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고학년 반의 두 번째 수업이었으나 아이들이 경기항공전 (이른바 에어쇼)를 보러간다고 모두 불참하는 바람에 저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활 보고~♬ ㅠㅠ)

오늘은 저학년 반의 세 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수업 끝에 아주 큰 일 (?)이 하나 있었죠? 1학년 남자 아이가 마지막 게임에서 크게 져서 수업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갔던 일이요. 걱정도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일주일 전 즈음에 도서관장님과 얘기를 좀 나눠봤습니다. 제가 다른 일 때문에 간 것처럼 얘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도서관장님이 먼저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아유, 선생님. 지난주에 ○○이한테 무슨 일 있었다면서요?"
"아, 네...;;;"
"그 애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걔가 자기가 꼴찌를 했다고 문을 '쾅' 닫고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
"아, 네...;;;"
"걔가 책도 많이 읽고 머리가 엄청 좋은 아인데, 걔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게임에서 져본 적이 없대요."
"아, 네...;;;"
"그래서 수업 계속 나올 거냐고 물어봤더니 계속 나올 거라고 했대요."
"아, 잘 됐네요..."

이런 얘기를 나누고 저는 사실 그 아이와 또 한 아이가 걱정됐습니다.

두 사람 (아이 어머니와 도서관장님)을 건너서 들은 내용이라 과장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데, 그 1학년 남자 아이가 게임에서 꼴찌를 해본적이 없다는 겁니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게임에서의 목적입니다. 게임 결과에 대한 상벌이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게임에서 이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옳지 못한 방법을 사용해서 상대를 꺾기도 하고, 그것이 발각되어서 명예를 잃기도 합니다.

2주 전 수업을 회상하자면, 저학년 반에서 카르카손을 할 때에 몇몇 아이들이 문제가 될 만한 부정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여자 아이 한 명이 타일 몇 개를 가져가서 자기 앞에 쌓아놓고 그것들은 자기만 사용할 거니까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안 보는 사이에 (사실은 다 보고 있었습니다) 타일 앞면을 살펴 보고, 마음에 안 드는 타일은 다시 가져다 놓고 바꿔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자 아이도 똑같이 따라하고 심지어 자기가 가진 타일들 중에서 한 개를 뽑아오겠다며 방 구석으로 갔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2학년 남자 아이들 중 한 명인 재혁이도 그렇게 했다가 나중에 (손에 땀이 차서 그랬는지) 가져갔던 타일들을 다시 돌려줬습니다. 결국엔 처음에 타일을 챙겼던 여자 아이가 여러 번 이겼는데, 그때의 일이 나비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곤 저는 생각치 못했습니다. 제가 수업을 4명으로만 하기로 결정해서 한 명을 빼야 했는데, 수업 분위기를 망쳤던 남자 아이가 아닌 그 여자 아이를 수업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제 수업은 미리 신청한 아이들한테만 기회를 줬는데, 그 여자 아이는 신청을 하지 않고 2주 전에 우연히 도서관을 지나가다가 수업에 들어온 아이라서 우선 순위가 밀리기도 했습니다.)

다시 시간을 돌려서, 1학년 남자 아이가 걱정된 이유는 패배의 경험이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어떤 게임에 대한 실력이 무척 뛰어나서 처음부터 계속 이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그 게임에 대한 더 좋은 전략/전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패배로부터, 저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꺾은 상대로부터 배우는 교훈입니다. 패배가 없었다는 것은 그 아이의 재능이 정말 뛰어나다는 의미이거나 또는 호적수를 만난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엄마와 또는 한정된 몇몇 친구들과만 게임을 해왔다면 그 아이의 지난 패배의 경험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좋은 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보드게임 하느라 잠이 부족한 상태로 아이들을 만나러 도서관에 갔습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기다리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테이블에 담요를 깔고 의자에 앉았더니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재혁 군과 1학년 남자 아이가 도착했네요. 재혁이가 예슬 양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서 예슬이가 오고 있음을 대신 확인해줬습니다.

기현 군을 제외하고 아이들 3명이 모여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게임이냐고 궁금해 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지난 수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난 주에 부정한 방법으로 게임을 진행한 것에 대해서 앞으로 그렇게 게임 하면 수업에 못 오게 할 것이라고 했고, 수업 전에 강조하는 세 가지에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재혁 군이 1학년 남자 아이에게
"게임에서 졌다고 문 '쾅' 닫고 가면 안돼."
라고 얘기하니까 그 남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군요. 1학년 남자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에게 사과하라고 말을 꺼낼까 말까 하다가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고 뉘우치고 있는 것 같아서 얘기하지는 않고 넘어갔습니다.



저학년 반의 세 번째 게임은 Samurai 사무라이입니다. (☞ 리뷰 링크) 일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구성물과 간단한 규칙, 그리고 마치 무릎꿇고 바둑을 두는 것 같은 (?) 진행 시의 조용한 분위기가 특징인 게임입니다. 10세 이상에게 적합한 게임인데 얼마나 잘 따라오는지 시험 삼아서 저학년 반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로 했죠.

사무라이의 규칙은 무척이나 간단합니다만, 아이들 특유의 질문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경험을 막 쏟아내는 바람에 설명 시간이 엄청 길어졌습니다. 재혁이가 일본 가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고, 1학년 남자 아이는 닌자에 대한 얘기 (+ 액션)을 했고요.


아이들이 어떻게 게임을 하나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습니다. 가장 먼저 알게 된 건, 아이들에게 "힘조절"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힘조절뿐만이 아니라 게임에서 사용하는 자원에 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트릭테이킹 게임이나 영향력 게임 등에서는 약한 자원과 강한 자원으로 나뉩니다. 얼핏 생각하면 '운이 좋아서 강한 것만 들어오면 이기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좋은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여러 자원을 "관리"하게끔 만듭니다. 즉,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조절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요. 나에게 '10'이라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의 '9'를 이겼을 때에 가장 잘 사용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꾸로 하면 내가 가진 '1'로 상대가 가진 '10'에게 졌을 때에 그 '1'이 최고의 효율을 낸 것이 됩니다. 이길 때는 아슬아슬하게 이기고 질 때는 크게 져야 자원 관리를 잘 하는 것이죠. 아무튼 아이들은 아직 그것을 잘 몰라서 처음부터 무조건 가장 높은 숫자를 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무라이 타일도 보물이 한 개만 있는 마을 근처에 놓더군요. ^^;; 같은 보물 사이에 있는, 소위 명당 자리에는 그 보물 그림 타일을 놓아야 하는데 엉뚱한 자리에 타일을 놓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잔계산이 익숙하지 않은지 첫 게임에서는 보물이 3개나 파괴되었고, 자기 턴에 남이 보물을 따게 하는 플레이도 종종 보였습니다.

두 번째 게임까지 재혁 군이 모두 승리했습니다.



기현 군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는 것 같아서 제가 네 번째 플레이어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해서 살짝 장고를 하며 시작을 했습니다. 초반에 타일 관리하느라 약한 타일들을 좀 풀었더니 재혁이가 웃으면서
"선생님, 봐주시는 거 아니죠?"
라며 묻길래,
"아니에요~ 최선을 다 해서 하고 있어요."
라고 답을 했습니다. 아이들하고 한다고 해서 대충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신의 한 수를 보기 위해서 살아돌아... 응?


제가 처음 들어간 세 번째 게임에서는 재혁 군과 함께 타이-브레이킹까지 했는데, 보물 1개 차이로 재혁이가 승리했습니다. (하루에 3연승, 대단하네요!) 네 번째 게임에서는 예슬이와 재혁이의 견제를 뚫고, 재혁 군과 타이-브레이킹까지 해서 보물 1개 차이로 제가 승리했습니다. 재혁이 뒤에 고스트 보드게임왕 (?)이 붙어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요.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5화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