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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티드 클라우드 주간 게임 리뷰 V의 234번째는
7 Wonders Duel 7 원더스 듀얼과
Broom Service 브룸 서비스에 이어서 Spin-off 스핀-오프 게임들을 소개합니다. 레거시 게임으로 탈바꿈한, 돌이킬 수 없는
Pandemic 팬데믹, Pandemic Legacy: Season 1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입니다.
레거시 게임?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은 2015년 하반기에 발매되었는데요. 플레이해 본 사람들의 평가와 입소문 때문에 순식간에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리고 미국 시간으로 2016년 1월 1일에 보드게임긱 랭크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안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 게임이 'Legacy 레거시' 게임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레거시는 글자 그대로 하면 물려주는 '유산'이라는 뜻입니다. 게임에서는, 쉽게 설명해서, 이전 게임의 결과가 다음 게임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나의 게임을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인데, 플레이하는 동안에 플레이어들이 규칙에 의해서 게임 구성물을 변화시킵니다. 예를 들어서, 카드나 보드에 스티커를 붙여서 효과, 상태를 추가하거나 바꾸고, 또는 그러한 구성물을 게임에서 제거하거나 찢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보드게임을 해온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산 게임을 어떻게 보면 훼손하면서 진행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은 게임 내에 시간이 있어서 1월부터 12월까지, 총 12번밖에 못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점을 걱정한 것입니다. '게임을 망가뜨리면서 해야 하고 12번밖에 못 하는 소모성 게임을 굳이 구입해야 할까?'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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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레거시의 차이
팬데믹과 팬데믹 레거시는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팬데믹에 레거시 시스템을 넣고 섞었다고 할까요?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에서 이 레거시 시스템에 대한 구성물들이 추가되었습니다. 카드와 보드를 수정할 수 있게끔 스티커가 들어 있고, 그 스티커를 붙일 수 있도록 보드와 카드, 시트 등에 빈 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체 게임을 이끌고 가는 레거시 덱이 있습니다. 레거시 덱은 앞에서부터 한 장씩 읽어 넘기는 카드 뭉치인데요.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에서의 한 달을 진행할 때마다, 시작 시와 종료 시에 필요한 지시를 내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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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거시 덱은 스티커 붙이기나 구성물 제거뿐만이 아니라 그 덱 안에 순서대로 추가 이벤트 카드와 역할 카드 등도 들어 있어서 게임을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플레이어들은 진행의 시작 시에 새로 나온 이벤트 카드를 넣을 수도 있고, 새 역할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레거시 덱을 미리 훑어본다면 게임이 시시해질 겁니다. 반전 있는 영화의 결말을 미리 들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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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 변하는 게임
이 게임에서 매월 목표가 정해져 있습니다. 처음 몇 번은 목표가 '4가지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 하나뿐이지만 진행할수록 목표가 늘어납니다. 난이도가 조금씩 올라간다는 얘기가 됩니다. 플레이어들은 이 난이도 상승에 어떻게 맞춰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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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한 달 플레이에서 목표를 달성해서 성공하든 그렇지 못해서 실패하든, 그 한 달이 끝나면 종료 보너스가 있습니다. 이것은 원하는 스티커를 붙여서 자신의 역할이나 카드의 효과를 높입니다. 두 번째로,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집니다. 즉, 한 달을 딱 한 번만 하는 것은 아니고 실패했을 때에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습니다. 성공을 하면 다음 진행 시작 시에 이벤트 카드 2장을 빼야 하고, 반대로 실패하면 거꾸로 2장을 추가합니다. 이벤트 카드 2장을 넣고 뺌으로써 게임의 난이도가 적절히 조절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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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되돌릴 수 없는 게임
Co-operative Play 협동 진행 게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플레이어들이 합의해서 무르는 것입니다. 당장은 원하는 구성원들 모두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이득인 것 같지만 게임 그 자체를 놓고 보면 손해가 됩니다. 예전에 제가 협동 진행 게임 리뷰를 하면서 얘기했었죠. 협동 게임에서 일정량만큼 실패를 거듭해야 한다고요. 그것은 일종의 협동 게임의 수명과 같습니다. 빨리 클리어하면 그만큼 그 게임의 수명이 짧아지는 겁니다.
팬데믹 레거시로 넘어오면서 그게 조금 어려워졌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스티커를 붙이고 스크레치를 긁고 펜으로 무언가를 적어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되돌릴 수 없다'는 레거시의 특징은 '질병 확산으로부터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팬데믹의 테마와 결부되면서 엄청난 몰입감을 줍니다. 팬데믹 레거시를 해본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점에 매료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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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레거시의 성공과 유행은 보드게이머들이 잊고 있던 것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첫째로, 보드게임긱 평점은 원래부터 '재미'에 대한 지수였다는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보드게임긱의 평점과 순위가 전략성을 재는 척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팬데믹 레거시: 시즌 1이 치고 올라가자 경쟁 게임이 나타났다는 위기감을 느낀 특정 게임의 일부 팬들이 순위를 낮추기 위해 평점 테러를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역부족이었지만요. 이 게임이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해본 사람들이 '재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저를 포함한) '대다수'가요.
둘째로, 게임의 쓰임새는 게임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매년 출판되는 게임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자 그저 소비되 듯이 한 두 번하고 (또는 전혀 하지 않고) 진열장에 꽂히는 게임들도 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팬데믹 레거시의 플레이 횟수가 과장을 섞어서 12번, 실제로는 최대 24번밖에 못 한다는 것을 듣고 걱정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도 하죠. 많은 게임들을 가지고 있는 게이머들이 자기 게임들의 플레이 횟수를 기억하고 있다면 아마 대부분의 것은 20회도 넘지 못 할 것입니다. 게임이 대부분은 관상용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죠. 원래 게임은 하면서 즐기기 위한 수단이었잖아요, 그렇죠?
셋째로, 보드게임은 원래 아날로그적이면서 소모성 상품입니다. PC나 콘솔에서 하는 게임들과는 달리, 물리적으로 구현된 보드게임은 하면 할수록 닳게 됩니다. 요새 카드에 슬리브를 씌우고 박스 (심지어 보드)에도 무언가를 입혀서 보호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죠. 마모를 줄이고 늦출 수는 있지만 절대적으로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휘거나 닳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게 보드게임의 특징이자 매력인 거죠. 팬데믹 레거시를 처음 해보면 카드를 찢거나 보드에 스티커를 붙이라는 지시를 받을 때에 망설이게 됩니다. 팬데믹 레거시는 구성물이 훼손되어야 사는 게임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그냥 찢으십시오. 붙인 스티커가 삐뚤어졌더라도 그냥 두십시오. 펜으로 적은 글자가 악필이어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더 아날로그적이고 레거시의 재미를 십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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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레거시가 망설이는 당신에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재미있는,
보드게임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