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 반의 네 번째 수업 날이었습니다.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이 아이들에게 어떤 게임을 소개해 줘야 할지'였습니다. Dog 도그로 큰 재미를 준 반면, Samurai 사무라이와 Carcassonne 카르카손은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든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규칙을 잘 설명해 주면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이들 스스로 '전략'을 세우기에는 전략 게임들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전략을 세우려면 규칙을 단순하게 '암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규칙 사이의 틈을 잘 발견해야 하고 나와 경쟁자의 '상대적' 이익을 잘 계산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부분에서 서툴러 보입니다. 이제 8, 9세 아이들인데 제가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것 같긴 하죠? ^^

그래서 저학년 아이들에 대한 일차 테스트는 이정도면 됐다 싶어서 이번 수업에서는 난이도를 대폭 낮추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토요일 밤을 하얗게 불태우고 (?) 약간의 잠을 자고 아이들을 만나러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12시 정각에 도착!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도착해서 건물밖에서 뛰놀고 있더라고요. 제가 문을 열자 아이들이 두다다다 달려들더니 오늘 누가 일등으로 왔고, 누가 이등으로 왔는지 서로 외치더군요. ^^;

테이블에 담요를 깔고 아이들을 보니 이번 수업에도 2학년인 기현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은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네 가지 원칙을 말해주고 시작을 했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이번 수업에서는 아주 교육적인 (?) 게임으로 선정했습니다. Las Vegas 라스 베이거스인데요. ^^; 아이들이 돈을 걸고 돈을 따는 건지 궁금해 했는데, 교육적인 (?) 게임 답게, 돈을 걸지 않고 돈을 딴다고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라스 베이거스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보드게임 수집가답게 alea 게임들을 열심히 모으고 있지만 이것보다는 먼저 나왔으면서 테마성도 더 좋은 Alea Iacta Est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훨씬 더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바로 시작하기에 어려울 것 같아서 라스 베이거스를 먼저 시켜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기현이가 빠져서 저까지 포함해서 4명이서 게임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룰을 설명하는데 아이들이 주사위를 만지작거리고 탑을 쌓느라 설명을 안 듣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제 기분이 좀 상해서 아이들한테 설명 안 듣고 나중에 모른다고 하지 말라고 얘기했는데, 그래도 주사위를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더라고요. 일단 2학년 재혁이부터 2학년 예슬이, 저, 1학년 한결이 순으로 앉아서 진행을 했습니다. 재혁이 턴이 끝나고 예슬이 차례가 되었는데 역시나 멀뚱멀뚱히 있더라고요. ㅡ_ㅡ;;;


역시나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을 관찰해 보니 이런 점들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크게 크게 지릅니다 (?). 특정 숫자의 주사위가 우르르 나오면 그것을 과시하듯이 그 숫자 주사위들을 사용하더라고요. 아직 자원 관리 개념이 서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 둘은 서로 맞불을 놓고 싸우는 것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한 명이 달리면 다른 아이가 달라붙어서 경쟁을 했습니다. 영향력 게임에서는 안 싸울수록 이득입니다. 이것 역시 아이들이 자원 관리 개념을 깨닫게 되면 좀 더 노련하게 싸우는 법도 알게 되겠죠. ^^


첫 번째 게임은 재혁이가 크게 승리했습니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한결이가 시작부터 저를 방해했습니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혼자 주사위 1개로 건져 먹으려고 했는데...;;; 중반 즈음 되니까 서로 얽히고 섥혀서 결국에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재혁이와 한결이, 저 이렇게 세 명이 주사위 1개 이내로 네 번째 도박장 타일에서 순위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재혁이와 한결이보다 1개 더 많은 상황이고, 한결이가 주사위 1개 남긴 상황이었죠. 저는 속으로
'제발 4만 나오지 마라.'
를 외쳤는데, 이럴 때 보면 행운의 여신은 참 얄궂지 말입니다. 4가 딱 나오네요. 저랑 한결이는 같이 망하고, 가만히 있던 재혁이가 건져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던 한 가지는, 두 번째 게임부터 아이들이 서로 안 싸워야 하는 이유를 조금씩 깨닫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게임을 할 때에 아이들이
"선생님, 여기다 놔요!"
라며 제게 (제가 생각하기에) 말도 안 되는 숫자 주사위들을 추천했는데 제가
"주사위 3개 써서 6만 달러 먹는 게 나아요, 아니면 주사위 1개 써서 3만 달러 먹는 게 나아요?"
라고 되묻자, 아이들이 조용해지더니 머리속으로 재빠르게 셈을 하더군요. 그 이후에 예슬이가
"선생님, 우리는 싸우지 말고 나눠 먹어요."
이러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예슬이가 두 번째 게임에서 승리했습니다.


세 번째 게임에서도 한결이의 보드게임 파이터 기질 덕분에 저와 함께 망하고, 재혁이와 예슬이가 각각 1, 2등을 하면서 수업이 끝났습니다. 한결이가 했던
'다음 차례 때에 주사위 굴려서 5 다섯 개 굴리면 돼요!'
의 말에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온 대사가 생각나더군요.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초난강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래쿠나. 무서운 쿰을 쿠었구나..."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7화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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