사들이었던 것입니다... 엉엉엉 ㅠㅠ)


아침 일찍 기차를 타려고 했으나... 마이 갓! 휴가철이어서 기차표가 모두 매진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의 튼튼한 두 다리를 믿고) 전주까지 입석을 탔습니다. 같.놀.가 앞에서 정오에 뵙기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죠.


전주 역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마다 백팩을 매거나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밖으로 무리를 지어 이동했습니다. 열차에서 내리자 느껴지는,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 이번 여정의 고난이 벌써부터 느껴졌습니다.



전주 역에서 버스를 타고 남부시장 근처에서 내렸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내리꽂히는 햇볕. 얼굴에 등에 땀이 계속 흘러내립니다. 드...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같.놀.다의 정신이 반영된 것 같은 그림
왼쪽 여자는 공중에서 주사위를 정확하게 같은 눈금으로 만드는 금손,
가운데 남자는 유흥, 오른쪽 남자는 술병...;;;
보드게임 할 때에는 역시 술이지!

예정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서 배도 살짝 고프고 목도 말라서 같.놀.다 앞에 있는 가게에서 병맥주와 고구마 크로켓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그 가게 사장님께 여쭤봤습니다.
"같.놀.가 사장님 몇 시에 나오세요?"
"어... 보통... 2-3시요?"
'헉스...!'

약속 시간을 12시로 잡았는데, 두세 시 즈음에 나오시는 건 아니겠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

밖에서 앉은 제 테이블에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많이 와 닿았습니다.


여행 - 여행하는 것처럼 생활하고 생활하는 것처럼 여행하자.

대략 12시 45분 즈음이 되자, 히미끼 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역시 뭔가 먹길 잘 했어;;;) 같.놀.다의 정신을 지키시기 위해서 전날 밤에 술을 즐기시고 늦잠을 주무셨다능. 그리고 작년에 일인반닭을 베푸신 닭셰프 님도 오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5분 후에 오실 거라고 하셔서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죠. 그런데 10분이 넘도록 우리 닭셰프 님이 오지 않으시는 겁니다;;; 15분 정도 지나자 온몸에 땀을 흘리시며 그 분이 나타나신 겁니다. (지구 시간으로 몇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볼걸... ㅠㅠ 시공간이 왜곡되어 있는 전주.) 히미끼 님과 결론이 나지 않았던 난제, 점심 메뉴 고르기 (;;;)를 늦게 오신 벌칙으로 닭셰프 님께 떠 넘겼습니다. 그러자 우리 셰프 님은 콩국수를 선택하셨습니다! 오~옷!


남부시장 근처에 있는 진미집은 오래된 콩국수집이라고 합니다. 40년 가까이 된 것 같던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 콩국수는 특이하게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단맛을 싫어하면 꼭 설탕을 빼달라고 해야 한다는군요. 닭셰프 님이 설탕이 들어간 게 전주 스타일이라고 하셨지만 히미끼 님은 설탕을 빼고 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모르니까 그냥 닭셰프 님을 따라서... 먹어 보니까 단맛이 강해서 간식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같.놀.다로 돌아왔습니다. 가게 안에는 히미끼 님이 태경 언니 (;;)라고 부르는 여자 분이 계셨습니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에도 이분 얘기가 나왔는데 여행 중이셨다고 했습니다.) 히미끼 님도 오는 토요일에 광주 당일치기 여행을 가실 계획이셔서 준비를 하신다며 빠지셨고, 태경 언니 님과 저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온 인혁 님 셋이서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만 게임을 쉽게 고르지 못하자 제가 가져간 게임을 하기로 했죠.


체코의 유명 게임 디자이너인 Vlaada Chvátil 블라다 크바틸 씨의 Dungeon Petz 던전 페츠. 크바틸 씨하면 Through the Ages: A Story of Civilization 쓰루 디 에이지스를 비롯하여 Mage Knight Board Game 메이지 나이트 보드 게임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Space Alert 스페이스 얼럿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같.놀.다에 와서 한쪽에 쳐박혀 있던 스페이스 얼럿을 발굴하여 이곳 분들께 알려드린 바 있죠. (링크: 뜻밖의 방문 제3부 - 전라북도 전주편 1일차 (06/01-06/02))

올해에는 크바틸의 게임들 중에서 던전 페츠를 가져가 봤습니다. 이 게임은 어릴 적에 한번 쯤 해봤던 다마고치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지금 10대, 20대들은 모름;;;) 던전에서 키우던 괴물들로 펫 사업을 하는 내용이에요. (링크: Dungeon Petz 던전 페츠)

설명을 드리자 태경 언니 님은 좀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조금 지나니까 테마에 몰입을 하시면서 재미있어 하시더라고요. 인혁 님은 조용히 잘 하심... (뭐야, 무서워;;;) 결론은 설명하고 꼴등... (도장깨기 실패 ㅠㅠ)



던전 페츠를 하는 동안에 다른 분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예전에 모임 활동을 같이 하다가 대전으로 이사가신 카이 님도 오셨고요. 반갑습니다! ^^) 같.놀.다 안이 가득찼죠. 이미 다른 게임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남은 분들끼리 스페이스 얼럿을 하기로 했습니다. 작년에 이미 경험을 한 히미끼 님과 닭셰프 님, 저는 빠졌어요. (크바틸 게임답게 설명을 들어도 알 수 없는 게임의 분위기.) 겁을 먹은 분들에게 히미끼 님과 제가

"튜토리얼은 너무 쉬워서 아무것도 안 해도 클리어할 수 있어요."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전주는 우리도 몰랐던 아주 특별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서로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나중엔 사운드트랙도 듣지 않고 서로 외치다가 게임이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튜토리얼 1번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우주선을 부숴먹은... (뭐야, 이거 무서워...;;;) 처음 해본 사람들보다 이미 해본 3인 (히미끼 님, 닭셰프 님, 저)는 멘붕을 하고. 다시 튜토리얼 2번을 시켜보기로 했습니다. 한 분이 캡틴의 역할을 하기로 하고 나름 지시를 열심히 내렸습니다. 이미 해본 3인은 내심 기대를 했죠. 1단계는 무사히 넘어간 것 같았지만 2단계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서서히 패닉에 빠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캡틴은 격렬히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살려야 한다) 이미 해본 3인은 그저 웃음만... ㅋㅋㅋㅋㅋ

하지만 전주는 정말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이 꼬여서 클리어하지 못할 뻔 했으나 아무도 예상못한 잘못 쏜 레이저 캐논이 외부 위협을 부수며 클리어를 한 것입니다. (말도 안 돼! ㅋㅋㅋ) 플레이어들은 환호를 했고, 게임을 접었습니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 끝내고 싶었나 봅니다.)



그 다음으로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을 하기로 했습니다. 작년에 이 게임을 전파한 이후로 전주 분들 사이에서 관심이 부쩍 늘었고 몇몇 분은 해보셨다고 합니다. 4명이 두 팀으로 나눠서 2인 룰로 진행했습니다.

자유민족이 부지런히 모르도르로 달리는 한편 마음 착한 암흑군단은 병력을 모았지만 쉽사리 밀어내지 못했네요. 결국엔 부대를 찍어낸 죄밖에 없는 사루만이 혼자 있다가 엔트들에 핵꿀밤을 맞고 죽어버리고 맙니다. ㅠㅠ 반지-운반자들은 비운의 산 꼭대기에 도착해서 반지를 빠뜨리고 게임을 끝냈습니다. (산에 오르는 동안에 치유도 한... 이거슨 삼림욕?)



반지의 전쟁을 하는 동안에 다른 테이블에서 자꾸 배고프다고 해서 밥 먹은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배고프다고 하나 싶어서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설명 1시간, 진행 2시간 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집중했네요. 더 늦기 전에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남부 시장에서 파는 피순대인데요. 일반 순대와 달리, 건조하지 않고 아주 촉촉하고 부드럽습니다. ㅎ



식사를 마치고 철민 님이라는 분하고 일대일로 반지의 전쟁을 했습니다. 몇 번 해보셔서 룰을 많이 알고 계셨고요. 저와 플레이하면서 나머지 규칙을 잡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숙련자들의 플레이답게 매우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저는 암흑군단으로서, 빠르게 사루만의 군대로 로한을 밀어버리고, 모르도르와 돌 굴드르, 동부의 군대들을 북동쪽으로 몰려서 데일-에레보르-우들랜드 렐름을 빠르게 점령해갔습니다. 하지만 프로도는 너무나 빨랐습니다. 100분만에 자유민족은 반지를 파괴하고 게임을 끝내 버렸습니다. ㅠㅠ

철민 님이 에레보르 쪽이 밀릴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고 하셨습니다. 반지의 전쟁을 여러 번하면 로한이나 곤도르 중 하나를 살리는 기술이 생깁니다. 가깝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점수 지역이 막히면 다른 방안을 찾게 되는데, 그게 북동부를 밀어버리는 것이죠. 그쪽도 승리 점수가 5점 이어서 로한이나 곤도르의 대안으로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반지의 전쟁을 마치자 우리의 닭셰프 님은 같.놀.다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버섯과 호박, 죽순으로 튀김을 만들어 오셨는데 맛있어서 술 생각이 절로 나더라고요. 제 옆에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히미끼 님이... (사스가 같.놀.다의 정신!)


야식을 먹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페이스 얼럿을 또 했습니다. 저와 히미끼 님까지 포함해서 5인으로요. 처음 하는 분도 있어서 튜토리얼부터 시작해서 총 6게임을 했는데요. 새벽 5시까지 했다는... (경보! 잠이 부족합니다...;;;)



같.놀.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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