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가게 이름은 같이놀다 먹다 쉬다 마시다 자다 가게
전라남도 여수에서 보드게임 노예 23시간 (?) 촬영을 마치고 (여수편 참조) 오전 9시 30분 경에 전주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기차 안에서 1시간 정도 기절하고 11시 즈음에 전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전주역사의 모습은 다른 역사와 많이 다릅니다. 전통가옥 느낌을 살린 느낌이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전주시가 한옥마을 관광상품으로서 개발해 오고 있는데 일관적인 느낌을 잘 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주역 앞에서 이동을 하려고 하는데 버스가 잘 안 오더군요. ㅠㅠ 후덥지근한 날씨에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정류장에서 마냥 기다렸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에는 보드게임 카페가 "둘" 있는데요. 이번 전주 방문 목적은 히미끼 님이 보드게임 커뮤니티와 블로그를 통해서 홍보를 하고 있는 "같이놀다가게"였습니다. 같이놀다가게는 전주의 남부시장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가게가 위치한 건물 2층에는 "청년몰"이라고 해서 20, 30대의 젊은 사장님들이 창업한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같이놀다가게도 그 중 하나이고요. 이곳은 오후 1시부터 영업을 하는데, 월요일엔 문을 닫습니다. 사장님이 혼자 가게 영업을 하시는데 월요일에 유일하게 쉬실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일요일에는 보드게임 모임을 위해서만 가게를 열어서 일요일에 보드게임 하려고 오는 일반 손님들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6월 1일 12시 즈음에 청년몰이 있는 남부시장 건물 2층에 도착을 했는데, 같이놀다가게가 안 보이는 겁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2층을 여러 번 빙글빙글 도는데도 안 보였습니다.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서 다시 1층에 내려가서 한 시장 상인에게 청년몰이 다른 곳에도 있냐고 물어봤는데 여기 하나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가보자는 마음으로 2층에 다시 올라갔더니 칠판에 적힌 가게 간판 보였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가게 안을 살펴보는 작은 방처럼 생겼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되고요.
1시가 되어서 누군가가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가게 사장님은 아니고 전주 모임에 오시는 분들 중 한 분이셨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Love Letter 러브 레터라도 하자고 하셔서 그렇게 했습니다. 저에게 시작 플레이어 하라고 하셔서 먼저 했습니다. 두 장을 받아보니 한 장은 "(3) 남작"이고 나머지는 "(6) 왕". 그래서 남작을 내고 왕 카드를 보여 드렸더니 조용히 저에게 승점 큐브 1개를 밀어주시더군요. 가지고 계시던 카드가 (5) 왕자.
두 번째에도 시작 플레이어를 주시길래 첫 턴에 바로 (1) 경비병 내면서 "하녀요!" 했더니 매우 당황하시면서 다른 게임 하자고 하시는 겁니다. ^^;;
두 번째 게임으로 Saint Petersburg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하자고 말씀을 드렸는데, 바로 같이놀다가게 사장님이 오셔서 인사를 나누고 3인 게임으로 (가게 사장님이 전주 모임에서는 확장 넣고만 한다고 하십니다.) 사장님이 압도적인 점수차로 승리. 러브 레터 같이하신 분은 귀족 12종류를 모으시고 2등. 저는 새 농부 모으다가 망했습니다. 도장깨기 실패!
첫 라운드부터 옵저버터리질이냐?!
다른 분들이 더 오시고 반지의 전쟁을 꺼내서 준비를 했습니다만 여자 분 한 분이 더 오실 예정이라고 하셔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도중에 한 분이 제가 번역한 반지의 전쟁 한글 규칙서를 컬러로 제본을 해놓으신 걸 보여주셨습니다. 얘기를 나눠보니 반지의 전쟁을 너무 하고 싶어서 (혼자 힘으로) 규칙서를 읽고 1번 해보셨다는 겁니다. 대부분은 규칙서 몇 장 읽다가 포기하는데 읽고 실제로 해보셨다는 말씀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를 더 놀라게 만드신 말씀은 반지의 전쟁을 배우러 5월 5일에 수원까지 직접 오시려고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그 제본에 싸인이라도 하나 해주라고 하셔서 친필 싸인을 해 드렸습니다.
진짜로 소름 돋았습니다
1시간 가량 기다리니 그 여자 회원께서 오셔서 드디어 반지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저흰 "별로" 안 기다렸습니다. 긴 테이블을 2개 붙여서 큰 테이블로 만들고 그 주위에 저까지 총 7명이 둘러 앉았습니다 (여자 분께서 미니빌 하러 왔다고 하셨는데 반지의 전쟁도 똑같이 주사위 굴리는 게임이라며 그냥 시작했습니다. 늦게 오신 벌입니다. 죄송합니다. ㅎㅎ) 저는 게임 규칙을 설명하고 진행을 돕기 위해서 한쪽에 앉았고, 나머지분들은 테이블 양쪽에 나누어 앉으셨습니다. 설명 잘 해드렸고요. 몇몇 분들 (특히 사장님)의 얼굴에 급피곤함이 보였지만 끝까지 잘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자유민족 플레이어들에게는 초반에 행동 주사위 늘리기를 강조해 드렸습니다. 그래서인지 2턴 안에 스트라이더를 원정대에서 분리하고 곤도르를 향해 이동시키시더군요. 그리고 스트라이더가 아라고른으로 빨리 만들어서 행동 주사위 1개를 추가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암흑군단 플레이어들은 첫 턴에 사루만을 등장시키고 2턴부터 병력을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민족이 병력 생산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원정대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중반에는 추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간달프 더 그레이가 희생됐다가 곧 로리엔에서 부활했습니다. 암흑군단은 곤도르에 맹공을 쏟아부었고, 자유민족은 아라고른이 이끄는 군대로 곤도르 땅을 돌며 이에 맞서다가 결국엔 아라고른 군대가 전멸되어 버렸습니다. 다행스러웠던 건, 아라고른이 죽기 전까지 시간을 많이 끌어줘서 반지의 원정대는 모르도르 근처까지 도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후반에 반지의 원정대가 모르도르 트랙에 올라갔습니다. 암흑군대는 군사적 승리를 위해서 흩어져 있던 병력들을 모아서 로리엔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간달프 더 화이트와 두 명의 호빗이 지키고 있는 로리엔에 위치킹과 나즈굴이 이끄는 암흑군단 군대가 공격을 시작했으나 간달프의 "백색의 기수" 능력 덕분에 위치킹과 나즈굴을 무력화하면서 공격을 수차례 막아냈습니다.
게임의 결과는 추적 타일에서 갈렸습니다. 원정대가 모르도르 트랙에서 두 번째 이동을 했을 때에 "사우론의 눈" 타일이 뽑혔는데 그때에 추적 칸에 행동 주사위가 총 6개가 있었기 때문에 추적 피해 6 (현재 누적 추적 피해 11)이 추가되면서 게임이 암흑군단쪽으로 급격히 기울어 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유민족 플레이어의 손에 "미스릴과 스팅" 사건 카드가 있었는데 내려놓지 않으셨더라고요. 모르도르 트랙에서의 세 번째 진행에서 추적 피해가 나오면서 반지의 원정대는 임무에 실패하고 암흑군단이 승리했습니다.
설명 시간까지 포함해서 4시간이 넘어가는 긴 시간 동안 흥미진진한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즐겁게 플레이해주셨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제가 몇 가지를 배웠는데요. 첫째로, 초보자들은 사건 카드를 공개해놓고 진행해도 괜찮다는 겁니다. 텍스트가 많아서 상대 사건 카드에 신경을 쓰기 힘들고 큰 카드를 장시간 동안 손에 들고 있으면 불편하기 때문이죠. 둘째로, 자유민족에게 추가 행동 주사위를 제공하는 인물들 (간달프 더 화이트와 아라고른)이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해도 꽤 좋다는 것입니다. 추가로 얻은 행동 주사위를 지키기 위해서 저는 그 인물들을 전투에서 배제해 왔었는데, 그러기엔 그 두 인물이 제공하는 능력이 너무나 좋습니다. 전투에 참여시키면서 암흑군단이 자유민족 정착지 점령에 더 많은 준비를 하도록 시간을 끄는 것이 반지의 원정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또 다른 방법 같습니다.
반지의 전쟁을 하신 분들이 게임이 빨리 끝나길 기다렸던 것은 게임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러브 레터를 하신 분이 닭백숙을 끓이고 계셨는데 그게 어느 샌가 다 완성이 되었습니다. 8시 30분이 넘어서 일인일닭이 아닌 일인반닭 (= 일인일다리)의 저녁 식사가 이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소주도 마셨군요.
저녁을 먹고 나서 Space Alert 스페이스 얼럿을 알려 드렸습니다. 이건 제가 준비해 간 게 아니라 같이놀다가게에 있던 것인데, 카드 한글화도 되어 있고 카드 프로텍터까지 다 씌워져 있었는데 펀칭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스페이스 얼럿도 해보면 어렵지 않은데 굉장히 낯선 방식이라서 어려워 보이는 것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디자이너 크바틸 씨의 천재성이 보이는 것은 Through the Ages 쓰루 디 에이지스에서가 아니라 스페이스 얼럿에서라고 생각합니다.) 튜토리얼부터 규칙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진행을 했습니다. 테스트 런과 시뮬레이션에서 쉽게 성공하셔서 의기양양해 하셨는데, 내부 위협이 추가되는 상급 시뮬레이션부터 플레이어들의 손발이 안 맞기 시작했습니다. ^^;; 마지막 네 번째로 1번 미션을 했는데, 사장님의 작은 실수 한 번으로 아깝게 실패를 했습니다. (다른 분이 만든 카드 한글화 자료에 deck 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제가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설명을 빠뜨려서 그랬습니다. 저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덱 대신에 "층"이라는 용어로 설명을 했거든요.) 어쨌거나 같이 하신 분들 모두 재미있다고 말씀을 하셔서 다행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Lewis & Clark 루이스 & 클락을 했습니다. 전주 모임 분들 중에 해보신 분이 없었는데 사장님이 관심을 보이셔서 알려드렸습니다. 덱-빌딩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자신의 탐험대 덱의 콤보가 만들어질 때까지 난해하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날에 잠을 못 잤고 밤 늦은 시간이다 보니 모임 분들이 카드 효과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데 제가 꾸벅꾸벅 졸고 있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도 전주 모임 분들이 게임을 빨리 이해하셔서 다들 비슷비슷하게 산맥을 넘고 목적지를 향해 달렸습니다. 루이스 & 클락도 끝나고 반응이 좋아서 가져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루이스 & 클락이 끝났을 때가 새벽 3시 30분.
전주 모임편은 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