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황무지에 씨앗을 뿌릴 용기가 있습니까?
새벽에 파한 후에 저와 마지막까지 게임을 하신 분들이 숙소 위치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몸이 피곤하실 텐데 같이 얘기하면서 데려다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날인 월요일. 전주편 1일차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같이놀다가게는 월요일마다 쉽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저를 위해서 오후 12시 즈음에 가게를 열겠다고 하셔서 시간 맞춰서 같이놀다가게로 향했습니다.
12시에 사장님과 저만 와 있어서 단 둘이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럴 때에 보통 현지인이 외지인에게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냐고 물어보죠. 그런데 같이놀다가게 사장님은
"그냥 백반 드시죠. 백반 맛있게 하는 집이 있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바로 아래 1층에 있는 한 백반집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백반 1인분당 7,00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식사 퀄리티는 아래 사진과 같고요. 같이놀다가게 사장님이 술한테 인기가 많으셔서 (?) 식사 때마다 술을 곁들이셨습니다. 이때에도 전주에서만 판매하는 막걸리를 꺼내오셔서 같이 마셨습니다. 식사와 반주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같이놀다가게 사장님은 원래 전주 분이 아니고 약 2년 전에 같이놀다가게를 창업하셨는데, 당시에 전주에 보드게임카페가 없었다고 합니다. 청년몰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면서 어떤 업종의 가게를 차릴까 생각하시다가 가장 자신이 있으신 보드게임으로 선택하셨고요. 나중에 들었는데 10여 년 전에 서울에서 보드게임카페 점장도 하셨다는군요. 전주 사람들이 보드게임을 할지 하지 않을지 예측이 불가능했었는데 과감하게 보드게임카페를 선택하신 사장님이 저는 대단해 보였습니다. 같이놀다가게에 가보시면 아실 수 있는 건데, 청년몰이라는 것 자체가 전주에서 하나의 관광상품입니다. 서울 인사동의 쌈지길처럼 독특하고 젊은 감각으로 물들어 있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가게 밖에서 사진을 찍거나 기웃거리면서 가게 안을 들여다 보시는 분들이 많죠. 가게 사장님은 로컬 플레이어들을 늘리고 싶은데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안타깝다고 하시는데 로컬 플레이어들도 꾸준히 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청년몰에 관광객이 많은 이유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한옥마을이라는 전주의 대표 관광지가 있습니다. 전주 모임 분들에게서 들은 내용인데, 처음에 전주에서 한옥마을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에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옥마을 덕분에 관광객이 늘고 땅값도 오르고 해서 당시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아무 말 못 한다는 겁니다. "그런 과감한 선택을 나도 할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해 봤습니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뚫고 지인들에게 보드게임을 외롭게 전파하고 있는 분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께 격려의 박수를. 짝짝짝짝)
식사가 끝나고 2층 가게에 올라가서 사장님하고 2인 게임을 했습니다. 사장님이 게임을 고르라고 하시길래 Dominion 도미니언을 골랐습니다. 제가 그래도 잘할 수 있다 싶은 게임이 도미니언이라서 그걸로 골랐는데요. Dominion: Intrigue 도미니언: 인트리그 (한국어 제목 도미니언: 장막 뒤의 사람들)과 Dominion: Prosperity 도미니언: 프로스페러티 (도미니언: 번영)도 섞어서 했습니다. 2번 다 제가 이기긴 했습니다만 사장님 실력이 굉장하셔서 심장이 쫄깃쫄깃하게 플레이 했습니다. (도장깨기 성공? 가게 이름 바꿔도 됨? 혼자왔다가같이가게라든지... 뭔가 나이트 클럽에 어울릴 것 같은;;;)
그리고 나서 다른 분이 오셔서 Innovation 이노베이션을 3인으로 했습니다. 해보신 분들도 계십니다만 이노베이션도 배우려고 하면 뭔가 좀 막막한 느낌이 들어서 긴가민가합니다. 전주 모임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하시길래 알려 드렸습니다. 같이놀다가게 한켠에 Glory to Rome 글로리 투 롬이 있는데, 글로리 투 롬의 공동 디자이너 중 한 명이 이노베이션을 만들어서 둘의 성격이 좀 비슷합니다. 그래서 하나를 해봤으면 나머지는 쉽게 배울 수 있죠. (이노베이션은 묻히고 글로리 투 롬이 유행이었을 때에 저 혼자 속상해했다능...) 이노베이션의 장점은 공격만 해서는 못 이긴다는 것입니다. 공격이 계속되면 상대는 그 공격에 대해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맞는 동안에도 발전을 해서 나중에는 역전을 하게 되죠. 그래서 공격자도 적당하다 싶을 때에 공격을 멈추고 자기 문명도 발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4시대와 7시대에는 새로운 아이콘이 등장해서 게임의 변곡점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뒤쳐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옵니다. 한 게임 알려 드리고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자고 가게에서 낮잠을 잤는데, 몇 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아직도 이노베이션을 하고 계신 겁니다. ^^;; 제 기억으로는 저 자고 일어나서 이노베이션에 또 투입이 됐었던 것 같은데...
저녁 시간이 되어서 국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전주에 갔으면 비빕밥을 먹어야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조금 관점이 다릅니다. 전날 전주 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곁들여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전주에는 풍X제과에서 초코파이를 팝니다. 이건 굉장히 유명한 관광상품이어서 이 제과점의 분점이 전주에 여러 곳 있습니다. 그런데 전주 분들은 이 초코파이를 거의 안 먹고 심지어 그 초코파이가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관광객들만 먹는 음식인 거죠. 저는 관광객들만 먹는 음식은 그 고장의 대표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표 음식은 그 고장 사람들이 평소에 즐겨 먹는 것이어야 하는 거죠. 전주 모임 분들과 얘기하다가 전주가 비빔밥으로 유명해진 이유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요. 전라북도는 곡창지대라서 먹을 거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풍족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귀한 먹거리를 막 비벼먹을 만한 여유가 안 되었다는 겁니다. 그럴 듯한 얘기죠?
저녁 식사로 순대국밥을 먹었습니다. 사장님이 역시나 술을 가져오셨는데 전주의 특산품인 모주를 가져오셨습니다. 이건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고 끓인 술 아닌 술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거라 "모주가 모쥬?"라며 개드립을 치려다가 안 사주실까봐 입밖으로 안 냈다는;;; (그래도 라임이 살아있죠.)
식사 후에 이노베이션을 한 번 더 하고, 제가 가져간 Circus Flohcati 벼룩 서커스를 2번 했습니다. 여러 명 모였을 때에 서로 낄낄거리면서 가볍게 하기 좋은 게임이죠. 카드 일러스트레이션도 귀엽고요.
전주 1일차에 만난 혼자 반지의 전쟁을 익히셨다는 분이 다음날인 화요일에 반지의 전쟁 대결을 신청하셔서 전주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이날은 원래 사장님이 쉬셔야 하고 다음날에 가게 영업을 하셔야 해서 일찍 헤어졌습니다.
전주 모임편은 한 번 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