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익점

많은 분들의 응원과 걱정 덕분인지, 제 아이패드를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안에 있던 사진과 동영상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후기에도 정상적으로 사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네요. 이와 관련된 뒷얘기는 제6화에서 풀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약 3일간 머물렀던 부산을 뒤로 하고, 서면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버스터미널이 있는 노포 역까지 가야 했는데요. 오후 2시 50분에 여수로 가는 버스를 타기에 시간이 정말 간당간당했습니다. 못 타면 다음 차를 타면 되긴 한데, 일단 제가 약속한 시각이 오후 6시까지였거든요. 서면에서 노포까지 역이 좀 있었는데 제 예상보다 시간이 적게 걸렸습니다. 노포 역에 2시 40분 즈음에 도착했을 겁니다. 지하철 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몇 분 안 걸려서 늦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탈 버스는 여수행이지만 저는 여수보다 전인 여천에서 내려야 합니다. 버스에서 깜빡 졸다가는 더 먼 여수까지 가야 하니 알람을 맞춰 놓고 눈을 붙이기로 했죠.

여천에는 터미널이 있긴 한데 굉장히 작은 미니 터미널 (?)이 있습니다. 기사님이 큰 소리로 여천 내리라고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깨어 있다면 제때 내리는 건 어렵지 않죠. 여천에서 내렸는데요. 예전에 모임을 열던 천사 다방은 이제 없어져서 여수모임 분들은 다른 카페에서 모인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돈을 아끼려면 걸어가든가 해야 하지만 모임 장소가 예전보다 더 멀어졌고 날씨도 덥고 저한테 가방이 세 개였기 때문에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택시 기사님에게 모임 장소로 사용하는 카페 이름을 말씀 드렸는데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주소를 불러 드려서 위치를 아시도록 했습니다.

모임 장소인 카페 드 파리는 예쁜 색깔의 작은 카페였습니다. 안에 두세 테이블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계셨는데요. 어디까지가 모임 분들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딜 보나 보드게이머로 보이는 저를 다른 분들이 알아봐 주셨기 때문에 엇갈리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상당히 쭈뼛거리고 있었는데요. 카페 내부를 구경하면서 어색함을 녹이기로 했습니다. 제가 고양이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카페 안에 작고 예쁜 고양이가 있더라고요. 모임 분에게 나중에 들었는데, 원래는 그 고양이가 길냥이였는데 카페 사장님이 지극정성으로 돌봐서 지금은 사람을 잘 따르고 좋아하는 개냥이가 되었다네요. 그래서 사람을 보면 도망가지 않고 다가와서 얼굴을 부빕니다.




카페 안에는 한쪽에 보드게임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보드게이머 손님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여수보드게임모임 분들을 위한 사물함이 있었습니다. 여수보드게임모임을 줄임말로 "여보게"라고 부르시는 듯한데, 예전에 있던 책 제목이 생각나더라고요.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라는...;;;




6시가 다 되어서 여보게 분들과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차를 타고 가시길래 좀 멀리 나가야 하나 싶었는데 더워서 그러신 거라고... (차 속은 더 뜨거웠습니다. ㅠㅠ) 잠깐 가니까 한 식당이 나왔습니다. (가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 저희는 총 6명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두 명씩 같은 메뉴를 시켰고, 같은 메뉴 시간 사람들끼리 붙어 앉았습니다. 제 앞은 분이
"안녕하세요? 저는 여보게 모임장, Edward Elric (이하 엘릭)이라고 합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하셔서 저도 어디 모임장이라고 붙여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살짝 왔어요. ㅋㅋ (제가 여행 다니는 건 그냥 한 개인으로서 활동하는 거라...) 식당 주인께서 혼자 운영하시는 가게였고, 저희가 음식을 세 가지나 시켰고, 여기가 전라도이다 보니 반찬 가지 수가 많아서 상을 가져오시는 데에 오래 걸리셨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한 사람당 7,000-8,000원짜리 음식 시켰는데, 반찬 나오는 게 이정도입니다. (사진에서 잘렸지만 저 냄비 왼편으로 반찬이 두 가지 더 있었습니다.) 제가 밑반찬 많은 곳을 참 좋아합니다. 밑반찬만으로 한 공기 다 먹고 메인 요리로 또 한 공기 먹고 그런 식인데, 이날은 초면이라 제가 낯가림을 좀 했고 버스 타고 오느라 속이 아주 편한 상태가 아니어서 조금만 더 먹기로 했습니다. 저의 눈빛을 읽으셨는지 엘릭 님이 밥을 더 먹을 거냐고 물어 보셔서 더 먹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공기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어요. (초면만 아니었으면 저 혼자서만 한 공기 더 먹었을 텐데... ㅠ)



식사를 마치고 다시 카페로 돌아갔습니다. 두 테이블로 나눴는데요. 제가 뻘쭘해 할까봐 그러셨는지, 제가 있는 쪽에 엘릭 님과 Gamer 님이 와 주셨습니다. 제가 빌러너스를 밀고 있는데, 엘릭 님도 가지고 계셔서 여보게에서 어느 정도 전파가 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져간 나머지 게임, 타노스 라이징을 선택했습니다. 이제는 마블 영화가 대중적이어서 세계관이나 캐릭터 설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어서 정말 편합니다. 그렇게 3인플로 했는데, 중반 즈음에 위기가 좀 있었지만 무난하게 클리어했습니다. 다른 테이블에서 하시던 분들이 오셔서 저희 쪽 게임 (사실은 타노스 피규어) 구경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분 더 추가해서 네 명이서 간츠 숀 클레버인가 깐쇼 새우인가 아무튼 어려운 이름의 주사위 게임을 했습니다. 주사위빨X망 게임일 줄 알았는데, 살짝 깊이가 있는 게임이더라고요. 이날 처음 해 봤는데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칸 숀 클레버가 끝나고 다음 게임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보게 사물함 내부 구경을 좀 했고요. 게임 많이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ㅎㄷㄷ 취향이 갈려서 게임을 못 고르고 있자 제가 반지 얘기를 꺼냈습니다. Gamer 님이 불안한 눈빛으로 새벽에 하자고 미루셨는데, 저는 정신력이 멀쩡한 지금 배워야 덜 졸리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맞을 거면 (?) 먼저 맞아라...라는 생각으로...;;; 제 말에 묘하게 설득당한 Gamer 님과 보리 님, 그리고 시루 님이 반지 전쟁을 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긴 설명 전에 저는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보리 님이 반지 전쟁을 가져오셨던 것 같은데요. 카드 슬리브만 씌우시고 안에 비닐도 안 뜯으신 상태였을 겁니다. 비닐을 뜯고 국가별로 피규어를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주 긴~~~~ 설명을 끝냈는데, 이때 시각이 밤 9시 53분이었습니다. 제 예상으로 새벽 1시가 넘어서 끝날 것 같았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새벽 2시 즈음에 끝나더라고요. 게임 하시는 동안에 Gamer 님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시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셔서 더 안 하시겠다 싶었는데,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끝나고 바로 한 게임 더 하시더군요.




반지 전쟁 두 번째 게임이 끝나자 새벽 4시 38분이었습니다. 두 번째 판은 2시간 반만에 끝내신 거였죠. 반지 전쟁은 이렇게 라이트합니다. 제가 가운데-땅의 미니 빌이라고 말하는 게 거짓말이 아닙니다. ㅎㅎ 네 명이 되자 티츄를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티츄 정말 안 하는데요. 기록을 보니 제가 1년 11개월만에 티츄를 하게 된 거였습니다. 그런데 여보게 어느 분이 말씀하시기로는 여수에 티츄를 전파한 게 저라고 하시더라고요. 5년 전에 여수모임 분이 티츄 좀 알려 달라고 하셔서 제가 알려 드리고 가긴 했는데, 그 이후로 여수에서 엄청난 티츄 붐이 일었다고... (중국에 아편을 판 영국인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여수 분들에게 뭔가 큰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은... ㅠㅠ 근데 제가 거의 2년만에 티츄를 하니까 처음에 몇 장 받는 건지도 잊어 버렸습니다. ㅋㅋ 제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제 핸드에 폭탄이 있었는데 언제 써야 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못 썼어요. ㅋㅋㅋ 여러분도 약을 끊을 수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제가 있는 팀이 이겼습니다. ^^;;;



티츄가 끝나고 방황하시길래 제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반지 더 하라고 말씀 드렸는데, 정말 또 하셨습니다. 그거 끝나고 또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날 밤 사이에 반지가 네 번 돌아간 거죠...;;; 제가 목화 씨앗을 드린 줄 알았는데 대마 씨를 드렸네요. 허허허




반지가 끝날 때 즈음에 카페 사장님이 오셔서 놀라시더라고요. 밤새 게임 하실 줄 몰랐다면서요. 저도 밤새 반지 하시면서 밤새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차 안에서 쪄 죽을 뻔 했지만 근처에 있는 맛있는 돈가스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앉고 나서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왔습니다. 사이에 치즈가 들어간 맛난 돈가스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돌아와서 게임을 또 했습니다. 어센션 하고, 도블도 하고, 오트리오라는 뭔가 교육용 게임 같은 것도 했네요. 광주에 오후 6시까지 가야 해서 거기까지만 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다행히 여수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가 굉장히 자주 있어서 늦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맛있는 밥도 사 주시고, 밤새 반지를 재미있게 즐겨주신 여수보드게임모임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에 여수나 근처에 갈 일 있으면 또 들를게요. 그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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