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고 있다



다락 던전에서 1시간 반 정도 수면을 취하고 부산의 다른 왕국을 깨기 위해 이동해야 했습니다. 오전 9시. 평소라면 일어나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오전 7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고 게다가 술까지 마셔서... 곰팡맨 님은 알아서 일어나셨는데, 아직 활동 시간이 아닌 히미끼 님은 여러 번 시도 끝에 잠에서 깨웠습니다. 퉁퉁 붓고 부스스. 여기저기서 왜 아침 10시에 약속을 잡았냐며...


부산대 역에서 전철을 잡아 타고 양정 역에 도착하자 9시 45분 경. 혹시라도 케빈 님이 일찍 나오셨을지 몰라서 6번 출구 밖으로 나가보았지만 으어어어어억!! 햇빛이 너무 세!! 햇빛을 처음 본 언데드들 마냥 우리는 햇빛을 피하러 다시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지하도에 있던 커피전문점에 가서 모닝 커피를 빨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10시가 넘었는데에도 케빈 님이 나타나지 않자, 원정대원들 사에에 저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데,
"케빈 님 진짜 오시는 거 맞아요?"
"어제 얘기 주고 받았으니까 오시는 거 맞을 거예요. 아마도..."


뙤약볕 아래에서 10분 정도 지나자 커피도 다 마셨겠다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결국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에 왜 전화를 안 걸었지;;;) 케빈 님과 연결이 되자 방금 전철에서 내리셨다고... (중국집에 전화 걸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

"거기 중국집이죠?"
"예, 출발 했어요~"
"저희 주문 아직 안 했는데요;;;" (딱 걸렸어!)

정말 전철에서 방금 내리신 게 맞았는지, 6번 출구 엘리베이터에서 케빈 님이 나오셨습니다. 두둥. 인사를 나눈 뒤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케빈 님은 월풍 님의 작업실로 안내를 하셨습니다.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에 작업실을 만드신 월풍 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 앞에 월풍 님이 계셨습니다. 손님을 맞으러 나온 성주의 풍모. 마치 "어서 오시오, 이곳이 Summerfell 서머펠이오."라며. (더운 곳이라 Winterfell이 아님)



자리에 앉자 첫 번째로 선택한 게임은 케빈 님이 준비해 오신 Deep Sea Adventure 해저탐험이었습니다. 일본의 퍼블리셔인 Oink Games 오잉크 게임즈 (꿀꿀)에서 출시한 직사각형 박스 시리즈들 중 하나인데요. 간단한 파티 게임으로 유명한데 저는 이날 처음 해봤습니다. (제가 아직 보드게임 초보라서...)

규칙을 들으니까 정말 간단했어요. 아, 내려가서 퍼오면 되는구나. 산소가 계속 없어지는구나. 그러나 바다 깊숙한 곳에는 사람을 유혹하는 손길이 있고,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의 욕심인 걸까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던 잠수부들은 살아오지 못하고 꼬르륵 꼬르륵. 결국 모두 "0"점. 하하하하하핳

하지만 파티 게임을 연속으로 하면 어느 새 전략 게임이 되어 버립니다. 히미끼 님이 쫄보 전략을 사용하면서 1등을 하셨죠.


빨리 끝나서 다른 게임을 하나 더 골랐습니다. 이것도 케빈 님이 준비하신 Linko! 링코! 크라머 빠이기도 한 제가 좋아하는 게임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핸드를 받자 저는 "티츄!"를 부를 뻔 했습니다. 스... 스트레이트... ㅂㄷㅂㄷ 케빈 님의 셔플은 정말 완벽했던 것입니다. 이거슨 도장깨기를 막기 위한 화려한 손기술. (따봉!)



링코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시켜 먹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월풍 님 작업실이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치우기도 귀찮고 하니 나갔는데요. 진짜 너무 더웠습니다. ㅠ 그래도 맛있는 집으로 안내하신다는 월풍 님 말씀을 믿고 좀 걸어가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만의 맛집이 나타났습니다. 내부는 깨끗하고 시원했습니다! 돼지국밥집이었는데 수육백반을 시켰다고 합니다. 돼지고기와 국밥이 따로 나왔어요. (마시쩡!)



식사를 마치고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커피 한 잔씩 마시기로 했습니다. 근처에서 저렴한 가격에 크고 알흠다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네요. 작은 커피전문점이었는데 평소에 마시는 용량의 거의 2배를 주는! 게다가 가격도 저렴한! (컬처쇼크) 남녀노소 줄을 서서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다시 월풍 님 작업실로 돌아왔습니다. (배불러서 다 못 마심.)


월풍 님 작업실에 달린 에어컨을 돌렸으나 시원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부산의 여름은 이렇게 덥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에어컨 고장... ㅠㅠ (Summer is Coming)



다음 종목은 7 Wonders 7 원더스 작년에 부산대 모임에서 동점이었는데 돈 차이 때문에 현아 님한테 패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현아 님이 이 더운 날씨에 서울로 스쿠터 여행을 떠나셨다고. (아싸!) 하지만 부산 분들은 함정 카드를 준비했던 것이었습니다. 7 Wonders: Wonder Pack 7 원더스: 원더 팩. 4개짜리 원더 확장인데, 능력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걸 통째로 기본판과 섞어서 나눠주셨는데, 세상에... 저는 마네킨 피스, 왼쪽 히미끼 님은 만리장성, 오른쪽 월풍 님은 아부 심벨...;;; 결국 꼴등.


내 원더 능력을 쓸 수가 없다... ㅠㅠ (내가 ㄱㅈ라니...!!)



두 번째에서는 원더 팩을 빼고 담백하게 하기로 했습니다. 7 Wonders: Leaders 7 원더스: 리더스만 들어간다면 제가 자신있었어요. 올림피아 제우스상을 잡았는데 역시 크고 알흠답게 승리. 음화화홧!! 승리에 심취해서 사진이 흔들렸습니다만 길게 늘어선 파랑과 보라 카드들! 스티비 원더가 보우하사! (1년만에 도장깨기 성공!)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엄숙) 더 이상 긴 말이 필요 없이 본 게임에 들어갑니다. 월풍 님이 1년간 기다려오신 그 게임.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 피곤해 하시는 히미끼 님은 구경, 피곤해 하시는 곰팡맨 님은 자유민족 (?), 월풍 님과 케빈 님은 사이좋게 암흑군단을 배정했습니다. 제 체력도 거의 바닥이었지만 천출력 맵과 피규어를 만지자 체력이 꿀럭꿀럭 차오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설명을 시작하자 더위 + 식곤증 + 이해안됨이 섞여서 마법의 졸음이 퍼져나갔습니다. 곰팡맨 님은 꿈뻑꿈뻑 졸고 있고, 케빈 님도 혼이 빠져나간 표정. 반지를 정말 하고 싶어하신 월풍 님만 집중해서 듣고 계셨습니다. ㅠㅠ 1시간 가량의 설명을 끝내자,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를 듣고 뛰어나가는 학생들 마냥 번쩍 일어나서 화장실로 또 바깥 바람 쐬러 나가시는 것 아니겠습니다. (너무 해.)


곰팡맨 님이 혼자 자유민족 하는 게 힘드실 것 같아서 옆에서 책사처럼 붙어서 지도를 해드렸습니다. 이미 반지의 전쟁을 해보신 월풍 님은 케빈 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며 플레이하셨습니다. 중간에 회색의 간달프가 안 죽고 서부의 의지 행동 주사위 결과도 안 나와서 백색의 간달프가 못 나오는 상황이 발생하고. 반지-운반자들은 꾸역꾸역 모르도르 트랙 위로 올라갔으나 월풍 님이 이끄는 암흑군단의 군대들은 강력했습니다. 곤도르 남부와 로한 전역을 밀어버리셨고, 로리엔도 밀리고... 결국 암흑군단이 군사적 승리로 게임을 끝냈습니다.


월풍 님 작업실에 화장실 (샤워 목적)과 드럼세탁기를 보자 아주 약간의 인간다운 삶을 원했던 저는 샤워와 세탁을 할 수 있겠냐고 부탁을 드렸고, 월풍 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는 샴푸가 없었고, 세탁기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커헉!) 저녁식사 시간도 되어서 외출하는 김에 샴푸와 드럼세탁기용 세제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낮에 봤던 "무봤나 촌닭"을 먹기로 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샴푸와 세제를 구입하는 바람에 근처에서 식사를 해결하게 됐습니다.



더워서 밀면을 먹었습니다. If you push...


케빈 님은 반지의 전쟁 도중에 리콜 당하셨고, 식사 후에 곰팡맨 님이 부산에 사는 친구집에 하루 묵는다고 하셔서 인물 행동 주사위 결과를 사용해서 곰팡맨 님을 반지 원정대에서 분리했습니다.


월풍 님 작업실로 들어가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월풍 님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드럼세탁기 청소를 하셨습니다. 씻고 나오니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 샤방샤방 (타락 점수 1이 치유됐습니다.) 히미끼 님이 씻는 동안에 세탁기 청소가 끝나고 저는 밀린 빨래를 돌렸습니다. (타락 점수 1이 또 치유됐습니다.)

셋이서 Innovation 이노베이션을 하려고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졸음이 쏟아져서 잠깐 자고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잠깐 눈은 감았다가 뜬 것 같았는데, 벌써 2시간이 지났다고. 세탁기는 이미 멈춰져 있었고, 월풍 님과 히미끼 님 두 분이서 이노베이션을 벌써 2게임이나 하셨다고 합니다. (믿을 수가 없어. ㅠ)


월풍 님이 간이로 만들어주신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개운한 기분으로 이노베이션 + 이노베이션 첫 번째 확장 3인플을 했습니다. 이 게임은 작년에 부산 왔을 때에 전파했던 게임인데요. 그 이후로 부산에 계신 분들이 종종 즐겨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노베이션을 참 좋아하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와요. 이날도 월풍 님에게 탈탈탈 털려서 핸드가 줄어들고, 두 분이 업적 열심히 쌓아 올리는 동안에 저는 뭘 한 걸까요? ㅠㅠ 이 게임은 마지막에 특별 업적을 획득하시면서 업적 하나 차이로 월풍 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이노베이션 얘기하다가 생각난 것인데요. 월풍 님은 이노베이션 스토리지 박스를 손수 만드셨습니다. 작업실 곳곳에 직접 만드신 소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등이라든지, (담요로 가려져서 안 보이지만) 우리가 게임을 했던 테이블은 "얼음과 불의 노래"에 등장하는 각 가문의 심벌이 그려져 있었죠. 케빈 님도 스토리지 박스 만드는 걸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월풍 님이 스승이신 듯. 두 분 모두 금손.



그 다음으로 제가 챙겨간 Dungeon Petz 던전 페츠. 아주 예전에 유행했던 다마고치 스타일의 몬스터 키우기 게임입니다. 밥 달라, 똥 치워달라, 놀아달라... 요새 유행하는 육아 프로그램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이죠. 보통 이 게임을 소개해 드리면 어떻게 해애 할지 감을 못 잡습니다. 크바틸 씨의 게임들이 굉장히 참신해서 기존에 없던 방식의 게임을 선보이기 때문인데요. 던전 페츠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던전 페츠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두 라운드 정도 지나면 감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냥 방식이 좀 낯설어서 그런 것뿐이죠. 이 게임도 제가 참 좋아하는데 성적이 안 나오는 것 중에 하나. 두 분은 50점 넘으셨던 것 같은데, 저만... ㅠㅠ



마지막 게임은 다시 반지의 전쟁이었습니다. 원래는 히미끼 님이 잠을 자야겠다고 빠지시려는 걸, 초반만 하시다가 피곤하시면 넘겨달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미리 말씀을 드리면 이거 때문에 히미끼 님이 잠을 못 주무셨습니다. ㅎㅎ

자유민족을 맡아서 꾸준히 반지-운반자들을 진행시킨 히미끼 님, 그리고 암흑군단으로서 가운데-땅을 정복해 나아가신 월풍 님. 제가 기억하기로는 반지-운반자들이 비운의 산 꼭대기에 도착해서 추적 타일이 뽑혔는데 "눈"이 나왔고 타락 점수가 "11"이 되면서 자유민족이 아슬아슬하게 이겼던 것 같습니다. 두 승부사의 게임을 지켜보는 저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남부지역 순회방문 도중에 히미끼 님이 월풍 님과의 게임을 자주 얘기하셨는데요. 게임을 잘 하시기도 하고 인상적으로 플레이하신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두 분이 바둑으로 한 판 붙는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사진에서도 보이다시피, 월풍 님 작업실에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월풍 님이 부인을 뵈러 가야 한다고 하셔서 먼저 떠나시고, 히미끼 님과 단 둘이 남은 상황. 잠을 조금이라도 자고 떠나야 할지 아니면 지금 떠나야 할지 고민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떠나야 터미널에서 식사를 마치고 어제 헤어진 동료와 다시 만나 함께 진주로 떠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잠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세. ㅠ)





다음 삼시세겜은 경상남도 진주편입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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