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열하루간의 삼시세겜을 정리하며...


왠지 이 분이 나와야 할 것 같지만 나오시지 않습니다.

삼시세겜의 마지막 열세 번째 편은 셀프-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Q. 삼시세겜 마지막 편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A. 아, 네. 그냥... 음... 푹 쉬었어요. ㅎㅎ 삼시세겜이 여행 + 보드게임 포맷인데 어쨌거나 짧지 않은 열하루 일정 동안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여행이라 심신이 지쳤거든요. 게다가 삼시세끼 다녀와서는 밀린 후기 올리느라 몸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음이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계~속 쉬었습니다. 집 나갔던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요. ㅎㅎ


Q. 작년 (뜻밖의 방문)과 올해 (삼시세겜)이 많이 달랐을 텐데, 어떻게 달랐나요?
A. 몇 가지가 달랐죠. 뭐, 첫 번째로, 모임 곳곳을 다니면서 게임을 전파하는 목적이 있었는데, 작년은 반지의 전쟁이 주였고 올해에는 반지의 전쟁에 비한 비중을 많이 낮췄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솔직히 반지의 전쟁의 국내 인지도가 낮았잖아요? 플레이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게시판에서 듣는 사람은 없는데 저만 떠들고 있는 느낌? ㅎㅎ 그런데 일년 사이에 변화가 눈에 띠게 일어난 것 같아요. 룰북 보면서 혼자 익혀서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저한테서 배우신 분이 다른 분한테 가르쳐 주셔서 알게 되신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보드게임 커뮤니티에 글이나 사진 올라오는 게 늘어났죠.

두 번째로, 소위, "반지 원정대"라고 불린 여행을 같이 한 일행이 있었다는 거? 이게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가장 큰 변화일 것 같아요. 혼자 다녔을 때에는 편했어요. 워낙에 주변 눈치 안 보고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해서. ㅎㅎ (영화관도 혼자 가서 보는 타입이에요.) 그런데 이번엔 히미끼 님하고 곰팡맨 님 두 분과 함께 다녔는데요. 숙박 문제가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혼자면 아무 데서나 누워서 자고 (;;;) 그럴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그렇게 시킬 수가 없잖아요. ㅋㅋ 다행히도 곰팡맨 님하고 같이 다닐 때에 부산 다락에서 신세를 지고, 또 곰팡맨 님이 부산 친구분 댁에서 잘 주무시다 오셔서 잘 해결됐어요.

하나 더 꼽자면, 방문한 모임 수가 늘었다는 것도 있네요.


Q. 본론으로 들어가서, 각 모임에 대한 비교 내지는 특징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요.
A. 으하핫. 이거 잘못 얘기하면 ㅋㅋ. 일단, 저도 살아야 하니까 (?) 출구부터 만들어 놓고 얘기하죠. ㅎㅎ 모임마다 특징이 있는 게 당연하고요. 근데 이게 조금만 잘못 얘기해도 줄세우기가 될 수 있어서 말하기 껄끄러운 것도 사실이에요. 수평적인 비교를 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워낙에 수직적으로 배열하는 거에 더 익숙하니까...

진주에서 카페 안에서 히미끼 님과 곰팡맨 님과 같이 밤을 샐 때 모임과 모임장에 대한 얘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보드게임 모임이 "보드게임+사람"일 것 같지만 결국엔 "사람+사람"의 구조거든요. 모임에서 누가 주도를 하는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많은지에 따라 그 모임의 성격이 결정된다고 봐요. 아무리 모임에서 수평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해도 그건 형식일 뿐이지 실제로는 의견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그 모임에 배어난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모임에 대해 접근할 때에 그 모임을 주도하는 멤버들에 대해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해 보이더라고요. 제가 서론을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게, 삼시세겜 일정이 한정되어 있어서 시간을 충분히 할당하지 못한 곳에서는 제가 파악을 제대로 못 했을 수도 있어서...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전주... 같은 경우는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일정이 길었어요. 다른 모임보다는요. 시간은 충분했다고 보고요. 전주 같이놀다가게는, 이런 비유를 해도 될까 모르겠는데요. (부모님이 외출 중이신) 친구집이나 학창시절 동아리방 가는 느낌이에요. ㅎㅎ 그래서 방문하면 마음이 진~짜 편해요. 게임 하다가 피곤하면 드러눕고~ 배고프면 먹을 거 마실 거 먹고~ 그런 분위기가 같.놀.가.의 핵심 컨텐츠라고 봐요.

여수 모임은 일반 카페에서 모임을 하거든요. 장소가 많이 제한적일 수 있는데 여수 분들한테 듣자하니, 지방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소문이 금방 돌기 때문에 가게들이 저자세라고 하더라고요. 안 좋은 소문 나서 손님 떨어질까봐요. 그래서 (테이블이 정말 좋은) 일반 카페에서 장시간 게임을 해도 눈치가 안 보여서 부러웠어요! ㅎㅎ (제가 일반 카페에서 보드게임하다가 쫓겨난 경험이 많거든요.) 여수 모임 분들이 보드게임에 대한 열의도 대단하시고 게임할 때에 유쾌해서 여수 다녀올 때마다 좋은 기운을 받고 오는 것 같아요.

부산...은 복잡한 현지 사정에 의해서 모임이 여럿으로 쪼개져 있어요. 뭔가 중국 춘추전국시대같은. ^^;; 제가 시간이 더 있었으면 부산에 있는 다른 모임들도 가봤을 텐데, 지금까지는 부산 다락하고 월풍 님 모임밖에 못 가봤어요. 부산 다락은 던전이죠. ㅋㅋㅋ 피부색이 파란 던전 주인 (?)이 맞아주는 곳? 분명히 지상 4층인데 지하인 것 같은 느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뭔가 압도되는 것 같은 특유의 기운이 있어요. 스머프 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무게중심이 약간 마작 쪽으로 가 있어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 같기도 해요.

월풍 님은 뭐랄까... 보드게임하는 신선의 느낌이 있으셔서 같이 게임을 하면 플레이하시는 게 기대된다고 할까요? 네, 그런 느낌. 월풍 님하고 케빈 님 두 분이 서로 친하신데, 두 분 다 손재주가 좋으셔서 만드신 작품들 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아, 올해 느낌은 "많이 더웠다"?! ㅋㅋㅋㅋㅋ


Q. 올해에 처음 방문하신 곳들이 다섯 곳이나 있었는데, 느낌이 어땠나요?
아... 한숨 좀 쉬고요. ㅋㅋ 처음 방문하는 곳이 많아서 일정 조절하느라 힘들었어요. 이동 거리도 엄청 늘었고, 경비도 비례해서 늘었고요. 바로 앞에서 언급한 이미 방문한 적이 있는 세 곳과 비교를 하면, 검증 안 된 게임을 구입하려고 할 때의 두려움? 셀렘? 그런 감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방문 계획을 세울 때에 손익계산을 먼저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이 만큼의 시간, 돈을 투자해서 가는데, 재미없으면 어쩌지?' 이런 거요.

그게 이 다섯 곳 중 처음으로 방문했던 광주광역시에서 터졌던 것 같아요. 날씨 엄청 덥고, 교통 불편하고,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심신이 피곤하고, 모임에 기대했던 것과 실제 느낌이 다르니까 부정적인 인상을 많이 받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가봤던 다른 보드게임 모임들에서는 모임 사람들하고 대화할 시간이 꽤 있었어요. 게임 고를 때라든지 밥 먹으러 나가거나 밥 먹을 때라든지요. 저는 보드게임 모임에서 이렇게 게임하지 않고 사람들하고 얘기하느라 소비하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에서 제가 말씀 드렸듯이 저는 보드게임 모임이 "사람+사람" 구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저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서 "우리는 잡담하느라 시간 보내는 게 싫다."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 광주 보드리아 모임이 가지는 모임의 철학과 제가 중요시하는 게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광주광역시편에서 마지막에 제가 독자들께 던진 질문에서 드러났던 것 같아요.

진주는 일정에서 빠질 뻔 했는데 드렁큰히로 님이 건 퐁퐁특수통닭에 제가 넘어가서 일정에 넣었어요. ㅋㅋ 여행 경로가 여수에서 부산 갔다가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진주 일정 때문에 한 번 역주행을 해야 했거든요. 경비가 한정되어 있어서 진주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 드리면 "가길 잘했다"였어요. 지방 소도시에 있는 모임이라 보드게임을 할 여건이 큰 도시 모임에 비해서 어려운데 슬기롭게 잘 헤쳐 나아가고 계셔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보드게임할 장소를 잘 섭외해서 모임을 꾸준히 잘 이끌어 오고 계셨고요. 모임 분들이 쾌활하셔서 게임할 때에 분위기도 좋더라고요. 진주 모임을 보면서 제가 모임 처음 만들 때가 생각나서 제가 오히려 활력을 얻어온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구미 모임도 진주 모임만큼 저에게 긍정적인 충격을 주었어요. 구미에 보드게임을 하려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을 줄 상상도 못했거든요. 일반 카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새벽 시간까지 게임을 해요! 와... 컬쳐 쇼크. 그 자체였어요.

마지막으로, 대구의 두 모임 황금네거리 모임과 삼삼오오 보드게임 연구회는, 이렇게 비유를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황혼의 투쟁"에서의 냉전 분위기여서 좋은 쪽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같이 다녔던 멤버들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요?
A. 제가 여행을 빡세게 하는 타입이라 두 분한테 너무 고생만 시켜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어요. ㅎㅎ 히미끼 님은 작년에 며칠 신세를 지면서 밥도 같이 먹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같이 하면서 꽤 친해졌어요. 같이 며칠 지내다 보니까 히미끼 님이 생각이 깊으시다는 게 느껴졌어요. (저는 생각없이 막 던질 때가 많은데... ㅋ) 올해 만났을 때에 작년에 비해 뭔가 좀 무겁다 싶었는데 여행 중에 얘길 들어보니 고민이 많으시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해답을 찾으셨는지 궁금하네요.

곰팡맨 님...은 사실 처음에 보드라이프에서 쪽지를 받았을 때에 성별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전혀요. ㅎㅎ 왜냐하면 무더운 7-8월 날씨에 처음 보는 사람하고 며칠 같이 다니면서 고생하는 몰골 (?) 보여줄 만한 여성분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디스 아닙니다~) 그래서 부산 다락에서 처음 뵈었을 때부터 내색은 안 했지만 좀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려서 가까워지기 전까지 말을 잘 안해요. 그리고 곰팡맨 님이 동영상 열심히 촬영해서 올리신 걸로 유명하시던데, 제가 한 편도 보지 않아서 그 명성 (?)을 전혀 몰랐어요. ^^;;;

조금 다른 쪽으로 얘길 하자면, 곰팡맨 님 덕분에 여성 보드게이머들에 대한 생각이 좀 깨어나게 된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얘길 할 때에 여성을 배제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특별하게 대우를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커뮤니티) 안에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다' 이런 식으로 좀 편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요즈음 PC 게임하는 여자 분들이 적지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보드게임 하는 여자 분들도 계속 많아지고 있는데 보드게임 모임에서도 여성 회원에 대해서 특별한 시선이 아니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산에서 산삼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요. 주위가 계속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옛날 사고 방식으로 변화를 못 느끼거나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곰팡맨 님 덕분에 그런 변화를 감지하게 되어서 감사했어요.


Q. 인터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끝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지요?
A. 음... 두 가지 얘기를 더 하고 싶네요. 하나는 보드게이머들과 관련이 있고, 나머지는 보드게이머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에요.

보드게임 카페에서 수익 모델은 현재 두 가지라고 봐요. 하나는 공간 사용료, 나머지는 음료 판매를 통한 마진 이렇게 둘이죠. 공간 사용료는 머문 시간에 비례하도록 책정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곳은 그냥 특정 시간 동안 고정된 금액을 지불하게 되어 있기도 하죠. 음료는 일반 카페에서도 마시기 때문에 보드게임 카페에서 자의에 의해 (또는 강제로) 사 마시는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반대로 보드게임 카페의 지출 중에 대부분은 직원들 인건비에요. 보드게임을 매달 열심히 구입하는 곳이 게임 구입비용도 약간 있겠지만요. 직원을 뽑아서 게임을 가르치고 설명을 잘 하게끔 훈련시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교육에 돈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니까 비용이 발생하는 거라고 보는데요.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해주는 게임 설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봐요.

우리나라 보드게임 카페에서 게임 설명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추가로 비용을 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그 비용을 아까워 해서 할리갈리나 젠가 같은 게임만 할 가능성이 있어요. 아니면 보드게임 좀 아는 친구를 데려와서 대신 설명을 해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지금 그런 돈을 내면서 게임을 배우라는 얘긴가요?"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저는 "게임 설명 서비스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라고 여쭤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보드게임 카페에 생긴 이래로, 이 낯선 문물을 전파하기 위해서 보드게임 카페들이 계속 넙죽 엎드려서 손님을 맞이했는데요. 그 때문에 본인들이 인정받아야 할 어떤 가치를 공짜로 만들어 버렸어요. 어디서 들었는데, 우리나라 스타트업 하려는 사람들이 본인들의 인건비를 빼고 초기 사업을 구상한다고 지적하는 분이 있었어요. 스스로 열정페이를 선택한 꼴이죠.

유럽 여행 가면 현지에 음식점에서 물을 시켜도 물값을 따로 내야 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뭐? 물값을 따로 받는다고?!"라며 놀라도 며칠 지나면 한국에서 우리가 공짜로 치부했던 것들이 사실은 공짜가 아니었고 누군가가 그 비용을 감수해 왔음을 알게 되는 거죠.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 비용을 대신 내줄 뿐이죠. 보드게임 카페에 가서 내가 전혀 몰랐던 것을 누가 적게는 십여 분, 길게는 수십 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해 주면 그건 공짜가 아닌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각 게임은 설명에 거의 고정적인 시간이 들어가요. 반지의 전쟁 같은 경우는 설명에 60분 정도 필요한데, (만약 비용을 책정한다면) 설명을 듣는 두 사람이 그 설명에 대한 비용을 나누어 내는 게 합리적인 계산법이 아닌가 싶어요.


구미 모임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한글화 자료와 저작권 얘기를 나눴던 적이 있어요. 촐킨 확장 한글화 자료 얘기에서 어쩌다 보니 저작권 얘기까지 하게 됐거든요. 우리나라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공론화하기에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 같아요. 그래서 항상 제대로 된 얘기를 나눌 수가 없고, 종국에는 누군가는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끝나더라고요.

저도 한글화 자료를 만들고 있고, 또 어떤 이유 때문에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보드게임과 관련해서 저작권이 분명히 있고, 그 저작권이 퍼블리셔가 가지고 있거든요. 일반적으로 게임의 규칙 그 자체에는 저작권 같은 게 없는데, 게임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들 일러스트레이션, 아이콘 등에 저작권이 걸려 있어요. 또, 세계관이 있는 게임은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고유명사 같은 것에도 저작권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룰북만 보더라도 텍스트에는 저작권이 없는데, 그 외에는 저작권이 있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텍스트만 있는 자료는 무성의하고 질이 낮은 것으로 평가하는 것 같아요. 보드게임긱에서 퍼블리셔에서 만든 게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한 자료들에 원본과 같은 레이아웃을 입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에요. 작은 퍼블리셔라면 저작권에 대해 관대한 편인데 큰 회사들은 안 그렇거든요. 제가 한글 룰북이나 한글화 자료 만들려고 퍼블리셔에 물어보면 자기네 레이아웃이나 이미지를 못 쓰게 하는 곳도 있어요. 저작권이나 다른 업체와의 계약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번역한 7 원더스와 확장 룰북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저작권 얘기하면 한글화 자료 만드시는 분들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기도 하시죠. 그런데 제가 얘기하려는 건, '우리가 저작권을 알고 한글화 작업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요. 분명한 것은 번역된 한글 룰북이나 한글화 자료가 한국에서의 보드게임 판매량에 영향을 줍니다.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하더라도 실생활에서 영어를 읽으면 게임 진행의 속도가 느려지니까요. 열심히 작업한 것들이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한국적인 사고방식에 빠지다 보면 우리들 자신이 법 앞에 무방비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의 보드게임 저변이 확대되고, 한국인 게임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작품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그에 맞춰서 우리들 머리 속에 있는 보드게임에 대한 인식도 함께 발전하고 있는가?'에 대해 한 번쯤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한글화 자료를 만들어라 또는 만들지 마라"라고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인식이 발맞춰서 따라가고 있나 그렇지 않나"를 말씀 드리는 거에요. 그리고 몇 년 후를 내다보고 스스로 최소한의 방어는 해야 한다는 것도요.


Q. 정말 끝으로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을 하실 건가요?
A. 매년 일정이 늘어나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시간을 길게 내기도 어려워요. 저에게 특별한 여행이어서 또 하고 싶긴 한데요. 내년에는 가급적이면 여름, 겨울로 나눠서 짧게 짧게 다니고 싶어요. (한여름에 대구 다녀오고 나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아, 여행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한 모임에서 이틀 이상으로 길게 머물면서 현지 모임 사람들하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일정에 쫓겨 다니니까 지치는 감이 없지 않거든요. 시간적으로 여유있게 놀고 싶어요. ㅎㅎ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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