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반지 무도회 (?)

새벽에 deep 님이 차로 구미에서 대구까지 태워다 주셨습니다. 차에서 내려서 히미끼 님과 고민을 했습니다. 사우나에서 하루 버틸 것인가 아니면 PC방에서 버틸 것인가? PC방에서 밤을 새면 저는 밀린 후기 쓰면서 시간을 보내도 되는데, 히미끼 님은 딱히 할 거 없어서 잠이나 잘 거라고 하시니까 PC방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도 후기 쓰는 거 아니면 굳이 PC방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사우나로 갔습니다. 간단하게 씻고 내부에 비치 벤치가 있길래 거기서 잤어요. ㅎㅎ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오전 10시가 넘었던가? 그랬을 겁니다.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 보니 히미끼 님은 이미 옷까지 다 입으시고 소파에 앉아서 미역패드를 꼭 안은 채로 잠들어 계시더군요. 아마도 소파에서 계속 주무신 것 같았어요. 히미끼 님을 깨워서 사우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여름 대구의 날씨. 히미끼 님에게도 얘길 했습니다만 '아직 더위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뿐'... (에레보르에 잠들어 있던 스마우그처럼;;;) 기온이 서~서히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사우나 건물 1층에 커피전문점이 있길래 커피 드시자고 했더니 히미끼 님이 거절을...? 피곤해 보이시는 히미끼 님이 시원한 커피 드시면 컨디션이 좀 더 나아지실 것 같아서 히미끼 님 드릴 커피와 제가 마실 초코를 샀습니다. 여기도 가격이 저렴해서 큰~ 컵으로 주더라고요.

히미끼 님이 한 동네 주문에게 길을 물어서 지하철 역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저는 지도를 보고 찾는 걸 좋아해서 '아, 내가 길을 잃었다.'라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절대 남에게 길을 안 물어보는데, 히미끼 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ㅎㅎ

현재 위치를 보니 3호선 거의 끝인 팔거역 (?). 목적지는 정반대편인 황금역. 가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가는 동안에 아이스버거 님께 연락을 드렸죠. 아, 우연찮게 로보카 폴리 테마 전철을 타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엄청 좋아해서 전철 내외에서 사진을 많이 찍더라고요.



이번 여정에서 (망한) 선언 시리즈가 많았습니다. 스머프2 님의 "아무 때나 오이소", "(레지스탕스: 아발론)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심더", 드렁큰히로 님께 말씀 드린 "1시간 일찍 나와주세요", 구미 원정에서의 "도착 시간 알려주시면 맞춰서 나가겠습니다" 등등. 이 날도 저희가 그 선언 시리즈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원래 모임 시각 오후 1시에 맞춰서 만날 계획이었으나 저희가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싶어서 약속 시간을 정오로 당겼는데요. 어쩌다 보니 히미끼 님하고 이야기 주머니가 터져서 전철 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다 보니 전철이 종점에 와 있는 겁니다. ㅎㅎ 그래서 다시 네 정거장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이미 정오가 지난 건 당연한 일이었고요.

황금 역에 내려서 히미끼 님이 화장실에 가신 동안에 역무원에게 궁금한 걸 하나 물었습니다.
"전철 타고 오다 보니까 가끔씩 창문이 막으로 가려지던데 그거 왜 그런 거예요?"
히미끼 님하고 둘이 전철 타고 오면서 이게 너무 궁금했었거든요. 저희 말고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 하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진짜 너무 궁금해서 물어봐습니다. 대답은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 가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

전철 역 아래로 내려가니 (안경 쓴) 지네딘 지단 선수처럼 보이는 아이스버거 님이 보였습니다. 새벽에 왜 일찍 가셨나 궁금했는데 오전에 축구 동호회 때문이었다고. 몸 위주로 쓰는 축구와 머리 위주로 쓰는 보드게임이 서로 끝과 끝인 것 같은데 두 취미를 모두 다 하시는 아이스버거 님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잠도 얼마 못 주무셔서 피곤하실 것 같았는데 말이죠. 아이스버거 님이 점심 메뉴를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 히미끼 님과 둘이서 아이스버거 님 뒤로 보이는 맥도널드를 보며, 혹시라도 아이스버거 님이
"대구의 명물, 빅맥 세트 드시죠?"
이러시지 않을까 살짝 불안했는데요. 다행히 맥도널드 쪽으로 안내하지 않으셨습니다. ㅋㅋ




더운 대구의 길 위를 몇 분 동안 걷자 왠지 모르게 보드게이머들처럼 보이는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사실은 오원소 님이 올리시는 동영상의 주인공 어린이 (찬희 군)을 발견해서 알아봤습니다. 오원소 님과 대구 황금네거리 모임 분들이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할 식당으로 들어왔는데요. 메뉴는 돼지갈비찜. 매운 정도가 4단계까지 있었는데, 제가 있는 쪽은 2단계였던 것 같고, 술을 드실 오원소 님과 히미끼 님이 계신 곳은 화끈하게 만렙으로 고르셨습니다. ㅎㄷㄷ 4단계가 맵긴 매웠는지 히미끼 님이 많이 못 드시더라고요.



식사를 마치고 황금네거리 모임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도중에 수퍼에 들러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면서 왔네요.) 아이스버거 님도 War of the Ring 반지의 전쟁을 가져오셔서 처음으로 반지의 전쟁이 두 테이블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저의 반지의 전쟁 규칙 설명을 1시간 정도 들으시고 멘탈을 회복할 5분간의 휴식을 마친 후에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히미끼 님이 오원소 님과 다른 한 분의 경기를 봐 드렸고, 제가 아이스버거 님과 minorityb 님을 봐 드렸습니다. minorityb 님을 수원에서 뵌 적이 있는데 멀리 대구에서 뵙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minorityb 님은 특이하게 원정대를 거의 보내지 않고 자유민족을 전투적으로 플레이했습니다. 서로 투닥투닥 소규모 전투가 자주 발생했고, 다른 한 분과 같이 진행하시던 아이스버거 님 팀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암흑군단을 방만하게 (?) 운영했습니다. 초보자들이 보기에 암흑군단이 엄청 강한 것 같지만, 꽤 많이 플레이해 본 저의 관점으로 암흑군단의 약점을 상대에게 그대로 노출하는 모습이 보여서 저는 암흑군단의 플레이가 너무나 불안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사루만을 보호하던 오르상크의 군대가 포즈 오브 이센에 잘 모인 로한군을 공격했습니다. 저는 이때에 사루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오르상크 군대가 전멸하면서 사루만도 죽었고, 다음 행동에서 오르상크가 로한군에게 점령당해 버렸습니다. (오르상크가 점령당하는 거 정말 오랜만에 봤습니다.) 그리고 아이스버거 님과 같이 하던 분은 약속 있다면서 먼저 가버리셨...;;; (제 개인적으로 도중에 가실 분들이 게임을 대충 운영하고 가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남은 분이 똥 치워야 하거든요.) 옆 테이블의 히미끼 특파원에 따르면 오원소 님의 자유민족이 삼연병 삼연속 엔트 카드를 맞으면서 사루만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양 테이블 모두 사루만이 없는 상태, 암흑군단에게 먹구름이 낀 것은 분명했습니다.

결국 오원소 님도 군사적으로 승리, minorityb 님도 군사적으로 승리하면서 자유민족들이 모두가 승리했습니다. 오원소 님은 손에 엔트 카드 3장이 다 잡히면서 (게다가 상대는 처음하는 분이어서) 게임을 매우 유리하게 가져갔던 것 같고, minorityb 님 테이블은 초반에 아이스버거 님 팀이 비효율적으로 대충 운영한 탓에 게임 내내 질질 끌려 다니며 좀 지루한 경기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반지의 전쟁이 끝나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 근처에 있는 국밥집으로 향했습니다. 찬희 군은 계속 곰탕이 먹고 싶다고 해서 꼬리곰탕을, 어른들은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 (히미끼 님은 소주도.)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해도 떨어져서 어둑어둑하니 분위기와 잘 맞는 게임을 골랐습니다. Betrayal at House on the Hill 언덕 위 집에서의 배신. 히미끼 님까지 7인이어서 히미끼 님이 찬희 군을 돕기로 했습니다. 극적으로 찬희 군이 배신자로 드러나서 배신자 시나리오를 읽기 위해 히미끼 님이 찬희 군을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를 이 집으로 데려온 찬희 군은 크림슨 잭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마의 친척. 찬희 군은 크림슨 잭을 불러서 영웅들을 도륙할 계획을 세웠지만 우리 영웅들은 크림슨 잭을 무찌를 수 있는 저주받은 무리를 연구해서 크림슨 잭 일당을 저지하며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같이 게임했던 두 분이 댁으로 돌아가시고 오원소 님과 찬희 군, 아이스버거 님, 히미끼 님,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냥 가기 아쉬워서 마지막 게임으로 7 Wonders 7 원더스를 했는데, 결과가 기억나지 않는 걸로 보아 제가 승리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게임이 끝나고 보드게임 모임 운영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는데, 거의 2시간 가까이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끼리 재미없는 (?) 이야기를 하자 찬희 군이 지루해서 계속 집으로 가자고 했는데, 오원소 님이 계속 찬희 군을 달래며 앉아 계셨습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황금네거리 모임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둘만 남은 반지 원정대는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근처 사우나로 향했습니다.


대구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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