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토요일)에 늦게까지 보드게임을 하고 막차를 타고서 집에 가느라 잠이 부족했습니다. 고학년들은 늦게 오는 아이들에 맞춰서 1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간만에 늦잠을 잤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10분 정도 늦었네요. 이런;;; 건물 앞을 지나니 2명의 아이 중에 한 명이 외칩니다.
"선생님이다!"
다시 보니까 지난 주에 결석했던 정웅이였고, 나머지 여자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입니다. 책상에는 이번 주에 찬호가 할아버지 댁에 가느라 결석이라는 것과 새로운 아이가 온다는 쪽지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 아이가 그 아이인 것 같은데, 그 아이가 메모를 보더니 자기 성을 잘못 써놨다고... (도서관장님이 그런 실수를...) 잠시 후에 한 학년 어린 3학년 종혁이가 왔는데, 민주가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요.

우리 수업에 처음 온 수현이에게 제 수업 원칙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수업 중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작년에 보드게임 수업을 했던 것 같았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고학년 반 네 번째 게임은 Ra 라입니다. 한국어판에서는 '태양신 라'라고 되어 있죠. 굉장히 간략하면서 긴장감도 있는 게임이죠. 그러나 초보들의 경우에는 타일빨이 전부인 걸로 오해해서 과소평가하기도 하는 게임입니다. 고학년 학생들은 이 게임의 재미를 알아차렸을까요?

아이들은 경매가 무언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라에서 사용하는 특정한 경매 방식은 낯섭니다. 라에서는 Once-Around 원스-어라운드라는 한 바퀴만 도는 묘한 방식을 사용하는데요. 경매품에 대해서 각자 한 번씩밖에 기회가 없기 때문에 '적절한' 숫자로 잘 입찰을 해야 합니다.

설명을 쫙 했는데, 아이들의 표정을 보아 하니 제대로 이해한 아이가 없는 것 같아서 연습으로 한 왕조만 해보고 그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에 저는 이 방식을 사용해서 워밍업을 시키곤 하거든요.

그런데 타일이 잘 안 섞여 있는지 아이들이 라 타일을 많이 뽑았습니다. '라'가 라를 뽑는 게임이 되어 버렸어요. 라볶이도 아닌데...

아무튼 처음 하는 사람들이 라를 저평가하는 이유가 자신의 턴에 할 수 있는 행동의 종류가 3가지라는 것을 잊고 그냥 타일만 줄곧 뽑기 때문이죠. 그러고 나서 '타일빨 때문에 졌다'라고 평가하죠. 아이들도 저의 예상대로 타일만 열심히 뽑고 제일 높은 숫자의 타일을 들고 있는 아이들이 차례대로 좋은 걸 따가면서 수현이가 손쉽게 고득점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한 왕조를 해보니까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까지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기본 전략을 가르쳐줬죠.
"자기 차례에 할 수 있는 행동이 3가지였죠? 타일 뽑아서 보드에 놓기, 가지고 있던 신 버리고 보드에 있는 타일 가져오고, 마지막으로 라를 외치고 경매하기."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기억을 하고 있는지 제 말에 바로 따라서 말했습니다.
"지금 제일 높은 숫자가 13인데, 13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제일 좋은 타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이길 수 있어요!"
"타일이 8개 있을 때 다 먹을 수 있어요!"
"그렇죠? 그러면 13을 가진 사람이 8개보다 적게 먹으면 손해겠죠? 13보다 낮은 숫자를 가진 사람들은 13을 가진 사람이 8개보다 적게 먹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타일이 8개 되기 전에 경매를 불러요!"
"맞아요! 자기 차례 때에 라 마커를 가져와서 경매를 강제로 시작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알겠죠?"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진짜" 라를 하는 방법을 익히고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 번째 왕조에서는 종혁이가 빨리 먹고 빠지는 전략으로 일찌감치 나갔고, 후반 즈음에 민주는 아직 앞면 태양 타일을 3개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는데 말이죠. 민주에게 3번 다 못 먹을 것 같으니까 아끼지 말고 태양 타일로 입찰을 하라고 얘기했습니다. 결국에 민주는 3번 다 못 먹고 첫 번째 왕조가 끝나 버렸습니다. 생각보다 라 타일들을 빨리 나오긴 했어요.

두 번째 왕조에서는 수현이가 좀 말렸습니다. 첫 번째 왕조 경매에서 높은 숫자 타일로 낙찰받고 낮은 숫자 타일로 바꿔오는 바람에 두 번째 왕조 경매에서 번번히 밀렸습니다. 하필이면 바로 다음 차례인 정웅이가 계속 더 높은 숫자로 밟는 바람에 살짝 짜증을 내면서 약이 올라 있었죠.

세 번째 왕조가 됐습니다. 이번에는 정웅이가 가진 태양 타일의 숫자들이 합이 "13"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이 낮았습니다. 정웅이 점수가 많이 낮아서 팁을 하나 던져주려고 했는데요.
"숫자가 낮으니까 다른 애들이 나갈 때까지 버텼다가 혼자 타일을 뽑아서 먹는 방법이..."
"쉬~~~~~잇!!"
정웅이는 제 생각을 미리 읽고 있었는지 검지 손가락으로 말하지 말아달라는 신호를 줬습니다. 정웅이가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까요?

정웅이는 현재 건물 타일 6종류가 있었고, 그것들 중 같은 모양이 2개씩 있는 게 두어 세트 있었습니다. 건물만 잘 터지면 고득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죠. 이번에도 종혁이가 가장 먼저 나가고, 그 다음으로 민주가 나갔습니다. 정웅이와 수현이 둘만 남은 상황이고, 남은 두 사람 모두 숫자가 낮은 태양 타일 2개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우지 않고 타일 8개씩 두 번 먹어도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라 타일이 뽑히는 바람에 이것이 조금 틀어졌습니다. 파라오 최대 개수를 가지고 싶던 수현이가 먼저 입찰을 하면서 수현이가 태양 타일 1개를 먼저 써 버립니다. 그 다음에 서로 타일 뽑기 한 번씩을 하다가 수현이가 경매를 걸어서 빼앗기기 싫은 정웅이가 입찰을 해서 낙찰받습니다. 그 다음에 타일 뽑기 한 번씩 하고 수현이가 입찰하고 또 낙찰받아서 정웅이 혼자 남았습니다. 정웅이는 두 번째 왕조 때에도 혼자 남아서 혼자 타일 뽑기를 했었는데, 저는 옆에서 4번째 타일 뽑은 직후에 위험하니까 먹으라고 계속 얘기를 했고 결국 정웅이는 바로 다음에 마지막 라 타일을 뽑는 바람에 못 먹고 날린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정웅이는 타일을 계속 뽑았습니다. 그런데 라 타일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건물 타일들과 범람 (홍수) 타일, 신 타일이 나오면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건물들 덕분에 8종류를 다 모았고, 3개짜리 세트도 3세트나 완성이 되었기 때문이었죠. 최종 점수계산에서 두 아이의 점수가 총점 30여 점이었는데, 제가 혼자 대충 계산해 본 결과 정웅이가 세 번째 왕조에서 얻은 점수만해도 30여 점이었거든요. 정웅이는 50점 대를 기록하면서 우승을 했습니다. 담이 큰 아이네요.

다행스럽게도 이긴 아이도 진 아이들도 모두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게임이 이해되지 않아서 일찍일찍 나간 종혁이도 게임을 이해했다고 하니 모두가 행복한 라가 되었네요. 이렇듯 "라"는 똥줄이 타도록 흥미진진한 경매 게임이랍니다!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0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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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일요일은 돌아옵니다. 가문의 모토는 "Sunday is coming!"인지도... 보통 토요일에 밤늦게까지 보드게임으로 달리지만 평소보다 조금 일찍 들어가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빵 한 조각 먹고 도서관을 항해 갔습니다. 멀리서 저의 매의 눈으로 보니 도서관 건물 앞에 두 아이가 떠들썩하게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선생님이다!! 떴다!!"
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가 뭐길래 뜬 거죠? "떴다, 장보리?" 아, 그건 "왔다"였죠;;; 아무튼 그 아이들은 작은 가방을 맨 재혁이와 머리를 예쁘게 펌을 한 예슬이였네요.



안으로 들어가자 재혁이가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가방에서 굵은 끈 3가닥을 꺼냈습니다. 우리의 주의를 끌면서 매듭을 만들더니 "얍!"하자 서로 고리로 걸렸습니다. (오, 제법인데?) 가족들 앞에서도 했는데 실수할까봐 조마조마했다고 하네요.

다른 아이들이 오지 않길래 재혁이와 예슬이랑 먼저 Splendor 스플렌더를 했는데, 제 예상보다 아이들이 진행을 느리게 해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벌써 다른 아이들이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서 중간에 끊었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결이도 왔고, 오랫동안 오지 않던 기현이도 왔고, 기현이 자리를 대체하려고 오늘 처음 온 1학년 진모까지 5명인데 준비해 간 게임은 4명까지였거든요.
'선생님 재량껏 해주세요.'
라고 적혀 있는 도서관장님의 메모가 좀 야속했습니다.

제가 즉석으로 게임을 만들 수도 없고, 스플렌더를 억지로 5인에 맞게 바꿔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건 그냥 두고 귀족 타일을 6장 깔고 하기로 했죠. 아, 그 전에 수업에 처음 온 진모에게 저의 4가지 원칙을 설명해 줬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설명이 끝나고 한결이부터 기현이, 재혁이, 진모, 예슬이 순으로 진행을 했는데. 한결이가 멀뚱멀뚱 있는 겁니다.
"게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네..."
"그러면 기현이부터 해서 한결이가 마지막으로 해요."
그렇게 해서 게임이 시작됐는데, 갑자기 한결이기 책상에 옆드리더라고요.
"한결이 어디 아파요?"
"..."
대답이 없습니다. 일단 나머지 아이들이 기다려서 그냥 게임을 4명이서 하기로 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라 그런지 귀족 타일은 쳐다도 안 보고 그냥 원하는 색깔의 칩을 꾸역꾸역 모아서 한 방에 큰 걸 사네요. 4명이 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플레잉 타임이 60분이 훌쩍 넘었어요. 남들이 보면 Saint Petersburg 상트 페테르부르크 한 줄 알겠어요.

게임은 재혁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했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 보내고 한결이만 남았습니다. 한결이가 누워 있으면서 테이블에 깔아놓은 담요를 잡아당겨서 다른 아이들이 불편해 했거든요. 처음엔 아이들이 한결이가 자고 있었던 걸로 생각했다가 예슬이가 가까이서 보고는 깨어 있다고 알려줬고요. 저는 한결이가 게임을 하지 않고 엎드려 있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한결이 아팠어요?"
"네, 머리 아파서 게임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한결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코를 훌쩍 거렸습니다. 제가 그날 처음 봤을 때에도 계속 훌쩍거리고 있어서 아픈 것 같긴 했습니다.

이틀 뒤에 도서관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한결이가 아픈데도 보드게임 수업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왔던 거라고 하네요. (꾀병으로 의심해서 미안... ^^;;) 전화받으시는 도서관장님도 감기 때문에 상태가 안 좋으셨고, 사실은 저도 한 주 전에 심한 감기에 걸려서 고생했어요. 모두들 감기 조심합시다!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9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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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인 토요일 아침이 아니라 약간 새벽에 인터스텔라를 보고 그날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느라 심신이 피곤해져 있는 상태로 일요일 아침에 아이들을 가르치러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고학년 반은 오후 1시에 시작하는데, 또 12시로 잘못 기억하고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습니다. 할 게 없어서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을 몇 권 읽기로 했죠. 한 20분 즈음 지나니까 한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한쪽 테이블에 앉으시더군요. 도서관장님이 적어놓고 간 메모에 따르면 이 아이들 중 한 명이 이번 고학년 반에 들어올 3학년 종혁이일 거고요. 4학년과 5학년 학생으로만 구성된 고학년 반에 3학년 아이가 왔는데, 그 아이 엄마의'게임 잘 할 겁니다'라는 말에서 '보드게임을 어떻게 알고 계실까?'라는 질문이 생기면서 걱정이 좀 됐습니다.

또 한 20여 분 지나니까 5학년 찬호가 왔고, 거의 1시 정각에 4학년 민주가 오면서 이날 올 사람은 모두 모이게 됐습니다. (4학년 정웅이는 할아버지 댁에 가느라 결석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자주 빠져서 좀;;;)

수업에 처음 온 종혁이에게 저의 4가지 원칙을 설명해 줬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고학년 반 세 번째 게임은 Splendor 스플렌더입니다. 올해 SDJ 후보에도 오르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게임이며, 한국어가 포함된 다국어판도 국내에 들어와 있죠. 사실 저는 이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비슷하다고 평가를 받는 Saint Petersburg 상트 페떼르부르크에 비해 카드 운이 심해서 운영하는 맛이 떨어진다고 느꼈거든요. 그래도 아이들이 하기에는 적당할 것 같아서 이 게임을 빌려서 가져가 봤습니다.

규칙을 설명해 주는데, 종혁이가 살~짝 넋이 나간 것 같습니다. 부분별로 설명을 끊으면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을 했는데 모르겠다고 합니다. 다행인 건지 나머지 아이들은 "현재로서" 알아들은 것 같이 보입니다. 종혁이부터 시작해서 민주, 찬호 순으로 진행이 됐습니다.

종혁이가 첫 턴에 카드 3장을 집었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다른 아이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그게 아니고! 칩을 3개 가져가는 거라고!"
종혁이가 같은 색 2개와 다른 색 1개를 집자, 다른 아이들이 또 큰 소리로 말합니다.
"다른 색깔 3개를 집으라고!"
2주 전에 카르카손 하면서 멘붕이 왔던 민주가 스플렌더 설명을 잘 알아들은 것 같아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민주는 1레벨짜리 카드를 차근차근 모아갔고, 찬호가 약간 특이하게 진행을 했습니다. 게임 시작 전으로 돌아가면...

스플렌더를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놓자 아이들이 서로 칩 색깔을 정하는 겁니다.
"나는 다이아몬드!"
"나는 빨간색!"
"나는 초코!"
저는 어이가 없어서,
"일단 설명부터 듣고 하죠?!"
그래도 아이들은 제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색깔을 열심히 외쳐댔습니다.

찬호는 설명을 다 듣고 난 후에도 자기는 끝까지 다이아몬드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게임 중에도 다이아몬드 칩을 열심히 모았고, 심지어 칩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10개를 초과하는 칩들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이아몬드를 열심히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얘가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플레이하는 거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칩으로 점수가 높은 2레벨이나 3레벨짜리를 바로 구입하더군요.

다시 종혁이가 많이 헤메는 것 같아서 옆에서 가이드를 살짝 했습니다. 귀족을 보석 칩을 주고 사는 건 줄 알아서 귀족은 카드를 모았을 때 가져오는 거라고 한 번 더 설명을 해주었죠. 종혁이가 어려워하는 점은 목표는 잘 정하는데 그 목표로 가는 과정을 잡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귀족 가져오려면 어떤 게 부족해요?"
"빨간색 카드요."
"그럼 빨간색 카드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가지고 있는 이 카드들이 보석 역할을 하는 건데요."
"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들이 보석을 생산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해서 계속 헤메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도와줘서 종혁이가 귀족 타일들을 쉽게 모아서 손쉽게 첫 게임에서 승리했습니다.



두 번째 게임은 저까지 4명이서 하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 찬호만 반대했지만요. 저부터 시작이었는데, 찬호가 제가 게임에 못 들어오게 하려고 귀족 타일들을 호주머니에 숨기는 만행 (?)을 저지르더군요. 나중에 다시 돌려줘서 게임이 계속 진행됐습니다.

찬호가 순서상 마지막 플레이어였는데, 첫 게임과 똑같은 방법으로 특정 색깔들의 칩만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제 머리 속에 스파크가 번쩍하고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게임할 때에 제가 종혁이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요.
'게임할 때에 본능적으로 하지 말고 계산을 하면서 해야 돼요.'

저는 찬호가 하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해버렸는데, 저는 그걸 머리 속에서 계산해 본 적이 없던 겁니다. 보석을 생산할 1레벨짜리 카드를 많이 사는 것은 효율적이면서 또한 비효율적이었던 것이죠! 카드는 보석을 1개씩 생산해주기 때문에 많이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보석을 많이 요구하는 카드를 적은 비용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러한 낮은 레벨의 카드를 사기 위해서 많은 (칩을 가져오는 것 그리고 카드를 구입하는) 행동들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카드가 주는 공짜 보석의 혜택을 얻으려면 카드를 구입하는 행동을 많이 해야 하는데, 게임에서 카드를 구입하는 행동이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중후반에 효율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초중반에 비효율적인 행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실제 효율성이 낮아지거나 심지어 상쇄되어 없어져 버리기도 하는 거죠. 다른 플레이어들이 칩을 가져왔다 버리며 카드를 구입하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에 찬호는 점수가 높은 카드를 하나씩 모으는 거였습니다.


제가 15점을 달성해서 종료 조건을 달성했는데 찬호가 칩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마지막 플레이어였습니다. 13점이었던 찬호가 2점짜리 카드를 구입하면서 동점이 됐는데, 카드 개수가 적은 찬호가 승리를 했습니다.


찬호가 생각없이 한 행동인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한 건지 모르겠으나 이 아이에게 크게 한 방 먹은 느낌이었습니다. 덕분에 스플렌더가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8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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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 반의 네 번째 수업 날이었습니다.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이 아이들에게 어떤 게임을 소개해 줘야 할지'였습니다. Dog 도그로 큰 재미를 준 반면, Samurai 사무라이와 Carcassonne 카르카손은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든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규칙을 잘 설명해 주면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이들 스스로 '전략'을 세우기에는 전략 게임들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전략을 세우려면 규칙을 단순하게 '암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규칙 사이의 틈을 잘 발견해야 하고 나와 경쟁자의 '상대적' 이익을 잘 계산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부분에서 서툴러 보입니다. 이제 8, 9세 아이들인데 제가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것 같긴 하죠? ^^

그래서 저학년 아이들에 대한 일차 테스트는 이정도면 됐다 싶어서 이번 수업에서는 난이도를 대폭 낮추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토요일 밤을 하얗게 불태우고 (?) 약간의 잠을 자고 아이들을 만나러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12시 정각에 도착!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도착해서 건물밖에서 뛰놀고 있더라고요. 제가 문을 열자 아이들이 두다다다 달려들더니 오늘 누가 일등으로 왔고, 누가 이등으로 왔는지 서로 외치더군요. ^^;

테이블에 담요를 깔고 아이들을 보니 이번 수업에도 2학년인 기현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은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네 가지 원칙을 말해주고 시작을 했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이번 수업에서는 아주 교육적인 (?) 게임으로 선정했습니다. Las Vegas 라스 베이거스인데요. ^^; 아이들이 돈을 걸고 돈을 따는 건지 궁금해 했는데, 교육적인 (?) 게임 답게, 돈을 걸지 않고 돈을 딴다고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라스 베이거스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보드게임 수집가답게 alea 게임들을 열심히 모으고 있지만 이것보다는 먼저 나왔으면서 테마성도 더 좋은 Alea Iacta Est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훨씬 더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바로 시작하기에 어려울 것 같아서 라스 베이거스를 먼저 시켜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기현이가 빠져서 저까지 포함해서 4명이서 게임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룰을 설명하는데 아이들이 주사위를 만지작거리고 탑을 쌓느라 설명을 안 듣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제 기분이 좀 상해서 아이들한테 설명 안 듣고 나중에 모른다고 하지 말라고 얘기했는데, 그래도 주사위를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더라고요. 일단 2학년 재혁이부터 2학년 예슬이, 저, 1학년 한결이 순으로 앉아서 진행을 했습니다. 재혁이 턴이 끝나고 예슬이 차례가 되었는데 역시나 멀뚱멀뚱히 있더라고요. ㅡ_ㅡ;;;


역시나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을 관찰해 보니 이런 점들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크게 크게 지릅니다 (?). 특정 숫자의 주사위가 우르르 나오면 그것을 과시하듯이 그 숫자 주사위들을 사용하더라고요. 아직 자원 관리 개념이 서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 둘은 서로 맞불을 놓고 싸우는 것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한 명이 달리면 다른 아이가 달라붙어서 경쟁을 했습니다. 영향력 게임에서는 안 싸울수록 이득입니다. 이것 역시 아이들이 자원 관리 개념을 깨닫게 되면 좀 더 노련하게 싸우는 법도 알게 되겠죠. ^^


첫 번째 게임은 재혁이가 크게 승리했습니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한결이가 시작부터 저를 방해했습니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혼자 주사위 1개로 건져 먹으려고 했는데...;;; 중반 즈음 되니까 서로 얽히고 섥혀서 결국에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재혁이와 한결이, 저 이렇게 세 명이 주사위 1개 이내로 네 번째 도박장 타일에서 순위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재혁이와 한결이보다 1개 더 많은 상황이고, 한결이가 주사위 1개 남긴 상황이었죠. 저는 속으로
'제발 4만 나오지 마라.'
를 외쳤는데, 이럴 때 보면 행운의 여신은 참 얄궂지 말입니다. 4가 딱 나오네요. 저랑 한결이는 같이 망하고, 가만히 있던 재혁이가 건져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던 한 가지는, 두 번째 게임부터 아이들이 서로 안 싸워야 하는 이유를 조금씩 깨닫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게임을 할 때에 아이들이
"선생님, 여기다 놔요!"
라며 제게 (제가 생각하기에) 말도 안 되는 숫자 주사위들을 추천했는데 제가
"주사위 3개 써서 6만 달러 먹는 게 나아요, 아니면 주사위 1개 써서 3만 달러 먹는 게 나아요?"
라고 되묻자, 아이들이 조용해지더니 머리속으로 재빠르게 셈을 하더군요. 그 이후에 예슬이가
"선생님, 우리는 싸우지 말고 나눠 먹어요."
이러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예슬이가 두 번째 게임에서 승리했습니다.


세 번째 게임에서도 한결이의 보드게임 파이터 기질 덕분에 저와 함께 망하고, 재혁이와 예슬이가 각각 1, 2등을 하면서 수업이 끝났습니다. 한결이가 했던
'다음 차례 때에 주사위 굴려서 5 다섯 개 굴리면 돼요!'
의 말에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온 대사가 생각나더군요.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초난강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래쿠나. 무서운 쿰을 쿠었구나..."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7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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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만에 고학년 반 수업이 정상적으로 (?) 열렸습니다. 첫 수업 때에는 아이들이 2명만 왔고, 2주 전에는 에어쇼에 밀려서 수업이 열리지 않았죠. (이거 뒤끝 작렬인가요? ㅋ)

정오까지 맞춰서 간다고 갔는데, 출발이 좀 늦어서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금-토, 토-일 새벽 내내 보드게임 하고 노느라 전날에 잠을 3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갔더니 졸음이 솔솔 밀려오더군요. '살짝만 기대자'였는데, 어느새 소파에 누워서...;;; 중간에 지나가는 애들이 문을 두드려서 잠에서 몇 번 깼습니다.

1시즈음 되니까 5학년 찬호 군이 왔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에 처음 보는 4학년 정웅 군이 왔고요. 사실 정웅 군은 다른 선생님에게서 보드게임 수업을 1년 정도 배웠던 아이입니다.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해졌어요. 민주 양만 오면 되는데 언제 올지 몰라서 저까지 셋이서 새로 구한 주사위 게임을 펼쳐서 설명을 하려는 차에 누군가가 도착해서 바로 접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게임은 마운티드 클라우드 주간 게임 리뷰 IV의 두 번째 시간에 리뷰할 예정입니다. 광고 작렬? ㅋ)

고학년 반 역시, 저의 네 가지 원칙을 강조해서 알려주었더니 정웅 군이 잘 알아듣더군요. 선생님 게임 망가뜨리면 혼난다면서요.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고학년 반 두 번째 게임은 Carcassonne 카르카손입니다. 3주 전에 저학년 반에서 했던 게임인데요. 고학년과 저학년 간의 실력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앞으로도 두 반의 격차를 확인하기 위해서 한 달에 하나 정도는 같은 게임을 시켜보려고요.

카르카손 설명을 하는데, 저학년 반과 달리 중간에 질문이 쏟아지지 않아서 설명은 빨리 끝났는데요. 불안했던 건 찬호와 민주가 미플을 만지작거리며 쌓느라 제 설명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민주 양부터 시작을 했는데, 역시나 처음에 가만히 멀뚱멀뚱 있는 겁니다. 얼굴에는 '뭘 해야 하죠?'라고 써 있는...

"자기 차례가 되면 타일을 뽑으라고 얘기했어요."
라고 말하자 타일을 뽑습니다. 그리고 시작 타일에 자기 미플을 놓자 저는 또
"방금 자기가 뽑아서 붙인 타일에만 놓을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분위기가 불안불안합니다.

찬호가 작은 성 그림 타일 2개를 붙여가며 단타로 계속 치고 나갔습니다. 나머지 두 아이들은 어쩌다 보니 큰 성을 만들고 있었죠. 우연찮게 정웅이와 민주가 각각 미플 2개씩 놓은 커다란 성의 부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민주는 자신의 미플을 다 놓아서 뭔가를 완성할 타일만을 계속 기다리는 중이었고요. (자기 미플을 회수할 때까지 나중에 얻을 점수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찬호의 점수가 가장 앞서고 있었는데, 정웅이는 20여 점 차, 민주는 30여 점 차로 뒤쳐지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분이 정웅이의 입장이라면 그 큰 성의 부분을 완성할 수 있는 타일을 뽑았을 때에 어떻게 하실 건가요?
  1. 성을 완성시켜서 민주와 함께 30점 가까이 얻는 대신에 민주가 미플을 회수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니면
  2. 민주가 점수를 못 내도록 계속 묶어놓고 자기 혼자 작은 성들을 완성해가며 찬호를 따라가겠습니까?

이러한 딜레마와 상관없이 정웅이는 두 번째를 선택하고 혼자 4점을 얻었습니다. 그 게임이 끝나고 정웅이에게 물어보니까 첫 번째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가장 중요한 타일을 뽑았는데, 그게 그 큰 성을 완성할 수 있는 타일인 줄 몰랐다는 겁니다. (아이고, 맙소사!!) 제가 승부처인 것 같아서 그 상황의 한 라운드 전에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위쪽에 파란색 미플이 있는 타일 위와 왼쪽에 하나씩만 딱! 놓으면 되는 거였거든요. 게다가 민주 양이 위쪽은 타일로 막아서 성이 완성 직전이었습니다.)


아무튼 압도적으로 찬호 군이 승리를 했습니다.


한 게임 더 했는데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좀 더 보였습니다. 첫 번째로 제가 점수 계산을 바로바로 해줬더니 아이들이 자기가 얻을 점수를 계산하지 못하는 거였습니다. 제가 설명을 하고 예로도 보여줬는데 애들이 기억을 못하는 건지... 찬호와 민주에게 점수 계산을 시켰더니 막 찍어서 말합니다. 하...

두 번째로 아이들마다 각자 게임하는 성향이 좀 있습니다. 찬호는 아이에게 이렇게 비유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노인정에서 할아버지들이 장기 둘 때처럼 상대가 들으라는 듯이 느릿느릿 "혼자 말"을 하면서 턴을 오래 소비하는 겁니다. 민주가 기다리기 답답했는지
"말 안 하면서 하면 안 돼?"
했더니 찬호가
"어, 안 돼!"
이러더라고요.

정웅이는 설명할 때에 잘 들어줘서 고마운데, 게임을 진행할 때에 생각을 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민주는 아직 게임에 집중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설명할 때에도 컴포넌트 만지느라 설명을 듣지 않는 것 같고, 게임할 때에도 친구인 정웅이가 옆에서 궁시렁궁시렁거리면 둘이 아웅다웅 싸웁니다.

잠시 다른 얘기를 하자면 저는 보드게임을 전파한다는 목적하에 아이들을 위한 보드게임 강의를 하고 있지만, 도서관장님은 도서관 프로그램 확대가 목적이시고,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집중력이나 학습력 향상 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상이몽이라는 거죠. 제가 아이들의 게임 성향을 보면서 고쳐줘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부분들과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들도 앞으로 수업이 더 진행됨에 따라 바뀔 수도 있겠죠.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분들이 바라는 것도 보드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라면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요. 다만 그런 것이 주가 되어서 게임 그 자체나 재미가 부수적인 것으로 밀리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은 철저히 저의 몫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수업 시작 전에 하려던 주사위 게임을 다서 꺼내서 설명을 했는데, 민주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다음에 하자고 하면서 수업을 마쳤습니다. 휴, 아직 갈길이 머네요.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6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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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는 고학년 반의 두 번째 수업이었으나 아이들이 경기항공전 (이른바 에어쇼)를 보러간다고 모두 불참하는 바람에 저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활 보고~♬ ㅠㅠ)

오늘은 저학년 반의 세 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난 수업 끝에 아주 큰 일 (?)이 하나 있었죠? 1학년 남자 아이가 마지막 게임에서 크게 져서 수업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갔던 일이요. 걱정도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일주일 전 즈음에 도서관장님과 얘기를 좀 나눠봤습니다. 제가 다른 일 때문에 간 것처럼 얘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도서관장님이 먼저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아유, 선생님. 지난주에 ○○이한테 무슨 일 있었다면서요?"
"아, 네...;;;"
"그 애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걔가 자기가 꼴찌를 했다고 문을 '쾅' 닫고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
"아, 네...;;;"
"걔가 책도 많이 읽고 머리가 엄청 좋은 아인데, 걔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게임에서 져본 적이 없대요."
"아, 네...;;;"
"그래서 수업 계속 나올 거냐고 물어봤더니 계속 나올 거라고 했대요."
"아, 잘 됐네요..."

이런 얘기를 나누고 저는 사실 그 아이와 또 한 아이가 걱정됐습니다.

두 사람 (아이 어머니와 도서관장님)을 건너서 들은 내용이라 과장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데, 그 1학년 남자 아이가 게임에서 꼴찌를 해본적이 없다는 겁니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게임에서의 목적입니다. 게임 결과에 대한 상벌이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게임에서 이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옳지 못한 방법을 사용해서 상대를 꺾기도 하고, 그것이 발각되어서 명예를 잃기도 합니다.

2주 전 수업을 회상하자면, 저학년 반에서 카르카손을 할 때에 몇몇 아이들이 문제가 될 만한 부정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여자 아이 한 명이 타일 몇 개를 가져가서 자기 앞에 쌓아놓고 그것들은 자기만 사용할 거니까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안 보는 사이에 (사실은 다 보고 있었습니다) 타일 앞면을 살펴 보고, 마음에 안 드는 타일은 다시 가져다 놓고 바꿔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자 아이도 똑같이 따라하고 심지어 자기가 가진 타일들 중에서 한 개를 뽑아오겠다며 방 구석으로 갔다가 돌아오곤 했습니다. 2학년 남자 아이들 중 한 명인 재혁이도 그렇게 했다가 나중에 (손에 땀이 차서 그랬는지) 가져갔던 타일들을 다시 돌려줬습니다. 결국엔 처음에 타일을 챙겼던 여자 아이가 여러 번 이겼는데, 그때의 일이 나비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곤 저는 생각치 못했습니다. 제가 수업을 4명으로만 하기로 결정해서 한 명을 빼야 했는데, 수업 분위기를 망쳤던 남자 아이가 아닌 그 여자 아이를 수업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제 수업은 미리 신청한 아이들한테만 기회를 줬는데, 그 여자 아이는 신청을 하지 않고 2주 전에 우연히 도서관을 지나가다가 수업에 들어온 아이라서 우선 순위가 밀리기도 했습니다.)

다시 시간을 돌려서, 1학년 남자 아이가 걱정된 이유는 패배의 경험이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어떤 게임에 대한 실력이 무척 뛰어나서 처음부터 계속 이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그 게임에 대한 더 좋은 전략/전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패배로부터, 저 정확하게 말하면 나를 꺾은 상대로부터 배우는 교훈입니다. 패배가 없었다는 것은 그 아이의 재능이 정말 뛰어나다는 의미이거나 또는 호적수를 만난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엄마와 또는 한정된 몇몇 친구들과만 게임을 해왔다면 그 아이의 지난 패배의 경험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좋은 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보드게임 하느라 잠이 부족한 상태로 아이들을 만나러 도서관에 갔습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기다리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테이블에 담요를 깔고 의자에 앉았더니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재혁 군과 1학년 남자 아이가 도착했네요. 재혁이가 예슬 양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서 예슬이가 오고 있음을 대신 확인해줬습니다.

기현 군을 제외하고 아이들 3명이 모여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게임이냐고 궁금해 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지난 수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난 주에 부정한 방법으로 게임을 진행한 것에 대해서 앞으로 그렇게 게임 하면 수업에 못 오게 할 것이라고 했고, 수업 전에 강조하는 세 가지에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재혁 군이 1학년 남자 아이에게
"게임에서 졌다고 문 '쾅' 닫고 가면 안돼."
라고 얘기하니까 그 남자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군요. 1학년 남자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에게 사과하라고 말을 꺼낼까 말까 하다가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고 뉘우치고 있는 것 같아서 얘기하지는 않고 넘어갔습니다.



저학년 반의 세 번째 게임은 Samurai 사무라이입니다. (☞ 리뷰 링크) 일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구성물과 간단한 규칙, 그리고 마치 무릎꿇고 바둑을 두는 것 같은 (?) 진행 시의 조용한 분위기가 특징인 게임입니다. 10세 이상에게 적합한 게임인데 얼마나 잘 따라오는지 시험 삼아서 저학년 반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로 했죠.

사무라이의 규칙은 무척이나 간단합니다만, 아이들 특유의 질문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경험을 막 쏟아내는 바람에 설명 시간이 엄청 길어졌습니다. 재혁이가 일본 가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고, 1학년 남자 아이는 닌자에 대한 얘기 (+ 액션)을 했고요.


아이들이 어떻게 게임을 하나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습니다. 가장 먼저 알게 된 건, 아이들에게 "힘조절"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힘조절뿐만이 아니라 게임에서 사용하는 자원에 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트릭테이킹 게임이나 영향력 게임 등에서는 약한 자원과 강한 자원으로 나뉩니다. 얼핏 생각하면 '운이 좋아서 강한 것만 들어오면 이기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좋은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여러 자원을 "관리"하게끔 만듭니다. 즉,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조절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요. 나에게 '10'이라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의 '9'를 이겼을 때에 가장 잘 사용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꾸로 하면 내가 가진 '1'로 상대가 가진 '10'에게 졌을 때에 그 '1'이 최고의 효율을 낸 것이 됩니다. 이길 때는 아슬아슬하게 이기고 질 때는 크게 져야 자원 관리를 잘 하는 것이죠. 아무튼 아이들은 아직 그것을 잘 몰라서 처음부터 무조건 가장 높은 숫자를 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무라이 타일도 보물이 한 개만 있는 마을 근처에 놓더군요. ^^;; 같은 보물 사이에 있는, 소위 명당 자리에는 그 보물 그림 타일을 놓아야 하는데 엉뚱한 자리에 타일을 놓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잔계산이 익숙하지 않은지 첫 게임에서는 보물이 3개나 파괴되었고, 자기 턴에 남이 보물을 따게 하는 플레이도 종종 보였습니다.

두 번째 게임까지 재혁 군이 모두 승리했습니다.



기현 군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는 것 같아서 제가 네 번째 플레이어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해서 살짝 장고를 하며 시작을 했습니다. 초반에 타일 관리하느라 약한 타일들을 좀 풀었더니 재혁이가 웃으면서
"선생님, 봐주시는 거 아니죠?"
라며 묻길래,
"아니에요~ 최선을 다 해서 하고 있어요."
라고 답을 했습니다. 아이들하고 한다고 해서 대충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신의 한 수를 보기 위해서 살아돌아... 응?


제가 처음 들어간 세 번째 게임에서는 재혁 군과 함께 타이-브레이킹까지 했는데, 보물 1개 차이로 재혁이가 승리했습니다. (하루에 3연승, 대단하네요!) 네 번째 게임에서는 예슬이와 재혁이의 견제를 뚫고, 재혁 군과 타이-브레이킹까지 해서 보물 1개 차이로 제가 승리했습니다. 재혁이 뒤에 고스트 보드게임왕 (?)이 붙어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요.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5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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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반의 두 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도 걱정이고, 제 게임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올지 확신이 없어서 또한 걱정이었죠. 금요일 즈음에 도서관장님과 전화 통화를 하려고 했으나 개천절이어서 토요일로 미뤘는데, 토요일에 보드게임 하고 놀다 보니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서 통화도 하지 못하고 일요일을 맞이했습니다. 도서관장님이 1시에 하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이전 수업까지는 오후 12시에 시작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12시에 맞춰서 가기로 했습니다.


밤을 새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게임 하나 챙겨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는데 상상도 못한 일이...

도서관 앞에 처음 보는 남자 아이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 아이들도 따라서 들어왔습니다. 한쪽 테이블에 무릎담요를 깔고 게임을 할 준비를 마쳤는데, 아이들은 책에만 관심을 줍니다. 10분 즈음 지나서 아이들이 더 오지 않는 것 같아서 게임을 시작할 테니 자리에 앉아달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새로온 그 두 명의 아이들에게 세 가지 당부를 했죠.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3.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보드게이머가 아닌 일반인 (?)들에게 게임을 가르칠 때에 이 세 가지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이더라도 남의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과하게 주어서 카드를 말거나 접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의식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주의를 주었습니다. 또, 게임에서 이길 가망이 없다고 이상하게 진행하거나 게임 중간에 나가버리는 일도 있는데, 이러한 행동은 같이 게임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규칙에 맞는 진행을 통해 좋은 결과를 내면 그 노력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축하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번에 내가 승리를 할 때에 나의 승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가 있겠죠. 마지막은 게임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게임은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합니다. 외국인들과 온라인 게임을 할 때에 게임 시작 시에 채팅 창에 서로 입력해 주는 hf (have fun, 즐거운 시간 보내)가 정말 중요한 말이라는 거죠. (특히나 상호작용이 직접적인 게임에서) 내가 즐겁게 하기 위해서 특정 한 사람을 여러 명이서 괴롭히는 행동은 제 수업에서 절대 허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새로온 여자 아이, 채민 양이
"게임에서 이겨서 뭐 해요?"
라고 질문을 했을 때에 제가
"기분이 좋잖아요?!"
라고 답한 것은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던 겁니다. 꼭 무언가를 바라고 게임을 하다 보면 내기와 도박에 빠지기 쉬우니까요.



저학년 반의 두 번째 게임은 Carcassonne 카르카손입니다. 제가 초보자 시절에 배웠지만 큰 재미를 못 느끼다가 수 년 지나서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으로 해보고 재미를 깨달은 훌륭한 게임이죠. 일반인들이 보면 퍼즐 정도로 유치하게 보일 수 있는 타일 놓기 게임이지만 게임의 규칙을 파고 들면 그 규칙 속에 훨씬 더 치열하면서도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보입니다. 아이들에게 그정도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퍼즐 맞추듯이 쉽게 접근하라고 이 게임으로 선택했습니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발동하도록 배경 설명부터 했습니다. 프랑스 지역 이름이고, 이곳에 오래된 성들이 많고... 블라블라... 빨리 시작하길 바라는 아이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며 규칙을 하나 하나 이어가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다행히 아이들이 끝까지 잘 들어주었습니다. 드디어 타일을 뽑으면서 게임을 시작했죠. 그런데...

2주 전에 왔던 아이들 중 2명이 문을 열고 헐레벌떡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기다리는 사람 마음이 그렇죠.) 여자 아이는 예슬 양, 남자 아이는 재혁 군입니다. 오늘 처음 본 채민 양은 보기보다 남성적인 기질이 세서 검은색을 골랐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슬 양은 노란색, 재혁 군은 빨간색을 선택했네요. 처음 온 남자 아이는 파란색을 잡았습니다. (일단 이 아이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아이들은 사람 모양의 말을 놓아서 일정 지역을 점령하는 것을 잘 파악했습니다. 아이들이 착해서 그런지 서로 도와주면서 뽑힌 타일이 잘 들어맞을 만한 장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카르카손은 참 평화로운 게임...으로 알려져 있죠.) 게임의 후반에 지난 수업에 왔던 기현 군이 왔는데, 하고 있던 게임을 끊을 수 없어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게임은 50분 정도 소요하면서 제 예상과 달리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두 번째 게임은 제가 빠지고 늦게 온 기현 군 (남은 초록색 선택)까지 5명이서 진행했습니다. 제가 설명을 해주려고 했는데 기현 군이 옆에서 구경하면서 규칙을 대략 이해했다고 해서 게임을 하면서 재혁 군이 추가 설명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걱정했던 대로 재혁 군이 '자신이 방금 뽑아서 놓은 타일에만 사람 말을 놓을 수 있다'는 규칙을 몰라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리 놔라 저리 놔라 얘기했다가 나머지 아이들에게서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 두 번째 게임을 끝내고 마치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40분만에 게임을 끝내 버려서 한 게임을 더 하기로 했습니다. (늦게 온 기현 군이 한 번밖에 못 해서 한 번 더 하는 게 좋아 보였습니다.)



두 번째 게임부터 아이들이 사람 말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을 터득한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타일을 놓은 후에 제가
"사람 말 안 놓을 거에요?"
라고 물으면
"안 놓을 거에요! 아껴야 돼요!"
라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세 번째 게임에서는 나머지 아이들보다 한 학년 아래인 남자 아이의 점수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을 더듬어보니까 중반부터 계속
"내가 꼴등이에요!"
라면서 조금 신경질적으로 외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일이 몇 개 남지 않아서 두어 라운드가 남은 그 때에 (아이들이 똑같은 턴을 진행하도록 맞춰주었습니다) 그 남자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았습니다. 자기 차례가 되었는데도 팔짱을 풀지 않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안 좋아요?"
대답이 없습니다.
"안 할 거에요?"
역시 대답이 없습니다. 표정을 보아 하니 힘들다 싶어서 다음 아이에게 차례를 시작하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점수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그 남자 아이가 테이블에 놓인 타일들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으로 퉁겨서 테이블 밖으로 쳐내기도 했고요. 제가 수업 시작 전에 강조한 것을 어기고 있어서 말로 타이르며 주의를 줬습니다. 그러자 양 검지 손가락으로 양 귀를 막고 듣지 않는 척을 합니다. 계속 주의를 주자 그 아이는 무릎담요를 당겨서 테이블 위에 던져 놓고 문을 세게 닫으며 집으로 가 버렸습니다. 나머지 아이들도 놀랐는지 분위기가 가라앉았습니다.


내일 도서관장님하고 얘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4화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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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초등학생 고학년과 저학년 각 반을 동시에 진행하려고 했으나, 고학년들이 아무도 오지 않아서 이번 주에 고학년을 모아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도서관장 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전에 수업을 해주신 분이 3-4학년 아이들 4명을 모아서 진행을 하셨는데, 제가 수업을 맡으면서 그 아이들 중 한 명만 남고 나머지 아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수업을 그만두었습니다. 새로운 아이들 3명이 합류하면서 거의 완전 새로운 반이 만들어진 것이죠.


어떤 아이들이 올지 기대를 하며 도서관에 갔는데...

마을 도서관 앞에 한 남자 아이가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아이도 따라들어옵니다. 저의 예상대로 보드게임 수업 때문에 왔다고 합니다. 한 테이블에 무릎담요를 깔며 수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찬호라고 합니다. (한 야구 선수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뻔하게 묻는 질문 몇 가지를 했습니다. 보드게임을 해봤는지, 무엇을 해봤는지 등을요. 아니나 다를까 "부루마블"을 얘기하더군요. ^^

잠시 후에 한 여자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름과 해본 게임 등을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는 민주라고 하네요. 집에 부루마블은 있는데 어려워 보여서 해본 적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여자 아이들의 세계를 잘 몰라서 일반적으로 여자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게임을 접할 기회가 많은지 적은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남자들의 경우는 정말 어렸을 때부터 공놀이나 다른 게임을 시작으로 서로 경쟁하고 시합하는 환경에 매우 친숙하죠.

보드게임을 깊게 하는 사람들은 남자가 대부분입니다만 보드게임 카페에 가는 이유 중에 대부분은 여자들 때문이라고 봅니다. 남자들은 보드게임이 아니더라도 서로 겨루며 시간을 보낼 거리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운동을 해도 되고, PC방에 가서 컴퓨터 게임을 할 수도 있죠. 그러나 여자들이 포함이 되어 있으면 그런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가 좀 어색해집니다. 그래서 노래방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보드게임 카페도 한 대안으로 선택이 됩니다. 그런데 보드게임 카페에서 어떤 게임을 할지는 일반적으로 여자들에 의해서 선택이 되고, 남자들은 그에 맞춰서 따라가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보드게임 카페는 여자들 때문에 가게 되는데, 여자들이 게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게임 속의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서 보드게임 카페에서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대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큰 딜레마죠.

저는 가급적이면 고학년과 저학년 반 모두에 여학생이 포함되어 있기를 바랬습니다. (다행이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험을 굉장히 중요시 하는데, 경험이라는 것은 대물림 (?)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일생에 필요한 대부분의 지식과 경험을 얻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의 공통분모라서 서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 외의 모든 부분은 가정에서 차이가 나게 되죠. 부모가 어떤 영역을 알고 있다면 또는 경험하고 있다면 자녀는 부모의 지식과 경험을 자연스레 물려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부모 중 어느 하나라도 보드게임을 알고 있고, 취미로 하고 있다면 자녀는 보드게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체득하는 것이죠. 유럽이나 미국 쪽은 이미 그렇게 보드게임을 전파해오고 있기 때문에 게임 박람회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이렇게 삼대가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이제 이대까지 내려오는 중입니다. (한국의 보드게임 인구가 적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죠.) 부모가 보드게임을 잘 모르는 가정이라면 그들의 자녀는 보드게임을 스스로 찾아서 배워야 합니다. 어쩌면 그럴 기회가 인생에서 아주 늦게, 심하면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게임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더 적은 여성들이라면 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할 테죠. 제 수업을 통해서 여자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접하고 자신의 취미들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수업 시작 시각에서 10분이 지나자 저는 나머지 아이들이 오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저까지 셋이서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고학년 아이들과 할 첫 번째 게임은 Palazzo 팔라초입니다. (☞ 리뷰 링크) 크고 아... 아름다운 (?) 건물을 짓는 경매 게임인데요. 돈을 주고 타일을 구입하고 개조를 통해서 건물을 변형하는 게 아이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 이 게임으로 골랐습니다. 진행 시간도 60분 정도로 길지 않으면서, 플레이어들이 번갈아서 돈을 가져오거나 경매를 할 때 다른 플레이어도 참가하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의 턴 동안 지루하게 기다리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적당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설명 시작 전에 테이블에 놓는 채석장 타일이 퍼즐처럼 서로 맞춰지는 줄 알고 이리저리 옮기고 돌려가면서 맞춰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매할 채석장을 표시하는 건축가 마커가 플레이어 마커인 줄 알고 마커가 그거 하나뿐이냐며 궁금해 하기도 했고요.

찬호 군이 상자 안에 한글 규칙서가 있는 것을 보고 읽어보겠다고 했습니다. 건네줬더니 규칙서가 8쪽이나 된다면서 어렵겠다고 겁을 먹었습니다. (준비와 예시, 그림 빼면 그렇게 긴 편은 아닌데...) 설명이 20분이 넘어갔는데, 중간중간에 규칙을 정리해주면서 강조를 했습니다. 일단 아이들 표정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거의 다 알아들은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있는 세 가지 행동 중에서 건물 개조는 처음에 불가능하다는 걸 안 아이들은 '통화 카드 가져오기' 행동으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 행동을 선택했고요. 가운데에 놓인 채석장에 건물이 어느 정도 쌓이자 아이들이 스스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낮은 층수의 타일을 먼저 확보해야 하고, 고득점을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한 건물 안에서 타일 색깔을 통일시키는 게 좋다는 것을 아이들도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타일 색깔을 잘 맞춰서 가져간 민주 양이 3채의 건물을 보유했는데 창문의 수도 꽤 많아서 첫 번째 게임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승패에 상관없이, 요령을 깨달은 아이들은 이때 이렇게 말을 하죠.
"선생님, 한 번만 더 해요!"



그리고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타일을 가져오기 위해서, 그리고 타이밍을 잘 조절하기 위해서는 통화 카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나 봅니다. 아이들은 손에 어느 정도 채워질 때가지 계속 '통화 카드 가져오기' 행동을 했습니다. 돈이 어느 정도 갖춰지지 않으면 괜히 경매 선언했다가 상대에게 건물 타일을 내주게 된다는 걸 이전 게임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죠.

지난 주에 저학년 아이들이 카드를 구긴 것 때문에 카드를 손에 오래 못 쥐게 하기 위해서 목재 카드 홀더를 몇 개 가져갔었습니다. 수업 시작할 때에 강조한 '카드를 망가뜨리지 말라'는 것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그 카드 홀더로 시범을 보였는데,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그냥 손에 들고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죠. 그러나 첫 번째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이 손에 카드를 많이 쥐고 있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꼈는지, 두 번째 게임을 할 때에는 카드 홀더를 달라고 하더군요. (카드 독립 만세!!)

민주 양 차례에서 세 번째 타일 더미에서 다섯 번째 '왕의 행차 타일'이 나오자마자 게임이 바로 끝나야 하는데, 그 타일이 나오자 마자 찬호 군이 게임을 더 해야 한다며 그 타일을 타일 더미와 섞어버리는 바람에 강제로 더 진행을 하게 됐습니다. 민주 양도 그러자고 해서 다수결에 의해 (?) 게임이 한 바퀴 더 돌게 되었습니다. ('민주적'입니다. 언어의 유희왕!) 덕분에 찬호 군과 저는 감점이 확실했던 단층 건물을 개조시켜서 감점을 없앴고, 아주 우연히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 제 턴에 마지막 왕의 행차 타일이 나오면서 게임을 끝냈습니다. 점수를 계산해 보니 감점을 없애고 보너스를 추가한 찬호 군과 제가 공동 1등을 했습니다. 민주 양이 전 상황에서 끝냈으면 이겼을 것 같은데, 찬호 군의 말을 듣고 1등을 놓쳐 버렸죠.


아이들은 더 하고 싶어했지만 아이들을 쉬지도 않고 2시간 넘도록 앉아 있게 하는 게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수업을 마쳤습니다. 딱 두 게임 정도가 좋은 것 같더군요. ^^ 아무튼 아이들이 제가 선택한 첫 번째 (전략) 게임을 무난하게 소화를 했고 재미를 느낀 것 같아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카드들은 무사했지만, 흥분 상태였던 아이들이 타일들을 손톱으로 '닥닥닥닥' 찍어서 상처가 좀 났습니다. 뼈를 지키려고 살을 내준 것 같은... (왜 저는 혼자 디펜스 게임을 하고 있는 거죠?) 이정도라면 앞으로도 카드가 들어간 게임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저조한 참석률을 높일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아이들이나 엄마들이 보드게임 수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약속해 놓고 나오지 않는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물어봐야죠. 그런데 다음 주는 다시 저학년 수업이라 벌써부터... 윈터 이즈 커밍...?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3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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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보드게임 모임의 한 분에게서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요일마다 마을 도서관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보드게임을 가르치고 계셨던 그분은 그 수업을 제가 이어받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앞뒤 크게 재보지 않고 수락을 했습니다.

약속한 날짜가 가까워오자 몇 가지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첫 번째, '내 게임들이 무사할 수 있는가?' 어른들도 무의식적으로 게임을 훼손하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더 심할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아이들이 내가 설명하는 것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이거나 초보자들에게 단골로 추천하는 가벼운 게임이 아니라 생각을 요구하는 전략 게임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따라올 수 있을지 예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관계자들이나 아이 부모님들이 보드게임을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까? 어른들이 생각하는 '애들이나 하는 놀이'로 치부하고, 일요일마다 귀찮은 아이들을 나에게 맡겨놓고 그들은 다른 일을 보려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도 좀 들었습니다. 저에게 떠넘겨진, 극복해 나아가야 할 임무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지난 주에 도서관에 사전답사를 갔습니다. 도서관 관계자와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려고요. 일단, 제가 느낀 것은 도서관장님은 보드게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소개하신 분이 전적으로 다 맡아서 수업을 끌고 나가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약간 배척되어서 (혹은 관심이 없어서) 일년 간 진행됐던 수업을 잘 모르고 계셨던 것 같았습니다. 우연히 그날 일년간 아들을 보냈던 어머님 두 분과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기쁘게도 아들들 못지 않게 어머님들이 보드게임 (수업)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계시고, 아이들의 달라진 태도에 대해서 흡족해 하고 계셨습니다. 다른 어머님들께 소문을 내서 저학년 자녀가 있는 어머님들도 은근히 자신들의 차례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확인차 도서관장님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저학년 반이 추가로 만들어졌고, 신청자가 6명이나 된다는 것을요. 안타까운 건, 지난 일년 동안 함께했던 아이들 중 절반 (2명)이 제가 할 수업에서 빠지고 다른 아이들이 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도서관장님이 공지를 잘못해서 두 반이 같은 시간에 동시에 시작하는 것으로 전달됐다는 겁니다. 제가 구상했던 수업이 많이 틀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동시에 두 반을 가르쳐야 하는 기대를 하고 도서관에 도착했는데...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한 명이 도서관 밖에서 활기찬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열쇠로 도서관 문을 열자 저를 따라 들어옵니다.
"오늘 보드게임 하러 왔어요?"
라고 묻자 그렇다고 합니다.

도서관 내에 있는 두 탁자에 검은 담요를 깔고 있는 사이에, 그 (여자) 아이는 그 안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리고 곧 다른 (남자) 아이 한 명이 왔습니다. 그리고 어른 여자 한 분이 와서 저와 인사를 나누고 그 어색한 상황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몇 시간 뒤에 오실 도서관장님의 부탁으로 따님이 저를 도와주러 오신 거였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아이들이 오지 않자, 도서관장님 따님이 아이들 어머님들께 전화를 걸어서 참석 여부를 여쭙고 있었습니다. 제사에 간 아이, 캠프에 간 아이,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등... 제가 많이 실망하게 된 상황이라 제 표정이 어두워져 갔습니다.

나중에 남자 아이 한 명이 더 와서 세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문제는 제가 가져간 게임은 인원수가 짝이 맞아야 할 수 있는 것이어서 한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도서관장님 따님께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혹시, 다른 약속 있으세요?"
"아뇨, 그렇진 않은데요..."
"그러면, 아이들하고 게임을 같이 해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자 약간 어두워진 표정으로
"제가 그렇게 관심있어 하는 게 아니라서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게임 한 판 하는 데에 얼마나 걸리죠?"
"아마 한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그렇게 오래 걸려요?"
"온 아이들이 헛걸음 하지 않게 그래도 조금만이라도 같이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다가 중간에 가셔도 되고요."
"그러면 10분만 시간을 주세요."

10분 정도 후에 도서관장님 따님은 아이들과 같이 게임을 하다가 가신다는 조건 하에 게임에 참여를 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들한테도 그분이 게임 하시다가 가셔야 되면 제가 참여하고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미리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도착해서 게임을 시작하기까지 40분이 지났습니다.)



제가 준비한 게임은 바로 Dog 도그입니다. (☞ 리뷰 링크) 게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쉽게 느끼도록 직관적인 경주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윷놀이와 비슷하지만 주사위나 윷패 대신에 카드를 사용해서 말을 이동시킵니다. 특이한 점은, 개인전이 아니라 마주보는 사람들끼리 한 팀을 이루어서 자신의 팀의 모든 말을 도착 지점으로 보내야 승리하는 철저한 팀 플레이 게임입니다. 도그의 또 다른 큰 특징은 다른 말이 있는 칸에 멈추면 잡힌 말을 출발 지점으로 돌려보내는데, 자기편이든 상대편이든 상관하지 않고 잡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신의 차례 때에 무조건 카드 1장을 사용해야 하는데, 자신이나 자신의 팀에게 불리해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 규칙이 있어서 핸드 관리를 해야 하는 게임이죠.

게임 규칙을 설명할 때에 윷놀이와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또한 팀 플레이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손에 가진 카드를 다 사용할 때까지가 한 라운드인데, 라운드마다 받는 카드의 수가 달라서 미리 준비해간 주사위로 받아야 하는 카드의 숫자를 표시했습니다. (받아야 하는 카드의 수가 6-5-4-3-2-6-5...를 반복하기 때문에 주사위를 사용하면 진행에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라운드 시작 시에 카드를 받은 후에 받은 카드들 중 1장을 자신의 파트너와 비공개로 교환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로만 구성한 팀에서 카드 교환이 잘 안 되어서 한 아이가 출발 지점에 있는 말을 시작 칸에 놓지 못해서 바로 라운드에서 탈락했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없으면 핸드를 공개하고 라운드에서 탈락합니다.) 게임 내내 도서관장님 따님과 두 명의 남자 아이들이 서로 열심히 잡고 잡히는 사이에, 여자 아이가 먼저 자신의 말 한 개를 도착 지점으로 보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빨간색 특별 카드들 중에서, 앞이나 뒤로 4칸을 보낼 수 있는 카드가 있는데, 시작 칸에서 뒤로 가면 윷놀이에서 백도와 같은 효과가 있어서 한 바퀴를 돌아온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 카드를 잘 썼던 겁니다. 이에 반해 여자 아이와 한 팀을 이룬 남자 아이가 견제를 많이 받고 실수를 몇 번 해서 도서관장님 따님 팀이 역전해서 승리했습니다.

게임이 끝나서 게임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도서관장님 따님이 아이들에게,
"우리 한 판 더 할래?"
라고 하셔서 리벤지 매치가 성사됐습니다. (분명히 게임에 관심없어서 중간에 가실 거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


이번에도 여자 아이가 가장 먼저 말을 도착 지점으로 보냈습니다. 놀랍게도 첫 라운드에서 4번째 턴만에 이뤘습니다. 게다가 그 다음 턴에 출발 카드를 사용해서 두 번째 말을 시작 칸에 놓기까지 했죠. 이번에도 나머지 세 명이 서로 잡고 잡히면서 치열한 싸움을 이어갔는데, 게임이 끝날 때 즈음에 양팀 모두 단 한 개씩의 말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모두 도착 지점에 보내면 그 다음 턴부터는 자신의 파트너의 말을 이동시키기 때문에 그렇게 한 팀은 이동이 훨씬 더 빨라져서 유리해집니다. 양 팀 모두 도착 지점 코 앞에서 라운드가 끝났고 다음 라운드에 카드 교환 후 첫 번째 플레이어가 바로 자기 팀 말을 도착 지점으로 보내면서 한 턴 차이로 게임이 끝나 버렸습니다.

첫 번째 게임은 게임 설명까지 포함해서 한 시간 걸렸고 (제가 말했던 대로 됐네요.), 두 번째 게임에서는 게임 설명 없이 50분이 걸렸습니다. 저는 또 게임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도서관장님 따님이
"한 판만 더 하면 안 돼요?"
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3시에 약속이 있어서..."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빨리 가고 싶어서 둘러댄 게 아니라 진짜로 약속이 있었습니다.)


게임을 정리하면서 도서관장님 따님이 도그의 가격을 물어보셔서
"좀 비싼데요..."
"얼만데요?"
"6, 7만 원 정도 할 것 같아요..." (확인해 보니 약 €27여서 5만 원 내외일 것 같습니다.)
"얼마 안 하네."

의외로 쿨한 답을 하셔서 저는 속으로 좀 당황했습니다. 게임을 같이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 가격을 알려드렸다면 비싸다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게임을 해보시니까 비로소 재미 대비 비용이 싸게 느껴지는 것이겠죠. (여러분! 보드게임은 이렇게 쌉니다! ㅋㅋ) 한 발 더 나아가셔서 아이들한테
"이거 사놓고 도서관에서 할까?"
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도서관장님 따님과 짧막하게 얘기를 더 나눴습니다.
"보드게임 재미있네요! 저는 카페 같은데 있는 게임인 줄 알았어요."

요즈음에는 카페에 설명이 필요없는 간단한 게임들을 놔두고 손님들이 (알아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곳이 많습니다. 보통은 시간은 많고 할일은 없는 커플들이 과일 카드를 내면서 종을 땡땡 울리거나, 힘들게 쌓은 나무 토막들을 와르르 무너뜨리면서 깔깔깔 웃어대는 게임들로 인해서 보드게임이 우리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오히려 그런 게임들 때문에 나머지 99%를 차지하고 있는 다른 게임들이 묻히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게임들은 규칙을 설명해야 하고 복잡해 보이거나 실제로 복잡하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보드게임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게이머들이 아닌 나머지 일반인 (?)들의 보드게임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 저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머리가 굳어진 어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세계가 실제와 다르게 왜곡이 되어 있더러도 (굳이 자신들의 노력을 들여서) 그것을 바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눈을 돌려서 앞으로 5년, 10년을 내다보고 게이머들을 키우려고 이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죠. (봉사활동이란 가면 뒤에 이렇게 무서운 저의 계획이 있답니다. ㅎㅎ) 운이 좋으면 아이들 부모님들의 생각이 바뀌게 되어서 자발적으로 아파트 단지 내에 보드게임 모임이 생기고 운영이 되면 그것은 덤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봉사활동 안에 문제점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무언가에 집중하면 나머지 영역은 말 그대로 '무의식'이 됩니다. 아이들의 집중력과 계산력이 엄청나서 어른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는데, 그에 반해 집중을 하는 동안에 손이나 발, 몸 등은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고 반응합니다. 그래서 카드를 손으로 구기거나 접는 행위가 자신들도 모르게 발생을 하죠. 이건 옆에서 아무리 얘기하고 경고를 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진짜로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이니까요. 10장에 가까운 카드들이 손상되어서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봤던 댓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보나마나 게임 구성물들이 손상될 거라는... ㅠㅠ) 도그가 구하기 절판된 게임은 아니라서 퍼블리셔에 얘기해서 대체품을 구입하거나 얻을 수 있긴 한데, 앞으로도 수업이 계속 된다면 제 게임들이 수업할 때마다 손상이 될 거란 얘기죠. 저는 제 물건을 굉장히 소중히 다룹니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게임들 중에 다수는 구하기 어렵거나 비쌉니다. 저학년 반 수업을 계속해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 계속한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좋은 취지의 활동을 통해 게이머들의 모임에서 느끼는 것과 다른 보람을 느끼는데, 수집을 하는 게이머로서 고민이 이에 비례합니다.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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