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군대의 전투" 한글화 자료를 만드느라 일요일 새벽 4시까지 작업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헐레벌떡 도서관을 향했습니다. (아이고, 졸려...)

도서관 앞에 1학년 한결이 혼자 쌓인 눈을 발로 차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결이와 함께 다른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까 2학년 재혁이가 왔습니다. 아이들은 딱히 할 게 없어서 책을 펼쳐서 읽더군요. (좋은 습관이죠?) 저도 눈에 들어온 책 (반지의 제왕 마지막 편의 부록 부분)을 열심히 훑었습니다. (번역 맞춰볼 겸 읽었는데 이게 취미인지 일인지... ㅠㅠ)

20분 정도 더 기다리니까 예슬이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세 명이 모여서 더 기다리지 않고 그냥 시작하기로 했죠.


저학년 반의 7번째 게임은 Pickomino 피코미노 (한국어판 제목은 꼬꼬미노)입니다. 이 게임은 Yahtzee 야찌 스타일의 주사위 게임인데, 그나마 이런 종류의 게임들 중에서는 쉬운 편이어서 이것으로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은 주사위가 있는 게임을, 뭐랄까요... 좀 너무 쉬운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주사위 굴리기 게임은 손으로 주사위를 굴리면 되니까 쉽죠, "물리적"으로만 말이죠. 하지만 야찌 스타일의 게임들에는 플레이어가 더 나은, 더 높은 가치의 조합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숫자를 잡아야 할지를 선택하는 부분이 있는데, 플레이어 스스로가 "확률"을 계산할 수 있어야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주사위를 잘 굴리라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가장 좋은 주사위 숫자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시간 관계 상 3번째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끊었는데, 아이들을 지켜본 소감을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게임 외적인 것인데요. 예슬이를 기다리는 동안에 재혁이가 한결이에게
"한결아, 게임 설명 들을 때에... 질문... 설명 다 끝나고 해."
라고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 말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재혁이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이었거든요. ^^ (2주 전에 Ticket to Ride 티켓 투 라이드를 설명할 때에 중간에 끼어드는 질문들 때문에 무려 40분이나 걸렸어요.) 재혁이 지적 덕분인지 꼬꼬미노를 설명할 때에 한결이의 질문이 거의 없었고, 설명도 10분만에 깔끔하게 끝났습니다. (규칙이 쉬운 것도 있지만) 설명이 끝난 후에 아이들의 이해도도 높았던 걸로 보면 제가 설명을 정~~~~말 잘 하거나 (^^;;;) 아이들이 게임을 이해하는 실력이 나아졌다는 의미겠죠. 어쨌든
"큰 것부터 이해하라"
는 저의 가르침을 아이들이 잊어버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잘한 규칙과 예는 저의 설명 뒷부분에 나오면서 빈 퍼즐 조각들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 아이들이 확률 계산에 아직은 서툴렀습니다. 아무래도 "확률"에 대한 내용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 배우기 때문에 지금 8, 9세 아이들이 확률 계산까지 하는 걸 바라는 건 저의 욕심이죠. 꼬꼬미노에서는 자기 턴에 숫자 그룹마다 한 번만 잡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턴에 숫자들이 골고루 나왔다면 낮은 숫자 1개짜리를 잡고 나머지 주사위들을 많이 굴려서 높은 숫자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한달 전 수업에서 Las Vegas 라스 베이거스 해본 아이들이 이걸 깨우치더라고요.) 그런데 1학년 아이들은 이것을 반대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제가 당황했습니다. (굴릴 주사위들이 점점 줄어들잖아!)


세 번째는, "관리"가 서툴렀습니다. 게임의 종료 시에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타일에 그려진 애벌레들의 총합으로 승패를 가립니다. 주사위 운이 좋다면 30 이상의 숫자를 어렵지 않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운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운도 게임의 일부분이니까 플레이어들이 받아들여야죠. 그러나 어렵게 (혹은 운 좋아서 쉽게) 획득한 높은 점수의 타일을 지켜내지 못하고 도로 토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타일은 다음 턴에 안정적인 플레이를 해서 다른 타일로 덮음으로써 지켜야 하는데, 자신의 또 다른 운을 시험하며 허무하게 반납해 버렸죠.



마지막으로, "균형 맞추기"는 아이들 스스로 깨우쳐 가고 있었습니다. 상호작용이 직접적인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들이 앞서나가는 플레이어를 공격함으로써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가야 뒤따라가는 플레이어들이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영향력 게임 등에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인데, '나는 2등이 목표야.'라면서 앞서가는 플레이어를 그대로 놔주고 뒤따라 오는 플레이어들을 짓밟는 사람이 있다면 게임의 중반부터 결과가 결정되어 버리게 됩니다. 게임에서 "순위"가 자신의 최고 우선순위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좋은 순위 = 좋은 게임"이 될 수가 있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는 "모두의 즐거움 = 좋은 게임"이기 때문에 이미 결과가 뻔한 (이기는 플레이어에게) 가만히 있어도 이겨서 시시하거나 또는 (지는 플레이어들에게) 뭘해도 안 되는 지루한 게임을 함께 했다면 그 게임을 다시 하고 싶어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꼬꼬미노 하면서 1등을 막아야 한다는 걸 의식하면서 플레이 하는 게 보였다는 게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아이들에게서 가능성이 보여서 정말 좋았네요.)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3화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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