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찍 도착했습니다. 할일이 없어서 도서관 한쪽에 꽂혀 있는 "반지의 제왕"을 꺼내 읽었습니다. 제가 "반지의 전쟁" 보드게임을 번역했지만 사실 원작인 "반지의 제왕"을 읽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번역하는 동안에 필요한 부분만 검색해서 읽어봤을 뿐입니다. 책장에 있던 6권 중에서 톰 봄바딜이 나오는 부분만 찾아서 읽었습니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저도
"응, 안녕?"
했죠. 이제 5학년 되는 정웅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더 올 때까지 정웅이도 책을 꺼내서 읽었습니다.

한 10여 분 기다리다가
"더 안 올 것 같으니까 우리끼리 하자."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날 할 게임의 설명이 좀 길 것 같았거든요.



Glen More 글렌 모어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계곡 이름입니다. 원래는 "Glenmore"라고 붙여야 되는데, 게임 제목에 사용하려고 사이에 공백을 넣은 것 같네요. 아무튼 정웅이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넋이 살짝 나간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님, 어려워요. 쉬운 게임 좀 가져오세요."
라며 투정을 부립니다.
'이게 그렇게 어렵나?'
싶어서 게임 상자 옆면을 보니 "13+ (만 13세 이상)"이라고 써있긴 하네요. 그래도 이제 5학년 되는 아이에게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게임만에 저를 이기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해보고 모르겠으면 또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설명 끝나고 시작했습니다. 정웅이는 자신이 없는지
"선생님이 먼저 하세요!"
"그래." 그래서 제가 먼저 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정웅이는 제가 뭔가를 하면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겠다는 생각이었나 본데, 이 게임이 그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자신의 턴에 타일 풀에서 타일을 가져오는 "Draft 드래프트" 방식이라 풀에 똑같은 타일이 남아 있으라는 법도 없도, 설령 똑같이 따라한다 하더라도 "Time Track 시간 트랙" 방식 때문에 풀에서 멀리 있는 타일을 선택하면 한동안 자기 턴이 오지 않게 되죠. 정웅이가 똑같이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게임이라는 겁니다. ^^



정웅이에게 다행스럽게도 게임 도중에 4학년 되는 종혁이가 와서 게임을 다시 설명하고 시작해야 했습니다. 종혁이한테 설명해주고 중간중간에
"이해했어?"
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긴 하는데 뭐랄까요... 시쳇말로 표정에 "영혼이 없는" 끄덕임. 종혁이가 게임 이해와 센스는 상대적으로 부족해도 다른 고학년반 아이들과 다른 점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단점일 거라 생각했는데 고학년반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봐 오니까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정답 찾기"에 익숙해져서인지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따라하려는 경향이 보이는데 어린 아이들은 "때가 덜 타서" 자기 만의 플레이를 하는 것 같네요.

종혁이가, 새로 붙이는 타일 주위에 부족원이 있어야 하고, 마을에 강과 길이 하나씩만 있어야 한다는 타일 붙이는 규칙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종혁이에게 한 가지 놀란 점은, 생산 타일에 이미 자원 3개가 있을 때에 또 그 타일에서 자원을 생산을 해야 할 때에, 생상 직전에 자원 1개를 창고에 판매한 다음에 생산을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정웅이는 몰랐는데 말이죠. 종혁이가 평소에 약간 멍~한 표정을 보였는데 이 날은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ㅎㅎ

게임의 결과는 제가 이겼지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다음에 한 번 더 했을 때에 아이들이 거부하지만 않으면 좋겠네요.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7화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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