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일요일은 돌아옵니다. 가문의 모토는 "Sunday is coming!"인지도... 보통 토요일에 밤늦게까지 보드게임으로 달리지만 평소보다 조금 일찍 들어가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빵 한 조각 먹고 도서관을 항해 갔습니다. 멀리서 저의 매의 눈으로 보니 도서관 건물 앞에 두 아이가 떠들썩하게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선생님이다!! 떴다!!"
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가 뭐길래 뜬 거죠? "떴다, 장보리?" 아, 그건 "왔다"였죠;;; 아무튼 그 아이들은 작은 가방을 맨 재혁이와 머리를 예쁘게 펌을 한 예슬이였네요.



안으로 들어가자 재혁이가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가방에서 굵은 끈 3가닥을 꺼냈습니다. 우리의 주의를 끌면서 매듭을 만들더니 "얍!"하자 서로 고리로 걸렸습니다. (오, 제법인데?) 가족들 앞에서도 했는데 실수할까봐 조마조마했다고 하네요.

다른 아이들이 오지 않길래 재혁이와 예슬이랑 먼저 Splendor 스플렌더를 했는데, 제 예상보다 아이들이 진행을 느리게 해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벌써 다른 아이들이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서 중간에 끊었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결이도 왔고, 오랫동안 오지 않던 기현이도 왔고, 기현이 자리를 대체하려고 오늘 처음 온 1학년 진모까지 5명인데 준비해 간 게임은 4명까지였거든요.
'선생님 재량껏 해주세요.'
라고 적혀 있는 도서관장님의 메모가 좀 야속했습니다.

제가 즉석으로 게임을 만들 수도 없고, 스플렌더를 억지로 5인에 맞게 바꿔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건 그냥 두고 귀족 타일을 6장 깔고 하기로 했죠. 아, 그 전에 수업에 처음 온 진모에게 저의 4가지 원칙을 설명해 줬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설명이 끝나고 한결이부터 기현이, 재혁이, 진모, 예슬이 순으로 진행을 했는데. 한결이가 멀뚱멀뚱 있는 겁니다.
"게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네..."
"그러면 기현이부터 해서 한결이가 마지막으로 해요."
그렇게 해서 게임이 시작됐는데, 갑자기 한결이기 책상에 옆드리더라고요.
"한결이 어디 아파요?"
"..."
대답이 없습니다. 일단 나머지 아이들이 기다려서 그냥 게임을 4명이서 하기로 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라 그런지 귀족 타일은 쳐다도 안 보고 그냥 원하는 색깔의 칩을 꾸역꾸역 모아서 한 방에 큰 걸 사네요. 4명이 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플레잉 타임이 60분이 훌쩍 넘었어요. 남들이 보면 Saint Petersburg 상트 페테르부르크 한 줄 알겠어요.

게임은 재혁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했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 보내고 한결이만 남았습니다. 한결이가 누워 있으면서 테이블에 깔아놓은 담요를 잡아당겨서 다른 아이들이 불편해 했거든요. 처음엔 아이들이 한결이가 자고 있었던 걸로 생각했다가 예슬이가 가까이서 보고는 깨어 있다고 알려줬고요. 저는 한결이가 게임을 하지 않고 엎드려 있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한결이 아팠어요?"
"네, 머리 아파서 게임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한결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코를 훌쩍 거렸습니다. 제가 그날 처음 봤을 때에도 계속 훌쩍거리고 있어서 아픈 것 같긴 했습니다.

이틀 뒤에 도서관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한결이가 아픈데도 보드게임 수업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왔던 거라고 하네요. (꾀병으로 의심해서 미안... ^^;;) 전화받으시는 도서관장님도 감기 때문에 상태가 안 좋으셨고, 사실은 저도 한 주 전에 심한 감기에 걸려서 고생했어요. 모두들 감기 조심합시다!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9화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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