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성숙 (feat. 영업 전쟁: 작은골맨 vs. 깊은골맨)

어제 멘탈이 부스러지는 일을 겪었습니다. 광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에 제 아이패드 미니를 잃어 버렸습니다. ㅠㅠ 4년 전에 히미끼 님과 대구에 들렀을 때에 버스터미널에서 모자도 잃어 버리셨다가 찾고, 지하철역에서 미역패드 (?)를 잃어 버리셨다가 찾고 하셨는데요. 제 미니도 잘 회수되길 바래야겠네요. ㅠㅠ


8월 1일 아침에 진주에서 출발해서 점심 때 즈음에 부산 사상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곳에 들르려고 이동했다가 다시 사상으로 돌아왔는데요. 사상에서 내려서 제 일정을 확인해 보니 수요일에 스머프2 님과 만나는 것과 토토로 님이 계시는 김해 익소모임에 가는 것이 겹쳐진 겁니다. 그래서 급하게 스머프2 님께 양해를 구하고 다음날에 들르겠다고 말씀을 드렸고요. 저는 부산에서 2시간 정도 여유시간을 벌고 김해로 가기 전에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예전에 어디에서 보니까 부산의 미X빌 보드게임카페에서 스완 슬리브를 판매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부산 가는 김에 그거 사러 들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사상에서 남포까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남포에서 내려서 이동해 보니 길바닥에 몇몇 연예인 이름과 풋프린팅이 있더군요. 신기했습니다.

세올, 언 두 (작업취소 Ctrl + Z 양반)?


그리고 몇 분 뒤에 그 작은 마을 (?)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요.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응? 무슨 소리?)



들어가자마자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 분에게 대뜸
"스완 슬리브 있나요?"
라고 여쭤 봤습니다. 한쪽에 걸려 있는 슬리브들을 보여 주셔서 저는 제가 원하는 크기가 있나 열심히 스캔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크기가 다양하지는 않아서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슬리브 살 거냐고 카톡으로 물어 보고 주문을 취합했습니다. 전날에 제 타노스 라이징과 고오오오오급 스완 플텍에 영업당하신 드렁큰히로 님이 몇 팩 원하신다고 하셔서 그걸 추가했고요. 몇 개 안 살 걸로 예상했던 직원 분이 제가 종이에 적어드린 어마어마한 양을 보시더니 바빠지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주문한 슬리브 양이 많아서 이날 택배로 보내기로 했고요.




그러던 중 저는 바로 옆에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됐는데요.
'으아아아니, 이것은?!'



그렇습니다. 제가 들어오기 전부터 저 반지 전쟁이 놓여 있었던 겁니다. 위에서 두 번째 사진을 다시 한 번 잘 보시면 보입니다. ㅋㅋ 이제부터는 제가 태세전환을 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리븐델 (깊은골)에서 온 사람인데요...

그 직원 분에게 가운데-땅의 최고의 워게임인 반지 전쟁을 개인용으로 구입한 건지 손님용으로 구입한 건지 여쭤 보고, 반지 전쟁 배워 보실 건지 여쭤 봤습니다. 아컴 시리즈도 좋아하셔서 이런 테마틱 게임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시간이 안 맞으셔서 이번엔 못 배우신다고 하시더군요. ㅠㅠ 이로써 이 영업 전쟁은 깊은골이 지고 작은골이 승리했다는...

이 다음엔 제가 김해로 가는 여정과 이어지고요.




부산으로 가시는 아카이브 님의 차를 얻어탔는데, 아카이브 님이 부산대 앞에 내려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스머프2 님이 밤 12시 반까지 기다린다고 하셨는데, 도착시간이 이미 2시 반이 넘었을 겁니다. 그래서 숙소 잡아서 편히 자고 오후에 스머프2 님의 던전 (?)에 들르기로 했죠. 주변을 검색해 보니 이상하게 모텔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까지 꽤 걸어야 하더군요. 지도를 보니까 이해가 되긴 했습니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더라고요. ^^;;; 아무튼 덥지만 걸어 가서 숙소를 잡고, 가는 길에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코인 런드리가 보여서 샤워만 대충하고 가서 땀을 많이 흘려서 냄새가 나는 빨래를 돌리고 말렸습니다. 열풍으로 말리니 뽀송뽀송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약간 몸이 피곤한 느낌은 있었지만 머리는 맑았습니다. (위치 선언으로 타락 점수 1점이 낮아졌습니다.) 아침에 한 번 더 씻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부산 올 때마다 돼지국밥을 먹곤 합니다. 엄청 특이한 음식은 아니지만 부산을 대표하는 지역 음식이라 여기 저기서 먹어 보고 싶어서요. 이때가 막 점심 때였는데요. 벌써부터 더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뜨겁고 매운 음식을 시켜서 제 온몸으로 육수를 뽑아내고 있었죠. ㅠㅠ



부산대에서 부산대 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둘러 봤는데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개인 미션: 반지를 더 (전파) 하라


저는 날씨를 버티질 못 하고 서른한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아서 죽치고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진짜 너무 더워서 안 사 먹고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ㅠㅠ 오후 3시가 가까워져서 슬슬 스머프2 님의 가게로 이동했습니다. 부산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실수로 사진을 찍었는데 느낌이 좋아서 올려 봅니다. (여자 분을 찍으려고 한 게 아니라 카메라 앱을 켜다가 촬영 버튼이 저도 모르게 눌려서...)



오후 3시에 정확히 맞춰서 스머프2 님의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스머프2 님과 인사, 근황 얘기를 했습니다. 스머프2 님을 직접 만나 본 분들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하시겠습니다만, 스머프2 님은 좀 별납니다. 유니크해요. ㅎㅎ 말씀도 많이 하시는 편이고요. 저도 유니크합니다. 지금엔 예전보다는 덜 합니다만, 말도 많고 많이 나서고 남들이 잘 안 하는 걸 궁금해 하고 직접 실행하는 편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가만히 있었으면 그냥 넘어갈 일을 괜히 크게 많들어서 욕을 먹기도 하고요. 스머프2 님과 근황 얘기를 하면서 동병상련이라고 느끼고 있었던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심적으로 많이 힘듭니다. 비슷한 부류가 많지 않으니 어디다가 속내를 토로하기도 어렵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부산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스머프2 님을 꼭 뵈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서로 투 머치 토크를 하고 난 후에 속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스머프2 님이 전날에 몸이 안 좋으셨는데, 제가 김해 일정 때문에 하루 미뤄서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미리 잡아 놓으신 마작 멤버들 모임이 있으셔서 저는 근처 구경을 하러 나갔다가 밤에 다락으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부산대 앞까지 올라가며 동네 구경을 했습니다. 올 때마다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서 제가 하고 싶을 걸 제대로 못 하고 가는데, 다음엔 일정을 더 여유있게 잡아야겠다고 또 다짐을 하게 되네요. 부산대 앞에서 밀면을 먹고, 졸려서 다락으로 일찍 올라가서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밤 11시 즈음 되어서 스머프2 님이 깨워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돌아다니면서 다른 분들이 제게 해 주시는 공통된 말은,
"굉장히 피곤해 보이시네요."
"깊이 주무셨네요."
였던 것 같습니다. 이날도 들었던 것 같아요. 스머프2 님과 가깝게 지내는 두 분과 함께 뒷고기를 먹으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숙취가 덜 한 대나무술을 곁들여 가며 또 얘기를 나눴습니다.




스머프2 님은 많이 퍼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해 보더라도 자기 것을 내어 주는 분이거든요. 온오프라인 상에서 어떻게 보면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 주십니다. 가게 놀러오는 손님들한테 외상도 해 주고 그러시거든요. 돈이 떼이는 경우가 종종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이 자리에 동석한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경영은 다른 사람들에게 씨가 나지 않는 씨를 팔아서 고객을 영원히 내 울타리 안에 가두는 건데 (스머프2 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
라고요.

부산대 앞에도 보드게임카페가 몇 개 더 생는데, 이건 다른 중심가들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생길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계속 늘겠죠. 시간비례요금을 택하고, 손님들에게 음료를 강매하고, 손님들에게 쉽고 간단한 게임들을 위주로 추천하면 돈을 보다 쉽게 벌 수 있을 겁니다. 경영의 측면에서는 그게 더 옳은 길일 겁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SNS가 유행하는데 화려함을 버리고,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는데 가게로 찾아온 손님들을 합석시켜 주는 스머프2 님은 분명히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계신 겁니다. 경영의 눈으로 봤을 때에요.

조금 다른 얘긴데, 2000년대에 보드게임 카페 과포화상태가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보드게임 한글판 시장도 과포화상태가 곧 오거나 어쩌면 그 상태에 벌써 진입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겉모습이나 부풀려진 성과 때문에 양적 성장의 이면을 제대로 못 볼 때가 많습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게임에 나오는) 포템킨 마을에 속는 예카테리나 2세처럼요. 많은 업체들이 생기고 경쟁하는 덕분에 보드게이머들이 더 많은 한글판을 접할 수 있게 됐는데요. 우리는 과연 쏟아져 나오는 한글판 게임들을 다 소화할 수 있을까요? 게임을 숙지하는 것도 그렇게 구입/소비하는 것도요.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게임들을 했다는 글이 올라오지만 오늘도 나는 룰북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룰 숙지로 내일로 미룹니다. 누군가는 게임을 몇 백 개를 가지고 있다는데, 나는 주변에 게임을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모으던 게임들을 중고시장에 내 놓습니다. 소비자들은 게임이 저렴한 가격에 나왔다고 반기지만, 많은 것을 쥐어짜야 하는 보드게임 업체들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박봉과 과도한 업무에 보드게임 회사를 떠나기도 합니다.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도 예쁘고 화려한 포템킨 마을의 판자를 떼어내면 곯고 있는 것들이 보일 겁니다. 외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내적 성숙도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 보드게임 업체들 중 일부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보다 다른 쪽에 눈을 돌리기도 하죠. 한국에서 교육시장은 금화를 싸는 당나귀이다 보니 교육용 게임을 만들거나, 보드게임을 교육하는 데에 집중하는 곳도 있죠. 짧은 시간의 교육으로 자격을 부여하기도 하고, 자기 회사의 게임들로만 채워진 커리큘럼으로 교육에 사용하고요. 물론, 보드게이머들의 시각과 비보드게이머들의 시각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드게임 모임에서 활동해 보신 분들은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비보드게이머들에게 문화 충격을 줄 만큼 근사하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게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명작으로 손꼽히는 그런 게임들을 중심으로 새내기 회원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잖아요? 그런 게임으로 교육용 커리큘럼을 만드는 게 한국의 보드게이머들을 더 많이 길러내기 위해 더 바람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게이머인 제가 봤을 때에는 그게 성숙입니다. 보드게임 시장을 오로지 업체들의 손에 맡겼을 때에 과연 이 시장이 성숙할 수 있을까요? 업체가 해야 할 일도 있지만 게이머들이 해야 할 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업체가 할 수 없는 일이거나, 또는 업체들이 하면 변질될 우려가 있는 일 말이죠. 업체들이 끌고 가려는 방향이 잘못된다면 게이머들, 소비자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서 그 방향을 정정하게 만들어야 할 겁니다. 우리가 돈을 내야 하니까요.


저는 다음날에 오랜만에 월풍 님을 만나야 해서 2차 자리에는 가지 못 했습니다. 전날 묵었던 모텔로 돌아가니
"혹시 어제도 오신 분이 아니세... (말잇못)"
라며 얼굴을 너무나 잘 기억하시더라고요. 저는 겸연쩍은 얼굴로
"밤에 술 마셨더니 오늘 못 올라가서 내일 가려고요."
라고 둘러댔습니다. ㅋㅋ


아침에 씻고 월풍 님을 만나러 서면으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월풍 님을 뵙고 국밥 먹고 차 마시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여수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해서 오후 2시까지 길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는데요. 역시나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월풍 님이 보드게임 디자인을 하고 계셔서 다음에 만날 때에 그 얘기를 좀 더 나눠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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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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