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늦게까지 보드게임 모임에 있다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빨리 잠에 든다고 했는데 그래도 새벽이어서 아침까지 부족한 잠을 꾹꾹 눌러 잤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는데 10여 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겁니다. 겨우겨우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음만 조급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길이 막히지 않아서 10분 정도만 늦었습니다. 도서관 앞에는 찬호와 2주 전에 새로 온 여학생 2명도 있었습니다. 제가 헐레벌떡 뛰어가서 도서관 문을 여니까 따라 들어오네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제 수업의 원칙을 얘기했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아이들을 보면 보드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의 고정관념 같은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로열 터프를 꺼내자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말을 한 개씩 번개처럼 집어가는 것이었죠. 아이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색깔이 여러 가지 있다고 반드시 자기 색깔을 정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라고요.

아이들에게 로열 터프 규칙을 설명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0" 가치의 베팅 칩을 사용하는 선택 규칙도 적용해서 했습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에 서로 낚고 낚이고 때때로 자기 스스로 낚이는 모습이 재미있으니까요.

내기를 하면 사람들마다 자기 스타일을 드러냅니다. 안정성을 중요시 하는 사람, 한탕 크게 먹는 걸 노리는 사람, 저처럼 열심히 확률 계산하는 사람 등요. 그래서 이 게임을 할 때에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선호하는 말이 달라지게 되죠. 찬호는 안전한 말을 주로 선택했고, 은주와 수경이는 어쩌다 보니 서로 겹쳤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견제하면서 한 방 큰 걸 노렸습니다. 첫 라운드에서는 수경이가 적극적으로 밀어준 말을 제가 잘 얻어 타서 크게 먹었습니다. 게다가 이 말에는 페이스 메이커 마커까지 얹혀져서 더 많이 먹었죠. 두 번째 라운드부터 아이들이 제가 건 말에 같이 베팅해서 여러 명이 골고루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머지 앞 순위도 맞추고 꼴찌 말은 피해서 돈이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도서관 문이 열리더니 종혁이가 어머님 손에 이끌려 들어옵니다. 어머님 말을 들어보니 아이가 30분 넘게 기다리다가 집으로 왔다고 하네요. 찬호가 끼어들더니
"얘 배트민턴장에 있었어요."
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찬호가 종혁이를 봤으면 같이 들어가자고 말하거나 저한테 종혁이가 어디에 있다고 말을 해야 했는데 왜 가만히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혁이가 왜 도서관 문 앞이 아닌 건물 앞인 배드민턴장에서 있었는지도요. 종혁이 어머님으로부터 심적인 압박감이 오기 시작했죠. 결국, 도서관의 전화번호를 알아가시고 다음 수업부터 확인 전화를 하시겠다는 선에서 해결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에 이건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봉사활동인데 이와 관련된 사람들은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저는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서 지적인 유희를 얻길 바라는데 도서관장님이나 학부모들은 학습 능력이나 태도 향상을 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라는 것처럼 쉽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진지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 같고, 보드게임이 무언지 이해를 하는 것보다 그냥 '남들이 좋다니까 우리 아이도?!' 이렇게 '묻지마'식으로 아이들을 떠맡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학부모들께 보드게임을 알려드리려고 자리를 마련해 봤지만 딱 한 분만 오신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세 번이나 열었는데도 말이죠. 그 '삼고초려 (?)를 통해서 제가 느꼈던 것은 하나였습니다.

'이곳에서 어른들이 보드게임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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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인 토요일에 보드게임 모임이 있었는데 참가를 못하고 집에 있었습니다. 이래저래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아서 집에서 조금씩 해결하고 있었죠. 덕분에 일찍 잠들어서 일요일에 도서관으로 일찍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없는 행복이라도 만들어서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ㅎㅎ)

오후 1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이게 왠일? 도서관이 이미 열려 있고 심지어 불도 켜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안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책장을 스캔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 문밖에는 애증의 (?) 찬호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가니까 따라 들어오더라고요.

테이블에 세팅을 하니 여학생들이 따라서 앉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보드게임 하러 온 거에요?"
라고 묻자,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게 얼마만에 새 아이들이 온 건지! 이름과 학년을 물어봤는데, 세상에나! 둘 다 이제 5학년 되는 초등학생이라는 겁니다. 저는 중학생으로 봤거든요. 어쩌면 둥글둥글하며 아직은 키가 덜 자란 마성의 (?) 찬호 옆에 있어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저 어렸을 때 기억으로도 이 나이 또래의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먼저 성숙해져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것 같네요. 아무튼 3살은 어려보이는 찬호에게 꼬박꼬박 '오빠'라는 호칭을 부르는 걸 들을 때마다 역으로 '누나'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었단 건 비밀.

아무튼 호구 조사 (그 '호구' 아닙니다!)를 마쳤으니 제 수업의 원칙을 얘기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정말 오랜만에 고학년반 수업이 열렸습니다. 연초에 쉬고, 설 연휴 쉬고... 이날 오지는 않았지만 쉬운 게임을 하고 싶다는 정웅이의 요청에 따라 쉬운 게임을 준비했는데, 어쨌거나 덕분에 새로 온 아이들에게 그들의 첫 번째 게임으로 아주 적당한 게임을 가르쳐주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이날의 게임은 Keltis: Das Kartenspiel 켈티스: 카드 게임이었습니다. 원래 Lost Cities 잃어버린 도시들이라는 제목으로 2인 게임으로 발매되었다가 나중에 Keltis라는 제목으로 바뀌고 4인까지 가능하도록 확장되었는데, 그 게임에서 보드를 쏙 빼고 카드만 남겨놓은 스핀-오프 게임입니다. 그런데 휴대성 때문에 저는 이게 좋더라고요.

여자 아이들에게 맞춰서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보드 게임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들이어서 좀 걱정을 했는데 규칙 이해는 잘 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진행이 빠르고 짧은 게임이라서 총 4번을 했는데요. 찬호 - 은주 - 수경 - 저순으로 돌아가며 시작 플레이어가 됐습니다. 지켜본 소감을 좀 적어보겠습니다.

일단 이 게임에서 턴마다 할 수 있는 행동이 크게 4가지인데,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보통 일반 사람들에게 보드게임이란 할 것이 한 가지로 정해져 있죠. 주사위를 굴려서 트랙을 도는 것처럼요. 서양식 현대적인 보드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무작정 색깔 카드를 내려놓는 경우가 많았고, 찬호는 좀 예외적으로 소원의 돌 규칙을 잊지 않고 초반부터 기회가 되는 대로 획득하려 했습니다. 수업 태도 면에서 제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뿐, 찬호는 게이머적인 센스가 있는 아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더미의 맨 위 카드를 가져가는 걸 자주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이 달리고 있는 색깔이고 순서도 맞다면 가급적이면 버려진 더미에서 가져가는 게 확률 면에서도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이들은 놓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자 아이들이 2시 반에 시작하는 인기가요 앞부분 놓치는 걸 걱정하던데, 게임에 집중해야지!! ㅎㅎ (그 와중에 제가 인기가요 오후 5시에 하는 거 아니었냐며... 언제적 얘길 한 건지. ㅋㅋ 제가 주말에 TV을 안 본지 엄청 오래됐거든요.)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건 인기가요 시간이 가까워졌음에도 여자 아이들은
"선생님, 한 번만 더 해요! 이제 잘 할 수 있어요!"
라며 인기가요를 과감히 포기하고 보드게임 수업을 택해줬다는 겁니다.

세 번 모두 제가 이기고 마지막 네 번째 게임에서는 찬호가 소원의 돌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그 때문에 나머지 세 명이 소원의 돌이 말려서 찬호가 1점차 승리를 했습니다. 찬호, 제법이야~! 다른 사람을 말아서 이길 줄도 알고.


신입생이 들어온 교정의 풍경처럼, 두 명의 풋풋한 보드게임 새내기들 덕분에 우리 보드게임반에도 상큼한 봄날이 찾아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9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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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겨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그걸 절실하게 느낍니다. 스타크 가문의 모토 "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고 있다"보다는 지금 우리에겐 "Winter is around Us 겨울은 우리 주위에 있다"가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덜덜덜

종종걸음으로 칼바람을 뚫고 도서관으로 향하자 예슬이가 가장 먼저 저를 반겼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한켠에 있는 난로를 켰죠. 몇 분 기다리니까 소란스러운 목소리와 걸음소리가 들리네요. 역시 한결이. 일단 저까지 세 명이서 진행을 하려고 했는데, 설명 시작하면 재혁이가 올 것 같다는 아이들의 예감이 정확이 맞아 버렸습니다. 설명을 천천히 하길 잘했네요. 휴 =3



2주 전과 마찬가지로 Machi Koro (한국어판 제목: 미니 빌)을 했습니다. 이미 전 수업에서 3번이나 했던 한결이는 시작 전부터 자신만만해 합니다. 기현이의 편의점 러시에 된통 당한 기억이 남아서인지 한결이는 초반부터 편의점만 구입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냥 착실하게 열심이 돈을 모읍니다. 카드를 구입하지 않고요. 그러다가 저의 카페 ('3'을 굴린 다른 플레이어에게서 돈을 빼앗는 건물)에 재혁이가 탈탈 털립니다. 영혼까지요. ^^ 될 사람은 된다고 했나요? 편의점을 독점하다시피한 한결이가 스스로 '4'를 여러 번 굴린 바람에 게임이 일방적으로 흐르고 맙니다. (한결이가 주사위를 굴리는 것에 약간 문제제기할 만한 게 있어 보였는데 그냥 넘어갔습니다.)


첫 번째 게임을 하는 동안에 진모가 왔습니다. 원래는 진모가 문밖에서 들어올까 말까 간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예슬이가 먼저 발견했네요. 재혁이가 웃으며
"야, 쟤 들어오지 말아고 해."
"재혁이가 너 들어오지 말래."
예슬이가 문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놓고 재혁이 말을 그대로 옮겨줍니다. 당황한 저는
"왜 진모 못 들어오게 해?"
라며 진화작업을 했고, 재혁이가 장난한 거라고 하면서 잘 마무리가 됐습니다. 둘은 잘 풀어졌는지 또 딱지 얘기를 하더라고요.



게임을 모르는 진모에게 설명하고 두 번째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빠지고 아이들 네 명으로만요. 한결이가 자꾸 자신만만해 하니까 아이들이 한결이가 전 수업에서 먼저 해봤음을 알아버렸습니다. 급기야 한결이를 빼고 해야 한다는 말까지;;; 저는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게임이라서 많이 해봤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건 아니라고 얘길하고 계속 진행시켰습니다. 한결이는 여진히 편의점. 재혁이는 이것저것. 예슬이는 카페. 이번엔 '4'가 많이 안 나왔고, 돈을 필요한 카드에만 사용한 예슬이가 이겼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마지막으로 한 게임. 한결이가 좀 욕심을 냈는지 불필요한 건물들까지 마구마구 구입했습니다. 주사위 1개만 굴릴 거면서 광산을 여러 개 사고;;; 아마도 전 게임에 예슬이가 이겨서 그러지 않았나 싶네요. 결국 또 예슬이가 승리하고, 충격이 컸는지 한결이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기만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슬이 혼자 남아서 제가 게임 정리하는 걸 도와줬습니다. 예슬이가 이런 면에 있어서 마음이 섬세하다는 걸 느끼네요. 여자 아이라서 그런지. (설마 승자의 여유?)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8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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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일찍 도착했습니다. 할일이 없어서 도서관 한쪽에 꽂혀 있는 "반지의 제왕"을 꺼내 읽었습니다. 제가 "반지의 전쟁" 보드게임을 번역했지만 사실 원작인 "반지의 제왕"을 읽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번역하는 동안에 필요한 부분만 검색해서 읽어봤을 뿐입니다. 책장에 있던 6권 중에서 톰 봄바딜이 나오는 부분만 찾아서 읽었습니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저도
"응, 안녕?"
했죠. 이제 5학년 되는 정웅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더 올 때까지 정웅이도 책을 꺼내서 읽었습니다.

한 10여 분 기다리다가
"더 안 올 것 같으니까 우리끼리 하자."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날 할 게임의 설명이 좀 길 것 같았거든요.



Glen More 글렌 모어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계곡 이름입니다. 원래는 "Glenmore"라고 붙여야 되는데, 게임 제목에 사용하려고 사이에 공백을 넣은 것 같네요. 아무튼 정웅이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넋이 살짝 나간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님, 어려워요. 쉬운 게임 좀 가져오세요."
라며 투정을 부립니다.
'이게 그렇게 어렵나?'
싶어서 게임 상자 옆면을 보니 "13+ (만 13세 이상)"이라고 써있긴 하네요. 그래도 이제 5학년 되는 아이에게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고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게임만에 저를 이기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해보고 모르겠으면 또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설명 끝나고 시작했습니다. 정웅이는 자신이 없는지
"선생님이 먼저 하세요!"
"그래." 그래서 제가 먼저 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정웅이는 제가 뭔가를 하면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겠다는 생각이었나 본데, 이 게임이 그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자신의 턴에 타일 풀에서 타일을 가져오는 "Draft 드래프트" 방식이라 풀에 똑같은 타일이 남아 있으라는 법도 없도, 설령 똑같이 따라한다 하더라도 "Time Track 시간 트랙" 방식 때문에 풀에서 멀리 있는 타일을 선택하면 한동안 자기 턴이 오지 않게 되죠. 정웅이가 똑같이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게임이라는 겁니다. ^^



정웅이에게 다행스럽게도 게임 도중에 4학년 되는 종혁이가 와서 게임을 다시 설명하고 시작해야 했습니다. 종혁이한테 설명해주고 중간중간에
"이해했어?"
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긴 하는데 뭐랄까요... 시쳇말로 표정에 "영혼이 없는" 끄덕임. 종혁이가 게임 이해와 센스는 상대적으로 부족해도 다른 고학년반 아이들과 다른 점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단점일 거라 생각했는데 고학년반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봐 오니까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정답 찾기"에 익숙해져서인지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따라하려는 경향이 보이는데 어린 아이들은 "때가 덜 타서" 자기 만의 플레이를 하는 것 같네요.

종혁이가, 새로 붙이는 타일 주위에 부족원이 있어야 하고, 마을에 강과 길이 하나씩만 있어야 한다는 타일 붙이는 규칙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종혁이에게 한 가지 놀란 점은, 생산 타일에 이미 자원 3개가 있을 때에 또 그 타일에서 자원을 생산을 해야 할 때에, 생상 직전에 자원 1개를 창고에 판매한 다음에 생산을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정웅이는 몰랐는데 말이죠. 종혁이가 평소에 약간 멍~한 표정을 보였는데 이 날은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ㅎㅎ

게임의 결과는 제가 이겼지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다음에 한 번 더 했을 때에 아이들이 거부하지만 않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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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저는 쉬고 있어야 했습니다. 유일하게 편히 쉴 수 있는 일요일을 3개월 이상 쉬지 못하고 게임 수업 준비를 하다 보니 몸에 조금씩 이상 신호가 오고 있었습니다. 계속 피곤하고 근육이 자주 뭉치고 그랬죠.

그런데 아이들의 요청이 있어서인지 저에게 연락이 와서 한 달 정도 더 쉬려던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꿀같은 3주 휴식을 끝으로 또 아이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몇 주만에 해가 바뀌었고, 아이들이나 저나 한 살씩 더 먹었습니다. 12시에 도착했으나 아이들이 아무도 오지 않았고, 저는 도서관에 있는 책을 읽고 있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온 것은 수업에 불규칙적으로 오는 기현이.
"오늘 안 오려고 했는데요. 왔어요."
라며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기현이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 방 안에서 몸부림을 치며 다른 아이들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목소리로 한결이가 도착을 알렸습니다.
"재혁이 형아, 오늘 못 온대요."
그러면 예슬이는 올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한결이는 책을 꺼내서 읽네요.

40여 분 지났는데도 다른 아이들이 오지 않아서 그냥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도 기다리기 지겨웠거든요.



이날 수업은 Machi Koro 마치 코로 (한글판 제목: 미니 빌)을 했습니다. 주사위 게임이긴 한데 카드 콤보와 확률을 생각해야 해서 아이들에게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일단 해보는 거죠.

아이들에게 설명을 했는데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부분들을 몇 개 찾았습니다. 먼저, 주사위 결과와 자신이 구입할 수 있는 카드의 숫자를 연결해서 생각하더군요.
"선생님! 저 3이었으니까 3 카드 사면 되는 거죠?"
이렇게요.

두 번째로, 어른들한테는 별거 아니지만 용어를 어려워 합니다. '한 턴 더 한다', '획득'이라는 말은 초등학교 저학년이 이해하기 쉬운 말은 아니니까요. 차라리 '차례를 한 번 더 한다', '얻는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뭐, 이렇게 게임을 통해서 새로운 말을 배우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죠.

첫 번째 게임은 제가 몇몇 카드를 독점하고 10원이 넘는 큰 돈을 여러 번 얻어서 쉽게 끝나버렸습니다. 기현이가 뭔가 해보려고 했는데 끝나버리니까 아쉬워했습니다. 기현이가 저는 빼고 한결이와 둘이서만 하겠다고 했는데 한결이가 반대해서 다시 3인 게임을 했습니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기현이가 편의점을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편의점 대박이 몇 번 터져서 거의 한 턴 차이로 기현이가 승리를 했습니다.


마지막 게임은 한결이와 기현이 둘이서 진행을 했습니다. 한결이는 첫 턴에 기차역을 만들더니 두 번째 턴부터 주사위를 두 개 굴리는 이상한 플레이를 했습니다. 저와 기현이는 놀라서
"왜 두 개 굴려?!"
라고 물었는데 한결이가 별다른 말이 없네요. 아마도 어려서 경우의 수를 계산하기 어려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몇 턴 지나고 나서 주사위 2개를 굴리면 6이 넘어가는 큰 수만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는지 다시 한 개씩 굴렸습니다. 그 사이에 기현이는 편의점을 사 모으고 있었고, 뒤늦게 한결이가 편의점을 2장 정도 끊었는데 기현이가 보라색 카드 바꾸는 건물을 사서 밀밭을 주고 편의점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 이후는 기현이의 일방적인 게임이 됐는데, 기현이가 좀 도발적인 말을 해버렸습니다.
"내가 지금 끝낼 수도 있는데, 봐 줬다."
그러면서 일부러 게임을 끝내지 않고 더 많은 카드들을 사 모았습니다. 한결이는 보라색 카드와 빨간색 카드 때문에 어렵게 모은 돈을 빼앗기고 표정도 어두워졌죠. 한결이가 어렵게 어렵게 3번째 주요 건물을 건설하자 기현이가
"이제 끝내야겠다."
면서 네 번째 주요 건물을 건설하고 게임을 끝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마저도 기분이 언짢게 만드는 플레이였습니다. 이건 봐주는 게 아니라 가지고 노는 거였으니까요. 옆에서 기현이에게 빨리 끝내라고 여러 번 얘길 했는데 안 듣더라고요. 어려서 승자로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만 알고 지켜줘야 할 패자의 자존심은 아직 모르나 봅니다.

한결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 한 번만 더 해요..."
라고 했는데, 이미 3시가 되어 버렸고, 한 게임 또 해도 한결이가 일방적으로 질 것 같아서
"이 게임은 한결이가 하기에 어려운 것 같아요."
라며 수업을 끝냈습니다. 한결이에게 기현이는 좋은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현이가 게임을 조금 더 잘해서가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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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마지막 일요일이었습니다.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아이들을 만나러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추웠는데도 아이들은 건물 밖에서 제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외쳤습니다.
"선생니~~임!!"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죠.

재혁이와 예슬이, 한결이 이렇게 세 명만 있어서 저까지 네 명이서 주사위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카드 게임 버전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주사위처럼 정육면체 모양의 귀여운 상자가 마음에 드는 Keltis: Das Würfelspiel 켈티스 주사위 게임입니다. 규칙을 설명했는데, 게임 자체가 어렵지 않아서 아이들이 다 이해한 눈치입니다.

아이들은 뭔가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화 속 주인공처럼 주문을 외우고 던지면 주사위 결과가 더 잘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평범하게 굴리지 않고 각자 어떤 포즈나 커다란 외침을 하더라고요. 그 때문에 아이들이 손바닥 사이에서 계속 비비느라 주사위에 땀이 묻고,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러서 먼지도 많이 묻어서 집에 돌아온 후에 물티슈로 박박 닦았다는 건 비밀입니다.


첫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인데 한결이 친구 진모가 왔습니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걸 중단시키기 좀 그래서 계속 하고 끝나면 네 명이서 같이 하라고 했죠. 그런데 진모가 심심했는지 자기가 가져온 플라스틱 딱지 (?) 같은 걸 꺼내서 자랑을 하더군요. 신기한 게 뒷면에 QR 코드같은 게 있어서 따로 사용하는 용도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재혁이가 진모와 얘기나누는 걸 들어보니 스마트폰에서 그 QR코드를 스캔하면 스마트폰용 앱에서 그 딱지에 그려진 몬스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신기했습니다. 아무튼 둘은 이야기가 잘 되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진모가 딱지 몇 개를 스캔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죠.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진모한테 게임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이 몇 분을 못 기다려서 방 안을 뛰어다니거나 한쪽에 있던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꽤 소란스러웠는데 이때 아이들을 자제시켰어야 했나 싶더라고요. 아무튼 진모가 알아들었다고 해서 저를 빼고 아이들 네 명이서 게임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진모가 먼저 시작했는데 그 특유의 표정으로 저를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뜻이죠. 한 게임을 먼저 해본 나머지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친절하게 (?) 잘 알려주었습니다. 그래도 자기 스스로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아이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해서 게임에 재미를 못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게임이 아니라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임이 되어 버리니까요.

아무튼 진모는 게임을 하는 것보다 남하는 걸 방해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는지 재혁이 차례 때에 비매너 플레이를 했습니다. 재혁이가 주사위를 굴리려고 하자 옆에서
"망해라, 망해라..."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평소에 잘 웃는 재혁이도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야, 하지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재혁이 차례에도 진모는 그렇게 하고 보다 못해 제가
"다른 사람할 때에 방해하지 말아요."
라고 중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진모가 재혁이에게 주사위를 넘길 때에 신경질적으로 던져주더군요. 그러면서 둘 사이에 신경전이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진모는
"딱지 안 줄 거야! 절대 안 줄 거야!"
라며 재혁이와의 약속을 깨버렸습니다. 반 분위기가 묘해졌죠.

진모는 한 발 더 나아가 게임을 하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저도 참던 게 폭발했죠.
"진모, 방에서 나가. 수업 제대로 안 할 거면 집으로 돌아가."
진모는 그 표정으로 저를 뚫어져라 쳐다 봤습니다.
"일이 있어서 수업에 늦게 오는 것까지는 내가 뭐라고 안 하는데, 다른 사람 방해하고, 게임 열심히 안 할 거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아. 그러니까 다음 시간부터 수업에 오지 마."

뭔가 제가 마카다미아 급 발언을 해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니까 게임을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고, 어린 마음에 장난이 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날은 진모가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나머지 아이들은 게임을 끝냈고 저마다 제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먼저 집에 가도 되냐며 집으로 돌아간 진모를 제외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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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 찬호와 정웅이만 했던 Stone Age 스톤 에이지. 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플레이를 해서 제가 큰 실망을 했지만,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다른 게이머 분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서 마음의 치유를 받고 또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처럼 게임을 자주하는 게이머들이야, 일꾼 놓기 메커니즘을 쉽게 이해하고 전략을 쉽게 구사할 수 있지만 2주에 한 번 게임하는 초등학교 아이들한테 실망을 하기에 제가 너무 엄격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만 더 들고 가서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이날엔 정웅이가 몸살로 수업에 나오지 못하고 나머지 세 아이들만 왔습니다. 찬호는 이 게임을 보자마자
"아~ 이거 또 해요?!"
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난 수업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플레이를 해서 다시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만, 정웅이와 찬호 둘이 너~~무 못 해서 한 번 더 가져왔다고 얘길했죠.

게임 실력보다, 두 반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찬호한테 기대하는 것도 있고, 좀 달라졌으면 하는 면들도 있는데요. 이를 테면 게임 중에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합니다. 나머지 아이들이 한두 학년 어려서 따라오는 속도가 느린 건 어쩔 수 없는 건데 좀 심하게 타박을 하죠. (피씨방 가면 중고딩들이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에게 던지는 말과 비슷하더라고요.) 표정을 보면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악의 없이 습관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면 그것 역시 문제죠. 아이들이 덜 와서 제가 같이 게임하게 되면 저보고 빠져달랍니다. 잘할 것 같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너 좀 비겁한 거 아니니?"
라고 했는데,
"네, 저 비겁해요~"
라며 뺀질뺀질하게 대답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을 같이 듣는 다른 아이들을 동료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기고 떨쳐내는 경쟁자로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지난 수업에 오지 않았던 두 아이에게 설명을 다 하고, 찬호, 민주, 종혁이 순으로 진행했습니다. 게임의 시작 전부터 걱정된 건, 종혁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나머지 아이들보다 어려서인지 게임에 대한 이해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면 저학년 반으로 가지 않겠냐고 권유 아닌 권유를 했었는데 본인이 싫다고 했죠. 정서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감을 쌓는 법에 많이 서투른 것 같고 혼잣말을 잘해서 다른 아이들이 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심하다 싶을 때에만 제재하는 정도뿐이고요. 아무튼 이 날도 종혁이가 설명은 다 알아들었다고 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은 플레이를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2주 전에 찬호와 정웅이도 그렇게 했네요. ^^;;)

찬호는 한 번 털리고 느낀 바가 있었는지 이번 수업에는 정석적인 플레이를 했습니다. 제가 크게 놀란 건 민주의 플레이였죠. 첫 게임임에도 (제가 딱히 알려준 것도 아닌데) 찬호 다음으로 마을 건물에 딱 들어가더라고요. 2주 전 아이들의 플레이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좀 아쉬웠던 건 카드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아서 최종 점수계산할 때에 점수가 역전당할 것 같았습니다. (석기시대를 해본 적이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최종 점수 보너스가 작게 느껴지니까요.) 그래도 뚝심있게 자원을 열심히 모아서 오두막을 자주 건설해서 점수를 쭉쭉 앞지르더군요. 후반에 카드를 몇 장 사긴 했는데 많이는 아니었습니다. 옆에서 찬호가 얄미운 시누이급 궁시렁 잔소리를 늘어놔서 민주가 꾹꾹 참아가면서 플레이를 했습니다.
"아, 답답하네. 카드 안 사면 진다니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지!!"
민주가 대꾸를 잘 했지만 석기시대를 해본 사람 입장에서 찬호 말이 맞는데 두 아이 앞에서 편들기도 어렵더군요. 결과가 어떨지 뻔히 보여서 마음이 좀 쓰였고요.


결국엔 오두막이 다 떨어져서 게임이 끝났는데요. 점수를 계산해 보니 10여 점의 차이로 찬호가 승리했습니다. 찬호가 이겼다고 좋아했는데 저는 민주가 카드를 적게 구입하고도 높은 점수를 내서 대견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첫 게임이었는데 말이죠.

종혁이는 이미 승리와 멀어져서 두 아이와 반 바퀴 정도 차이가 났던 것 같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종혁이에게 물어보니 재미있었다고 대답한 거 정도.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4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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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군대의 전투" 한글화 자료를 만드느라 일요일 새벽 4시까지 작업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헐레벌떡 도서관을 향했습니다. (아이고, 졸려...)

도서관 앞에 1학년 한결이 혼자 쌓인 눈을 발로 차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결이와 함께 다른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10분 정도 기다리니까 2학년 재혁이가 왔습니다. 아이들은 딱히 할 게 없어서 책을 펼쳐서 읽더군요. (좋은 습관이죠?) 저도 눈에 들어온 책 (반지의 제왕 마지막 편의 부록 부분)을 열심히 훑었습니다. (번역 맞춰볼 겸 읽었는데 이게 취미인지 일인지... ㅠㅠ)

20분 정도 더 기다리니까 예슬이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세 명이 모여서 더 기다리지 않고 그냥 시작하기로 했죠.


저학년 반의 7번째 게임은 Pickomino 피코미노 (한국어판 제목은 꼬꼬미노)입니다. 이 게임은 Yahtzee 야찌 스타일의 주사위 게임인데, 그나마 이런 종류의 게임들 중에서는 쉬운 편이어서 이것으로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은 주사위가 있는 게임을, 뭐랄까요... 좀 너무 쉬운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주사위 굴리기 게임은 손으로 주사위를 굴리면 되니까 쉽죠, "물리적"으로만 말이죠. 하지만 야찌 스타일의 게임들에는 플레이어가 더 나은, 더 높은 가치의 조합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숫자를 잡아야 할지를 선택하는 부분이 있는데, 플레이어 스스로가 "확률"을 계산할 수 있어야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주사위를 잘 굴리라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가장 좋은 주사위 숫자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시간 관계 상 3번째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끊었는데, 아이들을 지켜본 소감을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게임 외적인 것인데요. 예슬이를 기다리는 동안에 재혁이가 한결이에게
"한결아, 게임 설명 들을 때에... 질문... 설명 다 끝나고 해."
라고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 말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재혁이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이었거든요. ^^ (2주 전에 Ticket to Ride 티켓 투 라이드를 설명할 때에 중간에 끼어드는 질문들 때문에 무려 40분이나 걸렸어요.) 재혁이 지적 덕분인지 꼬꼬미노를 설명할 때에 한결이의 질문이 거의 없었고, 설명도 10분만에 깔끔하게 끝났습니다. (규칙이 쉬운 것도 있지만) 설명이 끝난 후에 아이들의 이해도도 높았던 걸로 보면 제가 설명을 정~~~~말 잘 하거나 (^^;;;) 아이들이 게임을 이해하는 실력이 나아졌다는 의미겠죠. 어쨌든
"큰 것부터 이해하라"
는 저의 가르침을 아이들이 잊어버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잘한 규칙과 예는 저의 설명 뒷부분에 나오면서 빈 퍼즐 조각들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 아이들이 확률 계산에 아직은 서툴렀습니다. 아무래도 "확률"에 대한 내용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 배우기 때문에 지금 8, 9세 아이들이 확률 계산까지 하는 걸 바라는 건 저의 욕심이죠. 꼬꼬미노에서는 자기 턴에 숫자 그룹마다 한 번만 잡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턴에 숫자들이 골고루 나왔다면 낮은 숫자 1개짜리를 잡고 나머지 주사위들을 많이 굴려서 높은 숫자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한달 전 수업에서 Las Vegas 라스 베이거스 해본 아이들이 이걸 깨우치더라고요.) 그런데 1학년 아이들은 이것을 반대로 하는 경우가 있어서 제가 당황했습니다. (굴릴 주사위들이 점점 줄어들잖아!)


세 번째는, "관리"가 서툴렀습니다. 게임의 종료 시에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타일에 그려진 애벌레들의 총합으로 승패를 가립니다. 주사위 운이 좋다면 30 이상의 숫자를 어렵지 않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운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운도 게임의 일부분이니까 플레이어들이 받아들여야죠. 그러나 어렵게 (혹은 운 좋아서 쉽게) 획득한 높은 점수의 타일을 지켜내지 못하고 도로 토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타일은 다음 턴에 안정적인 플레이를 해서 다른 타일로 덮음으로써 지켜야 하는데, 자신의 또 다른 운을 시험하며 허무하게 반납해 버렸죠.



마지막으로, "균형 맞추기"는 아이들 스스로 깨우쳐 가고 있었습니다. 상호작용이 직접적인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들이 앞서나가는 플레이어를 공격함으로써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가야 뒤따라가는 플레이어들이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영향력 게임 등에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인데, '나는 2등이 목표야.'라면서 앞서가는 플레이어를 그대로 놔주고 뒤따라 오는 플레이어들을 짓밟는 사람이 있다면 게임의 중반부터 결과가 결정되어 버리게 됩니다. 게임에서 "순위"가 자신의 최고 우선순위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좋은 순위 = 좋은 게임"이 될 수가 있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는 "모두의 즐거움 = 좋은 게임"이기 때문에 이미 결과가 뻔한 (이기는 플레이어에게) 가만히 있어도 이겨서 시시하거나 또는 (지는 플레이어들에게) 뭘해도 안 되는 지루한 게임을 함께 했다면 그 게임을 다시 하고 싶어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꼬꼬미노 하면서 1등을 막아야 한다는 걸 의식하면서 플레이 하는 게 보였다는 게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아이들에게서 가능성이 보여서 정말 좋았네요.)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3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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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밤 늦게까지 보드게임을 하고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5분만 더! 5분만 더!"를 외치며 허니버터칩만큼 달콤한 늦잠을 자고 싶은 일요일 아침, 짐을 챙기고 도서관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후 1시. 5학년 찬호와 4학년 정웅이만 있었고 나머지 아이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항상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던 민주가 1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아서 수업을 그낭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학년 반 5번째 게임은 Stone Age 스톤 에이지입니다. 주사위 굴리기와 일꾼 놓기 방식을 사용하는 독일식 보드게임인데요. 고학년 아이들이 일꾼 놓기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일부러 이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설명을 시작하려고 게임 보드를 딱 펼쳤는데 뜬금없이 찬호가
"선생님, 이거 구석기시대에요, 신석기시대에요?"
라고 물어보는 게 아니겠어요? 다행히 몇 달 전까지 이노베이션이라는 문명 게임에 심취해 있어서 인류역사를 좀 훑어본 기억으로
"농사를 짓는 거 보니까 신석기시대 같은데?"
라고 둘러댄 거에 가깝게 대답을 했습니다. 어른들끼리 게임을 할 때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게임 배경인데 아이들은 이런 것에도 신경을 쓰나 봅니다.

석기 시대의 큰 규칙은 무척 쉽습니다. 네 단계 정도밖에 없고, 일꾼 놓고 주사위 굴리고 밥 먹이고 빈칸 채우고 이정도잖아요? (너무 대충 설명했나요? ㅎㅎ) 아이들도 이 게임이 쉽게 보였는지 게임 설명 도중에 자꾸만 빨리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마을 안의 건물들의 중요성과 점수를 획득하는 방법들은 한 번 더 강조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좀 뜸을 들였는데 아이들의 인내심이 다 됐나 봅니다.


아이들이 둘뿐이어서 저까지 세 명이서 진행을 했죠. 제가 처음, 정웅이가 두 번째, 찬호가 세 번째였습니다. 저는 일단 농사 칸에 놨는데 아이들은 마을 건물에는 관심이 없고 돌을 캐러 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으잉? 문명 카드에도 관심이 없어서 저만 카드를 찜했습니다. 이러면 게임의 결과가 뻔해지는데 말이죠.

몇 라운드 진행하니까 아이들이 밥 먹이기의 압박을 느끼는지 정웅이가 먼저 농사 칸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찬호는 그래도 그냥 사냥 칸에 가서 밥을 구하고 부족하면 자원을 먹이더군요.

아이들의 진행은 단순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오두막을 정한다 -> 자원을 캔다 -> 오두막을 건설한다 -> (반복)...


저는 게임을 하면서 맥이 빠져 버렸습니다. (게임의 결과가 뻔히 보였으니까요.) 그래도 석기시대가 아이들한테는 쉬운 게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이들이 그날 벌어 그날 다 쓰고 하얗게 불태우는 식으로 일차원적인 플레이만 보여줬네요. 아이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에 대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봤을 때에 아이들은 분명 점수를 내는 루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큰 점수를 주는 루트 (오두막 건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큰 득점 루트 (문명 카드)보다 더 커 보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게임이 언제 끝날지 (아이들 스스로) 계산할 수가 없어서 건물로 점수를 바로바로 먹는 게 더 확실해 보였겠죠.


또한 게이머가 아닌 어른들에게 가르쳐줄 때에 흔히 놓치는 부분들이 생각났는데요. 첫 번째로, "지속적인 효과"를 과소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석기시대는 전형적인 일꾼 놓기 게임이어서 일꾼이 많을수록 유리하며 일꾼 수에 비례해서 부담을 주기 위해 라운드마다 밥을 먹이는 유지 비용이 있습니다. 그 유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당연히 일꾼을 늘리지 않는 것이 더 나은데, 석기시대에서는 농사를 통해서 아주 쉽게 영구적으로 유지 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몇 라운드를 겪고 나서 이걸 깨달은 것이죠.

두 번째로, 자신의 운을 과대평가한다는 겁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니까 오늘 게임도 잘될 것이다.'라는 과신을 하고 운이 좋지 못할 때를 전혀 대비하지 않는 경우가 있죠. 석기시대에서는 주사위 운을 조금 상쇄해주기 위해서 돌도끼를 개발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운을 너무 믿었던 것 같습니다.

세번째로,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도 상관없는 것을 거꾸로 합니다. 좋은 효과를 가지는 마을 건물을 나중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자원 채취나 사냥 칸에 먼저 들어갑니다. 심지어 시작 플레이어일 때에도요. 내가 한 번 안 해서 남이 한 번 하면 서로 2번의 차이로 벌어지게 되는데, '내가 안 하면 남도 안 하겠지.'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


제가 아이들보다 170여점을 더 앞선 채로 끝이 났지만 기분이 좋지 못했던 하루였습니다. 아그리콜라에 대한 기대는 당분간은 접어둬야 할 것 같네요.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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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에 요즈음 화제인 드라마 "미생"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TV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편이 아닌데, 지인이 정말 재미있다며 추천을 해서 보게 됐죠. '한두 편만 보고 자자.'로 시작했는데 4편을 연달아 봐서 아침 7시 반까지 보게 됐습니다. 덕분에 주말에 피로가 쌓여서 그날 모임에도 늦게 나가고 다음날 보드게임 수업에도 지각을 했네요. (핑계죠, 뭐.)

아무튼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그친 아침에 정신이 없었는지 버스에 우산을 놓고 내렸지 뭡니까. 몇 년 사이에 우산 잃어버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도서관에 가까워지니까 아이들이 저를 알아봤는지 소리를 질렀습니다.
"선생님이다!"

과자를 하나 들고 온 재혁이가 저한테 먹으라고 했는데, 저는 수업 중에 아이들하고 나눠 먹자고 했죠.

아이들 5명이 이미 모여 있었고, 제가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우르르르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언제나처럼 제 수업 원칙을 얘기했죠.
  1. 게임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2.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
  3.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4. 서로 즐겁게 해야 한다



저학년 반의 6번째 게임은 Ticket to Ride 티켓 투 라이드입니다. 가끔 티켓 투 라이"더"를 찾는 분이 계시던데, 그런 게임 없습니다. (카트 라이더를 찾으시는 게 아닌지.)

티켓 투 라이드는 룰이 4쪽밖에 안 되는 매우 간단한 게임입니다만, 저학년에게 설명하면 그렇지 않더군요. 2학년 아이들은 알아듣는데, 1학년 아이들이 따라오는 속도가 느릴 뿐더라 질문을 쏟아내느라 제 설명이 계속 끊기는 겁니다. 설명을 끝까지 들으면 다 나오는 내용인데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계속 물어보는지... 너무 흐름이 끊겨서 제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크고 중요한 것부터 이해해요! 질문하는 건 좋은 건데, 불필요한 질문하는 건 안 좋은 거에요!"
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저도 좀 울컥했나 봅니다.

사람은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컴퓨터 운영체제도 그에 따라서 tree 트리 구조로 되어 있죠. 큰 항목이 있고, 그 아래에 작은 항목이 배열되는 식으로요. 그래서 큰 줄기부터 작은 줄기, 잎사귀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심지어 나무를 그릴 때에도 말이죠.

우여곡절 끝에 설명이 끝났는데, 설명 시간이 무려 40분이나 걸렸습니다. 5분이면 끝날 것을 말이죠. 그때가 1시였어요.


한결이, 진모, 기현이, 재혁이, 예슬이 순으로 진행을 하기로 했는데, 한결이가 또 모르겠답니다. 제가 불필요한 질문을 많이 한다고 말하는 게 이런 이유입니다. 자잘한 걸 먼저 이해하려고 하니까 정작 자기 턴에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3가지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진모부터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열차 카드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두 바퀴 정도 돈 후에 기현이가 지도 한 가운데에 있는 남북 방향 회색 루트를 점유합니다.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남북 방향 회색 루트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한결이는 게임 초반부터 기관차 카드 (조커)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합니다.
"조커 3개면 버리는 거에요?"
"진열되어 있는 조커가 3개 이상이면 진열되어 있는 걸 다 버리고 새로 깐다고요."
"아!"
그리고 10여 분 뒤에 똑같은 질문을 또 합니다. 그리고 또 하고요. 게다가 자기가 놓은 기차 피스가 흔들려서 조금이라도 각이 바뀌면 테이블 반대편으로 뛰어가서 그 각을 다시 맞춰놓고 오네요. 아, 제발 큰 것부터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한결이와 같은 1학년인 진모도 계속 신경이 쓰이게 합니다. 이 아이는 (악의적인 건 아닌데) 눈을 부릅 뜨면서 왠지 모르게 궁서체로 만화 캐릭터처럼 진지하게 말한다고 할까요.
"저는 계속 카드만 뽑을 거에요!"
"수업 전에 말한 4가지 생각나요? 3번째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거에요."

그리고 게임 중반에
"이 (목적지 티켓) 카드 버릴게요!"
"이거 못 버려요. 게임 시작 전에 1장 버릴 수 있는 거에요."
"아, 왜 이제 알려줘요!"
"게임 시작할 때 얘기했어요. 설명할 때 안 듣고 딴소리 하지 말아요."

초등학교 1, 2학년의 작은 손으로 열차 카드 뭉치를 한 번에 쥐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티켓 투 라이드 아시아 맵에 있는 카드 홀더를 가져왔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첫 수업에서 카드를 과감하게 구겨버린 기현이가 신경쓰여서 가져왔습니다.

재혁이는 게임을 빨리 이해하고 잘 리드해 갑니다. 그런데 게임이 끝날 때 즈음에
"아! 카드 잘못 봤다! 아! 아!"
라면서 다급하게 카드를 다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예슬이는 이 반의 유일한 여학생으로, 1학년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제 대신에 분위기를 잡아주는 힘든 역할을 하고 있죠.
"이 (목적지 티켓) 카드 연결했는데요!"
"게임 끝나고 알려주는 거에요."
"아! (끄덕끄덕)"



게임은 어찌 보면 반전있게 끝났습니다. 한결이가 추가로 뽑은 티켓이 정말 날로 먹는 거 (2개의 루트만 더 점유하면 17점)이어서 한결이가 1등으로 끝났습니다. 티켓을 많이 뽑은 재혁이는 목적지 도시를 잘못 알고 있다가 실패를 한 티켓이 몇 장 있어서 큰 감점을 받았습니다. 4명의 아이들은 자신의 티켓을 다 확인했는데, 진모는 (나중에 결국 찾긴 했지만) 티켓 한 장을 잃어버리고 점수계산 자기가 알아서 했다면서 자신의 열차 피스를 서둘러서 치웠습니다. 그리고 수업 끝났으면 먼저 가겠다고 하네요.


제가 오늘 유난히 아이들의 평소 모습을 여과없이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제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싫으면 그냥 그만둡니다. 그래서 그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저 스스로와 약속을 하는데, 뭐든 10번을 하고 나서 계속할지 그만둘지를 결정하자는 겁니다. 이 보드게임 수업도 시작할 때에는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기분 좋게 시작했다가 아이들과 무언가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세 번 학부형들을 위해서 시간을 추가로 할애해 봤는데 아무도 오지 않으셔서 마음을 접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 쓴 경험을 겪으면서 벌써 10번째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두 반이라 한 반은 6번, 나머지 반은 4번이지만요.) 그래서 제 속에 있는 것을 다 쏟아놓고 이 수업을 계속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 오고 만 것입니다.


글 첫머리에서 드라마 "미생" 얘기를 했습니다. 저에게 미생을 추천한 지인이 알려주기로 이 '미생 (未生)'이라는 말은 바둑 용어라고 했습니다. 죽은 돌은 아니지만 아직 완전하게 산 상태가 아닌 것이라죠. 제목처럼, 힘들게 살고 있는 목숨이 간당간당한 직장인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다룬 드라마 '미생'이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듯 합니다.

주제를 살짝 바꾸어서, 보드게임 커뮤니티에는 어려운 보드게임을 정기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올라옵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쉬운 게임도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올라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리고 느끼기로는) 보드게임 전파에 실패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글들을 모니터 너머에서 읽고 있습니다. 어려운 게임들을 어렵지 않게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실적이지 않은 먼 나라 이야기이고, 남에게 보드게임을 힘들게 알리고 있고 또 게임을 이해하지 못해서 구입한 게임을 집에 방치하고 있는 게 자신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현실성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저는 10년 가까이 보드게임 모임을 하면서 어려운 게임도 모임 사람들을 통해서 쉽게 배우고 제가 산 게임들을 모임 사람들과 자주 즐기는 호사를 누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드게임 취미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던 때도 있었지만 올 봄에 남부 지방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그리고 보드게임 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사람들의 어려움을 조금 더 공감하게 됐습니다.


그런 제가 세상을 바로 보고,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힘들고 어렵지만 말썽꾸러기 아이들과 함께 하는 보드게임 수업을 계속 이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열 번을 하는 동안에 정도 들었고, 앞으로도 보드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길 바라니까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던 (미생이었던) 이 보드게임 수업에서 "미未"자를 떼어내고, 다음 주에 11번째 수업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보드게이머 육성 프로젝트, 아이 잼 어른 잼 제11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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