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만에 고학년 반 수업이 정상적으로 (?) 열렸습니다. 첫 수업 때에는 아이들이 2명만 왔고, 2주 전에는 에어쇼에 밀려서 수업이 열리지 않았죠. (이거 뒤끝 작렬인가요? ㅋ)

정오까지 맞춰서 간다고 갔는데, 출발이 좀 늦어서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금-토, 토-일 새벽 내내 보드게임 하고 노느라 전날에 잠을 3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갔더니 졸음이 솔솔 밀려오더군요. '살짝만 기대자'였는데, 어느새 소파에 누워서...;;; 중간에 지나가는 애들이 문을 두드려서 잠에서 몇 번 깼습니다.

1시즈음 되니까 5학년 찬호 군이 왔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에 처음 보는 4학년 정웅 군이 왔고요. 사실 정웅 군은 다른 선생님에게서 보드게임 수업을 1년 정도 배웠던 아이입니다.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해졌어요. 민주 양만 오면 되는데 언제 올지 몰라서 저까지 셋이서 새로 구한 주사위 게임을 펼쳐서 설명을 하려는 차에 누군가가 도착해서 바로 접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게임은 마운티드 클라우드 주간 게임 리뷰 IV의 두 번째 시간에 리뷰할 예정입니다. 광고 작렬? ㅋ)

고학년 반 역시, 저의 네 가지 원칙을 강조해서 알려주었더니 정웅 군이 잘 알아듣더군요. 선생님 게임 망가뜨리면 혼난다면서요.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고학년 반 두 번째 게임은 Carcassonne 카르카손입니다. 3주 전에 저학년 반에서 했던 게임인데요. 고학년과 저학년 간의 실력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앞으로도 두 반의 격차를 확인하기 위해서 한 달에 하나 정도는 같은 게임을 시켜보려고요.

카르카손 설명을 하는데, 저학년 반과 달리 중간에 질문이 쏟아지지 않아서 설명은 빨리 끝났는데요. 불안했던 건 찬호와 민주가 미플을 만지작거리며 쌓느라 제 설명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민주 양부터 시작을 했는데, 역시나 처음에 가만히 멀뚱멀뚱 있는 겁니다. 얼굴에는 '뭘 해야 하죠?'라고 써 있는...

"자기 차례가 되면 타일을 뽑으라고 얘기했어요."
라고 말하자 타일을 뽑습니다. 그리고 시작 타일에 자기 미플을 놓자 저는 또
"방금 자기가 뽑아서 붙인 타일에만 놓을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분위기가 불안불안합니다.

찬호가 작은 성 그림 타일 2개를 붙여가며 단타로 계속 치고 나갔습니다. 나머지 두 아이들은 어쩌다 보니 큰 성을 만들고 있었죠. 우연찮게 정웅이와 민주가 각각 미플 2개씩 놓은 커다란 성의 부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민주는 자신의 미플을 다 놓아서 뭔가를 완성할 타일만을 계속 기다리는 중이었고요. (자기 미플을 회수할 때까지 나중에 얻을 점수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찬호의 점수가 가장 앞서고 있었는데, 정웅이는 20여 점 차, 민주는 30여 점 차로 뒤쳐지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분이 정웅이의 입장이라면 그 큰 성의 부분을 완성할 수 있는 타일을 뽑았을 때에 어떻게 하실 건가요?
  1. 성을 완성시켜서 민주와 함께 30점 가까이 얻는 대신에 민주가 미플을 회수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니면
  2. 민주가 점수를 못 내도록 계속 묶어놓고 자기 혼자 작은 성들을 완성해가며 찬호를 따라가겠습니까?

이러한 딜레마와 상관없이 정웅이는 두 번째를 선택하고 혼자 4점을 얻었습니다. 그 게임이 끝나고 정웅이에게 물어보니까 첫 번째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가장 중요한 타일을 뽑았는데, 그게 그 큰 성을 완성할 수 있는 타일인 줄 몰랐다는 겁니다. (아이고, 맙소사!!) 제가 승부처인 것 같아서 그 상황의 한 라운드 전에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위쪽에 파란색 미플이 있는 타일 위와 왼쪽에 하나씩만 딱! 놓으면 되는 거였거든요. 게다가 민주 양이 위쪽은 타일로 막아서 성이 완성 직전이었습니다.)


아무튼 압도적으로 찬호 군이 승리를 했습니다.


한 게임 더 했는데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좀 더 보였습니다. 첫 번째로 제가 점수 계산을 바로바로 해줬더니 아이들이 자기가 얻을 점수를 계산하지 못하는 거였습니다. 제가 설명을 하고 예로도 보여줬는데 애들이 기억을 못하는 건지... 찬호와 민주에게 점수 계산을 시켰더니 막 찍어서 말합니다. 하...

두 번째로 아이들마다 각자 게임하는 성향이 좀 있습니다. 찬호는 아이에게 이렇게 비유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노인정에서 할아버지들이 장기 둘 때처럼 상대가 들으라는 듯이 느릿느릿 "혼자 말"을 하면서 턴을 오래 소비하는 겁니다. 민주가 기다리기 답답했는지
"말 안 하면서 하면 안 돼?"
했더니 찬호가
"어, 안 돼!"
이러더라고요.

정웅이는 설명할 때에 잘 들어줘서 고마운데, 게임을 진행할 때에 생각을 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민주는 아직 게임에 집중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설명할 때에도 컴포넌트 만지느라 설명을 듣지 않는 것 같고, 게임할 때에도 친구인 정웅이가 옆에서 궁시렁궁시렁거리면 둘이 아웅다웅 싸웁니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저는 보드게임을 전파한다는 목적하에 아이들을 위한 보드게임 강의를 하고 있지만, 도서관장님은 도서관 프로그램 확대가 목적이시고,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집중력이나 학습력 향상 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상이몽이라는 거죠. 제가 아이들의 게임 성향을 보면서 고쳐줘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부분들과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들도 앞으로 수업이 더 진행됨에 따라 바뀔 수도 있겠죠.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분들이 바라는 것도 보드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라면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요. 다만 그런 것이 주가 되어서 게임 그 자체나 재미가 부수적인 것으로 밀리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은 철저히 저의 몫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수업 시작 전에 하려던 주사위 게임을 다서 꺼내서 설명을 했는데, 민주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다음에 하자고 하면서 수업을 마쳤습니다. 휴, 아직 갈길이 머네요.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6화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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