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용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부침개 님과 반지의 전쟁을 끝내고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게임이 너무 빨리 끝나서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죠. 저희가 반지의 전쟁을 하는 동안에 옆 테이블에서는 Yokohama 요코하마와 Caverna 카베르나, Wizard Extreme 위저드 익스트림 등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세 분이 더 오셨는데 그 중 한 분은 제가 (일인반닭!) 닭셰프 님이라고 불렀던 종민 님이셨습니다. 그쪽에서 Tichu 티츄를 할 분위기가 되자 태경 님이 저희 쪽에서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반지의 전쟁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 걸로 잘못 알아들었는데, 태경 님이 그건 아니라고 하셨죠. ㅋ 게임을 고르는 것을 머뭇거리자 태경 님이 일꾼 놓기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셨고 결국 Agricola 아그리콜라가 선택되었습니다. 병력 놓기 게임인 반지의 전쟁은 어떠세요?

태경 님이야 일꾼 놓기 게임을 워낙에 좋아하셔서 자주 하시는 걸로 아는데요. 부침개 님은 A.I랑만 하고 실제 사람하고는 몇 번 못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그리콜라는 적당히 많이 하긴 했는데 실력이 늘지 않아서 늘 좌절하는 게임이죠. 그런데 태경 님이 '당연히' 카드 드래프팅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저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도 아그리콜라는 200게임 넘게 하긴 했는데 카드 트래프팅 룰을 적용해서 했던 적은 아마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냥 캐주얼하게 했었는데, 같.놀.가에서는 진지하군요...;;; 첫 핸드에 허풍선이가 있었습니다. 저희 안양 모임에서 얼마 전에 했을 때에 Ngel 님이 허풍선이를 사용해서 이기시고 구판에 비해 능력이 낮아진 건데도 좋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제가 끊어 먹었습니다. 순서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설비를 더 많이 내려놓을 수 있는 상인도 잡고, 주요 설비인 제작소 시리즈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제조업자, 3인플에서 부족한 흙을 주는 흙 나르는 사람, 설비를 가장 많이 내렸을 때에 보너스를 주는 마을 원로 등이 잡히면서 제법 괜찮은 핸드가 만들어졌습니다. 아그리콜라 할 때마다 김칫국을 들이키지만 이번에 고른 직업들이 꽤 좋아서 구걸만 안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닌데, 첫 주기에 마을 원로를 내려서 나무 4개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2주기 전에 흙 나르는 사람을 내려서 6라운드부터 14라운드까지 흙을 한 개씩 놓았고요. 자원이 어느 정도 갖춰진 후에 상인을 내려서 설비를 더 내릴 준비를 했습니다. 첫 주기에 낚시 칸에 음식이 3개일 때에 먹어서 구걸을 피했습니다. 태경 님이 1주기 때에 계산을 조금 틀리셔서 구걸 1장을 가져가셨습니다. 양 가져오기 칸에 양이 꽤 쌓였는데, 제가 화로를 가장 먼저 놓았고 다른 분들이 양을 먹고 버리는 것을 하지 않으셔서 제가 다수의 양을 가져와서 많은 음식을 확보하며 편하게 2주기를 운영했습니다. 저는 가족 늘리기를 가장 늦게 해서 3주기 초에 했습니다. 대신에 저는 음식이 많았고 다른 분들은 가족 수에 비해 음식이 적어서 고전하셨습니다. 저는 베틀을 내려서 수확 단계에서 집에 키우는 양에 대해 음식 1개를 확보했습니다.

4주기로 넘어가자 저도 슬슬 음식의 압박이 있었습니다. 부침개 님이 올가미를 활용해서 동물들을 쓸어가셨기 때문인데요. 저는 돌 집개로 돌을 몇 개 확보하고 상인으로 음식 1개를 내고 설비를 1개 더 내리는데, 제조업자로 그릇 제작소와 바구니 제작소를 매우 싸게 놓았습니다. 제 농장에 흙과 갈대가 좀 있어서 수확 단계 때에 먹고 버틸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흙이 넉넉해서 흙집으로 돌리고 흙방을 붙여서 4가족 체제를 갖췄습니다. 흙집 체제여서 끊어먹은 나무들이 남아서 울타리를 치고 양과 멧돼지로 음식 엔진을 갖췄습니다. 제 앞에 설비가 꽤 놓였습니다. 손에 있던 보조 설비 7개 중 6개를 놓았고, 주요 설비도 3개나 놓았으니까요. 게임이 끝나기 전에 허풍선이를 놓으면서 키스톤을 올렸습니다! 작물들이 없어서 휑 했지만 카드 점수와 보너스 점수가 많아서 점수가 꽤 많았습니다. 최종 점수는 제가 44점이었고, 태경 님이 구걸 때문에 감점을 받아서 40점?, 부침개 님이 30점대 후반이었을 겁니다. 태경 님은 아그리콜라를 하면서 구걸 카드를 처음 받아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촐킨 하면서 -25점 맞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1주기 때에 태경 님이 약간 배짱 플레이를 하시길래 저는 설비나 직업으로 음식을 충당하실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때에 실수를 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됐네요. 같.놀.가에서 드디어 이겼어!!



그 승리를 허풍선이의 강력함을 알려 주신, 안양 모임의 Ngel 님께 돌리며...

엔 선생님, 고맙습니다. 흙흙...



아그리콜라가 끝나고 모두들 붕~ 떠 있었는데요. 나중에 오셨던 남자 분 중 푸근하신 분이 태경 님의 당나귀 게임을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요청하셨습니다. 응? 당나귀 게임이 뭐죠? 저도 궁금해서 같이 해보기로 했습니다. 게임의 정확한 이름은 Eselsbrücke 에젤스브뤼케? 독일어 사전에 넣고 돌리니 요약, 힌트 이런 뜻으로 나오는데, '당나귀 다리'라는 뜻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독일의 관용어가 아닐까 싶네요. 기억력 요소가 있는 게임이어서 집중하느라 사진을 못 찍었네요. 게임의 진행은 이렇습니다. 단어 카드들을 주머니에 넣고 라운드마다 일정 개수만큼 뽑아서 그 단어가 들어간 짧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 단어 카드들을 뒤집어서 쌓아 놓습니다. 돌아가면서 각자 이걸 하는 거죠. 그리고 다음 라운드도, 그 다음 라운드도 똑같이 하는데. 두 라운드 지난 단어 카드들을 뒤집어서 플레이어들에게 1장씩 나눠주고, 각 플레이어는 받은 단어 카드를 확인한 후에 두 라운드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다른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단어를 맞추는 겁니다! ㅋ 맞추면 그 단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서 그 단어 카드를 가져와서 점수로 표시하고, 틀리면 자신의 점수를 버려야 합니다.

태경 님이 학원에서 아이들과 하시려고 한글 단어로 핸드 메이드를 하셨는데, 원 게임은 독일어로 되어 있습니다. 박스 그림만 봐도 아이들용으로 만든 게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 보면 어른들이 해도 꽤 재미있습니다. 승패보다도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고, 각자의 기억력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죠. ㅎ 저는 보드게임 카페에서 손님들 (특히 여성 손님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게임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아이들을 떠 올리고, 다른 사람은 보드게임 카페 손님을 떠올리네요.


보드게이머들 중에 교육 게임 시장을 하찮게 보시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아무래도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부각되는 게임들은 복잡하거나 세련되거나 화려한 어른들 게임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매니아들의 시장이 엄청 클 거라 생각하시는데요. 실제로는 매니아들의 시장은 크지 않을 겁니다. 교육 시장은 우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분명히 큰 시장입니다. 학교나 학원, 사교육 강사들, 크고 작은 도서관들, 그리고 각 가정... 아이들이 있거나 모이는 곳,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사람들 모두 교육 시장과 관련 있습니다. 선생님들이라면 한 가지 게임을 여러 카피 구입하기 때문에 구매력도 큽니다.

그런데 제가 교육용 게임에 대해 알러지 반응을 일으켰던 것은 그러한 게임들이 "교.육.용"이라는 것을 너무 드러내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가짜 약장사들이 "이 약을 먹으면 어디에 좋다.", "이 약은 모든 병을 고친다."며 장점을 내세우는 것처럼 "이 게임을 하면 아이들의 창의성이 계발된다.", "수리 능력이 향상된다."는 식으로 홍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게임을 할수록 해당 능력이 향상될 겁니다. 제가 남자라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스포츠나 게임을 가르칠 때에 "이걸 배우면 어디에 좋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같이 놀기 위해서 가르치죠. 하다 보면 어느 능력이 향상될 건 알고 있지만 굳이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재미있어?"라고 물어보고,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걸로 된 거죠. 저는 놀이는 놀이로서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보드게임도 마찬가지고요. 게임을 판매하는 게 업인 분들은 저와 입장이 다르시겠지만요.


새벽 1시가 넘어서 몇몇 분들은 귀가하시고 시간 여유가 있으신 부침개 님과 반지의 전쟁을 더 하기로 했습니다. 확장에 대해 궁금해 하셔서 첫 번째 확장만 추가해서 하기로 했습니다. 인물들이 더 추가되어서 각 진영에게 선택지를 넓혀 주는 게 첫 번째 확장의 장점이죠. 밸런스 면에서도 훨씬 더 좋아지고요.

첫 번째 게임에서 모리아를 지난 원정대는 반지악령들의 수장 마술사-왕의 추적을 받습니다. 저는 마술사-왕을 따돌리기 위해서 원정대를 로리엔으로 보내서 쉬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남부인과 동부인군이 움바르의 해적선들로 돌 암로스를 공격하고 돌 암로스가 방어하는 사이에 펠라르기르에 있던 군대를 내려 보내서 움바르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 순식간에 자유민족이 승리 점수 2점을 따낸 것이죠. 모르도르에서 나온 사우론군은 곤도르로 향했고 오스길리아스에서 노스 이실리엔으로 나온 곤도르군이 공격을 받은 후에 후퇴로 모란논 직전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행동 때에 모란논으로 이동하면서 승리 점수 4점을 따고 암흑군단은 패배 선언을 했습니다. 자유민족이 군사적 승리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깨 드렸죠. ㅎ



바로 두 번째 게임에 들어갔습니다. 첫 번째 게임에서는 성큼걸이가 추적으로 빨리 죽어 버렸는데, 이번에는 페레그린 툭을 데리고 미나스 티리스로 뛰어나가 바로 아라고른으로 되고, 회색의 간달프도 팡고른 숲에서 다시 나타나서 행동 주사위 6개를 쉽게 만들었습니다. 왕이 된 아라고른은 바로 로한으로 달아나고 페레그린은 미나스 티리스에 있는 군대를 데리고 오스길리아스로 나갔습니다. 또 움바르의 해적선으로 돌 암로스를 공격한 남부인과 동부인군은 펠레르기르로 돌아서 나왔습니다. 부침개 님이 곤도르 남쪽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저는 "하루 낮과 하루 밤 내내" 카드로 오스길리아스에 있던 곤도르 군을 2지역 이동시켜서 미나스 모르굴을 점령하고 승리 점수 2점을 얻었습니다. 한편 오르상크에 혼자 있던 사루만은 "엔트들이 각성하다" 카드로 죽어 버리고. 이센가르드군이 약해지자 모인 로한군을 데리고 오르상크로 달려들었습니다. 소수의 군대로 오르상크를 지키던 이센가르드군은 포위되고 버텼습니다만 자유민족의 전투 카드에 의한 추가 공격으로 전멸했습니다. 이렇게 자유민족은 승리 점수 4점을 얻어내며 군사적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저희가 두 번째 게임을 하는 동안에 혼자 남으신 용무 님은 누워서 쉬고 계셨습니다. 게임이 다 끝나자 함께 가게 청소를 하고 새벽 4시 반 즈음에 모두 헤어졌습니다. 저는 국밥을 먹은 후에 동네 목욕탕에서 씻고 서너 시간 잤습니다.

아침 9시 반 즈음에 목욕탕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전주역으로 향했습니다. 월요일이었지만 광복절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여서, 아침인데도 관광객들이 꽤 많았습니다. 전주에 도착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저는 수원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세 번째 남부지역 순회방문을 마쳤습니다. 피자와 고기를 대접해 주신 같.놀.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네 번째 시즌을 기약하며...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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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놀다 가게 II 는?

부산에서 아침 일찍 노포역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9시에 전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했거든요. 비가 오려고 하는지 하늘은 잔뜩 찌푸렸습니다. 저는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어쩌죠? 흠...

노포역에 연결된 버스터미널로 들어갔습니다. 서두른 덕분에 아직 여유 시간이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먹을 샌드위치와 생수를 구입했습니다. 버스 타는 곳에 갔는데 제가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우등고속버스더라고요. 승차권 창구 직원이 센스가 있었는지 제게 맨 앞자리를 주었습니다. 기사님 바로 뒷자리면 짐을 놓기 편하죠. 버스에 올라서 짐을 내려 놓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기사님이 절 부르시더라고요. 응? 저는 잘못한 거 없는데...;;; 알고 보니 승차권을 기사님 옆에 비치된 스캐너에 찍고 타야하는 거였습니다. 아하! 제 승차권을 스캐너에 대니 제 자리가 승차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오호! 정말 신기하네요!


분명 처음 의도는 버스 안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었는데 계속 잠만 잤습니다. 당연하죠! 보매보매 님 댁에서 거의 안 자고 나왔으니...;;; 약 3시간 걸리는 거리였는데 저를 위해서였는지 약간 연착되어서 정오가 넘어서 전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런데 2년 전에 봤던 터미널하고 모습이 달랐습니다. 위치는 같은 것 같은데 완전 현대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뭐, 뭐지...?

거기에서 남문시장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알고 있었지만 짐이 많고 피곤해서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택시 기사님하고 얘기나 하려고요. 택시를 타고 기사님께 터미널이 바뀐 것 같다고 말씀 드렸더니 리모델했다고 하시더군요. 그게 제가 택시 기사님과 나눈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이 기사님은 좀 과묵하셔서 말을 못 걸겠더라고요;;;

아무튼 택시에 내리니 풍남문이 보였습니다. 여기서부터라면 저도 청년몰을 쉽게 찾아갈 수 있죠! 남문시장으로 들어가서 당당히 걸으며 청년몰로 올라가는 계단을 쉽게 찾아냈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일요일 낮이었지만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2년 전과 비교해서 가게들이 좀 바뀌었습니다. 같.놀.가가 있던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입점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케이블 채널의 알.쓸.신.잡 프로그램에서 청년몰이 소개되면서 뉴 같.놀.가도 0.1초 샤샤샥 지나간 걸 봤거든요. ㅠㅠ 청년몰을 휘~이~ 한 바퀴 돌면서 부활한 같.놀.가를 찾았습니다.


가게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안에 사람의 형체가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개장 시간이 오후 1시라고 해서 버스에서 못 먹은 샌드위치를 뜯으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청년몰의 여러 가게에서 파는 맛있는 음식들이 땡겼지만요. ㅠㅠ


드디어 오후 1시. 저는 용기를 내서 같.놀.가에 들어갔습니다. 가게 주인장님은 역시나 히미끼 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봤던 것 같은 느낌이... 설마? 설마? (누구 TV는 사랑의 싣고 음악 좀 틀어 주세요! 커즈 암 여 레~이레~~ 앤 유아 마 매~애~애~앤~♬)


그렇습니다. 2년 전에 왔을 때에 봤던 후로 쓰루 게이머, 용무 님이셨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쓰루를 하시면서 오프라인으로 다른 게임 다면기 도 하시는... 그런데 점심식사를 준비 중이셔서 얘기를 이어가기가 좀 애매했습니다. 게다가 다른 가게의 분들이 와 계셔서 제가 끼어들기도 좀 그랬고요. 일단 올라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용무 님께 방탈출 보드게임 있냐고 물어봤던 것 같은데, 조만간 한글판으로도 나온다고 하죠?

그러고 나서 용무 님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2년 전에 히미끼 님이 저와 함께 남부지역 순회방문 시즌2 <삼시세겜>을 하면서 돌아다니셨습니다. 술을 같이 마시면서 같.놀.가를 계속 할 건지 말 건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꺼내셨죠. 딱히 답을 제게 들려주시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제가 받은 느낌으로는 곧 영업을 끝내실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에 같.놀.가의 영업이 종료된다는 얘기가 들려왔고 같.놀.가 분들은 다른 모임 장소에서 모임을 이어간다는 후기가 올라왔습니다. 용무 님이 말씀하시기로는 히미끼 님이 바로 끝내지는 못하셨고 몇 개월 더 하시다가 그해의 11월 즈음에 끝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여자친구 분이 생기시고 결혼을 하셨다고... 아, 맞다. 히미끼 님의 결혼소식은 바로 전날 부산에서 스머프2 님을 통해서 처음 들었습니다. 아니, 왜 전주 분의 결혼소식을 부산 가서 듣냐고요?! ㅋ 아무튼 결혼하신지 1년이 넘으셨겠지만 (너무나 늦었지만) 결혼 축하 드리고요. 행복하게 잘 사세요. ^^ 히미끼 님이 그만 두시면서 마침 일을 쉬고 계셨던 용무 님께 제의가 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같.놀.가 II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게 내부에 벽돌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용무 님이 손수 짊어지고 나르셨다는...


저는 한쪽에 앉아 있었는데 용무 님이 남은 테이블을 붙여서 큰 테이블을 만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날 새벽까지 같.놀.가 멤버 분들이 술을 달렸기 때문에 일요일에 올지는 알 수 없다며... ㅠ 다른 분들을 기다리는 동안에 용무 님이 간단한 게임을 하자며 무언가를 가져오셨습니다. Hive 하이브. 저는 이름만 들어본 게임이었습니다. 벌레들로 장기를 두는 추상전략 게임이었는데요. 게임 보드는 없고 기물만 가지고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잡히면 패배하는 여왕벌, 어디든지 잘 가는 개미, 무언가를 뛰어넘어야 하는 메뚜기, 남의 기물을 잡아두는 풍뎅이 등 여러 곤충들의 특성을 잘 이용한 게임이었네요. 첫 판은 용무 님이 쉽게 이기시고. ㅠ 확장인 모기를 넣고 한 번 더 하자고 하셨습니다. 모기는 인접해 있는 다른 기물을 흉내내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원래는 진 건데 용무 님이 한 번 물러주셔서 제가 이겼습니다.


하이브를 하는 동안에 다른 분들이 오셨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기억이 났는데요. 같.놀.가의 큰 언니 태경 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은실 님. 그리고 또 처음 보는 남자 분. (성함을 들었는데 잊어 버렸습니다. ㅠ) 태경 님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Tzolk'in: The Mayan Calendar 촐킨: 마야의 달력의 판을 벌렸습니다. 안돼~~~~ ㅠㅠ 전주 같.놀.가에는 마야의 기운이 있어서 촐킨을 너무나 잘 하십니다. 후로 촐킨 게이머들... 2년만에, 정말 오랜만에 왔는데 오자마자 멍석말이 당하게 생긴 거죠... ㅠㅠ 당연히 확장도 다 넣고... 태경 님이 본인이 24점으로 최저점을 찍었다며 깔깔깔 웃으셨습니다. 이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시길래 24점을 찍게 만드는 걸까요? 프로의 세계란... 저는 부족 2개 중에 5일꾼으로 시작하고 대신에 옥수수를 3개씩 먹여야 하는 것을 골랐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분들이 놀라시더군요. 불길하다, 불길해!! 제가 시작 플레이어여서 욱스말에 3개 놓고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한 가지 놓친 게 있었습니다. 예언을 보지 않고 부족을 덥썩 고른 건데요. 4쿼터에 옥수수를 한 개씩 더 먹여야 했습니다! 난 4개씩 먹여야 해... ㅠㅠ



각 마야 부족의 어머님들이 모이셨습니다. 우리 부족 어머님은 자식들이 밥을 굶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셨습니다. 끼니를 거를 때마다 호통을 치셨죠. "마이너스 5점씩이야!!" 저는 3쿼터까지 잘 버티며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4쿼터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는데... 중앙 기어는 게임의 종료까지 단 2칸을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제가 턴이 먼저여서 일꾼을 미리 뺐습니다. 다음 라운드에서 일꾼을 놓은 다음에 최종 라운드에서 일꾼을 가져오면서 옥수수를 벌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태경 님 하신 다음에 남자 분이 시작 플레이어 행동 칸을 잡더니 그 라운드를 마칠 때에 2칸을 돌려 버리신 겁니다... 아, 아, 안 돼~~~~!! ㅠㅠ 제 일꾼 4명은 밥을 해결하지 못해서 -20점, 게다가 예언으로도 -5점을 받아서 총 -25점을 떠안았습니다. 제 계산으로는 50점대 초반이 나와야 할 점수가 21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태경 님은 제가 최저점을 갱신했다며 기뻐하셨습니다. 각자 최선을 다 한 경기였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팀플처럼 되어서 기분이 좀 그랬습니다. 은실 님은 혼자 사원으로 점수를 계속 쌓으셨고, 제가 건물로 사원 트랙 따라가려고 하니까 태경 님이 건물을 끊어가셔서 사원 점수 먹을 기회를 놓치고 (상황 상, 사원 트랙에서 마이너스 점수였던 태경 님에게도 필요한 건물이긴 했습니다), 남자 분이 2칸 돌리셔서 광역 데미지를 넣으셨는데 (남자 분의 일꾼이 가장 많이 놓여 있어서 2칸 돌리는 게 합리적이긴 했습니다) 제가 제일 크게 맞으면서 은실 님이 1등, 태경 님이 2등, 남자 분이 3등, 제가 꼴찌... (제가 계산한 대로 되었다면 제가 2등은 했을 텐데...) 으, 무서워...;;; ㅠ


이렇게 해서 미운 촐킨 새끼, 끝.



'내가 무슨 촐킨이냐...'며 속으로 울분을 삼키고 제 본업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전주에 온 또 다른 이유. 반~지가 안~ 되면 (나무) 수! 염! 스! 쿨!



저희가 촐킨을 하는 동안에 한쪽에서 남자 두 분이 게임을 하면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헤이보드 모임에서 같.놀.가에 놀러오신 맛난파전 님과 다른 한 분 (파전 님과 같이 오셨으니 '부침개' 님이라고 해 두죠)! 맛난파전 님이 반지의 전쟁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는데, 제가 될 수 있으면 같이 할 분과 손잡고 오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몇 년 간 반지의 전쟁을 전파하면서 느낀 게, 혼자 배워놓으면 다른 사람한테 룰 설명을 못 해서 결국 반지의 전쟁을 배운 걸 써먹지 못 하게 됩니다. 최소 두 사람이 배워서 같이 게임을 하면서 룰을 마스터 해야 다른 분에게 설명 비슷하게 해 줄 수 있는 거죠. 다행히 두 분 모두 반지의 제왕 세계관에 익숙하셨습니다. 얘길 들어보니 맛난파전 님은 원작 소설을 다 읽으셨고, 부침개 님은 얼마 전에 영화 3부작을 다시 보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두 분은 첫 플레이가 될 반지의 전쟁의 규칙을 한 시간 가까이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플레이 시작. 용무 님은 센스 있게 3시간짜리 반지의 제왕 O.S.T를 켜 주셨습니다. 타임 어택에 들어간 거죠. 음악이 먼저 끝나느냐, 게임이 먼저 끝나느냐?

맛난파전 님이 자유민족을, 부침개 님이 암흑군단을 맡으셨습니다. 맛난파전 님이 초반에 원정대를 보내는 것보다 전투 준비를 하셨고 중반 즈음 되어서야 원정대가 조금씩 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침개 님은 처음이셔서 암흑군단 군대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는 못 하셨습니다. 군대를 뭉쳐서 보내야 하는데 그냥 앞으로 빼시더라고요. ㅠ 저는 뒤에서 들려오는 O.S.T를 흥얼거리고 따라부르며 두 분의 플레이를 봐 드렸습니다. O.S.T가 먼저 끝나고...;;; 결국 반지 운반자들은 산 트랙에 올라갔습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타락 점수를 매섭게 올라왔습니다. 마지막 한 칸을 앞두고 타락 점수는 벌써 10점. 1 이하가 나오거나 '2'가 적힌 일반 추적 타일이 뽑혀야 자유민족이 이기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반지 운반자들은 마지막 걸음을 내딛고 뽑힌 추적 타일은 '쉴롭의 굴' 특별 추적 타일. 주사위를 굴려서 '1'이 나와야만 자유민족이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었습니다. 주사위를 굴렸는데 결과는...? '4'. 게임은 암흑군단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맛난파전 님이 한 게임을 더 하시면 좋을 것 같았는데 술약속이 잡혔다면서 곧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반지의 전쟁을 깔아놓은 게 아까워서 제가 부침개 님과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두 분이 초반에 하신 실수를 잡아드리기 위해서 맛난파전 님께 10분 정도만 보고 가시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주사위빨이 미친 듯이 잘 나와서 2턴만에 원정대가 4칸을 가고, 4턴에 행동 주사위 6개를 만들면서 초보자 농락 모드가 되었습니다. 이게 아닌데...;;; 원정대의 속도가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저는 전투를 완전히 배제하고 계속 달렸습니다. 부침개 님은 방어를 하지 않는 가운데-땅을 휩쓸고 다니셨죠. 반지 운반자들이 산 트랙에 올라갔을 때에 타락 점수는 매우 낮았습니다. 문제는 암흑군단의 정복 속도였습니다. 어느 새 암흑군단은 승리 점수 10점을 만들었고 저는 마지막 한 행동을 남긴 상태였습니다. 반지 운반자들이 마지막 칸의 바로 직전 칸에 있어서 저의 마지막 행동으로 그들을 앞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빨간색 특별 추적 타일만 나오지 않으면 저의 승리였습니다. 제발, 제발!! 다행히도 마지막 타일은 빨간색이 아니어서 자유민족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부침개 님이 두 번째 게임이셨는데 승리 조건을 그렇게 빨리 달성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군사적 승리보다 반지에 의한 승리의 우선 순위가 높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 한 시간도 안 되서 끝났을 겁니다. ^^;;; (여러분, 반지의 전쟁이 이렇게 라이트합니다.) 제가 종종 얘기하잖아요? '반지의 전쟁은 가운데-땅의 미니 빌이다.'라고요. ㅋ



전주에서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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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오디오/비디오 컨텐츠는?
스머프2 님의 던전 다락에서 탈출할 떠날 때에 스머프2 님이 '혹시라도' 새벽에라도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하셨습니다. 새벽 4시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시면서요. 새벽에 돌아올 일이 안 생겨야 하는데... ㅠ

저는 부산대역에서 도시철도를 타서 서면역에서 내렸습니다. 거기서 보매보매 님을 만났는데요. 음? 닉네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동글동글하신... ^^;;; 인사를 나눴는데요. 리액션을 바로바로 보여주시는, 시원시원한 부산 싸나이셨습니다. ㅎㅎ 보매보매 님께는 스머프2 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만날 것 같다... 라고 전해드렸었는데. 이전 편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둘이 만난 시간이 짧아서 실제로는 식사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랬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뭐 하셨어요?! 하아~~ 식사부터 하시지요?!"
보매보매 님께 호통 아닌 호통을 들으며 (?) 식사를 하러 움직였습니다. 서면이 서울의 명동처럼 완전히 가운데에 있는 번화가인 것 같았습니다. 백화점을 비롯한 높은 빌딩들이 즐비해 있고 유동인구도 많았습니다. 한쪽 골목으로 따라 들어가며,
"박기량이 아시지요?"
"아, 네. 알죠."
"가가 자주 와서 먹는다는 가겝니더."
저도 야빠 (?)라서 박기량 씨가 누군지 압니다. 부산 하면 자이언츠 '박기량'이죠!! 나도 박기량 씨가 먹는 가게에서 식사를 해 보는구나 싶었는데... 가게 이모님들이 벌써 청소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업이 끝난 거죠. ㅠㅠ


다른 한식 레스토랑 같은 곳에 갔는데도 영업 종료... ㅠㅠ 다시 이동하여 국밥집이 늘어서 있는 불이 훤하게 켜진 돼지국밥골목으로 갔습니다. 보매보매 님이 가게 이모님들께 인사를 드리며 앞장서서 들어가셨습니다.
"국밥, 드시지요?"
"아, 네. 그럼요."
제가 생긴 게 이래서 (?) 그렇지 어지간한 건 다 먹습니다. 못 먹을 것 같은 것도 잘 먹습니다;;; 이날 만나는 부산 분들마다 '부산에 왔으면 돼지국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도 부산 갈 때마다 가능하면 돼지국밥을 먹으려고 하고 있거든요. 제 입맛에도 잘 맞고 당연히 맛도 있고요. ㅎㅎ 국밥에 따라나온 부추를 국밥에 넣고 간장으로 만든 것 같은 소스도 넣어서 먹었습니다. 막 먹기 시작했는데 보매보매 님께 전화가 걸려와서 통화를 하셨습니다. 길지 않은 통화였는데 통화가 끝날 때 즈음에 저는 이미 국밥을 다 먹은 상태였습니다. 허기져서 빨리 먹게 되더라고요. ㅎㅎ (아래 국밥 사진은 인터넷에서 비슷한 걸로 찾은 겁니다.)



식사를 마치고 보매보매 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저는 길을 전혀 모르니까요. 부산대 앞은 몇 번 가 봐서 길이 눈에 익었는데 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배**라**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가셨습니다. 달고 고소한 게 먹고 싶어서 자모카 아몬드 퍼지를 골랐죠. 보매보매 님은 그린티를 고르셨는데 아주 조금만 드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댁에 계신 보매보매 님 부인의 것이었기 때문이었죠. 택시를 타고 보매보매 님 댁으로 갔습니다. (아래 아이스크림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은 겁니다.)



원래 계획은 보매보매 님 댁에서 반지의 전쟁을 밤새 알려 드리고 저는 아침에 전주로 떠나는 것이었는데요. 여기에 제가 계산하지 못한 변수가 둘 있었습니다. 하나는 보매보매 님이 결혼을 하셔서 댁에 부인이 계시다는 것, 남은 하나는 보매보매 님이 다음 날 출근하신다는 거였습니다;;; 전략을 세웠는데 틀어진 느낌... ㅠㅠ 보매보매 님이 댁에 가셔서 옷 갈아입고 다시 나와서 다시 다락으로 가는 걸로 처음에 정했다가 부인과 얘기를 하셔서 댁에서 노는 걸로 바꾸셨습니다. 스머프2 님은 설레셨을 듯;;; 댁에 계신 부인께 인사를 드리고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피해서 들어갔습니다. 보매보매 님이 안내하신 한쪽 방에 들어갔는데 '우왓!'

그것은 게임 룸이었습니다. 4개의 벽면 중 한 면 반 가득 책장에 게임들이 꽂혀 있었고, 한쪽 벽면의 책상에 컴퓨터와 뭔가 동영상 편집이 가능한 기계들이 있었습니다. 방 가운데에는 반지의 전쟁을 펼치기에 충분히 넓은 테이블이 있었고요. 책장 앞에는 그 강아지의 응가가 있었는데, 왠지 내가 먹고 있던 자모카 아몬드 퍼지 색깔과 비슷해서 제가 뭘 먹고 있는지 잠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아이쿠야;;; 보매보매 님이 편한 옷을 주셔서 씻고 옷을 갈아 입고 게임을 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보매보매 님이 씻으시는 동안에 방 안을 구경했습니다. 동영상을 편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계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식사할 곳을 찾으며 돌아다닐 때에 얘기를 나눴는데요. 보드게임 관련 동영상을 제작하실 계획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의 테이블탑을 만들고 싶다'는 큰 포부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카메라도 있고 기계도 있고 다 있는데, 현재 하나가가 빠졌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스스로 전략을 만들어가면서 플레이하고, 또 프로그램 특성 상 끊임없이 말도 해야 할 겁니다. 일단 보매보매 님 부인께서 Terra Mystica 테라 미스티카까지 소화하시는 데까지 3-4년이 걸렸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안양 모임을 만들 때에 첫 번째로 잡은 목표가 모임을 같이 이끌어갈 '게이머'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내가 편하자고 저 혼자서 다 떠안으면 게임도 내가 다 사고 규칙도 내가 더 설명하고 그러다 보면 제가 지쳐서 모임을 오래 끌고 갈 수 없게 됩니다. 시간이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같이 끌고갈 사람을 키워놓으면 제가 점점 편해지거든요. Agricola 아그리콜라에서 가족 늘리기로 전체 행동 수를 늘리는 것처럼요. ㅋ

저도 유튜브 채널이나 팟캐스트 등을 만들어 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죠. 제 기준으로, '프로그램'이라면 미리 대본이 나와야 하고 그에 맞춰서 진행과 촬영을 하고 그 후에 편집을 해야 하는데요. 그런 것들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전략 세우고 연구하는 걸 즐겨서 플레이 횟수를 늘려야 하는데, 그것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번역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저한테 말 그대로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ㅠ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이 오디오 팟캐스트나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서 여러 컨텐츠를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는 시청이나 청취를 많이 한 편은 아닙니다. 꾸준히 본 것이 보매보매 님이 말씀하신 TableTop 테이블탑이었습니다. Wil Wheaton 윌 휘튼이라는 유명 미국배우가 호스트가 되어서 유명인들을 초대해 같이 게임을 즐기는 프로그램인데요. 다른 프로그램과 다르게 '재미'가 있었습니다. 시트콤 같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게임을 소개하는가보다도 이 사람들이 무얼 하면서 웃고 떠들까가 기대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출연자들이 서양 사람들답게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매력이었죠.


요즈음에 보드게임 관련 오디오/비디오 컨텐츠가 많은데요. 구분지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요. 테이블탑 페이지에 가면 종종 어려운 게임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댓글이 보입니다. 저는 그들이 바라는 게임은 테이블탑 프로그램과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막극을 하는 프로그램에 대하드라마를 해달라는 꼴이랄까요? 어떤 이들은 무겁고 길고 어려운 게임을 다룰 필요도 있지만 다수는 아직 보드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보드게임에 호기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가볍고 유쾌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게이머들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전자에 속한다면, 테이블탑이 후자에 속하는 거죠. 어제의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보드게임에 대한 오디오/비디오 컨텐츠는 더 밝고 유쾌했으면 합니다. '게임 = 놀이기구 =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무언가'라면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무겁고 어둡고 너무 진지하면 '보드게임 = 어려움 = 노 잼'이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주거나 그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질 테니까요. 대중과 가까운 위치에서 친근하게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바람이에요. ^^;; (그런 의미에서 대도서관 님이 출연한 한곰 님의 동영상은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보매보매 님이 시원한 커피와 맛있는 과자를 테이블에 놓으시면서 저희는 게임을 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반~지가 안~ 되면 (나무) 수! 염! 스! 쿨!



보매보매 님은 부산에서 다른 분들과 한 번 해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1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룰 설명을 드리면서 빠뜨리셨거나 틀리게 하셨던 부분이 있는지 확인을 했죠. 설명 내내 보매보매 님이 확장에 대한 욕심을 보이셔서 첫 번째 확장 Lords of Middle-earth 가운데-땅의 귀인들만 추가해서 하기로 했습니다. 이건 처음이셔서 룰 설명을 추가로 했습니다.

음... 근데 기억이... ^^;; 다음날에 반지를 여러 게임 했더니 머리 속에서 섞여서요. ㅠ 얼핏 나는 기억에 초반에 해야 할 전략/전술적인 부분들을 짚어드리면서 튜토리얼 모드로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투구 (소집)으로 이센가르드 내리고 사루만 뽑고, 확장이니까 모리아의 발록을 뽑아서 원정대가 날치기로 지나가는 걸 한 번 견제한다든지 그런 거요. 깃발 (군대)로는 모르도르에 흩어져 있는 군대들을 모아서 'X'자 모양으로 데리고 나오는 걸 설명해 드렸던 것 같습니다. 사루만의 능력을 등에 업은 이센가르드의 와르그라이더들이 이끼는 군대가 로한을 공격할 때에 로한군은 어떻게 방어하는지를 보여드렸을 겁니다. 제 기억으로 새벽 4시가 넘어서 사우론의 눈처럼, 붉어지는 보매보매 님의 눈을 보며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게임이 거의 끝나서 보매보매 님이 게임을 접자고 하셨습니다.



오전 5시 즈음에 누웠는데 잠이 잘 안 오더군요. 잠자리가 바뀌어도 잘 자는 편인데, 그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아서 양을 세는 대신에 제 기행문에 쓸 내용을 머리 속에서 쓰고 있었습니다. 동녘에서 해가 뜨는지 하늘이 옅은 푸른색으로 바뀌고, 어디선가 소독차가 큰 소음을 내며 돌아다녔습니다. 잠은 고속버스 안에서 자기로 하고 씻고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보매보매 님이 아침에 저를 깨워주시려고 알람을 맞춰놓고 주무셨는데 알람이 울릴 때에 저는 깨어 있었습니다. ㅠ

오전 7시 반 즈음에 배웅해주시는 보매보매 님을 뒤로 전주로 떠났습니다. 댁으로 직접 초대해 주시고 저녁식사와 간식을 대접해 주신 보매보매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이제 전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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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의 경쟁자는?

캄바오공방에서 나온 저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사실, 이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을 만나러 가고 싶긴 한데 들르면 다음 일정이 너무 빡빡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래도 부산까지 왔으니 한두 시간만이라도 만나뵙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괴정역에서 꽤 긴 시간 동안 도시철도를 타고 부산대역에서 내렸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은 이곳에 그분이 계시죠! 남부지역 순회방문 때마다 들렀던 다락을 운영하시는 스머프2 님. 저는 예고도 없이 불쑥, 훅 치고 들어갔습니다.
"스머프 님, 안녕하세요?"
그러자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시던 스머프2 님은 입을 떡 하니 벌리시고 2초간 정지 상태로 계셨습니다. 마치 야구동영상 (?)을 몰래 보다가 갑자기 방에 들어온 엄마를 본 표정 같은... 스머프2 님과 정답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제가 2년 전에 다락에 왔을 때에 스머프2 님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잘못 되시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다행히 이번에 방문했을 때에 건강을 완전하게 회복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던전 안쪽 방에 감금당하고 안내를 받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썰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년간 어떻게 지내셨냐부터 건강하셨냐, 모임/다락은 잘 되냐 등등을요. 그런데 다락에 일가족 보드게임 손님이 오셔서 대화가 잠시 중단 되었습니다. 저는 안방에 있는 게임장을 훑어보고 있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게임들이 보였습니다. Watson & Holmes 왓슨 앤 홈즈라든지 저도 얼마 전에 재미있게 한 T.I.M.E Stories 타임 스토리즈 풀 세트 등이요.

손님들에게 게임 설명을 마치고 돌아오신 스머프2 님과 대화를 계속했습니다.
"요즈음은 추리 게임이 대세다 아입니꺼."
"아, 그런가요?"
"이게 계절별로 인기가 다른데예. 이번 여름에는 추리 게임이 많이 나갔습니더."
그러면서 스머프2 님은 얼마 전에 정말 '어렵게' 구하신 왓슨 앤 홈즈 얘기를 살짝 하셨습니다. 뭐, 자랑이신 거죠. ㅋㅋ 저는 아직 못 해본 게임인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대화는 아래쪽에 꽂혀 있는 타임 스토리즈로 넘어갔습니다.
"스머프 님, 타임 스토리즈도 손님들한테 나가나요?"
"이게 손님들한테 억수로 잘 먹힙니더. 특히 여성분들한테."
타임 스토리즈는 저희 안양 모임에서 최근에 하루에 몰아서 열 시간 가까이 플레이해봤습니다. 재미있다 말만 들어봤지 그때 처음 해보고 저희 멤버들 모두 홀딱 반했는데요. 이게 어렸을 적에 팔았던 게임 북 방식이어서 플레이어들을 몰입시키기에 좋긴 합니다. 그래도 게임이니 규칙이 있고 옆에서 누가 봐줘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게임이 비(非)보드게이머들한테 정말로 통한단 말인가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 방탈출 카페 아시죠? 손님들이 거기 예약 걸어놓고 여기 와서 기다린다는 거 아닙니꺼. 막 4시간이고 5시간이고 기다려야 해서 여기 와서 게임하면서 기다리는데예. 제가 타임 스토리즈 한 번 가르쳐 드리니까 이거 하느라 방탈출 카페에 전화해서 '저희 예약한 거 취소할게요.' 이런다는 거 아닙니꺼."
방탈출 카페는 수도권에서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번화가마다 몇 개씩 생겼습니다. 한 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일인당 몇만 원의 비용을 내야 함에도 추리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이나 커플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들었죠. 방탈출이라는 컨텐츠를 물리적인 공간에서 구현하고 인테리어비, 소품비를 뽑으려면 일정 기간 동안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한 번 클리어한 손님들은 다른 탈출 방을 원하기 때문에 한 가게 안에 여러 탈출 방을 만들어 두어야 하죠. 저 같은 '뼛속까지 보드게이머'인 사람의 시각에서 '아니, 뭐 저런 거에 시간 당 몇만 원을 쓰고 싶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요즈음 YOLO (You only live once)가 대세이니만큼 자기가 쓰고 싶은 것에 돈이 얼마가 들든 마음 대로 쓰는 세상이긴 하죠.


아무튼 스머프2 님의 말씀은 '타임 스토리즈나 추리 게임들이 방탈출 카페의 대항마다.'라는 겁니다. 보드게이머들에게 추리 게임은 리플레이성이 매우 제한된, 두뇌의 특정 부분만 집중적으로 쓰는, 단순한 게임으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비보드게이머들에게는 다르다는 얘기죠. 어제 제가 캄바오공방편에서 테마틱 게임을 언급했습니다. 테마틱 게임이 초보자들에게 잘 먹힌다고요. 보드게이머들이 저지르기 쉬운 잘못 중 하나가 초보자에게 새로운 게임을 소개할 때에 메커니즘 중심으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일꾼 놓기 게임이야. 이 게임은 액션 포인트 게임이야."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초보자들은 게임을 접할 때에 내가 어떤 역할이 맡아서 무슨 일을 겪게 되는지가 더 와 닿습니다. 그러니까 "이 게임은 우리가 씨 뿌리고 가축을 기르면서 농장을 운영하는 게임이야. 이 게임은 우리가 탐사대가 되어서 마야인들의 사원과 보물을 찾는 게임이야." 이렇게 접근해야 그들을 게임 테이블로 끌어당기기 쉽다는 겁니다. 게이머들이 게임을 메커니즘 중심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테마는 거들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을 깊게 파면 팔수록 (전략을 연구할수록) 껍데기인 테마는 사라지고 뼈대인 논리 부분만 남습니다. 그러면 거의 추상전략화된 거죠. 게이머들은 게임을 논리로 접근하지만 비보드게이머들은 테마로 접근하기 쉬우므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서울 강남에서 보드게임 카페 일을 할 때에 당시에 같이 일하던 동료들하고 이런 망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엔 보드게임 카페의 빙하기가 올 것을 예상치 못했지만) 나중에 우리가 보드게임 카페를 차린다면 어떤 식으로 할 건가에 대해서 밤새 얘기했었죠. 저는 보드게임 카페가 하나의 놀이공원이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카페에 있는 각 게임은 놀이기구라고요. 우리가 디즈니랜드 같은 곳에 가면 유치하더라도 그곳에 완전히 빠져 듭니다. 일상의 스트레스는 다 잊고서 말이죠.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날 처음 본 사람들과도 손을 흔들며 웃고 인사를 건낼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깁니다. 보드게임 카페가 놀이공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모르는 사람들과도 게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제 경험입니다만 10여 년 전 당시의 여자친구와 함께 보드게임 카페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할 때에 모르는 커플 2팀에게 함께 게임을 하자고 제안해서 Bang! 뱅!을 6인플로 한 적도 있습니다. 2인플 되는 게임을 고르면 너무 제한되니까요.)

그리고 보드게임이 놀이기구로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면 테마가 잘 살아야 합니다. 게이머들은 경쟁을 통한 '승부'나 '승리'를 추구하는 편입니다. 우리 같은 보드게이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게임들을 익히고 플레이했으니 싸움 (?)을 위해 충분히 훈련된 정예 요원인 셈이죠. 그러나 초보자들은 아직 두뇌 전체를 사용하는 데에 훈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략 게임을 하면서 몇십 분만 집중해도 머리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합니다. 네, 당연한 결과죠. 그러나 초보자들이 그런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꽤 긴 시간 동안 게임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고통을 잠재워줄 모르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테마'라고 봅니다. 타임 스토리즈는 클리어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립니다. 운이 좋으면 더 빨리 끝나겠지만 제가 해봤을 때에 시나리오마다 3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스머프2 님의 다락에서 4시간 이상 타임 스토리즈에 매달렸던 손님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테마가 주는 뽕 또는 약기운 (?) 은 놀라움 그 자체죠. "자, 우리는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해. 우리는 전세계에 퍼지는 전염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출해야 해." 이런 식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임무가 주어졌는지를 받아들이면 초보자들도 보드게임에 더 쉽게 빠져들 거라는 겁니다. 그게 테마고요.


최근 들어서, 테마틱 게임들이 '잘'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잘'은 양(量)과 질(質) 모두 해당합니다. 많이 나오고 있기도 하고 게임성 자체에서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여 년 전 제가 기대했던 보드게임 카페의 역할이나 강점이 부각될 때가 드디어 온 것이죠. 앞으로도 양질의 테마틱 게임들이 더 많이 출판되어서 게이머들뿐만이 아니라 보드게임 카페를 찾는 비보드게이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주기를 바랍니다.


오후 8시 반이 넘어서 스머프2 님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다락에서 나왔습니다. 일정이 너무 짧아서 긴 얘기를 나누지 못해서 무척이나 아쉬웠는데요. 다음 번에 부산에 갈 일이 있다면 스머프2 님과 밤새면서 먹고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싶네요.


부산에서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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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액세서리의 미래는?

3년 전에는 "뜻밖의 방문"이라는 이름으로, 2년 전에는 "삼시세겜"이라는 이름으로 남부지역 순회방문을 했습니다. 작년에도 이 프로젝트를 할 생각은 있었지만 제게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삼시세겜 때에 저와 몇몇 모임 사이에 마찰음이 있었고, 작년에 제가 새로운 모임을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죠. 2017년이 되자 제 모임도 안전 궤도에 올랐고, 겨울부터 9개월 이상 붙잡고 있던 번역도 슬슬 끝날 기미가 보이자 제 스스로에게 '휴가'라는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매일 밤 모니터를 바라보며 번역을 다듬던 것을 제 눈 앞에서 치우고 싶었던 것이죠. 반가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얘기도 하고 게임도 하던 때가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2년 만에 남부지역 순회방문 프로그램을 재개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달에 해외구매로 게임을 몇 개 구입했더니 예산이 넉넉치 않아서 일정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복절까지 징검다리로 이어지는 둘째 주말 단 이틀. 예전에 "반지의 전쟁" 글에서 부산에 와달라는 댓글이 기억나서 부산에서 배우실 분을 찾았습니다. 보매보매 님 한 분만 신청을 하셔서 퇴근하신 시간 이후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낮부터 저녁 시간까지 무얼 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얼마 전에 보드라이프에서 보드게임 오거나이저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글이 기억났습니다. 블로그를 찾아가서 위치를 보니 마침 부산이더군요. 게다가 부산역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블로그에 있던 이메일 주소로 견학을 희망한다고 메일 한 통을 보냈더니 바로 다음 날 답장이 왔습니다. 게다가 토요일에는 그곳에서 보드게임 모임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러브 레터부터 1846까지 두루두루 한다는 말씀에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지만요...;;;


금요일 퇴근 후에 짐을 꾸렸습니다. 가방에 옷이랑 수건, 게임 등을 넣었습니다. 몇 시간이라도 자려고 누웠지만 소풍 전날의 초딩처럼 잠이 오지 않더군요. 시계를 보니 어느덧 5시 반. 씻고 기차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편의점에서 구입한 샌드위치와 생수로 아침식사를 해결했습니다. 7시가 조금 넘자 드디어 부산행 열차가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열차 안에 이런 분들은 안 계신 것 같았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잠 들었습니다. 귀에 사람들이 내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상도 어르신들 소리가 많이 들려서 '아, 거의 다 왔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10여 분 연착되어 12시가 넘어서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 여름 휴가를 보내려는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하나였고요.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리 짜 놓은 일정표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습니다.



부산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바로 도시철도역이 있습니다. 부산1호선을 타고 괴정역에서 내려 마침내 '캄바오공방'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1층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에 저를 맞이해 준 것은 다름 아닌 고양이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맞이해 준 건 아니고 제 앞을 막고 있었죠;;; 고양이 목줄에 '테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드러누워 있는 테리를 지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작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열린 문 틈 사이로 테리가 앞장섰습니다.


사무실 안에서 다섯 분이 게임을 하고 계셨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옆에서 게임하시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하시던 게임은 Compounded 컴파운디드. 화학적 혼합물을 만드는 게임이라고 하셨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주머니에서 원소들을 뽑아서 서로 교환하고, 특정 원소들을 요구하는 혼합물에 자신의 원소들을 올려놓고 미션을 완수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과학을 소재로 한 게임 몇 가지가 있죠? 생물에 대해서는 Evolution 에볼루션, 지구과학이나 우주는 Terraforming Mars 테라포밍 마스가 떠오르는데, 앞으로 화학 하면 컴파운디드가 떠오를 것 같네요.



저를 기다리시느라 다들 점심식사를 못 하셔서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어딜 가든지 메뉴 정하는 게 가장 어렵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에 국수집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걸어가는 동안에 캄바오공방 주인이신 욱일 님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게 가장 궁금했습니다. 보드게임 취미와 공방 일 중 어떤 걸 먼저 시작하셨을지가요. 원래는 가구 만드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보드게임을 접하시게 되었고, 가구 주문이 없을 때에 기계들로 보드게임과 관련된 것을 만들 것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2년 만에 남부지역 순회방문을 하면서 그 2년 사이에 보드게임 계에서 크게 바뀐 것 중에 하나가 보드게임 액세서리 시장이 커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시면 2년 전만 해도 오거나이저나 트레이, 메탈 코인 같은 것을 소수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근래에 갑자기 대두된 현상이죠. 저는 게임 액세서리를 추구하는 게이머들의 등장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원래 전통적으로 게임을 깊게 파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게임을 수백 번 플레이하면서 전략 대결을 좇는 '플레이어'들이죠. 그러다가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보드게임 디자이너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그에 따라 출시되는 게임의 수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게임을 수집하는 '컬렉터'들이 나타났죠. 이들이 수집하는 것은 몇십 개 수준이 아닙니다. 수백 개부터 수천 개에 이르죠.

'플레이어'들은 소유욕이 별로 없습니다. 보드게임 커뮤니티에서 컬렉터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보드게임 모임에서 게임을 구입하지 않고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회원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은 게임하는 것 자체를 즐깁니다. '컬렉터'들은 자의나 타의로 수집합니다. 집에 넓은 공간이 있고 재력도 뒷받침되는 분들은 자연스레 컬렉터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해외구매가 쉬워짐에 따라 해외에서 직접적으로 게임 구입하는 분들은 배송비의 부담을 줄이면서 관세 부과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200를 초과하지 않도록 구입합니다. 한 번 주문을 넣을 때에 금액을 맞춰야 해서 불필요한 게임도 넣게 되죠. 주문 넣는 횟수가 많아지면 게임은 쌓이게 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해보지 못한 게임들이 점점 쌓이게 됩니다. 자신이 원치는 않았지만 컬렉터가 된 거죠.

이 두 부류와 비교하면, 액세서리를 구입하는 탐미주의자(耽美主義者)는 이질적입니다. 소유욕이 있지만 그것이 게임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보조하는 액세서리에 향해 있으니까요. 액세서리는 보드게임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했습니다. TCG (Trading Card Game)가 생기면서 카드 슬리브와 프로모가 보드게임 계로 흘러들어왔고, Carcassonne 카르카손이 사람 모양의 마커, Meeple 미플을 도입하면서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욕구를 심어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테마틱 게임이 정교하고 세련되게 바뀌면서 보드게임긱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테마틱 게임은 게이머들을 홀리는 훌륭한 스토리와 몰입감을 높여 주는 구성물이 핵심입니다. 다양한 카드, 토큰, 피규어들을 한눈에 보이도록 깔끔하게 보관할 수 있는 저장용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오거나이저나 트레이의 판매도 증가하고 있죠.

그리고 제가 최근에 겪은 바에 의하면 테마틱 게임 때문에 보드게임을 시작한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니까 게임의 규칙만 옆에서 잘 잡아준다면 테마틱 게임으로 비(非)보드게이머를 보드게임 계로 끌어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은 복잡한 메커니즘이나 전략의 맛보다는, 게임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즐깁니다. 어쩌면 게임 내의 단순한 구성물을 예쁜 것으로 대체하는 분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새로운 분들을 보드게임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대체 컴포넌트를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음식을 예쁜 용기에 담고 예쁜 수저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면 손님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액세서리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 편입니다. 제 집에 있는 게임이 (기본판만) 100개가 넘어가지만 제가 좋아하는 상위 몇 개의 게임의 플레이 횟수를 늘리는 데에 더 열중합니다. 전략을 연구해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을 찾죠. 게임을 수집하기도 합니다. 보드게임 취미를 10년 넘게 해서 알레아 게임은 이유 없이 모으고 있죠. 그래서 저는 플레이어와 컬렉터의 가운데에 있는데, 플레이어 쪽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제가 산 액세서리라고는 Codenames 코드네임즈와 Mage Knight: The Board Game 메이지 나이트: 보드 게임 것밖에 없습니다. 아, 반지의 전쟁 거점 피규어 세트가 있긴 하네요. (이건 좀 값이 나갑니다. ㅎㅎ) 저 같은 사람은 액세서리의 생산자, 판매자들에게 있어 미개척 시장일 것입니다. 앞으로는 3D 프린터나 레이저 절단기 등을 통하여 집에서 손수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죠. 카르카손이 일으킨 작은 날개짓이 보드게임 계에서 점점 커져가는 폭풍이 되었습니다. 정말로요.


제 뇌 속 망상은 끝이 나고, 걸어서 도착한 국수집의 메뉴의 가격을 보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멸치국수가 2,500원이라니... 곱배기 해도 3,000원? 와, 이거 실화인가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캄바오공방으로 향했습니다. 오전부터 모이신 분들도 있었고 각자 주말 일정이 있으셔서 게임을 오랫동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짧은 게임들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번째 게임은 Skull King 스컬 킹.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비정상적으로 핫한 게임이죠. 이날 카드가 굉장한 텃세를 부렸습니다. 외지인에게 이렇게 가혹할 줄이야. 흥선대원군 급이었습니다. 제가 위저드 같은 트릭-테이킹 게임에서 약하지 않은 편인데, 이날 거의 맞추지 못했고 핸드에 카드가 굉장히 애매하게 들어와서 '0'을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 손에는 특수 카드가 잘만 들어가던데... 설마 제가 타짜들 사이에 앉은 건 아니었겠죠? 저쪽에서 바둑이나 둬야 할 삼촌이었는데 제가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ㅠㅠ 3번인가 성공해서 겨우 70점이었습니다.


두 분이 먼저 가시고, 제가 가져간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Hansa Teutonica 한자 토이토니카로 결정되었습니다. 모르시는 분이 계셔서 제가 설명을 드렸습니다. 공평하게 시작 플레이어를 정했는데, 제가 세 번째였을 겁니다. 두 번째 플레이어셨던 분이 첫 라운드에 (제 기준으로) 살짝 실수를 하셔서 제가 좋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4-5인 맵에서는 Göttingen 괴팅겐에 연결된 무역로가 Quedlinburg 크베들린부르크뿐만 아니라 Warburg 바르부르크도 있는데요. 턴 순서가 빠른 두 플레이어가 각자 한 무역로에 2개를 놓아야 편한데, 두 번째 플레이어 분이 마커를 두 무역로에 갈라서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번째로 3액션을 빨리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4액션을 가장 먼저 찍고, 다른 분들은 다른 기술들을 개발하셨습니다. 저는 4액션을 찍고 그 다음에 괴팅겐에 영업소를 설치했습니다. 나중에 Hamburg 함부르크에도 영업소를 놓았습니다. 제 영업소들의 자리가 좋아서 점수가 계속 올라갔습니다. 대신에 저는 기술 개발이 좀 더뎠습니다. 중반부터 저는 동서 네트워크를 준비했는데, 디스크가 부족해서 책 기술을 개발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소비되었습니다. 제가 게임을 끝낼 때 즈음에 두 번째 플레이어 분이 쾰른 테이블 러시를 하셨습니다. 시간을 더 드리면 질 것 같아서 마지막 턴에 제가 영업소 순서 바꾸는 보너스 마커를 쓰면서 동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게임을 끝냈습니다. 점수 계산을 해보니 제가 두 번째 플레이어 분에게 3점 뒤쳐져서 2등을 했네요. 제가 마지막 턴에 영업소 순서 바꾸는 보너스 마커를 두 번째 분의 것과 바꾸는 데에 썼으면 공동 1등으로 끝나는 거였는데, 제가 계산을 꼼꼼히 하지 못했습니다. ㅠ



세 번째로 Dokmus 도크무스를 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보고 실제 게임은 처음 봤습니다. 박스가 매우 커서 어려운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과대포장...;;; 안이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게 전주 같.놀.가에서 왔을 거라고 하셨는데요. 같이 해보고 나니까 곧 캄바오공방에서도 방출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서관 대출 대장처럼 목록을 만들어서 이 도크무스가 전국팔도의 보드게임 모임을 돌게 하는 게 어떻냐고 쓸데 없는 의견을 내 봤습니다. 그림만 보면 아랍 쪽 같은데, 아무튼 뭐 무슨 도크무스라는 섬이 있고, 도크무스라는 신이 있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요... Citadels 시타델처럼 하는 추상전략 게임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ㅋ) 자신의 턴에 마커 3개를 놓는데, 그 라운드를 위해 선택한 캐릭터의 도움을 받으며 진행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마다 턴 순서가 적혀 있는 것도 시타델과 같았습니다. 결과는 제가 꼴등. 카드만 저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마커들도...



다른 분들이 가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지막 게임을 짧은 카드 게임으로 정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먹고 들어가는 Parade 퍼레이드. 저는 이 게임하고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 어디가 재미있는 부분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자고 하면 하는데 제가 먼저 하자고 하지 않는 게임. 그 정도. 저는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냥 먹은 건 아니고 철저한 계산 하에 먹었습니다. 특정 색깔만 집중적으로 먹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게임 종료 시에 메이저리티로 뒤집어진 카드는 장당 1점 감점이더군요. 저는 그게 1점 득점인 줄 알고 잘 먹었다고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혼동한 게임은 Geschenkt 게쉥크트가 아닐지... 다행히 2등은 했습니다. 퍼레이드... 저의 아무말 퍼레이드였네요. ㅠㅠ



모임을 마치고 나올 때에 욱일 님이 공방 내의 기계들을 보여주셨네요. 이렇게 해서 오후 6시 반 즈음에 캄바오공방 견학을 끝내고 다른 반가운 분을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아, 중요한 걸 빠뜨렸네요. 방문을 허락해 주시고 점심식사를 사 주신 욱일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부산에서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Posted by Mounted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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