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늦게까지 보드게임 모임에 있다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빨리 잠에 든다고 했는데 그래도 새벽이어서 아침까지 부족한 잠을 꾹꾹 눌러 잤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는데 10여 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겁니다. 겨우겨우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음만 조급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길이 막히지 않아서 10분 정도만 늦었습니다. 도서관 앞에는 찬호와 2주 전에 새로 온 여학생 2명도 있었습니다. 제가 헐레벌떡 뛰어가서 도서관 문을 여니까 따라 들어오네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제 수업의 원칙을 얘기했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아이들을 보면 보드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의 고정관념 같은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로열 터프를 꺼내자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말을 한 개씩 번개처럼 집어가는 것이었죠. 아이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색깔이 여러 가지 있다고 반드시 자기 색깔을 정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라고요.

아이들에게 로열 터프 규칙을 설명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0" 가치의 베팅 칩을 사용하는 선택 규칙도 적용해서 했습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에 서로 낚고 낚이고 때때로 자기 스스로 낚이는 모습이 재미있으니까요.

내기를 하면 사람들마다 자기 스타일을 드러냅니다. 안정성을 중요시 하는 사람, 한탕 크게 먹는 걸 노리는 사람, 저처럼 열심히 확률 계산하는 사람 등요. 그래서 이 게임을 할 때에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선호하는 말이 달라지게 되죠. 찬호는 안전한 말을 주로 선택했고, 은주와 수경이는 어쩌다 보니 서로 겹쳤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견제하면서 한 방 큰 걸 노렸습니다. 첫 라운드에서는 수경이가 적극적으로 밀어준 말을 제가 잘 얻어 타서 크게 먹었습니다. 게다가 이 말에는 페이스 메이커 마커까지 얹혀져서 더 많이 먹었죠. 두 번째 라운드부터 아이들이 제가 건 말에 같이 베팅해서 여러 명이 골고루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머지 앞 순위도 맞추고 꼴찌 말은 피해서 돈이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도서관 문이 열리더니 종혁이가 어머님 손에 이끌려 들어옵니다. 어머님 말을 들어보니 아이가 30분 넘게 기다리다가 집으로 왔다고 하네요. 찬호가 끼어들더니
"얘 배트민턴장에 있었어요."
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찬호가 종혁이를 봤으면 같이 들어가자고 말하거나 저한테 종혁이가 어디에 있다고 말을 해야 했는데 왜 가만히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혁이가 왜 도서관 문 앞이 아닌 건물 앞인 배드민턴장에서 있었는지도요. 종혁이 어머님으로부터 심적인 압박감이 오기 시작했죠. 결국, 도서관의 전화번호를 알아가시고 다음 수업부터 확인 전화를 하시겠다는 선에서 해결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에 이건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봉사활동인데 이와 관련된 사람들은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저는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서 지적인 유희를 얻길 바라는데 도서관장님이나 학부모들은 학습 능력이나 태도 향상을 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라는 것처럼 쉽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진지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 같고, 보드게임이 무언지 이해를 하는 것보다 그냥 '남들이 좋다니까 우리 아이도?!' 이렇게 '묻지마'식으로 아이들을 떠맡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학부모들께 보드게임을 알려드리려고 자리를 마련해 봤지만 딱 한 분만 오신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세 번이나 열었는데도 말이죠. 그 '삼고초려 (?)를 통해서 제가 느꼈던 것은 하나였습니다.

'이곳에서 어른들이 보드게임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Posted by Mounted Clou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