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게임을 자주하는 게이머들이야, 일꾼 놓기 메커니즘을 쉽게 이해하고 전략을 쉽게 구사할 수 있지만 2주에 한 번 게임하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실망을 하기에 제가 너무 엄격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만 더 들고 가서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이날엔 정웅이가 몸살로 수업에 나오지 못하고 나머지 세 아이들만 왔습니다. 찬호는 이 게임을 보자마자
"아~ 이거 또 해요?!"
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난 수업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플레이를 해서 다시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만, 정웅이와 찬호 둘이 너~~무 못 해서 한 번 더 가져왔다고 얘길했죠.
게임 실력보다, 두 반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찬호한테 기대하는 것도 있고, 좀 달라졌으면 하는 면들도 있는데요. 이를 테면 게임 중에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합니다. 나머지 아이들이 한두 학년 어려서 따라오는 속도가 느린 건 어쩔 수 없는 건데 좀 심하게 타박을 하죠. (피씨방 가면 중고딩들이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에게 던지는 말과 비슷하더라고요.) 표정을 보면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악의 없이 습관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면 그것 역시 문제죠. 아이들이 덜 와서 제가 같이 게임하게 되면 저보고 빠져달랍니다. 잘할 것 같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너 좀 비겁한 거 아니니?"
라고 했는데,
"네, 저 비겁해요~"
라며 뺀질뺀질하게 대답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을 같이 듣는 다른 아이들을 동료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기고 떨쳐내는 경쟁자로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지난 수업에 오지 않았던 두 아이에게 설명을 다 하고, 찬호, 민주, 종혁이 순으로 진행했습니다. 게임의 시작 전부터 걱정된 건, 종혁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나머지 아이들보다 어려서인지 게임에 대한 이해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면 저학년 반으로 가지 않겠냐고 권유 아닌 권유를 했었는데 본인이 싫다고 했죠. 정서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감을 쌓는 법에 많이 서투른 것 같고 혼잣말을 잘해서 다른 아이들이 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심하다 싶을 때에만 제재하는 정도뿐이고요. 아무튼 이 날도 종혁이가 설명은 다 알아들었다고 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은 플레이를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2주 전에 찬호와 정웅이도 그렇게 했네요. ^^;;)
찬호는 한 번 털리고 느낀 바가 있었는지 이번 수업에는 정석적인 플레이를 했습니다. 제가 크게 놀란 건 민주의 플레이였죠. 첫 게임임에도 (제가 딱히 알려준 것도 아닌데) 찬호 다음으로 마을 건물에 딱 들어가더라고요. 2주 전 아이들의 플레이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좀 아쉬웠던 건 카드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아서 최종 점수계산할 때에 점수가 역전당할 것 같았습니다. (석기시대를 해본 적이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최종 점수 보너스가 작게 느껴지니까요.) 그래도 뚝심있게 자원을 열심히 모아서 오두막을 자주 건설해서 점수를 쭉쭉 앞지르더군요. 후반에 카드를 몇 장 사긴 했는데 많이는 아니었습니다. 옆에서 찬호가 얄미운 시누이급 궁시렁 잔소리를 늘어놔서 민주가 꾹꾹 참아가면서 플레이를 했습니다.
"아, 답답하네. 카드 안 사면 진다니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지!!"
민주가 대꾸를 잘 했지만 석기시대를 해본 사람 입장에서 찬호 말이 맞는데 두 아이 앞에서 편들기도 어렵더군요. 결과가 어떨지 뻔히 보여서 마음이 좀 쓰였고요.
결국엔 오두막이 다 떨어져서 게임이 끝났는데요. 점수를 계산해 보니 10여 점의 차이로 찬호가 승리했습니다. 찬호가 이겼다고 좋아했는데 저는 민주가 카드를 적게 구입하고도 높은 점수를 내서 대견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첫 게임이었는데 말이죠.
종혁이는 이미 승리와 멀어져서 두 아이와 반 바퀴 정도 차이가 났던 것 같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종혁이에게 물어보니 재미있었다고 대답한 거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